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고백
송진권
오래된 숲에서 그놈을 사로잡아 왔습니다
놈은 발굽이 무르고 뿔이 있었으나 뭉툭했습니다
목을 옭아매고 사지를 묶자 그 짐승,
눈만 희번덕이며 저항도 하지 못했습니다
겁에 질린 짐승의 울음소리라니
미나리꽃 하얗게 우거진 도랑에서 놈의 멱을 땄습니다
흰털을 적시며 핏물은 도랑물에 낭자하게 풀어지고
숫돌에 칼 갈아 가죽 벗겨 널어놓고
우리는 놈의 배를 갈랐습니다
뱃속에는 형체가 갖춰지지 않은 분홍색의 새끼들이 아홉 마리 들었고
우리가 칼을 대자 그것들은 뿔뿔이 달아나려고 몸을 뒤척였습니다
탯줄을 자르고 우리는 그놈들을 하나하나 물에 흘려보냈습니다
큰 통에 내장은 내장대로
고기는 고기대로 나눠 담고
둥글게 모여앉아서 생간을 먹었습니다
굵은 소금 찍어 붉게 붉게 웃어가며
탁한 술을 나눠 마시고
피 묻은 입술을 혀로 핥으며
물가에 앉아 손에 묻은 핏자국을 닦았습니다
낄-낄-낄-낄, 물에 비친 얼굴들은
기묘하게 일그러져서 일렁이며 흘러갔는데요
그 표정들을 물에 흘려보내고
무표정한 얼굴로 칼과 도구를 챙기고
저마다 고기를 나누어 가지고 우리는 돌아왔습니다
송진권
2004년 《창작과비평》 등단.
시집 『자라는 돌』 『거기 그런 사람이 살았다고』 『원근법 배우는 시간』,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