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소에 거울을 거의 보지 않는다. 그런데 세수를 하고 난 어느날, 거울을 보고 설핏 웃음이 나왔다. 방금 스쳐 지나간 낯설음은 뭐였지? 분명 매일 마주치는 내 얼굴인데 위화감이 느껴진다. 이제 웃음 아닌 웃음을 다시 지어본다. 눈가가 여러 겹으로 접혀있다. 이 주름들은 대체 언제부터 있었단 말인가! 나는 이제까지 주름이 지는 줄도 모른 채 해맑게 웃고 있었던 걸까? 걱정이 된다. 늦은 나이에 대학에 다시 돌아와 20대들과 같이 앉아있는 나. 그 중간에서 주름진 얼굴로 웃고 있는 나라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왜 이제까지 내 얼굴을 모르고 있었는지. 그러고 보니 거울을 들여다보는 일이 낯설었던 내 일상들이 생각난다. 언젠가부터 당연했던 일상이 모두 낯설어진 채 지속되고 있다. 직장에 다니다 아이를 낳았다. 아이가 말도 다 떼기 전에 대학에 입학했다. 아침마다 화장하며 거울을 들여다보던 일이 없어졌고 정장치마보다 트레이닝복이 익숙해졌다. 매일 시간에 쫓기며 살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있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나는 그저 대학생이란 시간 속에 갇혀있었고 어느덧 익숙했던 내 나이는 낯설어졌다. 나는 2학년이었고 3학년일 뿐, 내 나이가 버거울 정도로 많아졌다는 것을 잊었다. 내 나이에 맞춰가는 내 얼굴이 갑자기 보여 문득 낯설었다. 그러고 보니 내 오랜 친구들 얼굴도 낯설다. 중학생의 어린 얼굴로 만났던 우리는 같이 나이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매일 보는 친구들이 20대가 된 때부터 내 오랜 친구들의 얼굴이 익숙지 않다.
그러나 낯섦은 언젠가 익숙함이 된다. 어색했던 대학 생활이 어느덧 당연한 내 주업이 되었듯, 어색했던 20살 새내기가 사랑스러운 나의 어린 친구가 되었듯. 내 주름도 익숙한 내 웃음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내 얼굴에 묻어나는 내 행복의 파편으로 간직하고자 한다. 거울을 보며 놀라거나 슬퍼하지 않겠다. 내 삶의 여정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사랑할 것이다. 변화하는 내 얼굴은 새로움이다. 주름은 줄어드는 일 없이 계속 늘어날 테니 내 얼굴은 언제나 새롭고 사랑스러운 얼굴이 되지 않을까!
첫댓글 스친 웃음기에 대한 낯선 느낌이군요. 그래서 다시 웃어보았고, 이제는 눈가의 주름에 눈길이 가 닿았군요. 왜 그럴까?라는 질문이 이어지고, 그 원인을 20대 젊은 학우들과 함께 있는 나, 나이와 세월로 생각이 발전했네요. 그리고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이 세월도, 그 속에서 낯섦이 느껴지는 것도 한때다, 일상이다 라는 생각으로 나아가면서, 내 얼굴의 소중함, 곧 일상의 의미와 가치 문제에 닿았네요. 우리는 자기 얼굴을 평생 보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매일 아침 보는 거울을 통해서 나만큼 내 얼굴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좌우가 반전된 채 거울을 통해서 보이는 내 얼굴을 보면서 그게 내 얼굴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하지만 어제와 같다고 생각했던 그 얼굴이 사실은 내 삶의 순간순간을 담고 있다는 것은 나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소중한 것입니다. 그것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유일한 사람도 나뿐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도덕적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