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가고 어느덧 태양이 활활 타오르는 여름이 찾아왔다. 이제는 일본 생활이 익숙해진 아신. 모델 생활도 힘들지만 나름대로 재미있고, 즐거웠다. 일본에서의 여름 방학은 조금 빠르다. 짧지만 빨리 시작하니까 그것이 나름대로 장점이다. 슈헤이와 동거 하면서 점점 그에게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무섭고, 차가웠지만 또 한편으로는 따뜻하고, 멋있는 모습이 많이 있었다. 그런 슈헤이가 좋았다. 노란색의 나시 원피스를 입은 아신의 모습은 한들한들 봄 처녀처럼 쉬원스럽게 보였다. 집에서 뒹굴 거리던 아신이 명함 정리를 하다가 문득, 눈에 뜨이는 명함이 쥐어졌다. 분홍색 디자인으로 되어 있는 S엔터테인먼트 아마치 회장. 처음 아마치와 만났을 때를 회상하며 아신은 혀를 낼름 내밀었다.
“우리 아저씨가 더 매력 있다. 메롱!”
키득 거리며 정리하던 도중, 전화벨이 울린다. 슈헤이의 심부름 전화였다. 다른 회사의 대표들과 긴급회의가 있다고 했는데 깜빡 잊고 서류를 두고 왔다고 한다. 아신은 알았다며 전화를 끊고 회사로 향했다. 완벽하긴 누가 완벽해? 회장이라는 사람이 서류도 깜빡하고 말이야. 중얼 거리며 아신이 차에서 내리자, 뒤에서 따라 멈추는 차가 보였다. 어라, 아마치 회장? 서류를 껴안으며 말똥말똥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아신의 시선을 느꼈는지 아마치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아신에게 다가와 말을 건내는 아마치.
“안녕하세요?”
“네에.”
그래, 안녕하시다. 라며 대답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아신은 대충 대답하며 영업용 미소를 지었다. 여전히 능글맞게 웃으며 아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아마치.
“또 보네요. 보통 인연이 아닌데요?”
“남자들은 작업할 때 똑같은 멘트를 쓰네요?”
“그만큼 당신이 예쁘니까 같은 멘트를 쓰겠죠?”
아마치가 생글 웃으며 아신에게 말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친절한 말투가 오싹하게 느껴지는 아신이다. 이 사람이 우리 회사에는 무슨 볼일 일까? 아참, 아까 긴급회의가 있다고 했지. 내키진 않지만 함께 걸어야 했다. 어쩌다 엘리베이터에 단 둘이 타게 된 아신과 아마치. 어색했던지 헛기침을 하면서 아마치가 먼저 말을 꺼냈다.
“슈헤이 회장이랑 무슨 사이예요? 여동생?”
“예?”
“설마, 연인은 아니죠?”
“도, 도, 동생 이예요. 아마도….”
절대로 이 남자에게는 알려줄 수 없다. 대충 동생이라고 둘러 댔으니 더이상 묻지 않겠지? 뭔가 끈질긴 아마치의 행동에 아신은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이렇게 불편한 사람은 또 처음이다.
“하하, 다행이다.”
“뭐가 다행 이예요?”
아아, 계속 무표정의 아저씨만 봐왔다가 이 사람을 보니까 느끼해진다. 왜 이러지? 아신은 속으로 구시렁 거리며 팔에 돋은 닭살을 북북 긁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신에게 반했을 것이라 착각하는 아마치가 아신의 단발머리를 부드럽게 손가락으로 만졌다. 이건 엄연히 성폭행이라고! 아신은 속으로 절규 했지만 참았다. 그를 자극시켰다간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르니까 일단 참자. 아마치는 마치 탐욕스러운 과일을 보듯 눈동자가 커지며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슈헤이의 그녀였으면 제가 빼앗으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여동생이라니 훗, 저도 애인이 없거든요.”
“착각하지 마세요!”
“네?”
“여자가 무슨 물건 이예요? 절 함부로 취급하지 말아요! 아무리 S회사의 회장님이라도 용서 못해요!”
“어쩔껀데요?”
“늘 당신이 이런식이니까 슈헤이씨한테 뒤처지는 거예요!”
“…….”
신경 거슬리게 하는 아신의 발언에 아마치의 이마에 힘줄이 하나 우뚝 솟았다. 이 계집이 감히 어딜 보고 헛소리 하는 거야? 열받은 아마치가 주먹에 힘을 주어 벽에 내리쳤다. 그의 갑작스런 공격에 아신은 방어 태새를 했다. 슈헤이의 훈련 덕분에 강해진 아신이다. 여기서 쫄지 않으리라! 아신은 눈을 부릎뜨며 그에게 대들었다.
“나를 꼬시려면 백년을 수련해도 멀었어요! 난 당신 같은 느끼한 남자가 제일 싫어!”
“닥쳐.”
“뭐, 뭐요?”
“니까짓 계집 따위 어떻게 되던 상관 안해. 내가 원하는건. 니시모토. 그자식이 망가지는거야.”
“내가 망가지게 놔둘 것 같아요?”
“뭐, 누구 때문에 재수없게도 게임이 시작되기도 전에 시시하게 끝날 것 같지만.”
“…….”
갑자기 안면을 싹 바꾸는 아마치의 모습이 누군가와 연상 되었다. 그래, 비슷한 인물. 아마치 회장 소속의 에리카야. 어쩐지 닮았더라니. 아신과 아마치는 서로 으르렁 거리며 노려 보았다. 어느새 회의실까지 도착해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재빨리 아마치가 나가려고 하자 아신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는 콧웃음을 치며 서류를 꼭 쥐었다. 그리고 긴 다리가 아마치의 등으로 향했다. 기합을 넣으며 힘을 주던 아신의 다리가 아마치의 등을 강타했다.
“이야아압!”
“커헉!”
“으하하하! 여자를 깔보면 이렇게 된다고요! 아마치!”
“…크윽!”
“뭐야, 여자를 때리겠다는 거예요? 여긴 슈헤이씨의 회사인데?”
“두고 보자.”
그의 포즈는 차마 옆에서 보기 쪽팔릴 정도이다. 엉덩이를 위로 내밀며 쭉 뻗어버린 아마치의 포즈에 아신은 배를 잡고 웃었다. 왠지 슈헤이가 걱정 된다. 아신은 서류를 들고 슈헤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잠시후, 커피를 마시며 서류를 보고 있는 슈헤이의 모습이 보였다. 긴 머리를 하나로 묶은 그가 썬그라스가 아닌 무테 안경을 쓰고 집중하는 모습이 멋있게 느껴진다. 가만히 있던 심장이 그의 모습에 큰 북이 울리는 듯 쿵쿵 움직였다. 넋을 잃고 그를 쳐다보고 있는데 슈헤이의 고개가 아신 쪽으로 향했다. 그바람에 아신의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화들짝 놀란다.
“안들어오고 뭐해?”
“아저씨, 회의 때 나도 옆에 있으면 안돼요?”
“어차피 너도 참가해야 해. 네 데뷔 문제야.”
“아앗, 그래요?”
“오다가 아무일 없었지?”
“그, 그럼요.”
“왜 말을 더듬지?”
슈헤이의 날카로운 눈빛에 아신이 뜨끔했다. 오면서 아마치의 등을 발로 차버렸다고 절대 말 못한다. 아신은 어색하게 웃으며 슈헤이에게 서류 봉투를 건내 주고, 팔을 붙잡아 이끌었다. 아신의 행동이 의심스러운 슈헤이는 고개를 저으며 아신과 함께 회의실로 향했다. 유명한 사장들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다. 거기에 한국 모 모델 회사의 사장도 보였다. 반가운 나머지 아신이 ‘코리아 만세예요!’라고 외치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밝게 웃어주는 한국 측, 사장들이다. 아신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찾아 온 것이다. 하필, 재수 없게도 아신의 앞자리에 아마치가 앉았다. 슈헤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신 옆에 앉았다. 왜인지 아신과 아마치가 서로 죽일듯이 노려보며 으르렁 거린다. 의아해진 슈헤이는 팔로 아신의 옆구리를 툭툭 찼다. 그제서야 이성을 찾은 아신이 헛기침을 하며 아마치에게 혀를 낼름 거렸다. 은근히 신경전이 일어나는 두사람이다. 회의가 시작 되었고, 이야기들이 지루한지 아신이 몰래 하품을 한다. 그러자, 한국 측의 사장이 아신에게 물었다.
“자, 그럼 당사자인 민아신씨는 한국으로 소속을 옮길 생각이 없습니까?”
“네? 아, 저는 슈헤이 회장님 밑에서 키워졌습니다. 전혀 소속을 옮길 생각 없습니다.”
“헤에, 민아신씨. 그만큼 거물의 슈헤이 회장을 믿고 따르겠다는 뜻인가? 성공이 보장되니까?”
“…….”
저게 또 은근히 시비거네. 아신은 이를 갈며 비꼬는 말투의 아마치를 노려 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눈치 못했지만, 슈헤이는 달랐다. 두사람의 신경전이 거슬렸다. 슈헤이는 아마치를 노려보며 아신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신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그에게, 모두에게 일본어로 말했다. 한국어로 말하고 싶었지만, 그들의 옆에는 번역사가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네, 그만큼 우리 회장님이 능력 있으니까요. 아, 그렇다고 다른 분들의 실력을 비하 시키는 뜻은 아니예요. 단지, 저는 처음부터 H엔터테인먼트 회장님만을 믿고 있었고, 성공할 자신 있습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소녀로서, 일본에서 한국을 빛낼 것입니다. 한국 측 사장님들도 저를 믿어 주세요.”
“허헛, 당찬 소녀군요. 자랑스럽습니다. 분명 빛이 날거예요. 슈헤이 회장님의 밑이라면….”
한국 측의 사장 말이 끝나자 번역사가 일본어로 통역하기 시작했다. 통역을 하지 않아도 한국어는 알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아신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역시 한국인들은 자상했다. 따뜻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 만세’ 라며 외치고 싶었다. 한국인보다 일본인이 많으니까 쪽수가 딸리네….라며 중얼 거린 아신. 그런 그녀를 죽어라 노려보는 아마치. 아마치는 생각했다. 힘만 센 무식한 조선인이 슈헤이에게 맡겨지면 이익은 H엔터테인먼트로 돌아간다. 억지로라도 그녀를 빼앗아야 했다. 아마치는 손을 들며 자신의 의견을 내세웠다.
“현재, H엔터테인먼트는 아이돌 가수 키우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물론 연예인들도 있지만, 음반시장이 잘 팔리잖습니까, 한국인 모델은 좀 벅차지 않습니까? 차라리 모델 전속 회사인 저희 회사로 계약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아마치 회장, 당신의 의견은 주제와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인이라고 안 될 이유가 있나? 모델 뿐만이 아니라 언제든지 다른 일도 할 수 있어.”
“흥, 당신의 능력을 한번 지켜보도록 하죠.”
괜히 슈헤이에게 시비 걸려다 말빨에서 딸린 아마치가 꼬리를 내렸다. 절대로 아신을 다른 회사에 넘길 수 없다. 여기서 마무리를 찍어야 했다. 세계의 언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신은 유명한 모델이 되어 있을 것이다. 결국, 아신은 H엔터테인먼트 쪽에서 맡기로 결정이 났다. 특이하게도 이번 아신의 일은 한국 쪽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아신의 활동이 기대되는 이때에, 다른 회사들도 정보를 얻기 위해서 찾아 왔다. 그래서 긴급 회의를 열었던 것이다. 한국에서도 모델 활동을 하다가 연기 활동까지 이른 연예인들도 많이 있다. 만능 엔터테인먼트가 되기 위해서 확실히 회사 측에서 신인을 미뤄주어야 했다. 또다시 한류 열풍이 불지도 모르기 때문에 회의에 참석 해야만 했다. 모두의 앞에서 정식으로 계약을 끝내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겠다라는 선언을 마지막으로 회의는 끝이 났다. 아신은 한국 측 사람들과 웃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열심히 하라는 응원의 메시지도 받았다. 어느새 회의실에는 아신과 슈헤이만이 남겨졌다.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슈헤이가 나지막하게 묻는다.
“아까, 아마치랑 무슨 일 있었던거지?”
“으음, 네. 있었어요.”
“무슨일이야? 아마치가 너에게 이상한 짓이라도 한거야?”
“아뇨, 당연히 제가 이상한 짓을 했죠.”
“뭐야?”
“오해하지 말아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그를 발로 차버렸어요.”
“…대형사고 쳤군.”
“이제 여름방학 때 놀지 못하겠네요?”
“이제 넌 직업이 생겼으니까.”
아신의 리얼한 액션에 슈헤이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일본에서 두 번째로 유명한 회사의 회장을 발로 차버리다니, 아신 같은 여자는 아마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아신은 슈헤이의 옆에 의자를 가까이 끌어서 앉았다. 슈헤이의 두 손을 꼭 잡으며 아신이 웃었다.
“나, 흥분돼요. 나에게도 직업이 생겼잖아요.”
“넌 잘 해낼 수 있어. 내가 키웠으니까.”
“당신을 믿으니까요.”
“이 세상과 맞설 자신 있지?”
“물론이죠.”
“…빚을 갚고 나서 무엇을 할 예정이야?”
“…….”
슈헤이가 조심스레 묻자, 아신은 고민에 빠졌다. 언젠가 빚을 갚고 나면, 자유로워지겠지.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겠지.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의 옆을 떠나기 싫었다. 계속 그를 지켜주고 싶었다. 외로운 그를, 외로운 악마를 보듬어 주고 싶다. 아신은 활짝 미소 지으며 슈헤이의 목에 팔을 휘둘렀다. 그리고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비밀이예요.”
“…치사해.”
“헤헤, 돌아가요.”
아신이 혀를 낼름 거리자 정말로 약이 오른 듯 슈헤이의 볼이 뾰루퉁 해졌다. 아, 귀여워 죽겠다. 저 볼을 깨물어 주고 싶어. 그를 보며 아신이 생각한 것이다. 대기시키던 차의 문이 열리자 두사람은 차 안으로 들어갔고, 자신들의 오피스텔로 향하기 시작했다.
다음날,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 즐겁게 쇼핑하기로 한 날. 아이코 뿐만이 아니라 고유키도 함께 했다. 늘 신주쿠에서 놀다가 시부야 거리로 나왔다. 모자와 선글라스를 썼지만 지나가다 가끔 자신을 알아보는 몇몇의 여학생과 남학생이 있어서 아신은 기쁜 마음으로 사인과 사진을 찍어 주었다. 기분이 한층 업된 아신은 두 여자에게 말했다.
“연예인이란 것이 이런 기분이구나! 정말 기분 짱이야!”
“그렇지? 나는 사인하는 재미로 한다니깐.”
“에이, 고유키쨩은 사인이 아니고 그림 수준이면서!”
“뿌우뿌우! 초등학생에게 뭘 바래? 아신 바보! 아이코 언니, 가자.”
“어, 같이가!”
삐져버린 고유키를 달래느라 아신이 진땀을 흘린다. 해맑게 웃고 있는 그녀들을 몰래 뒤따라오는 이들이 있었으니, 눈치를 챘는지 아이코의 눈빛이 심각해졌다. 아신과 고유키를 각각 팔에 끼며 티 가게로 달려가는 아이코. 역시 괴력의 여인이다. 만만하게 봐서는 안될 듯 하다. 아이코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한 두 여자. 아신이 놀라며 헉헉거리는 아이코에게 물었다.
아이코의 진지한 말에 아신과 고유키는 서로 멀뚱히 쳐다보다가 동시에 고개를 끄떡였다. 아이코는 가방을 들고 황급히 어딘가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영문도 모른채 아신과 아이코는 주문을 하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10분, 20분…. 아무리 기다려도 아이코가 돌아오지 않는다. 정말로 무슨 일이 있는건 아닌지 아신은 걱정되기 시작했다. 고유키 또한 불안한지 빨대를 질컹질컹 씹어먹고 있다. 아신과 고유키는 혹시나 연락이 올까 휴대전화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10분 후 아신의 휴대전화에서 불안한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첫댓글 아 위험한 건가요?? 먼가요 아신 걱정마 내가 지켜줄게 귀여운 아신 ^^
헛..미행자는 혹시 아마치??누굴까*-_-*
어떠케해요ㅜㅜ... 아이코 잡힌건가 ㅜㅜ..!? 에잇 +ㅁ+ !!! 누군지 알아내기만해바라+ㅁ+!!
무슨일이 생기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