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티비시절 KBS 연속극 '여로'
1972년쯤에 시작한 '여로'라는 드라마는 그야말로 공전의 히트작이였다.
지금 처럼 과학적인 시청률 조사 가 있었더라면
시청률이 70프로 혹은 그 이상이였을거라는 생각이다.
이 드라마가 시작되는 시간에는 정말이지 거리가 한산했었다.
그 시절 문화란게 뭐 특별한게 있겠는가.
일년에 한 두 서너편 영화를 보는것, 흑백 티비 연속극 보는것,
도심에도 티비 수상기가 귀했던 시절,
자연 '여로'방영시간에는 수상기 있는 집은 만원이었다,
그때는 그래도 도심에도 이웃간의 정이 오가던 시절이였다.
궁백한 시골 동네
티비 있는 집에는 여로를 방영하는 밤 시간은
온동네 이웃들이 남녀노소 할것없이
대청마루는 물론이고 마당 가득 모여 시청을 했다.
그 옛날 옥색 댕기 바람에 나부낄때...
이미자의 여로주제가가 아련하게 깔리고
일제때 여주 감나무골 최주사댁 외아들인 영구(장욱제)는 약간 얼이 빠진 바보다.
이 바보 영구가 이 드라마의 인기 촉매 역할을 한것이다.
터벅 머리에 기계충 자국이 선명하고. 앞니가 두개 빠진몰골로
"색시야 ..색시야 .."
제 아내(태현실)를 끔찍이도 좋아하던 바보 영구
나이는 장년인데 언제나 영구의 의식은 어린애에 머물러 있다.
그는 제 한참 아랫 꼬마들과 어울려 논다.
그러면서도 나이나 몸은 장년인 영구는 어린애들로부터 언제나 주목 받고 싶어한다.
제 눈앞에서 바보 천치라고 놀려도 그냥 웃어 넘긴다.
"영구야 니 색시 어떠냐 ?"
"색시야 색시야 이뿌다... 히 ㅡ 우리 색시 이뿌다 ...!"
손아래 어린애들이 농치는 소린지 아는지 모르는지 잘도 받아 넘긴다.
알고보면 영구의 색시분이 (태현실)는 술집 작부였던 사연 많은 여자.
영구 아버지 최 주사가 동네 불량배인 달중의 꾀임에 넘어가
분이의 과거를 모른 채 며느리로 맞아들인것.
최 주사의 후처인 윤씨(박주아)는 집안 재산을 가로챌 심보로
며느리를 혹독하게 구박한다.
영구 아버지 최 주사는 집에 독립군을 숨겨주고
독립군에게 독립 자금을 건네준다.
독립군과의 관계를 의심한 냄새를 맏은 일본순사 앞잡이
달중이 염탐은 연속극의 긴장감을 더해준다.
영구는 아이들 앞에서는 바보 지만
무라까미 형사와 왜놈 앞잡이 달중이 앞에서는
겁을 상실한 질풍노도다. 도끼 들고 마구 그들 뒤꽁무니를 쫒는다.
"달중새끼 .. 나쁜새끼 ... "
일정 치하에 왜놈순사에게 이렇게 공공연하게 반항하고
욕하고 대든 사람은 흔치않으리라 .
결국 최주사는 독립군을 숨겨준 사실이 들통나고
그 죄목으로 일본 경찰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한다.
남들은 영구를 바보 천치로 무시하고, 비웃으며 놀림감으로 생각 하지만
분이만은 그렇게 생각하지않는다.
바보 신랑의 순수한 사랑을 분이는 가슴으로 느끼는것이였을까.
참으로 열린마음이다.
마침내 분이는 임신까지 해 아들 기웅(송승환)을 낳는다.
영구의 인생에 또 먹구름이 드리운다.
영구색시 분이는 과거가 들통나 시어머니 윤씨에 의해 쫓겨나고 .
6.25 전쟁이 터지면서 영구는 색시와 헤어진다.
이 세상에 유일하게 자신을 존중해주던 그의 새악시 분이 ...
영구와 그의 아들 기웅(송승환)의
분이를 만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극을 보는 사람들을 마음에도 애절하게 다가온다.
피란지 부산에서 스칠 듯, 말 듯 만나지 못하는 분이와 영구.
고개만 돌려도 서로 만날터, 아슬 아슬하게 서로 피해가는 이 안타까움...
뻔한 수법인줄 알면서도 가슴이 조마조마 하다.
영구는 색시를 언제 만날까?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은 마치 제 일 처럼 안타까워 한다.
좀 만나게 해주지
극작가에게 항의가 들어온다.
언제나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주 화제는 그들의 만남이다.
예나 지금이나 일반 백성들의 심성은 선하고 어질다.
모자라고 부족한사람들을 도와주려는 측은지심이 있는것이다.
그들에게 돌을 던지는 막되먹은 사람은 드물다.
"찾았다. 찾았다!. 우리 색씨!..... 색씨야! "
"찿았다!!!"
" 부산땅에서 구두닦이 하면서도 찾았고....
대전에서 포장마차 하면서도 찾았다…”
분이’(태현실)와 재회하던 날, 영구는 운다...
목메이게 운다
분이도 울고 아들 기웅(송승환)이도 운다.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도 눈물을 훔친다.
장안이 눈물바다다..
신파극이다.
어쩌면 그 시절 삶이 신파극일수 있다.
신파극이면 어떠랴...
순정한 마음, 영구마음...
팍팍한 오늘날 영구 그가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