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비도 오고 기온도 내려갑니다.
계절이 바뀔 준비를 합니다.
저의 영성도 더 깊어지게 하시고
항상 주님 앞에 행하는 자 되기를 원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세상 정신에서 뛰쳐나오게 하옵소서.
정결한 마음으로 믿음의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2.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3.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4.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5.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6.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7.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11.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13.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본문 주해)
1~4절 : 아브람이 애굽으로 살려고 내려갔다가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다.
하나님의 은혜로 아브람은 오히려 많은 가축과 은금과 재물을 가지고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게 되었다.
아브람이 가나안으로 다시 오게 된 것은 아브람 스스로가 애굽을 떠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재앙을 받고 겁이 난 바로가 아브람을 떠나게 한 것이고, 바로를 그렇게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므로 아브람을 다시 가나안으로 가게 한 것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5~9절 : 재산이 늘어나자 아브람의 종과 조카 롯의 종이 서로 다투는 것이다. 이에 아브람은 우선권을 조카에게 주며 땅을 선택하라고 하라고 한다.
이것은 아브람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애굽의 경험으로 조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살리는 것이 자기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조금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자기 포기, 자기희생의 모습이 나오는 것이다.
아브람의 이런 모습은 아브람의 마음이 선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솜씨인 것이다.
10~13절 : 롯은 비옥한 지역을 선택한다.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라는 곳으로 옮겨가게 된다. 너무나 비옥하고 좋은 땅이지만 이곳이 나중에 유황불이 떨어지는 곳이 되고 만다.
14~17절 :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아브람을 위로하신다.
복의 언약을 확인하고 확대해주신다. 현실의 이익을 좇아 행동하지 않은 아브람의 결정에 박수를 보내주시고 ‘동서남북을 바라보아라. 눈에 보이는 땅을 다 너와 네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이다.
자기 소유를 전부 가지고 좋은 땅을 향하여 미련 없이 떠나는 조카를 바라보는 아브람은 외로움과 허전함을 느꼈을 것이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아브람을 보호해 주셨고, 이제 믿음의 결정을 하고 힘들어하는 아브람을 격려해 주시는 것이다.
18절 : 그러자 아브람은 장막을 거두어서, 헤브론의 마므레, 곧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거기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살게 되었다.
(나의 묵상)
기근을 피해 선택했던 애굽행, 아브람이 이 일로 식겁하고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온다.
처절한 실수로 아내 사래와 조카 롯 등 일행들 보기에 얼마나 부끄러웠을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문제에 대해 아브람에게 한 말씀도 나무라지 않으시고 오히려 부자가 되어 돌아오게 하신다.
아브람보다 더 식겁한 자가 애굽의 바로왕이었고, 그는 아브람을 쫓아낼 때 지참금으로 준 많은 재물을 도로 빼앗지 않고 얼른 가지고 나가라고 재촉했기 때문이다.
먼 훗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애굽 백성들이 얼른 나가라고 그들에게 패물을 주는 장면과 같다.
택한 백성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았기에 그들은 두려울 수밖에 없었으리라.
아무튼 애굽에서의 이 경험은 아브람을 좀더 성장하게 한다.
재물 때문에 생긴 갈등에서 조카에게 양보하고 우선권을 준 것은, 살아보겠다고 애굽으로 내려갔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른 선택이었다.
자신의 목숨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달렸다는 것에 아브람이 드디어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좋은 땅과 가축과 은금 패물이 자신을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살게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자기포기, 자기희생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아브람이 결단하고 결심해서 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이끌고 가심이다.
우리들은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을 보며 그들을 본받자고 주먹을 불끈 쥐며 ‘우리도 할 수 있다, 해 보자’ 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데 그와 같이 하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습이 아니라 인간을 신뢰하는 모습이다.
타락한 인간에게는 어떠한 좋은 것이 나올 수 없고, 0.00....1%의 선함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시고 이끌어 가신다.
아브람이 한 일을 생각해 보라.
기껏 결정한 것이 애굽행이었고, 잘한다고 선택한 애굽에서 아내를 빼앗길 뻔한 것밖에 없다.
그런 그를 구해 주실 뿐 아니라, 부자가 되어 돌아오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아브람과 하신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인 것이다.
“나는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약속해 두신 영생에 대한 소망을 품고 있습니다.”(딛1:2, 새번역)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하신 영생의 약속을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이미 이 일을 다 이루셨다.
현실적으로 나는 부족하고 연약한 자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이미 하늘이 앉히운 자가 되어 살고 있다.(엡2:5~6) 이 부족하고 연약한 자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를 수 있도록 주님께서 보내신 성령께서 지금도 역사하고 계시는 것이다.
오늘 자기희생과 자기포기의 아브람을 만들어내시는 하나님을 보며, 십자가에 연합되어 나 자신을 부인하며 살기를 원하는 자로 만들어 가시는 성령님을 느낀다.
어제는 지역적으로 떨어져 살지만 영적으로 교제하며 사는 지체를 만났다.
그녀는 언제나 열심인 나를 통해 과거에도 은혜를 받았다고 말함으로 옛날이나 지금이나 한결같다(좋은 뜻으로)고 하였다.
하지만 나는 너무도 달라진 나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야기의 포인트가 바로 ‘자기 부인’이다.
그 지체가 좋게 보았던 과거의 나의 열심은 자아확장과 자기만족이었고, 오늘날 나의 열심은 ‘무한한 자기 포기’라는 것을 말해 주었다.
그리고 이 포기는 낙심과 절망의 색깔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기에 가질 수 있는 소망의 포기인 것을 이야기 했다.
오늘 아브람이 롯에게 우선권을 주는 그 여유는, 많이 가진 자의 넉넉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육신적인 눈으로 땅을 바라보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아브람도 롯이 택한 땅이 좋은 줄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그의 눈은 하나님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매일의 말씀을 통해 성령께서는 땅에 찰싹 붙은 내 마음을 십자가로 떼어내시고, 영적인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니 오늘 말씀에 기쁨이 넘친다.
‘그래, 아브람처럼 양보하는 삶을 살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삶을 살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로 곁에서 느끼는 진한 행복감.....아브람의 믿음을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 그를 통해 역사하시고 또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는 하나님이 지금 내 곁에도 계신다.
(묵상 기도)
주님,
아브람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심을 보며 기뻐합니다.
동일한 역사가 지금 제게도 일어나고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바로 십자가에 연합되는 삶입니다.
매일의 말씀을 통해 자기를 부인하게 하시지만
그것이 원통하고 억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신실하신 성령님을 의지합니다.
남은 삶, 더욱 신실하게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