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내가 신인왕!] - 수원 삼성 블루윙즈 박현범
공격수들의 효율적인 움직임과 순도 높은 결정력, 수비수들의 지능적이면서 파이팅 넘치는 수비. 이것이 수원의 리그 무패 행진을 이어 갈 수 있게 만드는 큰 원동력이다. 하지만 공격의 파괴력과 수비의 단단함을 하나로 이어주는 중원에서의 활약이 없었다면 그들의 질주는 이토록 오래 유지되지 못했을 것이다. 때로는 공격하고, 때로는 수비하며 수원의 공수 밸런스를 유연하게 유지시켜주는 수원의 미드필더들, 그 미드필드의 중심에 박현범이 있다. 김남일의 공백과 기존 선수들의 부상 공백을 우려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완벽하게 잠재운 무서운 신인, 수원의 새로운 중원사령관 박현범을 만나보았다.
스포츠 가족의 일원이 되다
박현범은 축구 선수를 꿈꿨던 아버지, 배구 선수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피는 속일 수 없었던 걸까. 그는 어려서부터 공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했고, 축구 선수로서의 생활도 어렵지 않게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운동을 시작한 그에게 가장 힘이 되었던 것은 운동을 했던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지와 그가 가지고 있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었다.
“저도 모르게 그냥 축구가 끌리더라고요. 부모님이 시키신 것도 아닌데 축구를 처음 했을 때 너무 재미있었어요. 어쩔 수 없었나 봐요. 부모님이 물려주신 유전자가 절 축구로 인도했죠(웃음).
처음 축구를 시작할 때 부모님께서 적극적으로 도와주셨어요. 어머니께서는 예전에 배구 선수셨고, 아버지께서는 예전에 꿈이 축구 선수셨거든요. 아버지께서 못 다한 꿈을 아들이 이루어 주기를 바라셨는지도 모르죠. 또 어머니께서는 종목은 다르지만 선수 생활을 하셨고, 운동선수로서의 생활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고 계셨으니까요.”
그렇게 축구를 시작한 그는 청소년 대표를 지내며 또래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을 그렇게 성장시켜준 부모님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누구나 가족에 대한 사랑은 크겠지만 그의 가족사랑은 정말 대단했다. 자신을 키워준 부모님께 받은 사랑을 잊지 않은 착한 아들이었고, 받은 사랑을 동생들에게 다시 베풀 줄 아는 듬직한 장남이었다.
“남동생 한명이랑 여동생 한명이 있어요. 남동생이 초등학고 5학년이에요. 요새 제 동생도 축구를 시작했거든요. 저 닮아서 잘 해야 할 텐데(웃음). 동생이 요새 제가 텔레비전에 나오고 그러니까 친구들한테 자랑하고 그런대요. 동생이 성격상 원래 그런 말을 잘 안할 텐데 그 말 들으니까 정말 기분이 좋았죠. 부모님이 저 보고 기뻐하시는 것도 좋지만 동생들이 저를 보고 자랑스러워하는 것도 정말 좋거든요. 별로 해준 것도 없는데 자랑스러워 하니까 고맙죠.
가족은 제가 힘들 때 가장 힘이 되고 버팀목이 되는 존재인 것 같아요. 어머니께서도 운동선수 출신이시고 하니까 운동할 때 힘들면 어떻게 해라 조언도 많이 해주시고. 운동 시작했을 때도 가족 생각이 많이 났었어요. 제가 성공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슬럼프를 이겨낸 자신감이라는 능력
재미있어서 시작한 축구, 그리고 집안의 든든한 지원. 남부러울 것이 없었던 그에게도 슬럼프라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난관을 헤쳐 나갔다.
“슬럼프가 긴 적은 없었는데 꽤 자주 있었어요. 처음 그걸 느꼈던 때가 중학교 때였어요. 어렸을 때였는데 축구가 힘들고 어렵게 느껴졌었죠. 정확히 몇 학년 때인지는 생각이 잘 안 나는데, 동계훈련 때 남들보다 쳐지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경기가 안 풀리면 많이 소심해지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그게 그라운드에서도 똑같이 나타나요. 자신감 있는 플레이가 이뤄지질 않고 소심한 플레이를 하게 되거든요. 패스도 잘 안 되고, 드리블도 잘 안되고 그랬어요.
그런데 훈련하고 경기를 뛰다 보니까 스스로 깨우쳐 지는 게 있더라고요. 저는 슬럼프라는 걸 딱히 벗어나는 방법이 없어요. 그냥 몸이 말을 안 듣고 경기가 마음대로 풀리지 않아도 경기를 하다 보면 갑자기 물 흐르듯 제 몸이 움직여질 때가 있어요. 그럼 이제 경기 중에도 계속 그 장면을 생각하는 거죠. 그러다 보면 이제 몸도 슬슬 풀리는 것 같고, 생각대로 플레이가 되죠. 그게 제가 슬럼프를 빠져나오는 방법이에요. 그냥 제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경기가 안 풀리면 이게 슬럼프라고 생각한다기보다는 일시적인 처짐이라고 생각하고 저만의 플레이를 펼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렇게 자신감이라는 무기를 장착하며 슬럼프에 대처할 방법을 터득한 그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게 되었고, 청소년 대표로 발탁되어 많은 경험을 쌓으며 미완의 대기에서 검증된 유망주로 각광받게 되었다.
BLUE CONNECTION
그렇게 세간의 주목을 받던 그는 파란 유니폼으로 유명한 연세대학교에 입학하며 대학 축구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나이에 비해 어느 정도 많은 것을 이미 경험한 그는 대학 축구도 지금껏 경험한 것과 별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연고전을 계기로 그의 생각은 변하게 되었다.
“연고전 때 경기하는 것 빼고는 별로 즐길 만 한 게 없었어요. 대학교라고는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계속 해오던 훈련을 한 것 같았거든요. 추억이라 할 만한 게 별로 없었죠. 그냥 경기 자체가 추억이었어요. 또 응원도 많이 기억에 남았죠. 특히 연고전 때가 기억에 남죠. 아마추어 무대에서 그런 응원은 처음이었거든요.
청소년 대표 경기 나가서 어느 정도 많은 관중들 속에서 경기를 했던 경험이 있었고, 한국에서 경기를 하면 청소년 대표 경기라고 해도 붉은 악마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많이들 오시잖아요. 그래서 관중들이 많이 오는 경기에 대해 경험이 있었으니까 어림짐작으로 그때보다는 덜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경기에 나갔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두 학교의 라이벌 의식이란 게 정말 대단하다는 걸 느꼈었죠. 한쪽은 파랗고 한쪽은 빨갛고 딱 색깔부터 대비가 되잖아요. 양쪽에서 엄청나게 응원하고 또 학교 명예가 걸려 있으니까 엄청 치열하거든요. 관중도 많고 부담도 많이 되는 경기였죠.”
그렇게 대학 축구를 접하며 경험을 쌓던 그는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드래프트를 신청하게 된다. 그리고 전체 2순위로 또다시 파란 유니폼의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입단하게 된다.
“신기하게 파란 유니폼을 계속 입게 되더라고요(웃음). 일단은 기분이 좋았죠. 저희 팀에서 1순위로 뽑혔잖아요. 팀이 저를 원하는 것 같아서 기뻤고, 또 제가 수원을 오고 싶어 했었는데 원하는 팀에 오게 됐으니까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걱정도 많이 했어요. 잘하는 선배님들이 워낙 많으시니까 노력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또 번호도 다른 번호를 받았으면 모르겠는데 김남일 선수 번호를 받았잖아요. 수원의 주장이셨고, 수원의 중심이셨고 또 수원 뿐 만 아니라 국가 대표팀에서도 엄청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선수의 번호를 받아서 부담이 많이 됐죠. 그래서 더 많이 지켜봐 주시고 관심도 가져 주시고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더 노력하려고 했어요. 팬들이 실망하시는 모습을 보기가 싫었거든요.”
그의 수원행을 접한 부모님과 친구들은 매우 기뻐하면서도 그를 향한 애정 어린 충고를 잊지 않았다. 특히 그를 가까이서 지켜본 부모님은 그에게 부모로서의 충고 뿐 만 아니라 선수 생활을 했던 선배의 입장으로서 많은 조언을 해 주었다.
“부모님께서 많이 조언 해 주셨어요. 중학교 고등학교 때와는 아마 많이 다를 것이니까 준비 많이 하라고 하셨죠. 프로는 경쟁에서 살아남는 자만이 승리 할 수 있다고 하셨죠. 또 감독님이 주문하시는 플레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하라고 하셨어요. 그래야 경기에 많이 나갈 수 있다고(웃음). 부모님께서도 운동선수 출신이셔서 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아시는 것 같아요. 프로 초년생의 마음을 이해해 주신다고나 할까?(웃음) 자신감을 많이 북돋아 주셨어요.
친구들은 부럽다, 좋은 팀가서 좋겠다, 그런 소리들을 많이 하죠. 어제 마침 대학 축구 대회에서 연세대가 우승해서 친구들이랑 통화를 했거든요. 서로 많이 칭찬해 줬어요. 우승해서 잘했다고 제가 칭찬 해주고, 또 학교에 있는 친구들은 저보고 요새 경기 많이 나오고 한다고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주고 그랬죠. 서로 힘도 되고, 잘하는 친구들 보면서 더 자극도 되고 열심히 하려고 하니까 좋은 것 같아요.”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그가 들어온 곳은 철저한 약육강식의 프로세계였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시절엔 주어진 재능과 약간의 노력으로도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었지만 프로는 다르다는 것을 깨닫기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자기 관리 부분이 제일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아요. 프로는 돈을 받고 뛰는 거잖아요. 몸이 자신의 미래가 되는 것이니까 자기 자신의 몸은 스스로 관리를 하는 시스템이에요. 관리를 안 할 수가 없죠. 그런데 아마추어에서는 아무래도 스스로 관리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기가 어려워요. 아마추어 때는 어리고 또 합숙도 많고 시간별로 규율이 딱딱 정해져 있고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는 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저도 프로팀에 와서 그런 부분이 적응하기가 많이 힘들었어요. 형들 하는 것 보면서 하나씩 배워나갔어요. 그리고 일단 훈련할 때는 같은 팀이고 동료지만 모든 선수들이 다 경기를 뛰고 싶어 한다고 해서 모두 그라운드에서 뛸 순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제 스스로도 이제 무게감이 느껴지기 시작했죠. 그러면서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하나하나 새로운 것들을 익혀 가면서 그는 착실하게 첫 시즌을 준비했다. 운동선수들에게 지옥의 순간이라는 동계훈련도 그는 더욱 더 발전해야겠다는 생각과 내일에 대한 도전정신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동계훈련의 큰 차이점은 없는 것 같아요. 똑같이 힘들어요(웃음). 저는 동계훈련 때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프로에서 첫 동계 훈련이라서 긴장도 많이 했어요. 특히 전술적으로 감독님이 저에게 원하시는 부분을 제가 따라가질 못해서 힘들었죠. 머릿속에서는 감독님이 원하시는 움직임을 하려고 하는데 몸은 제가 지금껏 해온 플레이에 익숙해져 있었잖아요. 그런 부분이 가장 힘들었어요.”
힘들었지만 그는 그에게 주어진 많은 것들을 착실히 소화해냈고, 새로운 시즌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박현범이라는 세 글자를 팬들에게 각인시키고 싶었던 그의 바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로 다가왔다.
기회는 놓치지 않는 자의 것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백지훈의 부상으로 개막 경기에 교체로 출전한 그는 단숨에 차범근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조원희와 함께 수원 미드필더의 중심으로 자리 잡는다.
“경쟁은 필수라고 생각하고 들어왔다고 조금 전에 말했잖아요. 그런데 처음부터 선발로 이렇게 많이 뛸지는 몰랐어요. 출전기회가 별로 없으니 만약 나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 열심히 해서 감독님한테 눈도장을 찍어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기회가 좀 빨리 왔죠.
과연 잘 할 수 있을 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기에 들어가서 제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많이 보여줘야 성공한 데뷔전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경기를 다 망칠까봐 불안했어요. 막상 들어가서는 그냥 무난했던 것 같아요. 스스로 평점을 준다면 6점 7점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웃음)”
수원의 차범근 감독은 박현범을 두고선 지켜볼수록 장점이 많은 선수라고 칭찬했다. 하지만 그는 칭찬에 기뻐서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더욱 더 잘 하려는 욕심이 많은 선수였다.
“감독님께서 제 포지션의 역할에 대해서 많이 말씀해 주셨어요. 제 포지션이 수비형 미드필더잖아요. 그런데 수비적 역할만 한정되게 원하시지 않으셨어요. 공격할 때는 같이 나가서 공격 해주고 수세에는 또 수비 하고, 기회가 되면 자신 있게 중거리 슛을 많이 시도하라고 말씀해 주셨고요. 감독님이 칭찬을 해 주시니까 자신감이 많이 붙는 것 같아요. 처음에 적응하기가 힘들었었는데 적응하기 편하게 해 주시려는 배려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프로에서의 경기에 적응해 가는 그에게 골이라는 선물이 일찍 찾아왔다. 그는 골을 넣으면서 더욱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냥 멍 했어요. 기분 좋았죠. 처음에 골 넣으면 상민이형에게 뛰어가기로 했었거든요. 일종의 세레머니를 준비했었는데 그냥 까먹었어요. 까먹게 되더라고요(웃음).
어머니 아버지께서 그 경기를 직접 보시고 계셨거든요. 어머니께서 나중에 너무너무 좋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너무너무’를 정말 너무 많이 말하셨어요.(웃음) 부모님께서 여태까지 부산 원정 경기 빼고는 다 오셨어요. 축구를 해서 프로까지 오게 됐는데 초반이지만 또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니까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아버지께서 예전에 축구선수가 꿈이셨는데 못 이루셨거든요. 아들이 돼서 아버지가 가지셨던 꿈을 대신 이룬 것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계세요. 저도 물론 그렇게 생각하고요.”
박현범이 박현범에게 말하다
그의 플레이는 신인이라고 느껴질 수 없을 만큼 여유가 느껴진다. 그의 모든 실력의 근원에는 자신감이 있다. 스스로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자신에 대한 믿음. 그 믿음이 지금의 박현범을 만들어 낸 것이다.
“제 자신의 플레이를 펼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훈련 때는 이제 감독님도 저한테 어떻게 해라 하는 주문을 하시고 같이 뛰는 선수들하고도 맞춰가야 하잖아요. 훈련 중에는 최대한 많이 그런 것들을 맞춰 가면서 해요.
그런데 경기 할 때에는 그런 생각을 잊으려고 해요. 저는 자신감 있게 플레이 할 때 제일 경기가 잘 풀린다고 스스로 생각을 하거든요. 하지만 팀에서 부여된 역할도 있으니까 그런 부분을 훈련 때 최대한 맞춰 놓고 실전 경기 때는 생각을 안 하고 뛰어요. 운동장이 나를 위해 준비된 무대라고 생각 하고 자신감 있게 해야 좋은 플레이가 나오거든요.”
자신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자 곧 진지해진다. 그는 스스로의 장점과 단점을 알고 있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더욱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제가 키가 크잖아요. 제 포지션이 중앙에 있는데 키가 크다 보니깐 이제 상대방에게 위압감을 줄 수 있어요. 헤딩도 잘 따낼 수 있으니까. 그리고 중앙에서 사이드로 벌려주는 패스와 반대편 쪽으로 넘겨주는 패스 같은 것이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연결자의 역할이죠. 하지만 장점이 단점이 되기도 해요. 키가 크다 보니까 순발력이나 스피드 면에서 떨어지는 면이 있죠. 수비적인 측면에서도 과감성이 부족하고요.
패스 같은 기술적인 부분은 관우형을 많이 보면서 배우고 있어요. 수비적인 측면에서는 원희형한테 배우고 있고요. 앞으로 계속 배워서 김남일 선배님이나 비에이라 같은 선수가 되고 싶어요. 수비형 미드필더의 대명사잖아요(웃음).”
그의 두 가지 목표
그에게는 올해 두 가지 목표가 있다. 그중 하나는 바로 신인왕 타이틀을 거머쥐는 것이다. 쉽지 않을 거란 것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있지만 그는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처음에는 많이 욕심이 났었죠. 신인왕 이란 게 프로 생활 하면서 한번밖에 기회가 없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막상 프로를 겪어보니까 힘들 것 같다고 생각 했어요. 워낙 잘 하시는 선수들도 많고 하니까 그 속에서 제 실력을 마음껏 펼치기 힘들잖아요.
그리고 또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경기가 잘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욕심 안내고 경기에 집중하려고 하고 있어요. 그렇게 집중해서 잘 하다 보면 탈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사실 상을 받으려면 플레이 자체도 중요하지만 수치로 나타낼 수 있는 공격 포인트가 많아야 유리한건 사실인데 저는 다른 후보들과는 달리 포지션이 미드필더라서 그런 부분이 조금 불리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공격적인 면도 많이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팀에 기여하다 보면 상은 따라 오겠죠?(웃음)”
그의 또 하나의 목표는 올림픽 대표에 발탁되는 것이다. 이미 30인의 예비명단에 이름을 올린 그는 초조해 하지 않고 담담히 기다리겠다고 했다.
“올림픽 대표에도 정말 잘 하는 선수들이 많아요. 꼭 뽑히고 싶고 거기서도 잘 하고 싶죠. 국가를 대표한다는 건 언제나 자랑스러운 것이고 또 올림픽 메달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특히 올림픽에서 축구는 나이 제한이 있는데 올림픽은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대회니까 기회가 많이 없죠. 그리고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병역문제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 아무래도 올림픽에 가서 메달을 따면 혜택이 주어지니까 좋죠.
프로에서 열심히 뛰고 제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많이 살려서 뛰고 하다 보면 올림픽 대표와 국가대표가 언젠간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또 그렇게 되기 위해서 노력도 많이 하고 있고요.”
현재 동일 포지션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선수지만 그는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겸손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있지만 건방져 보이지 않는 것은 이것 때문이었다.
“어떤 곳에 속해 있던지 꼭 팀에 필요한 선수라는 인식이 박혀 있었으면 좋겠어요. 박현범 없으면 안 된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그리고 팬들에게도 인정받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팬들의 사랑을 듬뿍 선수가 되고 싶죠.
많은 축구 선수들이 활동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아주 유명한 선수들만 기억하잖아요. 제 이름 석자가 먼 훗날에도 사람들의 가슴속에 기억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박현범은 매우 행복해 보였다. 그는 육체의 고됨과 경쟁이라는 압박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모든 것이 잘 풀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항상 좋을 수는 없다. 앞으로도 험난한 일정과 언제 닥쳐올지 모를 슬럼프 등이 그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잠시 숨을 고르더라도 격려와 박수를 주며 그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의 재능과 재능을 빛나게 하는 노력이 있다면, 박현범은 더욱 발전할 것이다. 신인왕에 도전하는 박현범. 이 이름을 기억하자.
K-리그 명예기자 정성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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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신인왕 고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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