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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樹 진시황제35년. BC 212년 입적 |
인도 제14조 이며, ‘공종’의 시조다. 인도의 대승불교를 크게 선양한 이. 남인도 혹은 서인도 출신으로 불멸후 600~700년경. | |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일찍이 4베다, 천문, 지리 등 모든 학문에 능통함.
처음에 인생의 향락은 정욕을 만족하는데 있다하고, 두 벗과 함께 주색에 빠져 왕궁에 출입하면서 궁녀들과 통하다가 일이 탄로되어 두 사람은 사형을 당하고, 그는 간신히 위험을 모면함. 욕락은 괴로움의 근본이 되는 것을 깨닫고, 절에 가서 가비마라에게서 소승 3장을 배우다가 만족하지 못하여, 설산지방으로 감.
늙은 비구를 만나 대승경전을 공부하고, 후에 여러 곳으로 돌아다니면서 대승경전을 구하여 깊은 뜻을 통달함. 용궁에 들어가「화엄경」을 가져왔고, 남천축의 철탑을 열고「금강경」을 얻었다 함.
馬鳴의 뒤에 출세하여 대승법문을 성대히 선양하니, 대승불교가 이로부터 흥하였으므로, 후세에서 그를 제2의 석가, 8종의 조사라 일컫음. 용수전기에 의하면, 한 소승이 용수의 고명함을 듣고. 항상 분노와 질투의 마음을 품어 용수보살이 그를 위하여 閑室에 들어가 스스로 입적하였다함.
저서로는 「대지도론」100권,「십주비바사론」17권,「중론」4권,「십이문론」1권 등이 있음.
후에 삼론 중 「중론」「십이문론」은 용수보살이 지었고, 「백론」은 그의 제자 제바보살이 지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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提婆 |
용수보살의 제자. 삼론 종조의 한 분으로 삼론 중「백론」을 지음. BC 3세기경 세일론 사람. 한 눈이 멀었으므로 迦那提婆(가나제바)라 하다. | |
인도 용수보살의 제자로, 용수보살에게 불교를 배워 중인도 남인도 외도들과 소승을 논파, 대승의 空論을 주장함. 저서로는「백론」2권,「백자론」1권,「광백론」1권,「대장부론」2권,「외도소승열반경」1권 등이 있음. |
羅什 344~413 74세 입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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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4대 역경가 중 1명. 삼론학의 개조. 구자국 출신으로 인도승려. 구마라염을 아버지로, 구자국 왕의 누이동생 기바를 어머니로 구자국에서 낳음, 부모의 이름을 합하여 구마라기바(구마라집)이름 함. 413(후진 홍시15)년 8월 장안대寺에서 나이 74로 입적 함. (350~409)년으로 70세 입멸설이 있음. |
7세 때 출가하여, 어머니를 따라 여러 곳으로 돌아다님. 인도 북쪽 계빈에서 반두달다에게 소승교를 배우고, 소륵국에서 수리야소마에게 대승교를 배우고, 구자국에 돌아와서는 비마라차에게 율을 배움. 이때부터 구자국에 있으면서 주로 대승교를 선포함.
383(견원19)년 진왕 부견이 여광을 시켜 구자국을 치게 되자, 여광이 구마라습과 함께 양주로 왔으나, 부견이 패하였다는 말을 듣고, 여광이 왕이 됨. 그 뒤 후진의 요흥은 양을 쳐서 401(융안5)년 나습을 데리고 장안에 돌아와서 국빈으로 대우하고, 서명각과 소요원에서 여러 경전을 번역케 함.
•중국 4대 역경가 중 1명 ⑴현장에 의해 이루어진 한역을 → 신역시대. ⑵구마라집에 의해 이루어진 한역을 → 구역시대. ⑶후한시대 안세고, 가루지참, 축법호 등에 이루어진 한역을 → 고역시대 라고 함. 이 고역시대의 한역문이 지니고 있는 오류를 간파하고, 정확하고 우려한 문장으로 재번역하면서 동시에 이전에 소개되지 않았던 방대하고 다양한 대승경론을 번역함.
승조·도생·승예·도융 등 중국 불교의 철학적 기초를 다진 대표적인 사상가들을 배출함으로써 중국불교를 격의불교의 시대에서 벗어나, 철학적 불교로 심화시키는데 지대한 역할을 함. 당시 계율을 지키는데 엄격했던, 도안(혜원의 스승)·혜원(제자 혜관이 있음) 등과는 무언가 다른 색깔을 지닌 불교학자였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중론」,「백론」,「십이문론」,「지도론」,「법화경」등을 번역하고, 그 제자들이 모두 삼론육의를 품수하고, 그 중에서도 특히「삼론」과「중관」의 불교를 널리 포교하였으므로 그를 삼론종의 개조라 하며, 이 삼론학은 길장에 이르러 크게 융성했다가 선종이 들어오면서부터 점차로 쇠락 함. |
慧遠 334~416 83세 입적 |
여산 백련사 혜원은 여산 백련사의 개조임. 노장학에 정통하였고 도안을 스승으로 대승의 깊은 뜻을 깨달음. 제자 혜관과 혜광이 있음. 중국 동진 안문사람. 속성은 고씨. |
처음에 유학을 배우고, 21세에 출가하여 도안을 찾아가 여산에 있으면서 법정·법령 등을 멀리 서역에 보내어 범본을 구하고, 계빈국승려 승가바제에게 청하여 「아비담심론」,「삼법도론」을 다시 번역함. 또 담마류지에게 청하여 「십송률」을 완전히 번역하는 등, 불교학계에 크게 기여함.
「대승대의장」은 혜원이 구마라습과 문답을 통하여, 그의사상이나 신념을 명확히 나타낸 것으로 두 사람의 사상적 논쟁을 살펴봄으로써 중국 초기 불교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알수 있다.
혜원은 여산에 사람들을 모아 세속을 떠나 수행하는 불교의 실천적인 면모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고, 구마라집은 인도 구자국 출신으로 경전의 번역이나 강설에 많은 업적을 남김.
384(동진 효무제 태원9)년 혜원이 여산에서 123인과 더불어 백련사를 짓고, 백련사라는 결사를 만들어 무량수불상전에서 염불을 수행하고 또 이를 권장하였다. 30여년 동안 산을 벗어나지 않고 계를 지키며, 수행정진 하다가 416년 세수 83세에 입적함.
저서로는「대승대의장」,「대지도론요략」20권,「문대승중심의십팔과」3권,「법성론」2권,「사문단복론」1권 등이 있음. |
慧灌 (?~424,453)입적설 70에 입적 |
혜원의 제자. 일대교를 판별하여 2교5시를 세움. 중국 후진 청하사람. 속성은 최씨.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이름이 높았고, 라집을 스승으로 섬기고 후에 혜원의 제자가 됨. | |
401(요진홍시3)년, 구마라습이 관중에 온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 그의 제자가 됨. 뒤에 불타발타라가 빈척되어 여산으로 가게 되니, 그를 따라가서 혜원을 뵙고 그의 제자가 됨.
412년 다시 불타발타라와 함께 형주에 가니, 태수 마휴지가 고리사를 짓고 스님을 청하여 있게 함. 늙어서는 경사에 와서 도장사에 있으면서 교화에 종사하다 412~453(송원가 때)년에 입적하니 세수 70이다.
412년 그때 떠돌아다니는 말에 의하면 [情을 통하는데는 생(도생)과 융(도융)이 첫째요, 詰難(따 져물음)에 정밀하기는 관(혜관)과 조(승조)가 제일이다.]라고 하였다.
만년에 도장사에서 「법화종요」를 지었는데, 구마라습이 보고 매우 훌륭하다고 칭찬함. 또한 일대교를 판별하여 2교5시의 상으로 나눔. 이것이 중국의 상판석교의 놀랄만한 결실이다. 저서로는 「법화종요」,「변종론」,「돈오점오」등이 있음. | ||
慧次
434~490 57세 입적 |
도량인 혜관의 주장을 이어 받아 3교5시의 교상판석을 세움. 중국의 승려. 속성은 윤씨. 기주 사람으로 출가하여 법천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18세에 벌써 경·론에 정통함. 성실론 삼론 등을 여러 번 강의하고, 또 혜관의 주장을 이어 받아 3교 5시의 교상판석을 세움. (457~464)년 때, 전도에 힘씀. 제 영명 8년에 세수 57세에 입적함. |
慧光
468~537 70세입적 |
율종의 시조가 됨. 지론종이 일어날 기초를 만듬. 천태대사에게 율학과 대승교를 가르침. 중국 남북조 때 정주 장로 사람으로 속성은 양씨. 13세 때 불타선다에게 출가하여 계율을 배움. |
13세때 불타삼장(불타선다)에게 출가하여 계율을 배워 「사분율」을 弘闡하여 중국 율종의 시조가 됨.
륵마나제와 보리유지가 낙양전을 역장으로 하여, 「십지론」을 함께 번역하다가 도중에 분쟁을 일으켜, 따로 있으면서 한 본씩 번역한 것을 혜광이 비교하여 합하여 하나로 만들고, 이에 대한 주석서를 지어서 중국 지론종이 일어날 기초를 만들었음. 세상에서 그를 광통율사라 부름.
항상 극락정토를 왕생하기를 발원하며, 정업을 닦다가 업의 대각사에서 세수 70세에 입적함.
천태지의에게 율학과 대승교를 가르침. 천태지자대사가 22세(560년)에, 혜사에게 심관을 받았으므로, 경론과 율장을 배운 후 심관을 받으니, 그 이전으로 보아야 함.
선종의 전등사는 한결같이 중국에 선을 전한 달마가 많은 사람들의 시기를 사서, 독살되었다고 전하는데, 그 주모자는 「역대법보기」,「보림전」,「경덕전등록」등에서 보리유지와 광통율사라고 전하고 있으나, 사실로 입증하기는 힘들며, 다만 당시의 선종과 교종의 반목을 반영하는 것이다. 천궁에서 상서로운 기운이 나타난다면서 업성 대각사에서 세수 70세로 입적 함.
저서로는 「현종론」,「대승의 율장」,「인왕칠계」,「유교경소」,「화엄경소」10권,「십지론소」등 수 십종이 있다. | |
律宗은 계율을 지키는 종파라는 뜻. 율장에 의해 세운 총지. 석존일대 설법중에서 제자가 부정한 행위를 하였을 적마다, 낱낱이 그 근기에 응하여 바로잡은 것.
석존입멸후 제1결집때, 우바리존자가 80회에 나누어 외어 내어 팔십송률을 결집하고, 그 뒤에 가섭, 아난, 말전지, 상나화수, 우바국다의 5사가 차례로 전승.
중국에서는 중인도의 담가가라가 처음으로 「사분율」의 1분을 전하고, 그후 150여년을 지나 요진때에 구마라습이 404「십승률」을 번역. 불타야사가 408「사분율」을 번역함.
우리나라는 자장율사가 당나라에 가서 종남산 운제사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통도사에 금강계단을 세우고, 보름마다 계를 설하여, 율종의 초조가 되다. |
慧遠 523~592 70세 입적 |
지론종의 종조. 정영사에 거주하여 정영이라 호칭함. 진혜원과 구별하여 소원이라 불렀다 함. 수나라 사람으로 속성은 이씨이며, 돈황 사람으로 신장이 8척이며 허리가 9위. 592(개황12)년에 세수 70에 입적. |
13세에 출가하여 여러 율사에게 삼장을 배웠다. 諸經의 소를 짓는데, 모두 4자를 1구로 하였다. 「대승의장」을 지으니, 불법의 강요가 이곳에서 극진하여 진실로 석가의 太斗라 할 것이다.
수 문제가 중국을 통일하고 불교와 유교를 부흥시킬 때, 혜원을 위해 정영사를 짓고 강설하는 법석을 열게 하여, 개황12년 칙명으로 칙명으로 역경사업을 주관하다가 이 해에 정영사에서 세수 70세 입적함.
「대승의장」은 전무후무한 대규모의 개론서로서 양진과 육조시대에 이루어진 불교연구의 업적을 총괄적으로 결산한 저술이다.
혜원은 지론종의 거장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관점은 진심연기의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당시 유행했던 비담종성실종섭론종 등, 여러 학파의 교의를 모두 다루고, 대소현밀의 모든 경론을 인용하여 종횡무진으로 불교의 심오한 뜻을 드러내고자 노력하였다. 이러한 사전체식 백과사전의 성경을 띤 저술방법은 6세기 전후에 불교계에서 유행하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를 중명할 수 있는 것은 혜원의 스승인 법상이 「대승의장」6권을 짓고, 「중수법문」40권을 지었다는 기록과, 천태지의대사가 「법계차제초문」이라는 책을 지음.
저서로는 「지지소」5권,「십지소」7권,「대승의장」14권,「무량수경소」2권,「관무량수경소」2권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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地論宗 십지론에 의하여 배우는 종이기 때문에 이름한 것. 십지론이란? 「화엄경」제16회 십지의 일품으로 별행하는 십지경을 석론한 것. 십지론은 견혜와 금강군과 세친의 諸論이 있으나, 여기서는 세친의 십지론이다.
십지론은 6상이 원융함을 말하고, 일승의 불성을 밝혀(一乘成佛), 비록 화엄과 같으나, 三祗成佛을 세우고, 一念成佛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圓敎가 아님.
당대에 이르러 현장과 규기가 일으킨 법상종과 특히 법장이 일으킨 화엄종에 의해 「화엄경」의 일부분을 해석한 십지경론에 근거하고 있던, 지론종은 화엄종에 병합되기에 이른다. |
慧文 (생졸미상) |
천태 1조 또는 2조(「천태지자대사재기예찬문」에서 [천태종 2대 조사이신 북제존자에게 청하옵니다.]) 천태종이 일어날 기초를 열었다. |
일찍부터 불도에 뜻을 두어 깨달은바 있더니,
하루는 「대지도론」을 보다가 제27권에 이르러 ‘일심삼지’의 묘한 말을 얻고, 곧 이 말에 의하여, 심관을 닦고 이르기를 [과를 이미 일심으로 얻었다면, 인을 어찌 전후로 얻었으리요. 이 관이 만약 이루어졌다면 일심삼지가 쌍망쌍조를 증득하여 곧 바로 초주무생인 위에 들어가리라.]고 하였다.
또 용수의 「중관론」에서 〈관사제품〉 의 게송인 ‘인연소생법’ 구 등을 보고, 공제·가제·중제의 깊은 뜻을 황연히 대오하였다.
제법이 인연에 생하지 않는 것이 없음을 확 깨쳤으며, 이 인연은 있으면서도 꼭 있는 것도 아니며, 공하면서도 반드시 공한 것도 아니어서, 공과 유가 둘이 아니기 때문에 이름하여 ‘중도’라고 한다.
이 심관을 남악혜사에게 전하여 천태종의 시조가 되었고, 또 많은 사람들을 모아서 대승법을 설하여, 그때 교계의 제일인자로 손꼽히었다. |
慧思 (생졸미상) 515~577 63세 입적 |
천태 2조 남악혜사존자를 말함. 속성은 이씨 남무진 사람이다. 마음에 법화를 사랑하여 책을 빌려, 무덤 속에 들어가서 경을 대해 涕泣(울면서 눈물을 흘림)했다. 꿈에 선길보살이 이마를 만지고 갔다. 만져진 이마 위에 육계가 생김. |
15세에 출가하니, 혜문선사가 심관의 訣을 주어 활연히 크게 깨치어 법화삼매를 얻고, 이에대소산에 암자를 지었다.
제나라 운이 점점 기울어져 그 난을 피하고자 남악으로 석장을 돌렸다. 남악에서 강석을 펴고 선양함.
將順世에 크게 문인을 모아 설법하고, 고절하책하기를 “만약 십팔인이 신명을 아끼지 않고 법화참을 닦게 되면, 내가 공급해 주겠지만 만일 없다면, 나는 멀리 가버릴 것이다.”하였으나 끝내 답하는 사람이 없어 마침내 단좌하여 불이 맞이하러 온다하고 化 하였음. (生卒未詳).
또 다른 자료에 의하면, 15세에 출가하여 「묘법연화경」만을 전공하고, 혜문의 가르침을 받아 일심으로 연구 정진하여 드디어 법화삼매를 얻음. 568년 남악으로 석장을 돌려 강설하다가 도사들의 참소함을 여러번 받다가 577(진 대건 9)년 6월에 세수 63세에 입적함.
저서로는 「대승지관」2권,「사십이자문」2권,「안락행위」1권,「남악원문」1권「무쟁행문」2권 등이 있음. |
智顗 538~597 60세 입적 |
천태종의 개조. 이름은 지의. 법화경을 수행하여, 법화삼매를 증득하고, 현의·문구·지관을 강설 함. 중국 수나라 승려. 속성은 진, 자는 덕안, 형주 화용현사람. 천태산 석성에서 입적하였으므로 천태대사라 하였음. |
사의 어머니가 꿈에 흰쥐를 삼키고, 지의를 낳았다 함. 점치는 자가 말하기를 “흰쥐는 용이 변화한 것이다.”하였다.
7세에 절에 가기를 좋아했는데 승이 보문품을 口授하니, 한 번에 외워버렸다. 18세에 법서에게 출가하였다. 20세에 구족계를 받고, 처음으로 광통율사인 혜광에게 율학과 방등제경인 대승교를 배워 모두 통했다.
560(진천가1)년 광주 대소산에 머물고 있던, 혜사를 찾아가 심관을 받음. 지의가 가서 정배하니, “옛날 영산에서 함께 법화를 들었는데, 숙연을 따라 지금 다시 왔구나” 하고 즉시 보현도장법을 보이고, 법화 사안락행을 설하니, 지의가 日夜로 스스로 가다듬어 14일 동안 경을 외웠음. 이것이 참 공양으로 진법공양여래라 한다. 신심이 확연히 定에 들어가 법화를 비추어 보고 나니, 혜사선사가 찬탄하기를 “네가 아니면 증하지 못하고, 네가 아니면 알지 못한다. 所入한 定이란? 법화삼매의 전방편이며, 所發한 공덕이란 초선다라니다. 비록 문자師가 천군만중이라 할지라도 또한 너의 변론을 당하지 못할 것이니, 앞으로 법을 설하는 사람 가운데, 가장 제일이 될 것이다”하였다.
30세(567년)에 혜사의 명으로 금릉으로 감. 32세 의동삼사 침군리가 와관사에 居하면서, 법화를 강의하기를 청하자, 一憂九月을 經의 玄義를 말하였다. 와관사에서 전후 8년을 머무는 동안 「대지도론」을 강하고, 「선문차제」를 설하였다.
38세(575년)에 천태산에 들어가 佛隴(불롱)에 안거하였다. 40세에 마침내 절을 창건하고,「묘법연화경」을 중심으로 불교를 통합함.
48세(수 개왕5년)에 다시 금릉에 가서 陳少主의 청으로 태극전에서 「지도론」과「묘법연화경」을 강설 함.
54세(591년)에 여산에 있으면서 진왕 楊廣에게 보살계를 주고, 지자대사의 칭호를 받음. 55세(592년)에 당 양현에 옥천사를 창건하고, 593년 4월 「법화현의」,594년 4월 「마하지관을 」을 강설함.
60세(597년,수개왕17년)에 천태산 석성에서 입적함. 이때, 가부좌를 하고는 오직 삼보의 이름을 창하면서 삼매에 들어간 듯 하였다. | |
天台宗 「법화경」을 본경으로 삼고, 「지도론」을 지표로 삼으며,「열반경」을 부소로 삼고,「대품경」을 관법으로 삼아서 일심삼관의 묘리를 밝혔다.
앞서 본종의 제1조인 북제 혜문이 「중관론」에 의하여, 처음 이 묘리를 발견하여, 제2조인 남악혜사에게 전하고, 혜사는 제3조인 천태지의대사에게 전하였다. 지자가 말하기를 “도를 전함은 행하는데 있고, 설은 삼부를 강설함에 있다. ⑴「玄義」이것은, 一家의 敎相을 說한 것. ⑵「文句」이것은, 法華의 經文을 解釋한 것. ⑶「止觀」이것은, 一心의 觀行을 보이는 것. 일종의 敎觀이 이것에 具備된다.“하여, 이 대사가 宗名을 나타낸 것. 다음 제4조 장안의 관정이 천태의 강설을 필수하여, 3부의 서,「현의」·「문구」·「지관」이 이루어져서 일종의 전형이 길이 남게 되었다.
다음 제5조 천궁과 제6조 좌계의 삼사, 제7조 형계의 기연이다. 형계로부터 송나라 사명에 이르는 동안 천태종이 쇠하여 不進하였다. 사명은 解와 行이 모두 能하여 다시 일종을 일으키니, 천태가 처음으로 산가와 산외의 2종류로 나누어졌다.
보통 모든 종은 각각 따로따로, 자신의 법을 이을 제자를 정하지만, 천태종은 종단 내의 모든 승들은 천태종단의 최고종정스님 한 분의 제자가 됨. 종정스님이 다음 종조를 정함.
그래서 천태 계보가 자꾸, 누락되고 바뀌고 하는 것 같습니다. |
灌頂 561~632 72세입적 |
천태종 4조, 혹은 2조. 천태삼부의 강설을 듣고 필사하여, 후대에 전함. 삼론학 거장 길장도 관정의 가르침을 받음. 성은 오씨, 자는 법운, 중국 임해 장안사람. 장안대사라 함. |
7세에 섭정사 혜중을 은사로 출가. 20세에 비구계를 받고,
20세(583년)에 천태지의대사를 13년 동안 모시며(36세 까지), 대사의 설법을 듣고, 「法華玄義 」,「法華文句」,「摩何止觀」의 삼대부를 말년에 편찬함. 천태교관이 전해지게 된 것은, 스님의 공적이며, 지의대사가 입적 후, 지의대사의 명으로, 국청사, 칭심정사 등에서 강설에 종사하였는데, 삼론종의 종조이며, 삼론학의 거장인 사상사 길장도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632년 8월 국청사에서 72세로 입적한 뒤, 세간에서는 장안대사·장안존자라 칭함. |
智威 (?~537~?) |
천태종의 제6조 법화존자 지위선사. 어려서 출가한 14세 혜위에게 천태학을 가르치고, 23세에 심관을 줌. 공식적인 계보에서는 제6조가 좌계현량 삼사로 되어 있음. |
그가 태주 보통산에 있다가 다시 軒轅鍊丹山에 가서 낮엔 「법화경」을 강설하고, 밤엔 선을 하면서, 그 지명을 법화라고 했다. 이에 선을 익히는 자가 3백, 강설을 듣는 자가 7백이었다. 후에 그를 법화존자라 칭함. |
慧威 (590~680) 생몰미상 |
천태종의 5조, 혹은 7조. 어려서 출가하여, 지위에게 천태학을 배우고, 천태삼관의 법문을 모두 깨침. 사람들은 그를 小威라 불렀다. 제자 현랑에게 법을 전함. 절강성 금화부 동양현사람. 속성은 유씨. 호는 천궁존자. |
어려서 출가하여 지위 문하에 들어갔고, 14세에 지위를 만나 지위에게 천태학을 배우고, 삼관을 모두 깨침. 뒤에 고향에 돌아가 숨어서 세상과 인연을 끊음. 그 문하에 많은 구도의 선비가 나왔다. (년수 모두 미상), 뒤에 오월왕이 전진존자라 시호하였다.
법을 이은 제자로는 천태 6조 현랑이 있음. |
※중국 초기 선종과 천태종의 조사 비교
선종의 조사들은 익히 잘 알고 계셔서 따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중국 초기 선종과 천태종의 조사 비교 | |||||
28조 |
달마 ? ~528 |
보리달마 (인가 후 입적) |
1조 |
혜문 (생졸미상) |
북제선사 |
29조 |
혜가 487~593 107세입적 |
정종보각대사 남악혜가 |
2조 |
혜사 515~577 63세 입적 (생졸미상) |
남악선사 (무덤속에서 법화를 독송하고 涕泣함) |
30조 |
승찬 ?~606 537년생 으로 추정 |
감지선사 (평생은둔) |
3조 |
지의 538~593 60세 입적 |
천태지자대사 |
31조 |
도신 580~651 72세 입적 |
대의선사 |
4조 |
관정 561~632 72세 입적 |
장안대사 |
32조 |
홍인 602~675 74세 입적 |
대만선사 |
5조 |
지위 537~ (생졸미상) |
지위선사 법화존자 (평생은둔) |
33조 |
혜능 627~713 76세 입적 |
(초기은둔) |
6조 |
혜위 590~680 (생졸미상) |
혜위선사 천궁존자 (평생은둔) |
34조 |
혜사 677~744 68세 입적 |
대혜선사 남악회양 |
7조 |
현랑 673~754 82세 입적 |
좌계삼사 |
35조 |
도일 709~788 80세 입적 |
대적선사 마조도일 |
8조 |
잠연 711~782 72세 입적 |
형계기연 |
吉藏 549~623 74세입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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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터 복구 되신것 같아서... ㅊㅋㅊㅋ
컴퓨터야 고장나면 돈을 주던지 사람시켜서 복구 하면 될런지 몰라도...
사람은 컴가지고 들락이면 복구 되기가 어려운 기라요~~
저런게 다~` 귀신 짝짓기 놀이하는 것인줄모르면...니는 귀신아이가? 하고 또 ~~ㅎㅎ
말타고 달릴 지도 모르겠구요...어쨋던 귀신 잘 챙기이소~~글자 따라 날아가뿌릴랑가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