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8학성세보-1769경인세보-1904서면파보-1939봉사공세보(용호할배이인락)-계사보(1953)-1967학파실기-1971(신해대동보)직검-직강-직유-직겸)와1972(임자)직강(서면)-직검(월진)-직겸(곡강)-직유(농소))
-. 임란 후 울산 인구 구성의 변화
전쟁 후 流民 정착하여 향호(鄕戶)가 증가하면서 주민 구성과 신분 관계가 더욱 복잡해졌다.
-. 족보 편찬의 필요성
당시에는 족보와 적실 여부가 벼슬 진출과 재산 상속의 중요한 기준이었다.
울산 토성인 학성이씨는 가문의 정통성과 신분을 명확히 하기 위한 文籍절실.
1668년 5파가 무신보 제작
-. 무신보 庶子 기록 내용
매헌-문씨:창발(1599)(庶)
손씨:정헌(1629) 장남
겸수의 아들 준발(1582)의 配(경주이씨1584)의 子:의지(1605):주남(庶)
配(월성김씨1596):자:희성(1627),희현
-. 체화당 건립
매헌공과 강성문씨를 추모
구락(성락:1866-1929)공이 1920년경 주남에 건립한 재실로, 일제강점기 어려움 속에 은진송씨에게 1944년 매각 경선재 건립
격정문:1833년 주남의 이승명(판관공 16세) 등이 이근찬(용암)을 상대로 46년간 격정-무신보 오기 판결
1833년 주남의 이승명(판관공 16세) 등이 이근찬(무신보를 신임하는 분류 쪽으로 용암의 태환의 현조로 15세손임)을 상대로 46년간 탄원하고 향교에 조사의뢰 하는 등 암행어사가 여러 장적을 조사하여 무신보가 잘못되었다는 국가 직인을 날인 한 판결문이 내려졌다는 내용이다.
1. 중리문중 선조들의 생활 내력
| 대수 | 이름 | 호 | 생년 | 신분 호적 | 노비명 | 성별 | 생활정도 | 학력 | 거주지 |
| 10 | 몽상 | | 1707 | 幼學 1765 1774 | 시단(時丹),매득(買得) 순원(順員),순진順辰) | 여 | 상급 향반층 | 유교 수학 자손교육 제례주관 | 3대 동거 주남 |
| 11 | 경도 | 인와 | 1728 | 1771 | 순원(順員),순진順辰) | 여 | 상급 향반층 | “ | 주남 |
| 12 | 효강 | 증언 | 1750 | 幼學 | 순원(順員) | 여 | 상급 향반층 | 유교 수학 제례주관 | 주남-관동 |
| 12 | 제강 | 충언 | 1754 | 幼學 1795 | 순진(順辰) | 여 | 상급 향반층 | 유교 수학 자손교육 | 3대 동거 |
| 13 | 의강 | 성언 | 1758 | 통정대부 1840,효자 | 순월順月),시단(時丹) 순진(順辰)68세때 | 여, | 중상급향반층 | 유교 수학 자손교육 제례주관 | 3대 동거 |
| 14 | 광한 | | 1805 | 幼學 | 수랑(守浪) | 여 | 중 향반층 | 유교 수학 | 주남 |
| 14 | 광렴 | | 1811 | 幼學 | 순금(順今)해단(海丹) | 여 | 중 향반층 | 유교 수학 | 주남 |
| 14 | 광일 | | 1779 | 幼學 1825 | 수녀(守女) | 여 | 중 향반층 | 유교 수학 | 주남 |
| 14 | 광지 | | 1792 | 幼學 1825 | 시단(時丹) | 여 | 주남 |
| 중 향반층 | 유교 수학 |
| 15 | 병주 | | 1812 | 幼學 1840 | 수금(守今) | 여 | 중 향반층 | 유교 수학 | 주남 |
| 15 | 상주 | | 1806 | 幼學 | 시삼(時參) | 남 | 중 향반층 | 유교 수학 | 주남 |
| 15 | 세주 | | 1809 | 幼學 | 시석을(時石乙) | 여 | 중 향반층 | 유교 수학 | 주남 |
이몽상 계열에서 반복 등장하는 “時” 계열 노비명으로 보아 노비 세습되었음을 알 수 있다
2. 학력 수준:“幼學”은 한문 독해, 유교 경전 기초, 제례 문서 작성, 족보 이해 가능 수준.
이몽상 계열은 1765~1840년까지 약 75년 이상 동일 생활권에 거주(서당:백동,신기,용당)
3. 경제 규모 변화
1825년 이후 세대 독립되면서 1840년대에는 노비 수가 대부분 1명 수준으로 18세기보다 경제 규모가 축소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즉 조선 후기 향반 경제 구조 변화가 반영된 것입니다.
4. 사회 풍토
주남은: 효 사상, 항렬 질서, 혼맥 유지, 문중 단결, 장유유서를 중시한 전형적 유교 향촌 사회였다.
5. 계사보에 있는 용이천가례봉선사(用伊川家例奉先祀)란?
정태중(1006~1090)-정명도(1032~1085), 정이천(1033~1107)
아버지 정태중이 죽자 종법을 둘째 아들인 정이천이 제사를 모셨고, 세월이 흘러 정이천이 죽자 정이천의 아들‘단언’이 종법을 이어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