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년(艾年)에 저도 올레길을 하나 낼 수 있으까요
최근 2박 3일 동안 우리 딸 수아 대학 후배 한분과 함께, 올레길로 되살아난 제주도를 다녀왔습니다. 고3인 딸이 이번에 대학입시를 치루고 너무 힘들어 하기에 격려하고. 지난해 말에 찾아뵙기로 약속하고는 『인천 세계도시축전과 연세대 송도 국제 캠퍼스 건립 성원 음악회』개최 관계로 미루었던 돌, 바람, 여자 삼다(三多) 의 섬 제주도 선배님들에 대한 약속도 지키기로 한 이번 여행은 5년만이었습니다.
11월 29일 오후 짐을 꾸려 9호선 지하철을 타고 김포공항에서 비행기에 올라 위크 엔드판 신문을 보고, 아이는 날틀 창가에서 조그맣게 보이는 지상 전경을 카메라에 담고 음료수 한잔을 서비스 받자 제주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렌트카를 타고 애월읍 숙소로 향하다가 제주대 총장님의 일정 변경 전화를 받고 우리는 구 제주에 있는 한 음식점을 찾아갔습니다. 그곳은 우리 딸 담임선생님의 친정으로 오래된 토속 횟집이었습니다. 무진장 맛있는 저녁과 다양한 해산물로 후배와 함께 회포를 푼 우리는 소길리에 있는 통나무집 가족 펜션으로 길을 물어 이동하였습니다.
펜션 운영주와 차 한잔을 사이에 두고 신앙적인 의견을 나누다가 피곤한 몸은 2층 통나무집에서 이내 잠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튿날 닭이 훼를 쳐 눈을 뜨니 우리는 이곳이 제주도라는 사실을 비로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출입 문 바로 앞마당에는 부리부리한 장닭의 뒤를 따라 희고 작은 닭 서너 마리가 먹이를 찾고, 집을 지키던 개 두 마리가 반갑게 따라오고 화들짝 놀란 우리 딸이 내 팔을 잡으니 상큼한 공기가 폐부를 찔렀습니다. 신발을 신고 입구 쪽으로 가니 언덕 아래서 주인장이 말에게 여물을 주는 모습이 한 폭의 동화같이 다가왔습니다.
새소리 바람 소리를 들으며 동행한 후배, 딸과 함께 억새풀이 무성한 길을 조금 걷다가 아침 걱정에 나무향 가득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초겨울을 무색케 하는 동백꽃 다발을 지고 있는 동백나무, 구상나무, 치자꽃, 참꽃 사이를 빠져나와 묘를 쓰려고 풀을 베는 제초기 소리에 놀라니 바로 숙소 앞이었습니다.
용두암 부근 해수탕에서 샤워를 하자 11시가 넘어 제주 그랜드호텔 로비로 바로 가야만했습니다.
2005년 5월부터 금년 4월말까지 제주대학교 총장을 지내신 고충석 선배께서 안내하는 음식점에서 우리는 제주도 특산 흑돼지 고기와 해물된장 뚝배기를 나누며 오랫동안 밀린 얘기를 이어 갔습니다.
우도 출신으로 국립대학 총장까지 오른 그분은 아직도 제주 발전을 위해 하실 일이 남아 있다며 고민하고 계셨고, 함께 오신 제주일보사 논설위원 고태호 濟州共改協 대표의장은 고총장님 임기 중 재일교포들의 발전 기금 유치 및 그 조성 규모, 제주대학교 아라동 새병원 건립, 사단법인 이어도연구회 이사장으로서의 활약 등에 관해 칭송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끝으로 제주의 명물 올레 길을 꼭 걸어보라
는 두 분께서 우리 딸과 저, 후배에 대한 격려를 하시고 아쉬운 작별을 하였습니다.
비로소 관광 길에 올랐습니다. 신혼여행의 꿈이 살아나는 용두암에서 용의 머리를 닮은 기암과 전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뒤, 수아가 제일 가고 싶어하는 Queens House를 찾아 갔습니다. 일부러 하귀 애월 해안도로를 타고 푸르고 맑은 물결 너머 파노라마같은 바다 수평선을 실컷 보았습니다. 왕실 왕가의 삶을 모티브로 왕실 문화와 역사를 원형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곳에서 1천여 점에 달하는 보석 전시품과 100여점에 달하는 천연보석으로 이루어진 왕실 소품, 인테리어는 우리를 화려했던 과거 역사의 현장으로 옮겨놓기에 충분했습니다. 둘째 녀석 뒷바라지 하느라 같이 오지 못한 아내를 위해 예쁜 귀걸이를 하나 장만했습니다.
다음은 항몽(抗蒙) 유적지를 지나 제주 공룡랜드를 들렀습니다. 입구에 선 거대한 공룡 앞에서 딸에게 기념이 될 사진을 찍어 주었습니다. 텔레토비와도 찍고 백설공주와도 찍었습니다. 이어 경마공원에 갔습니다. 월요일 정기 휴장인데도 안내하시는 분께 간청하여 관상마를 볼 수 있었는데, 그곳에서 노새, 당나귀, 제주마, 세계에서 가장 작은 말 셔틀랜드 포니, 가장 큰 말 글라이데스데일, 아팔루사 등을 보며 사육사로부터 말에 관한 많은 지식을 얻었습니다. 더러브렛, 페인트 등 희귀 품종 말과 함께 사진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일정이 바쁜 후배가 앞서 상경하고 딸과 저는 저녁 약속 장소인 노형초등학교 근처의 식당에서 제가 후원하는 사회복지법인과 단체를 크게 도와주신 한 선배님과 맛있는 똥돼지 대패 삼겹살과 누릉지. 동치미 국수를 먹었습니다. 5년 만에 뵙는 그분은 이제 제주도 사람이 다 되신 듯 그곳 실정을 깊이 알고 계셨습니다. 처음에 육지 것들이라면서 배타적인 입장에서 대했던 이웃들과의 사귐, 선교 활동에서의 애로, 음악학원 경영의 실태, 제주도의 경제 등등에 관해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애월읍 숙소에서 딸과 같이 자던 저는 무엇이 낯설었는지 새벽 네 시에 깨고 말았습니다.
그리곤 기내에서 들고온 신문지를 뒤적거리다가 「공산당 탈당 택한 장선푸」라는 칼럼속에서 상(尙)과 흑(黑)을 합친 것이 당(黨)이라는 것을 비로소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어둡고, 은밀하고, 사악하고 음흉한 것을 숭상하는 사람들이 떼거지로 몰려 있는 곳이 당"이랍니다.
갑자기 올레 길을 걷고 싶었습니다. 하모~무릉 올레 든, 쇠소깍~외돌개 올레 든 "놀멍 쉬멍 걸으멍 걷기 여행"이 하고 싶었습니다.
'올레'란 제주어로 '거릿길에서 대문까지의 집으로 통하는 아주 좁은 골목길' 을 뜻한답니다.
중세어로는 '오라', '오래'이며, '오래'는 문(門)을 뜻하는 순 우리말 '오래'가 제주에서는 '올레'로 굳어진 것으로 보고 있답니다. 또한 제주 올레 는 발음상 제주에 올레? 라는 이중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전 시사저널 편집장인 서명숙 씨가 '놀며 쉬며 걸으며 천천히 걷는 길'로 재 정의해 2007년 9월 제주도 동쪽 시흥초등학교에서 출발하는 제1 코스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14코스의 제주 올레를 연 것이다.
서귀포가 고향인 서명숙씨는 어린 시절 마냥 갑갑하게만 여겨지던 그곳을 벗어나 불빛이 휘황찬란한 도심으로 가고 싶어 했었답니다. 고층 빌딩이 즐비한 서울에서 30년 이상을 산 그녀는 그곳에서 대학을 마치고 결혼 후 아이도 낳고 직장에서 편집장 자리까지 올랐지만 그런 사이 그녀의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직장을 그만둔 그녀는 치유를 위해 도보 여행의 성지 길- 산티아고 길 800Km 를 걸었습니다. 막바지 여정에서 그녀는 영국인 길동무에게 "이제 너는 너의 나라로 돌아가서 너의 길(카미노)을 만들어라"
그리고 그녀는 설문대할망과 그녀의 후손인 해녀들의 이야기가 담긴 길을 찾아냈고 끊어진 길을 이어냈으며 사라진 길을 되살렸고 없던 길을 만들어냈습니다.
우유와 빵으로 요기를 하고 딸과 나는 길을 찾아 걸었습니다. 삶이란 자기만의 길을 내는 것이니!
조용히 거니는데 숲속에서 노루인지 고라니가 무척 놀라 활엽수 잎이 무성한 지상어디론가 달아나고, 외로운 까투리는 천상으로 날아갔다.
한라대학교에 교수로 있는 처제가 강의가 많아 점심조차 같이 할 수 없다기에 다행(?)이라고 여기며 맑은 공기를 벗삼아 산보하고 있는데, 어제 만났던 선배님이 점심을 하시자고 숙소로 찾아오셨다.
신제주의 깔끔한 음식점에서 갈치국과 성게국으로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2010년 1월에는 제주도의 새터민(탈북 후에 남한에 정착한 분)들을 돕는 행사와 사업에 동참할 것을 약속하고...
제주 공항까지 걸었다. 50분 동안 우리는 제주도민들이 잠들어 있는 산소도 보았고, 오름도 보았고, 농협도 보았고, 귤나무도 보았다. 그리고 서울에도 많은 자동차 판매 영업소와 버스, 택시도, 초등학교, 중학교, 문구점, 보습학원도 볼 수 있었다.
서울로 오는 비행기 창밖이 불투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