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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명품 그룹 ① LVMH |
세계 명품 브랜드들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면 LVMH를 빼놓을 수 없다. LVMH(Louis Vuitton-Moet-Henessy) 그룹은 루이뷔통·마크 제이콥스·크리스찬 라크르와·로에베·크리스찬 디올·지방시·겐조·셀린느· 펜디·도나 카렌 등 패션 브랜드뿐만 아니라 헤네시·돔 페리뇽·모엣 샹동·샤토 디켐과 드비어스LV·불가리·프레드·쇼메, 베네핏·메이크업포에버·겔랑, 태그호이어·제니스, 세포라·DFS 등 최고급 브랜드 60여개를 거느린 거대 공룡 그룹이다.
지난해 LVMH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면세사업 확장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삼성家 이부진 전무와 롯데家 신동빈 부회장이 직접 공항에 나갔던 이유도 세계 명품 시장을 이끌고 있는 LVMH의 위력 때문이었다.
LVMH는 지난해 전년 동기대비 73% 증가한 30억3000만유로(약 4조7661억원)를 순이익으로 벌어들였다. 매출액은 19% 증가한 203억유로였다. 그룹을 이끌고 있는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이에 힘입어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2011 세계 갑부’에서 멕시코 통신 재벌 카를로스 슬림과 마이크로 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 워렌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에 이어 세계 4대 부자로 꼽혔다. 그의 순재산은 무려 410억달러로 늘어나 지난해 7위에서 3계단 뛰어 올랐다.
◆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
LVMH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 |
LVMH그룹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 회장은 1949년 프랑스 북부 루베시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발군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프랑스 최고 명문대학인 에콜 폴리테크니크에 조기 진학하고 ENA(국립행정학교)로 이어지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졸업 후 그는 가족 비즈니스였던 건설회사에 취업해 경영수업을 충실히 받았다. 그러다 1981년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서자 그는 미국 플로리다로 떠나 팜비치에서 3년간 콘도미니엄을 개발해 상당한 돈을 모았다. 사회주의 정부가 경제정책 방향을 보수적으로 바꾸자 그는 다시 프랑스로 돌아왔다.
명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84년 프랑스로 되돌아 온 후이다. 택시기사부터 고위인사까지 명품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 유망사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르노 회장은 당장 파산 위기에 놓인 크리스찬 디올의 모기업 ‘부삭(Boussac)’과 주류 브랜드 ‘헤네시’를 인수했다. 이것은 그의 기업 인수의 시발점이었다.
◆ LVMH그룹
LVMH그룹은 1987년 아르노 회장이 루이뷔통을 인수하면서 탄생하게 됐다. 이후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패션 및 가죽 부문에서 88년 지방시, 93년 겐조, 96년 로에베와 셀린느, 97년 마크 제이콥스, 2000년 에밀리오 푸치, 2001년에는 펜디, 도나 카렌을 순차적으로 인수했다.
주류 부문에서는 헤네시 꼬냑 인수 후 브라질, 호주,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의 포도밭을 사들이면서 명품 와인 만들기에도 몰두해 모엣 샹동, 돔 페리뇽, 크뤼그 등의 왕인 및 주류 브랜드를 거느리게 됐다. 2005년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의 장녀인 델핀 아르노는 이탈리아의 와인 명가 간치아의 현 CEO인 알렉산드로 간치아와 결혼해 베르나르 아르노家의 와인 사랑을 확인시켜 줬다.
향수와 화장품으로는 크리스찬 디올, 겔랑, 베네핏, 프레쉬, 메이크업 포에버, 아쿠아 디 파르마 등이 다 LVMH 수하에 있다. 면세점 DFS 갤러리아와 화장품 유통업체 세포라, 마이애미 크루즈라인도 LVMH 지붕 아래 있다. 지난해에는 리조트 사업 확장을 위해 자사소유 보르도지방 와이너리인 슈발블랑의 이름을 사용한 리조트와 프랑스 쿠쉬빌 스키리조트를 추가로 오픈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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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및 주얼리 부문에는 쇼메, 제니스, 태그호이어를 거느리고 있다. 2001년에는 드비어스, 프레드와 조인트 벤처를 설립했고 2008년에는 휴블롯을 인수했다. 2009년에는 프랑스 주얼리 디자이너 로렌스 보머를 크리에이티브로 영입해 자사 브랜드 루이뷔통의 하이엔드 주얼리 라인을 런칭했다. 올해 3월에는 127년의 역사를 지닌 세계적 보석브랜드인 불가리를 인수하며 LVMH 제국에 불가리의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프랑스 명품 브랜드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에르메스 그룹을 인수하려고 하다가 창업주 후손들의 경영권 방어에 밀려 그 대신 선택한 것이었다.
LVMH 그룹의 시계 주얼리 부문은 2002~2004년 불경기에 적자를 기록한 것을 제외하고는 매출과 순익 모두 꾸준히 성장세를 보여 2006년에는 순익이 4배로 증가했고 2007년에는 76% 증가했다. 2009년 세계적 불황과 함께 매출이 감소했다가 다시 작년에 29% 상승했다. 작년 매출은 9억8500만유로(약 1조5500억원)로 모든 품목 중 가장 큰 매출 증가율을 보였다. 순익은 2배 이상 증가한 1억2800만유로(약 2000억원)였다.
불가리 |
◆ LVMH의 성공전략
명품 제국 LVMH는 어떤 전략으로 성공했을까. 지난 2007년 삼성경제연구소가 이들의 전략을 3가지로 소개했다.
첫 번째는 명품 업계 인수합병 귀재가 선봉에 나서고 있듯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꼽았다. 1984년에 경영난에 처한 크리스찬 디올을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LVMH는 자그마치 60여개 브랜드를 공격적으로 인수합병했다. 유럽의 명품 브랜드는 대부분 가족기업이나 주먹구구식 경영에 의존하는 편이었는데, 아르노의 공격에 하나둘 무너지고 말았다. 아르노 회장은 명품이란 역사와 전통에 브랜드 가치가 있으므로 새로 만드는 것보다는 인수합병이 훨씬 시너지 효과가 크다는 판단을 했다.
두 번째는 디자이너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다. 아르노 회장은 디자이너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각기 다른 예술성과 창의성을 존중한다는 뜻이다. 그는 크리스찬 디올의 전 수석 디자이너인 존 갈리아노가 신문지로 만든 옷으로 패션쇼를 벌인 뒤 비판 여론이 일자 오히려 “쇼킹하지 않으면 창조적이지 않다”고 존 갈리아노를 극찬했다. 쟈도르 향수도 처음에 고객들 평가가 낮았지만 개발자의 판단을 적극 지지해 결국 성공으로 이끌었다.
그는 다수결보다는 디자이너 개인의 직관과 소신을 중시했고, 재료구매 · 생산 · 광고컨셉트 · 모델분장 등 모든 권한을 디자이너에게 주었다. 브랜드의 정체성이 디자이너로부터 소비자에게 훼손되지 않고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세 번째는 소비자에게 꿈과 환상을 심어주는데 주력했다. 그는 “지금은 힘들지만 나중엔 반드시 저 명품을 사고야 말겠다”는 꿈과 환상을 소비자에게 심어주었다. 그래서 끊임없이 상류사회와 세계일류의 이야기를 브랜드에 심었다. 루이뷔통컵 요트대회를 지원하는가 하면, 타이거 우즈와 샤라포바 등을 활용해서 끊임없이 스포츠 스타마케팅도 강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