유교적 질서의 필요성
愚人 吳政禹 (慶秀)
세상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세상이 말세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갈수록 그렇게 이루어지는 형세를 볼 때 두렵기까지 하다. 무엇이 그러한가? 바로 당연한 질서가 더 정확히는 자연스러운 이치가 무너지는 것을 말한다. 그 중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이제는 별 감정 없는 저출산이다. 꽤 오래전부터 국세를 털어서 출산 지원금을 줬었다. 근데 나아지기는커녕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제는 여야가 가리지 않고 누가 더 무엇을 해주는지 경쟁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게 전부다. 이 상황은 심히 잘못되었다. 당장 얼마만큼을 줘야 출산과 양육이 되고 그 이전 결혼율이 올라가는지 이성적 견해가 없고 이유도 없다. 당장 돈부터가 그렇다. 얼마든지 올라갈 수 있다. 분유를 먹여도 더 비싼 걸 먹일 수 있고 학교를 보내도 일반 공립학교보다 더 좋다는 사립학교를 보낼 수 있다. 그렇게 끝이 없다. 근데도 그냥 국세를 뿌리는 짓을 하고 있다. 그리고 왜 돈을 줘야 하는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루어진 결혼과 출산을 왜 국가가 일일이 돈을 뿌리며 지원해야 하는가? 아무리 어려웠던 시절이었어도 지속된 게 왜 지금은 안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기본적 정신이 문제기 때문이다. 만약 유교적 종법 질서 및 사회 질서가 그대로 지속되었다면 이런 촌극은 없었다. 돈을 주면 낳고 아니면 안 낳는다는 헛된 망상을 버려야 한다. 국가가 해야 할 건 정신 상태를 바로 잡고 과거의 성현이 그랬던 거처럼 삼강행실도를 배포하는 식으로 교육해 나가야 한다. 아니면 방안이 없다. 정신적으로 깨우치지 않으면 방안이 없다. 현 사태는 유교적 질서를 허물고 자기 자식만을 아끼며 자식 덕을 보려고 분수에 넘치는 요구를 하는 기성세대의 이기심과 어리석음이 있고 개인주의라 하지만 이기적이고 당연한 이치를 부정하고 꼰대라는 한마디로 차단하는 젊은 현세대가 만든 것이다. 유교적 질서를 다시 세워서 급감하는 결혼율과 출산율 높아지는 이혼율 같은 잘못된 정신 상태를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유교적 질서가 옳다 아무리 세상이 지나도 만세불변의 진리가 있다. 그것을 거부하는 무리들은 제거하고 깨우치게 해야 한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가 있으니 바로 타락한 도덕성이다. 요새 들어서 범죄자가 정치를 하고 그걸 지지하는 사이비 교주와 신도가 연상되는 통탄한 상황이 되었다. 이걸 한마디로 요약하면 반지성주의라 할 수 있다. 정치병 걸려서 온갖 수를 쓰고 위선을 보이며 추한 꼴을 보여도 다 넘어가는 상황이다. 심지어 대놓고 대중들을 개돼지 취급해도 상관없이 언제나 그대로다. 항상 속으면서 또 속는 것이다. 한번 속으면 불쌍하고 두 번 속으면 멍청하고 세 번 속으면 한통속이라는데 과연 한통속이 되었다. 이러한 반지성주의 덕에 범죄자들이 사실상 정권을 장악했다. 능력도 의지도 기본 정신도 타락한 이들이 승리하고 그걸 아직도 따르는 대중들에게 이제는 연민이 아닌 분노가 나올 만큼 처참하다. 先憂後樂(선우후락)이라는 명언이 있다. 바로 문정공의(범중엄) 정신인데 송나라 사대부의 정신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먼저 근심하고 괴로움을 느끼고 마지막에서야 즐거움을 누린다. 이러한 정신이 존재하지 않는 이들이 갈수록 늘어난 이유가 반지성주의 어리석은 이들 때문이다. 명나라의 고염무가 천하의 흥망은 필부에게도 있다. 라는 명언이 무엇인지 이를 통해 알 수 있으니 명나라 동림당을 보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구나. 그래서 중니 이래로 성현들께서 백성을 어리석게 본 것이 옳다는 것이 증명되어서 다시 한번 성현들에 안목을 감탄하게 된다. 그래서 배움을 일으키시고 염치를 알게 하려 노력하신 성덕을 보게 되었다. 파렴치한 일당들이 도를 이용하여 예악을 무너뜨릴 것을 예견하셔서 위선자보다 위군자를 경계했다. 교언영색이 이러한 것이고 소인의 행실을 말씀하신 것이 이것이었다. 그리고 맹자의 이치를 이용하여 교화를 목적으로 약한 형벌을 멋대로 정하는 걸 알게 되었다. 성선설은 사람이 태어났을 때를 말씀하셨던 거지 악인을 함부로 용서하고 교화라는 말로 세상을 속이는 것이 아니셨다. 이렇게 잘못된 풍속이 퍼져서 사기 범죄가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그럼에도 갈수록 커져서 혹세무민을 일으키는 작자들이 늘어가니 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교화를 이유로 악인을 제거하지 못하게 하니(소년범) 풍속이 저열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문제가 상하 구별이 사라지고 있다. 요새 이러한 망언이 돌아다니고 있다. 바로 친구 같은 부모 교사와 학생이 동등한 학교 등 헛소리가 넘치고 있다. 그래서 갈수록 분수를 모르고 악행을 일삼는 자들이 어려지는 것이다. 부모가 아이를 훈육 하는건 당연한데 이제는 학대라 부르고 있다. 학대와 훈육의 구분도 못하는 광망한 세상이 되었다. 선생이 어리석다면 선생을 바꿔야지 학생에게 주도권을 줘서는 절대로 안되며 아버지가 못났다고 가부장적 질서를 무너뜨리는 건 안된다. 그러나 지금은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기만 할 뿐 대안이 없는 일당들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나서고 있다. 유교적 질서가 필요한 이유가 이것이다. 어른은 염치를 알고 아이는 겸양과 분수를 알고 선생은 양심과 사리를 알고 학생은 공경의 마음을 알게 하는 것이 正道이며 공자께서 정치를 하거나 그 이전 무엇을 바로 잡는가를 할 때 가장 먼저 하셨던 일이다. 이름을 바로잡고 행실을 올바르게 하셨던 뜻을 알게 되니 기쁘다. 반드시 상하 구별은 해야 하며 적당한 소리로 그걸 없애려는 자들은 사기꾼이다. 다음은 여러 가지 사상을 무작정 수용하고 시비를 전혀 가리지 않은 현 상태를 말하겠다.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서구에서 정치적 올바름 소위 PC 주의가 퍼졌고 그게 지금 세상을 어지럽게 하고 있다. 약자를 위하고 소수자를 챙긴다는 듣기 그럴듯한 소리를 하며 다양성을 무기로 시비를 가리지 않는 비겁함을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결국 서구를 몰락시키고 있다. 이슬람이라는 인간적인 요소가 소멸한 사상을 가지고 남의 나라에서 살면서 염치없게도 온갖 민폐와 악행을 일삼고 있다. 난민뿐만 아니라 타국에서 넘어온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의 횡포도 커지고 있으니 매번 사변이 일어나고 주객전도가 되어가고 있다. 또한 이것에 맞서면 언더도그마의 현상을 이용하여 시민 독재 전체주의 반지성주의가 퍼지게 했다. 자유를 위해 자유를 봉쇄하는 웃기는 상황이다. 그리고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려서 국가, 가족, 인종, 성별 등 당연한 것들을 사악하고 불순한 의도로 망쳤다. 이제 우리나라 까지 왔다. 이럴 때마다 저출산 노동인구 감소를 핑계로 받아들이고 있다. 잘못된 국민성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고 일만 벌이고 있다. 무엇보다 인권을 들먹이는데 정작 한반도 이북에서 고통받는 관서, 해서, 관북인 들에게는 관심도 없다. 자국민도 버리면서 정체를 모르는 자들에게는 너그럽다. 거기에 더 나아가 반국가 세력이 있는데 통일을 반대해서 나라의 국토를 포기 혹은 바쳤다. 북벌을 계획하지는 못할망정 반란군을 놔두길 원한다. 일본은 북방 영토를 러시아로부터 수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식민지로 삼았다가 본토로 인정한 유구국(오키나와)과 각종 열도를 지배했는데 우리는 한반도 하나 통치를 하지 못하는 건 이러한 그릇된 국민성 때문이다. 주나라가 견융을 격파하고 한나라가 흉노를 정벌하고 진나라가 여러 오랑캐와 대치하고 중원을 빼앗겨도 북벌을 한 자세와 당나라의 돌궐 응징 송나라의 연운 16주 탈환 명나라가 아무리 형세에 몰려도 요동과 중원을 포기하지 않은 정신과 우리 세종 장헌 대왕이 조종이 물려준 땅을 버리지 않은 정신을 유지하지 못한 게 매우 비통하다. 아무튼 잘못된 사상을 틀렸다고 하지 못하는 현 상황은 잘못되었다. 시비를 가려서 잘못된 건 물리치고 올바른 정도를 지켜야 한다. 그렇다면 그걸 어떻게 판단하는가? 결과를 보면 된다. 다수의 이론을 무작정 받아들였다가 갈수록 이상한 행보를 보이는 서양과 난세가 지속되는 중동을 보면 된다. 그리고 갈수록 풍속이 저열하게 가는 우리나라를 보면 된다. 유교적 질서만이 이걸 물리칠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위정척사파 일본의 유신지사들에 이론을 합치면 경세제민을 이룰 수 있다. 유교적 질서로서 대장부에게 의기와 염치를 알게 하고 부녀자에게 유순함과 절개(삼종지도)를 알게 하고 아이에게는 겸양과 공경함을 알게 해서 풍속을 교화하는 것이다. 절대로 묵가와 같은 경계성을 허무는 무리들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건 사상 탄압이 아닌 시비를 정한 결과고 그게 증명된 지 오래되었다. 한나라 초기에 주나라와 요순시대의 이치가 쇠락했으나 숙손통을 시작으로 예악이 부흥하기 시작 했다. 진나라에 난리 이후 예법이 사라진 이후 조금씩 다시 일어났으니 그 공이 크다. 이처럼 현세를 볼 때 비록 지금이 더 심하나 그래도 나아가야 한다. 공자께서 나를 알아주는 건 하늘뿐이라 하셨을 만큼 주공의 도가 쇠퇴했던 때보다 더 위기이고 한나라 말기에 청류당에 수난과 진나라 때 외척과 종실의 난 당나라 때 군옹의 횡포와 주전충에 극악함 송나라 때 한탁주의 횡포 명나라 때 동림당의 수난 보다도 현 상황이 더 위태롭지만 유교적 질서의 기초만이라도 유지 해야 한다. 지금은 유교에다가 뭘 갖다 붙이기를 좋아하는 퇴폐적 모습이 보이는데 선비에다가 비속어를 갖다 놓고 탈레반이라는 저열한 용어를 붙여서 오용하며 유교에다가 보이 혹은 걸을 갖다 붙여서 조롱이나 하고 있다. 그래서 더디더라도 기본적 정신만큼은 오염되지 않게 하는 게 유림(儒林)의 최소한의 가야 할 길이다.
아무리 부정해도 유교적 질서가 옳은 걸 부정할 수 있는 부류는 없다. 단지 그런 부류가 하는 게 혹세무민이다. 결과적으로 증명되었고 당연한 걸 유지 할 수 있는 건 유교적 권위 유교적 질서뿐이고 이건 경험에서 보여준 것이며 함부로 단정한 게 아닌 정상적인 판단이다. 부디 正道를 알아 經世濟民의 본뜻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첫댓글 글쓰기 방식에 대해서는 유가철학 수업 시간에 이야기한 것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글쓰기, 곧 글을 쓰는 행위는 1차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하겠지만, 2차적으로는 그것을 보는 사람을 전제로 합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생각에 대해서 궁금한 사람에게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어떤 것도 흥미로울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그 사람의 생각이 나의 생각을 변화시킨다라고 하는 기대감을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글쓰기와 말하기에는 일종의 규칙 같은 것이 있습니다. 감정표현을 자제하고, 주장에는 그것과 직결되는 근거를 제시해야 하며, 상대를 폄하하거나 모욕하는 표현을 쓰면 안 된다는 등이 규칙입니다. 거친 표현의 글과 주장만 있는 글은 읽기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유가철학 수업 시간에 이 글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오갔으므로, 주장에 대한 논거, 표현 등에 대해서 유의하면서 다시 한 번 글을 재구성하는 것도 좋겠다는 말을 덧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