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사립대학들
[독일칼럼]
한 25년 쯤 전에 한국서 독문과를 다니셨다는 분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한 대학에서 사용되었다는 독일어교재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미국인 학생과 독일인 학생이 만나서 하는 대화이다.
독일학생: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모두 국공립이라 등록금을 안 내지.
미국학생: 우리나라 대학들은 사립이 많아서 등록금이 좀 비싸. 하지만 공부를 잘하면 장학금을 많이 받을 수 있지.
독일학생: 뭐라고? 사립대학? 그렇다면 너네 나라는 수퍼마켓이나 주유소처럼 누구나 개인이 대학을 설립할 수 있다는 말이니?
25년 전에 독일학생이 할 만한 말이다. 30년 전만해도 독일에 사립대학이라는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일반인들에게 그러한 개념도 없었다. 지금처럼 500유로 하는 등록금도 없었고, 한 20년을 대학에 적을 두고 학생신분으로 온갖 혜택을 누려도 아무도 아무 소리 안 했다.
독일 최초로 국가로부터 학력인정을 받은 사립대학은 1982년에 당시 단과대학으로 설립된 비텐헤어데케 의과대학이다. 등록금이 매우 비싼 이 대학은 한 때 독일서 가장 우수한 의대 중 하나라는 평을 누렸으나, 2000년대 들어 폐쇄위기까지 갔다가 대학경영구조의 개선과 몇 개 회사의 자금후원으로 다시 활성화되었다.
현재 독일에 국립대학이 아닌 대학은 94개가 있으며 (2010 년 10월 기준) 대부분은 소규모의 응용과학대학(Fachhochschule)이다. 국립이 아니라고 해서 반드시 사립이라고 칭할 수 없는 이유는 많은 대학이 신구양교회에 소속되어 있되거나 (44개 대학)공공기관이 운영기관인 곳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일의 사립대학들은 그 명칭의 정의를 내리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83개 대학이 응용과학대학이며(Fachhochschule), 10개가 일반단과대학이거나 여러 학과를 둔 대학(Hochschule), 한 군데가 예술대학(Kunst-Musikhochschule)이다. 전체 대학생의 약 5%가 사립대학에 재학 중이라 한다.
일반종합대학, Universität 란 명칭은 두 군데 대학에 한하여 쓰이고 있는데, 비텐헤어데케 (Universität Witten-Herdecke)대학과 브레멘의 야콥스 대학 (Jacobs Universität Bremen)이다. 이 대학은 명칭 그대로 유명한 야콥스커피회사집안에서 자본을 투자해서 설립된 대학이다.
사립대학이라 하여 모두 등록금이 비싼 것은 아니다. 사립대학 중 많은 대학들은 신구교 양교회에 소속이 되어 있는데, 이러한 신학, 사회복지학, 교육학, 교회음악 등의 과목을 공부하는 대학의 경우 역시 등록금을 내지 않거나 그리 많은 금액이 아니다. 교수들도 공무원신분이며 종교세로 유지되기 때문에 실은 국립대학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고 하겠다.
물론 일부 경영, 경제학과대학이나 미국식제도를 따온 로스쿨처럼 학비가 매우 비싸, 일반학생은 엄두를 내기 어려운 곳도 있다. 보통 연간 3,200 에서 10,000 유로 사이로, 학교마다 차이가 많다.
외국학생 유치를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던, 영어로 전과목 수업이 진행되고 학비가 매우 비쌌던 몇 군데 대학은 문을 닫은 곳도 있다. 2009년에 폐쇄된 브루흐잘대학이 그러한 경우이다. 현실적으로, 영어로 수업을 원하고 영국이나 미국사립대 수준의 등록금을 낼 수 있을 만한 학생이라면 아무래도 영미권을 택할 것이다.
독일은 사립대학이 미국처럼 성장하지 않는다. 뭔가 사립대학은 일반인 들에게 낯선 느낌을 준다. 그 이유로는 근본적인 의식의 차이를 꼽는다.
독일서는 오래전부터 교육은 국가의 몫이었다. 사회 공동의 책임이었다. 시민들이 내는 세금으로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의 교육이 이루어지며, 그러한 혜택을 받은 학생들은 나중에 직업을 가졌을 때 자신의 지식과 기술을 다시 사회에 환원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세금을 내는데 왜 다시 자녀를 위해 돈을 학교에 내야 하는지, 혹은 아버지가 세금을 내는데 내가 왜 학비를 내야 하는 지 그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것이다.
사립대학이 제대로 서려면 또한 많은 후원자, 지원단체가 필요하다. 학교에 애교심을 가지고 모교에 지원을 하는 졸업생들도 필요하고 산업체들의 후원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독일인들에게는 그 제도의 차이로 미국이나 특히 한국서 매우 강한 소위 „애교심“ 개념이 없다. 모교인 아헌공대에 거금을 기증했다는 한 한국인 사업가가 떠오른다.
[출처] 독일 동포 미디어 베를린리포트 - http://berlinreport.com/bbs/board.php?bo_table=news&wr_id=5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