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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차창으로 얼굴에 화악 부딪친다.
순진 무구한 어린애 마냥
코를 벌렁 거리며 고향의
냄새를 맡아본다.
퇴비에서 풍겨 나오는
소똥 냄새...
진한 풀내음...
이것이 진정한 고향의 냄새가 아니던가?
고향의 푸른 창공을 향해,
줄지어 서 있는 플라타너스들의
가지런한 행렬들...
그 옛날,
덜컹덩 덜커덩
아침에 한 대,
저녁에 한 대
버스 지나가노라면
먼지가 풀~풀나던 그 신장로길을
지금은 아스팔트 훤한 길위로
내 어릴적 코흘리게의
어린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아스팔트 위를 힘껏 달려간다. 톡톡 튀는 말솜씨로 친구들에게
정감을 주는 우리 맹아줌마, 정숙이... 언제나 봐도 듬직하고, 넉넉한
부잣집 맞며누리 같은 현수... 집안에 우환은 있지만
잠시나마 친구들과의 반가운
만남을 통하여 조금이라도 위안
받을까 찾아온 재준이... 바다에 나가 낚시해서 잡은 거라며
생선회 가득싣고 온 손국이... 친구들에게 몸보신 해 주려고
돼지고기 가득 싣고온 고마운
마음의 동진이... 친구들에게 믿음과 신의가
어떤 것인지 보여준 길건이... 입가엔 밝은 웃음이 떠나질 않는
낙천적 성격의 희이... 손수 만든 김치와 구수한 된장을
가져와 솜씨 자랑하는 종숙이... 채, 한 시간도 잠 못 이루고 일어나서
영희와 같이 맛있는 반찬 만든 필선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우리의 고운 추억들을
아름다움으로 남겨주기 위해
수고한 하얀눈! 음료수며, 맥주, 장갑, 산나물 토시까지
알뜰하게 준비해 준 우리 회장 찬우... "가메실산장"을 등대처럼
지켜주는 카페지기 재민이...
마치 무슨 마력에라도 끌린것 마냥
우리들을 "산장"의 아늑한 울타리에
꼭! 가두어 버렸다네. 우리 "60여명"이 다시 한 자리에
만나기까지 몸을 던져 자신을 희생해 준
우리의 구세주! 희병이... 몸이 아파서 못 온다며 맛있는 과일
잔뜩 보내준 향숙이의 그 정성... 마치, 담밑에 수줍은 듯 갓피어난
제비꽃 마냥 살며시 우리에게 다가온 애자! 누나 데릴려 왔다는 핑계로 소주
서너잔 마시고 호탕하게 웃는 종훈이... 꼭 내가 컴에 들어가면,
닉네임을 "술"이라 한다는 중관이... 동창들에게 무슨일이 있으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웃음과 위로의 말을
전하는 다정한 친구들의 최고의 해결사들...
사원, 주백, 종대, 원락이... 고운 마음씨를 가진 영희!
너가 아니었으면 우리가 어떻게
이런 곳에 다시와 보기나 했을까? 두리둥실 춤을 추었고, 어느 친구는 기분이 "쨩!"이라고,
술 한 잔을 마셔가며 목청을 높이하고... "너 억수로 못생겼는 줄 알았데이..."
영희의 말에 쓴 웃음도 지어 보이고 "너, 키 큰 줄 알았어..."
애자의 말에 뒷꿈치를 들어보이며, 키 큰 채도 해보았다. 추억을 남길 사진을 찍을땐,
어린애 마냥 좋아서 이리 저리 날뛰어
각양 각색의 포즈에 한바탕 웃음도 자아내고... 영희가 살고 있는 집에 찾아가기 위해
정숙이 성랑이 영희와 함께 거닐었던 밤길 정족의 밤길은 개구리도 마냥 즐거웠던지
화모니의 노래로 우리들을 환영해 주었고,
솔바람이 잔잔이 불어주었다. 노래방에 가자는 어느 친구의 제안에
새벽 2시라는 시간 관념도 잊어버린채,
팔십골을 지나 영양 노래방에 갔었고... 노래방에서 흥겹게 부르는 노래와 춤들은,
어느 가수나 댄스(dancer)들을 추월하고
모두들 어디서 배우고 갈고 닦은 실력들인지... 팔십골 구비를 돌아오다가 달리는 차안에서,
참한 규수가 있다는 고모님의 말씀에
영양에 갔더니 필선이었다는 말을
25년이 지난 지금에야 필선이에게 이야기
해주어 또 한번의 폭소를 자아냈다. 모두다 반가운 만남에 지친듯이,
여기 저기에 쓸어져 잠들었고
못내 서운한지 우리 "주당" 중관이만
소주 한 병을 거뜬히 비우고 있었다네... 백모님이 돌아가셨지만 짧은시간
우리와 함께 한 희병이가 고마웠고, 집안에 잔치가 준비되어 있었지만 달려온
종숙이, 종대, 종훈이 남매들이 고마웠다. 중학교 동창이지만, 게스트(guest)로
참석한 애자와 하얀눈이 고마왔고, 우리를 초대해 준 영희가 한없이
고마왔던 정족의 밤이었다. 어젯 밤, "이 꽃이 수국이란다."
애자가 가르쳐준 수국꽃의 그 향기가
우리가 하룻밤 머문 정족교회 앞에서
향기를 발하고 있었고... 산이 병풍처럼 둘러처 있었고,
물 흐르는 소리를 찾아가 본 곳은
"일월산" 계곡에서 하염없이 흘러내린
맑은 개울물이 졸졸졸 흐르고 있었다. 마치, 이 곳이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도화경(圖花景)"이 아닐까? 새벽같이 일어나 며칠후에 맞이할
아버님 기일에 산소를 찾아간
상원이 성랑이 부부의 효심에
또 한번 가슴이 뭉클해졌다. 새벽잠도 자지 않고 친구들의
아침 준비를 해준 영희와 필선이...
그 닭계장 맛과, 싸한 북어 무침은 아직도
입가에서 맴돌고 있는데... 내 친구 동진이(금동진)가 이 마을에
살다가 하늘나라로 간 소식은 들었지만,
영희 부군께 직접 이야기를 들었을땐
이내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어머님이 이 마을에서 지내신다기에
찾아 뵈올려다, 또 한번 어머님 가슴에
못을 박은 것 같아 그냥 묵례로 인사드린다. "영희야, 안녕! 우린 이제 간단다." 짧은 시간의 만남이었지만,
영원히 잊지 않을 소중한 시간이었어. 불혹의 나이에 우릴 다시 만나게 해준거...
정말로 고맙구나 영희야... 아! 가곡 초등학교여...
우리가 머문 곳은 가곡초등학교 교정... 이미 몇 년 전에 폐교가 되어,
우두커니 혼자 외로운 듯 서 있었고... 우리가 6년동안 뛰어 놀았던 넓은 운동장엔
무엇을 심었는지는 모르지만,
새까만 비닐로 덮어져 있었다. "저쪽이 짜게(공기놀이)를 하던 자리"라며
현수가 가르쳐준 그 곳에는,
이름모를 풀들로만 가득 차 있었고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그때도 우리의 쉼터가 되어 주었던
커다란 느티나무만이 먼길 찾아온 우릴
여전히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얼마후면 경매가 된다는,
가곡초등학교를 배경으로 우리는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먼훗날이 되어,
교정에서 찍은 사진들을 펼쳐 보면서
옛날 코흘리게 어린 시절을 떠올리곤
해야만 될 것 같아서... 길을 따라서 달려가고 있을때,
"금마랏골"이 시야에 들어온다.
내가 태어나서 자란 이 곳... 옹기종기 모인 20여채의 초가집! 어느 집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숟가락이 몇개인지도 알고 지낸 이웃들... 이제 몇 집만이 달랑 남아 있어서
내 "고향(故鄕)"을 지켜주고 있다. "주실"을 지날때 모내기를 하고 있는
창수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지금 한창 모내기를 하는 철이라서
우리와 함께 자릴 못한다는 말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고향을 지키고 있는 창수에게
박수를 보낸다. 영양 터널을 지나 우리가
머문 곳은, "우련전"
한때는 이곳에 금광이 있어
한 촌락을 이루었었고, 그 때의 아름다운 학교가 지금은
민박 휴양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일월산! 내가 걸음마를 배우면서부터
늘 가까이서 보아왔던 일월산! 그 옛날 초등학교 4학년쯤 되었을까?
가을 소풍을 반나절이나 걸려서,
올라왔던 일월산 정상을 이제는
승용차로 불과 20여분만에 도착하였다. 황씨 부인당!(나의여행지방//희병이글 참고)
"당(堂)"앞에 조용히 앉아 있는 노인은,
40여년전에 우리가 이곳에 소풍을 와서
하룻밤 잠을 자고 간 것을 기억해 주었고 그때, 모두들 이방에서 함께 잠을 잤다고
손가락으로 가르키시면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두평 남직한 좁디 좁은방에서
우리들 30명 모두 잠을잘 수 있었을까?
아직도 머리가 갸우뚱 거려진다. 그때,
여자 친구들 잠을 자던 방에서
누군가가 실수를 했다는 현수의 말에
우리는 누구냐고 물어도 보았다.
지금이라도 그 여자친구는 자수하시길...
뒤늦게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서,
모두들 또 한번 웃음보를 터뜨려본다. "당(堂)"의 돌부처 앞에는,
소원을 비는 두 젊은 남녀가 있었다.
그들의 바램은 어떤 것이기에 이 높은
곳에 올라와서 소원을 비는 것일까? 우린 다시 발길을 옮겨서 일자봉으로 향했다.
그곳은, 공군부대 (RADER SITE) 지역이라서
위병 근무자가 호각 신호로 출입금지를 알린다. 그곳에서 우리는 푸른산 속으로 사방 흩어져
산나물을 뜯으면서 해맞이공원 쪽으로 향했다. 아! 이곳에 이런 좋은 곳이 있었다니...
목재로 잘 다듬어진 해맞이 공원! 해맞이 공원에서 화창하게 맑은 날이면
가까운 동해 바다의 일출을 볼 수 있고,
멀리는 충청도 땅까지 볼 수있다는 이곳! 우리는,
이 산의 정기를 받으며 태어났고
이 산에서 흘러 내리는 맑은물을
마시면서 어린 시절을 자라왔다. 갑자기 가느다란 외침의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언제 이곳에 다시 와 보겠느냐고..."
"행여, 이번이 마지막 기회는 아닐거냐고?" 이제, 다시는 못 볼 일월산을 뒤로하고,
우린, 하얀눈이 초대한 봉성으로 향했다. 솔잎향과 소나무 숯으로 맞나게 구워내는
"봉성돼지 숯불"로 점심식사를 나누면서,
서로 얼굴을 쳐다보면서 어젯밤 있었던
일들을 아쉬워하며 대화는 끝날줄 몰랐다. 식사를 끝내고, 구수한 누룽지와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대화속으로... 산높고, 물맑은 곳 봉화!
산장주인 재민이의 친절한 안내로
이지역에서 주워서 손수 가꾸어온
아름다운 돌들과 돌담풍이 어우려진
아름다운 작은 정원을 돌아보았고, 마지막으로 "희망정"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으며 이틀간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 한 후,
아쉬운 작별의 시간을 맞이하였다. 만날땐 반가움에 울었고, 헤어질땐
이별이 서러워서 우는 친구들... "잘들 가게나..."
"부디 몸조심하고..." 우리 다시 만나는 그날!
그날(?)을 기약하면서...
저 멀리 부산에서 바닷내음 가득 담고
달려온 다정 다감한 상원이와 성랑이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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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움에 어느 친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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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메실님화이팅! =▶//◀= 봉성희망정앞에서! =▶//◀= 산장100일돌파 화이팅! =▶
첫댓글 위의 글은 지난 5월 16일, 우리의 고향 영양을 방문 했을때 적은 글입니다. 읽으시고 잠시나마 고향의 鄕愁를 느껴보십시요. 저는 영양군 일월면 가곡동 가곡초등학교 15회입니다... *여기 사진의 친구들은 가메실, 주실 , 구도실 초등학교 친구들입니다*
세상에서 이보다 더 아름다운 글이 있을까요 글을 읽고 있노라니 왜이리 맘이 찡할까요???
아, 다시 올려주셨군요.참으로 고맙습니다~~.아울러 가메실산장 100일 돌파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지금처럼 늘 행복하십시오^^
딸기도 축하드립니다..^^*
형님요 잘 봤니더..생동감이 넘치니더
후배님 산장에 와서 이렇게 졸필를 남겨서 미안 하네...
와 ! 세상에...이렇게 아름 다운 추억이 있을까요?
가곡초등 선배님 이시군요..20년만에 둘러보는 고향 너무나 좋군요!!!!저는 일월중 바로밑에 살앗는데 그집을 기역 하실런지.....
최병태선배님! 저도 가메실 산장에 가끔 들려보곤했읍니다..전 금마랏골에 살았읍니다..지금은 제주도에살고있고요..가메실 산장 정재민선생님이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었읍니다..많이 변하신것 같더군요..지금 봉화에서 교편을 잡고 계신것 같더군요..선배님도 금마랏골에 살았지요 얼핏 기억에 나는듯한데..
상동이... 그럼 해덕이하고는... 난 해덕이 친구고, 일동이는 작년에 재경 가곡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만난적있네. 일동이와 형제인가? 아무튼 반갑네...//산송장:잘알지 그 동네, 이름만 들어도 누구인지 ...
일월산 옛날에 우리가족 들이 가본곳인데 참말로 가고싶지만 이젠 정말 힘들것 같아요
왜요..가셔서 한바퀴 돌고오셔도 되죠..차가 정상까지 올라가니까요
그렇군요..저희삼촌입니다.이번6월달에서울에서 만났는데.. 참으로 반갑네요..그리고 일동이는 저의 큰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