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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는 독립투사 장군이라는 미명아래
엄마를 때리고 착취하여 돈을 갈취한 독립군 제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렇게 쓰면 형제들이 나를 죽이려고 하겠지.
하지만 난 할 말은 해야겠어.
내가 처음 대학시험을 보기 전 날 엄마는
나에게 처음으로 당신의 과거를 얘기하셨다.
9남매가 있지만 엄마의 정확한 과거를 아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
지금도 난 생각한다.
왜?
왜? 엄마가 나에게만 당신의 과거를 얘기하셨을까?
그것은 엄마의 자존심이었을 것이다.
형제 중에 처음으로 대학 시험을 보는 나에게 엄마는
자신의 과거를 얘기하고 싶으셨나보다.
지금 어느 형제들도 엄마의 정확한 과거를 모른다.
단지 나 외에는.
그 만큼 엄마의 자존심은 고독했다.
처음 대학 시험을 보게 된 당신의 자식에게만
당신의 과거를 털어놓을 셨을 만큼.
이런 얘기를 쓰면 형제들은 나를 죽이려고 하겠지.
"일본 놈이랑 산 그 더러운 몸뚱이 내 집에 들여놓지 마! "
나의 덕에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집을 사준 남동생이
내가 해준 금으로 해 넣은 치아를 반짝이며 말했다.
난 그때 동생을 바라보며
'말을 할 때 금이빨이 살짝살짝 보이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구나.'
라는 생각을했다.
지금도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다.
왜 난 그때 분개하지 않았을까.
"이년이 일본놈이랑 사는 년이예요. 우리 아버지는 독립군 장군인데
이년은 현지처예요."
내가 사는 아파트 밖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애는 내가 키우고 공부시키고
내 후배를 소개해 결혼을 시켜 내가 사준 아파트에서 사는 동생이었다.
'저렇게 소리 지르면 목 아플 텐데.'
그러려니 했다.
내 딸의 목에 들이댄 칼날을 잡은 내 손에 피가 뚝뚝 흘렀다.
딸 머리채를 잡고 목에 칼을 대고 있는 조카는 내가 입원 시키고
치료하고 퇴원 시킨 아이였다.
조카는 나를 발로 차며 나뒹군 나를 향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자! 이제 피디를 불러 보시지요!"
그 조카의 엄마는 나의 동생이었고 나의 명의로 된 집에 살고 있었다.
처음으로 화가 났다.
당하는 것이 내가 아닌 아무 상관 없는 단지 나의 딸이었기 때문에.
"넌 여기에 죽여서 파묻어도 아무도 몰라. 너의 늙은 남편은 한국말도
모르잖아?"
그 아이 역시 내가 키우고 집을 사 주고 결혼시킨 아이였다.
'묻던지 말던지.'
시쿵둥했다.
"너 때문에 내 자식이 정신박약아가 됐어. 너를 고소할 거야.
너의 아들을 데리러 가다 감기에 걸려 약을 먹은 게 원인이야."
이 아이 또한 내가 키우고 결혼 시키고 집을 사 준 나의 동생.
'그걸 어떡게 증명하려나....힘들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네 딸 밤길 조심하라고 해. 만신창을 만들어 놓을 테니까."
이 놈은 동생과 함께 살던 놈의 말.
그땐 몸이 떨렸다.
'그래, 알았다.' 그 다음엔 내가 너에게 어떻게
하는지 기다리라고 했다.
언니가 버리고 간 아들을 공부 시키고 결혼 시키고 집 지어 10년을 자리잡게 키운 조카는
어느날 나도 모르게 이사간다는 말도 없이 전기세를 잔뜩 밀리고 떠나버렸다.
그때도'제 엄마를 많이 닮았구나.'했다.
형부가 세상을 등졌다.
병원비가 밀려 사체를 내 주지 않았다.
밀린 병원비를 지불하고 시체를 찾아
화장을 하고 장례를 치렀다.
그 언니가 바로 나에게 오천 원짜리 면티를
벗겨 오라고 한 사람이었고 집에서 쫒아내 잠 잘 곳이 없어
잠 잘 곳 때문에 결혼을 하게 만든 언니었다.
형부 장례를 치르고 88년 집을 팔아 500만원을 주고 가게를 차려 주었다.
"고마워.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게. 그리고 이 돈은
내가 죽기전엔 꼭 갚을게."
그렇게 말한 언니가 10년이 지나 자신의 아들이 돈을 벌어
결혼을 하게 되자 아들에게 말했다.
"얘 네 삼촌 남자 동생이 도와 준 돈은 갚아야 해.
너 어려울 때 도와 준 거잖아."
그말을 듣고 난 속으로 픽!하고 웃었다.
'인간들이란.'
"야 이년아 일본놈이랑 살면서 그것도 못 내!"
나의 뺨을 때리며 언니가 말했다.
졸지에 당한 일이라 황당해 놀란 눈으로 언니를 쳐다봤다.
액수를 말하면 주려고 했지만 언니는 내 뺨만 때리고
내 말은 듣지도 않고 문을 거칠게 닫고 나가버렸다.
"원하는 것이 얼마인데?"
말을 해야주지.
나에게 나리꽃을 꺽어다 준 언니였기 때문에
나는 언니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었다.
피아노를 공부하던 자신의 딸이 문제가 생겨
학교를 그만둬야 했을 때 우리집으로 주소를 옮겨
데리고 있으며 학교를 다니게 했고 음대에 보냈다.
나의 아들은
예술대학 한 명 가면 집안에 기둥뿌리가 뽑힌다는 데
우린 3명을 예술대에 보냈기 때문에 지금 화장실이
무너지게 생겼다며 투덜거린다.
나무로 지은 우리집의 화장실이 누수가 돼
새로 지어야 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언니, 그애 나도 못 말려."
자신의 딸은 충동질 시켜 나의 집에 칼을 들고
들이닥치게 한 나의 동생의 말이었다.
그때 나의 딸은 고 3이었고 그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대학 입시를 포기해야 했다.
그때 처음으로 마음이 아팠다.
아주아주 많이.
한참을 생각하고 고민했다.
내가 무엇을 잘못 한 것일까.
그래, 이제부터 도와주지 못하게 된 것이
잘못 된 거야.
그러니까 이제 전부 다들 그동안 쌓였던
한들이 쏟아져 나온 거겠지.
그런데 저 정도로 한이 맺힐 만큼 내가 심하게 했나.
아니, 심하게 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더 도와줄 수 없게
내가 심하게 망했지.
88년 나의 집을 팔아 엄마에게 2천만원을 드려 집 짓고
편히 사시라고 했더니 3천 만원을 은행융자를 안고
5천만원 값어치의 땅을 사 결국은 홀딱 날려버리고.
"엄마, 집 짓고 편하게 살라고 했더니 이게 뭐야?"
"내가 자식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어떻게 편히사냐?
돈을 불려놓아야지."
우리의 가난한 가족사가 대개 그렇듯 한 사람이 희생해
모든 식구들을 먹여살리는 것이 우리집의 구조였다.
엄마부터 언니 동생 조카까지 그 수많은 식구들을 책임지고
공부시키고 결혼 시키고 자리를 잡아 줘야했다.
그러는 중에 나도 사람이었으니 버거웠으리라.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받으면서 자존심 상하고 상처 받은 일들도
있었을 것이다.
난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엄마의 품을 떠나 살았다.
그때부터 오직 엄마, 동생들과 형제들을 도와 주겠다는 일념으로 살았다.
그렇게 되면 우리집도 서로 아끼고 화목하게 남들처럼 살 줄 알았다.
가난에서만 벗어난다면.
그러나 절대 아니었다.
화목과 단란은 물질로부터 오는 것이 아님을 그땐 몰랐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어렇게
잘못 된 것일까.
"책을 내지 마. 인터뷰를 하더라도 모자이크 처리를 하고 해!'
형제들은 길길이 뛰었다.
왜?
누구를 위해서?
명아야!
현실을 받아들여.
엄마와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등진 분이고 그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냉철하게 현실적으로 생각해.
"나의 아버지는 독립투사 장군이라는 미명아래 힘 없는 여자인 엄마를
때리고 착취하고 죽을 때가지 돈을 뜯은 제비야!
그것도 모자라 법정에서 자신과 함께 산 여자를 화류계 여자라고 비하하며
화류계 여자이기 때문에 누구의 자식인지 모른다고 우리를 부정하고 돈을 갈취한
위대한 독립투사가 나의 아버지야."
"이제 다들 돌아가신 분들이야. 들춰내서 뭐하니?"
"그래,어차피 엄마는 기생이었으니까, 희생한 것은 그냥 묻어두고
비운의 독립투사라는 타이틀로 치장된 아버지만 기리자고?
그리고 우리는 독립군 장군의 딸로 남자고?
아버지의 묘비에 씌여진 대로 독립군 소장에댜 육군 준비 총사령관의 딸로?
그게 그렇게 자랑스럽니?
평생 엄마를 때리고 착취하고 기만했어도 그럴듯한 아버지 쪽으로
줄을 서야 할 정도로 그렇게 자랑스럽고 대단한 거니?
"김일성과 한 고향 친구인 아버지는 그 당시 중국에서 활동한
독립군들이 다들 그러하듯 낮에는 독립군으로 일본군과 싸우고
저녁에는 먹을 것을 위해 남의 집을 습격해 닭을 훔치는
마적단이었을 거야. 그걸 탓하자는 것이 아니야. 사흘 굶으면
담 넘지 않는 사람 없다니까. 하지만 힘 없는 엄마를 폭력으로
제압한 독립운동가는 난 별로 자랑스럽지 앟아.
일본군이 아닌 힘 없는 여자 제압하는 것이 독립운동은 아니잖아."
"얘, 마적이든 비적이든 우리가 안 봤으니 그건 얘기할 것이 못 돼"
"우리가 안 봤어도 엄마는 알았기 때문에 우리를 혼내고 때릴 때
'이 마적단 딸들아! 하며 때렸잖아. 근거가 있으니 엄마도 그런 말을 했겠지.
그렇다하더라도 우리가 안 본 것은 진실이라도 말 할 필요가 없으니 묻자고?
그럼 우리가 본 엄마 삶의 진실은?
엄마가 내가 대학 시험을 보기 전 날 왜 나에게 당신의
과거를 밤을 새고 얘기했을까?
아버지는 이미 한국이 인정한 독립군 맞아.
하지만 그 안에서 희생된 엄마는 뭐지?
당신 딸인 우리까지 눈감아 버리자고?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래 애초에 잘못은 엄마였어.
독립투사가 뭐라고 아버지를 헌신적으로 돕는 것도 모자라
매까지 맞아가며 뒷바라지를 했을까?
엄마도 장군이란 허울에 뻑이 갔겠지.
그런 허영이 엄마를 불행하게 한 거야.
그렇게 조신한 엄마가 낫으로 아버지 다리를 내려치고
망치로 아버지 머리를 내리치며 엄마야 말로 마적처럼 사는 삶을 자초한 거야.
엄마도 처음엔 몰랐겠지.
독립장군이라는 그럴듯한 허울에 눈이 먼 거지.
빼앗기고 맞는 것이 너무 지겨워 가진 것을 다 주고 '신앙촌' 이라는
집단으로 들어가려고 했던 엄마.
소아마비로 걸을 수 없어 도망칠 수 없었던 자신의 딸에게 온갖 뭇매를
때리며 '병신느무 에미나이 왜 안 죽었냐고' 엄마 앞에서 배를 채우듯
아버지가 자신의 병신 딸을 때리고 있을 때 저항 한 번 못하고 견뎌야 했던 엄마.
법정에서 아버지와 맞아가면서도 일구어 놓은
재산을 가져가려고 우리 모두를 아버지는
"저넘의 에미나는 화류계라서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른다고 우리들을 부정하고
엄마를 모욕하고 기만한 사실을 묻어두자고?
분하고 억울하고 한 맺힌 엄마의 인생은?
그런 피맺힌 엄마의 인생은?
그냥 묻어두자고?
기생이니까?
부끄러우니까?
미안하지만 안 되겠어.
난 엄마의 딸로 남겠어.
기생인 엄마의 딸로.
정녕 엄마의 딸인 당신들이
엄마가 부끄러우면
당신들의 엄마는 기생이 아닌
다른 사람이고 난 엄마행세를 한
사람이 주워다 기른 자식이라고 해 줘.
자신의 동족을 남의 나라 군인을 끌여들여
죽이고도 황후라는 명칭을 듣는 이 엿같은
나라에서 자랑스런 독립군 자손이라는 소리
듣지 않아도 되니까.
나의 목에 칼이 들어온다해도
난 독립군 장군 박영선의 딸이 아닌
기생 김태순의 딸로 남겠어.
나마저 엄마를 인정하지 않음 엄마가
..........................
엄마에게 너무 미안해.
차라리 엄마의 과거를 듣지 않았음
이렇게 엄마의 얘기를 쓴다고
하지 않았을지도 몰라.
어쩌면 그게 편했을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그렇게 안 돼.
엄마의 영혼이 나를 통해 시키나 봐.
내 마음대로 안 돼.
내가 엄마의 일생을 책으로 쓰는 것에 대해
당신들은 반대라고?
하늘을 보고 침 뱉기라고?
내 얼굴에 침 뱉기라고?
이 보세요.
형제님들.
당신들은 이미 나의 얼굴에 얼마나
많은 침을 뱉었는지 당신들은 벌써 잊은 것 같아.
당신들은 우리집이 베지밀 집안인 걸
숨기자는 거지?
왜?
자기 얼굴에 침뱉기니까.
됐어.
그런 말로 우리 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들도
얼마나 많은 가족들의 행패와
진실들을 집집이 묻고 살았는지 알아?
사회는 그렇게 우리를 주입시켰어.
형제의 허물은 나의 허물이라고.
마음 놓고 개망나니 짓을 할 면책권을 준 거지.
다 알고는 있지만 형제들의 일과 집안 일은 말 하지 말자.
제 얼굴의 침뱉기여서 말하지 않을 줄 알고 당신들은
마음 놓고 나에게 침을 뱉었어.
이건희도 결국 사과하게 되는 현실이라고 입에 침을 튀며
열을 올린 당신들.
그런데 어쩌지.
내 말이 뉴스나 신문에 날 정도로 난 사회적 영향력이 있거나
재벌이 아니거든.
말은 안 해도 우리 가족은 이미 해체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위안이 되는 말을 하나 해 줄게.
부끄러워 하지 마.
그게 요즘 우리만이 아닌 다른 집들도 그러는 대세니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돈 많은 재벌인 이건희네도 그러잖아.
집안 해체, 가족 해체.
좀 위안이 돼?
창피하고 부끄러워도 집안 일을 절대 밝히거나 들어내야
하는 것은 자신의 얼굴의 침 뱉기.
옛날부터
그런 말로 우리사회는 가족에 대해 입단속을
시켰지.
각각의 인격을 무시하고 한 집안으로
굴비 엮듯 엮어버린 그런 운명 공동체적인
집단으로 만드는 것.
그래서 개망나니로 굴어도 가족들이 남이 알까
쉬쉬하는 것 때문에 안심하고 개망나니로 구는 치외법권의 성역을
이젠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운명 공동체고, 피를 나눈 형제라고
그런 말로 날 설득할 생각은 하지 마.
난 언제나 형제에게 부끄러운 존재였고 혼자였어.
형제들과 운명 공동체로 산 적 없어.
난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주 가벼운 몸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내가 사는 이 세상을 떠나고 싶어.
그래서 미안하지만 난 써야겠어.
그래.
그럴 거야.
그래야 해.
그러지 않음 엄마의 일생이
너무 덧없지 않아?
너무 가슴 아프지 않냐구?
독립군 장군이라는 허울 아래
희생하고 묻혀버린 피 맺힌 엄마의 한을
나만이라도 기억해야 하는 건 아닐까.
책을 쓰려면 아버지에 대해 책을 쓰는 것이 어떠냐고
출판사 사장은 말했지.
왜?
출판사 사장도 아버지가 그럴 듯 하니까.
하지만
난 그걸 듯 하지 않은 엄마에 대해 쓸 거야.
아버지는 책을 써도 근사할 거야.
비운의 독립투사 박영선 장군.
썩 괜찮은 제목이잖아?
하지만 엄마는?
엄마는 뭐라고 해야할까?
비운의 권반 기생?
좀 통속적이잖아.
그렇지?
통속적인 것은 특출하지 못하고
특출하지 못한 것은 대중적이고
대중적인 것은 신파고 부끄러운 것이
되기 쉽지.
엄마의 자식들인
우리들 마저 엄마를 부끄러워 하고 있듯이.
내 형제인 당신들이
엄마의 딸과 아들인 당신들이 엄마가 아닌 여자로서
엄마의 피맺힌 생을 단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한 적이 있어?
권반을 나온 엄마가 창피해 죽겠다고 부끄러워만 했잖아.
한번도 진지하게 알아 볼 생각조차 안하고
무조건 기생이라면 술 팔고 몸 파는 줄 아는
무식한 우리들이었잖아.
하긴 사회가 만들어 놓은 신분이니까.
기생이란 신분은 결코 자랑스러워할 신분은 아니지.
엄마가 왜 기생이 됐는지 알고 싶지 않아?
도대체 권반이 뭐고 무얼 하는 곳인지 알고 싶지 않냐고?
왜 부끄러워 해야 하는지 이유라도 확실하게 알고 싶지 않냐고?
우리가 엄마의 딸이라면 한 명이라도 엄마의 생을
알아보는 노력이라도 했어야 하지 않아?
우리 자식들을 출세(?) 시키려고
SM.YG.JYP 오디션에 열을 올리고
떨어지면 울고
붙으면 곧 돈방석에 앉을 것을 생각하며
기뻐하면서도 권반은 모르는 우리들.
쿤타킨테도 자신의 조상이 노예로 끌려와
미국에 비참하게 노예로 살던 흑인의 뿌리를 찾아
아프리카까지 가서 곳곳을 찾는 노력을 했어.
그가 자신의 조상이 노예인 것을 부끄러워 했다면
그는 껍데기만 사는 세상을 살았을 거야.
알고 묻어두는 것과
알기는 커녕 진실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묻고 있는 것은 달라.
적어도 엄마의 딸이라면 엄마야 말로
아버지 때문에 산속의 마적단처럼 살다 간
한 맺힌 세상을 알아보는 노력은 해야하지 않을까.
그것이 세상이 손가락 짓 하는 부끄러운 것이라 할지라도.
나도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이제부터 찾아다니면서 물어가면서
알아가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아.
그래야 쓸 수 있겠지.
그래야 가볍게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런저런 무지와 진실을 가린 거짓들을 무겁게
주렁주렁 지고 그 멀다는 저승길을 편하게 갈 수 없을 것 같아서.
다 버리고 가고 싶어서.
그래서 써야해.

첫댓글 아픈 가족사가 있네요…기운 내시고, 마음이 하고 싶은 데로 하시면 됩니다.
네, 그런데 엄마의 글을 쓰려면 엄마가 돼 미치지 않음 못 씁니다. 일단 올해엔 논문만 대충 써 내고 내년부터 쓸 계획인데 저 역시 두렵습니다. 과연 내가 엄마의 한을 풀어낼 수 있을까, 1년간 엄마가 돼 살면서 엄마의 삶을 미치지 않고 견디어 낼 수 있을까, 두렵습니다. 저의 책을 쓸 때 9K가 빠졌습니다. 그땐 40대로 젊었지요. 지금 이런 건강 상태에서 내가 제대로 엄마의 얘기를 쓸 수 있을지, 두렵습니다. 하지만 써야한다는 의무감이 어깨를 짖누릅니다. 언젠가 엄마를 만나면 " 엄마, 나 엄마의 한을 썼으니 이제 너무 슬퍼하지 마." 라는 얘기를 꼭 하고 싶습니다. 엄마가 저에게 힘을 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지나온 아픔이....가늠하기 힘들 만큼 심합니다.....힘내셔서 글로 풀어내고 홀가분하게 치유하길 바랍니다...계속 힘내세요-
그렇게 되기를 저도 바랍니다. 어쩌면 저의 고질병인 우울증이 나을 지도 모르지요. 그렇지 않는다 하더라도 엄마에게 미안하거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지 못해 답답하지는 않겠지요.
제가 감히 그래도 되는지 모르지만 울컥하는 분노가 일었습니다..
선배님.. 힘내셔서 글 쓰시고 자유로워 지시길 바랍니다
그럴게요, 다현씨, 고마워요. 이렇게 격려를 해 줘서 큰 힘이 되요. 아파트 밖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동생에게서 일 년 전에 전화가 왔더군요. 미안하다고, 아파트 밖에서 고래고래 소리만 질렀다면 용서했을 겁니다. 하지만 병 들어 누워 계신 엄마 앞에서 제 머리채를 잡고 이년 아버지가 누군지 대라고 엄마에게 포악스럽게 달려들지만 않았다면 용서했을 겁니다. 그래서 그 동생은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내 딸 목에 칼을 들이댄 조카를낳은 동생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저의 아이들은 말합니다. 엄마의 형제니까 엄마가 살아 있을 때까진 이모들을 보는 것 반대하진 않겠다.하지만 엄마가 돌아가시면 우리에게 이모란 없다고.
그러면 안 된다고 아이들에게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도 그때 칼에 찔려 팔뚝에 상처를 가진 딸에게 전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 다행히 우두자국 같이 상처가 아물어 칼자국 같지는 않습니다. 딸이 체육과를 나온 덩치가 큰 사위와 결혼한 것에 대해 전 그일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지켜 줄 듬직한 사람이 필요했겠지요. 그때 아이들 아빠가 병들어 누워있어 아무 힘이 못 돼 줬거든요. 이 얘기는 죽을 때까지 저를 가슴 뻐근하게 만들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가슴이 져리네요. 그 후 저의 가슴에 굳은 살이 베겼다고 생각했거든요.
형제들은 제가 거지가 될 줄 알았나봐요. 저도 그럴 줄 알았거든요. 일본에 있는 아이들 아빠의 아들이 생활비만 꼬박꼬박 보냈다면 아이들과 제가 호적에 올라 부인이 되어 상속을 받는 일은 없었을 거예요.너무 큰 욕심이 화를 부른 거지요. 그때 알았어요. 너무 욕심을 내더니 결국은 더 큰 걸 빼앗기는구나. 아이들 교육과 아이들 아빠의 투병에 서울 집도 팔고 제가 살고 있는 땅도 이자를 못 내 은행으로 넘어갈 지경이었지요. 그러면 전 꼼짝없이 거지가 되는 거지요. 다행스럽게도 아들의 욕심이 저를 거지가 안 되게 만든 거지요. 그러고 보면 세상은 참 재미있습니다. 화가 복이 되고 복이 화가 되는 세상이.
그런 생각 들어요. 어느 집이건 '봉'이 하나씩 있는것 같아요. 그 봉 하나에 이사람 저사람 뜯어가죠. 봉 된 사람은 나중에 돌이켜보고, "아, 내가 봉이었구나. 내가 이 썩을 집안의 봉이었구나.."하고 느끼죠.
그래서 저는 형제들한테도, 남편한테도, 남편 형제들한테도 말해요. 각자가 잘 사는게 서로를 도와주는거고, 서로 행복하게 사는 길이다라구요. 부하게도 가난하게도 말고, 그냥 자기 밥벌이 잘하면서 제먹을것, 자기 자식 먹을것 스스로 벌정도는 하면서 살자고, 그게 가장 형제를 우애있게 만드는 길이라구요. 다행이 제형제나 남편의 형제나 자기의 밥벌이를 잘해서...현재는 우애있고 웃으며 살고있지요.
명아선배의 글을 보면서 그냥 이런저런 생각들이 드네요.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 우리가 어찌할수 없는 부모라는 존재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이런저런 고민들, 어찌할수 없음을....뭐 이런거요.
그래도 잘은 모르지만, 명아선배님이 씩씩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드네요. 그 씩씩함이 앞으로 선배가 살아갈 인생에 가장 큰 동력이 되어줄거라 믿어요. 엄마 얘기는 아주 쬐금 슬프네요. 흠....화이팅하시길, 기원해요.
저는 돈이 있고 풍족해야 우애가 있는 집안이 될 줄 알았어요. 적어도 돈 때문에 삭막해지는 일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게 아니더군요. 지금에야 알았습니다. 물질이 우애를 만드는 것이 아니란 걸.사람들은 흔히 말하지요. 고기를 잡는 방법을 배워줘야지 고기를 잡아주면 안 된다고. 하지만 고기를 잡으라고 그물을 사줬는데 그물 살 돈으로 고기를 사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그런데 신기한 것은 제가 도와주지 않으면 꼭 죽을줄 알았던 형제들이 제가 도와주지 못하게 되자 다들 각기 죽지 않고 살아가더라구요. 그때 알았어요. 사람은 닥치면 뭐든 하면서 살게 된다는 사실을. 그물도 사주지 않았어야 했다는 사실을.
그래도 지금은 마음이 편해요. 저 혼자 잘 먹고 잘 살려고 형제들을 나몰라라 하고 살진 않았으니까요. 최선을 다했고 할 만큼 했고 언니들의 말처럼 그보다 더 충분히 했으니 이젠 됐다고요.저 혼자 잘 살려고 했다면 형제들 말대로 빌딩 하나는 샀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전 그 빌딩에 갇힌 돈의 노예로 살고 있을 겁니다. 후회는 없습니다.아이들도 다 잘 크고 제 길들을 찾아가고 있고.이제는 저의 엄마의 일생을 발로 찾아 다니며 글을 써야 하는 일만 남았지요. 지금도 엄마의 뼈는 유언대로 이곳 산천에 뿌리고 작은 비명한 하나 세웠습니다. 아이들 아빠의 뼈도 이 산에 뿌리고 비명도 엄마와 함께 있지요. 힘 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는 60이 넘어 7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자 객기도 꺽이고 도도함도 사라지고 목소리에 힘이 빠져 자신의 생을 담담하게 살고 있는 언니들은 엄마를 만나러 올 때마다 자신의 비명은 여기에 세워달라고 벌써 자리를 잡아놨어요. ^^ 제가 살고 있는 이곳은 엄마가 사라고 해서 82년에 천 만원에 오천 평을 샀습니다. 일본과 재판이 길어지면서 먹고 살려고 천 오백평은 팔았지요. 이곳을 한 번도 저만의 땅이라고 생각한 적 없습니다. 과부언니들과 형제들이 묻힐 곳이지요. 나의 자식들은....이해해 줄 겁니다. 용기 주셔서 감사합니다!!!
파란만장합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굳건히 살아나온 한 마리 새 같습니다. 힘내십시오. 그리고 좋은 글 쓰시길 빕니다. 지난 번 모임 때 처음 뵙고 그냥 글 잘 쓰시는 멋쟁이인줄 알았는데 그런 내공을 간직하신 분인줄 몰랐습니다. 박선생님의 글을 읽고 저또한 용기를 가집니다. 부디 건승하십시오!
용기 주셔서 감사합니다!! 산전 수전 지구전 공중전 우주전까지 그러니까 육해군과 공군 지구군까지 격은 사람이지요. 사람들은 저의 얼굴에 그런 파란만장한 굴곡이 보이지 않아 참 이상하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그것도 머리가 좋아야 기억하고 얼굴에 새기지 어쩔 땐 제 이름도 잊어버리는 IQ100이 못 되는 제가 무엇을 기억하고 얼굴에 새기겠냐고.하루 밤만 자고 나면 다 잊어버리는 머리인데ㅠ.ㅠ 며칠 전엔 진료를 받고 돈을 내고 처방전을 타 약을 가지고 와야 하는데 진료만 보고 그냥 나왔습니다. 집에 오니 약이 없더군요.곧 이름표를 걸고 다녀야 할 것 같습니다. 부디 양변기에 꽃꽂이까지는 하지 않기를ㅠ.ㅠ
'고기를 잡으라고 그물을 사줬는데 그물 살 돈으로 고기를 사는 사람', '산전 수전 지구전 공중전 우주전까지','양변기에 꽃꽂이' 같은 재미있는 표현들을 보면서 약간의 위안을 삼아봅니다. 인생이라는 파도를 가르는 배의 키가 아직 든든한 상태라는 느낌에... 선배님 사실 댓글 달기 힘든 내용이었습니다. 누구나 공감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당사자에게 섯불리 뭐라 말을 건낼수 없는 그런 마음! 아시죠? 몇 번을 망설이다가 필이 와서 몇자 적어봅니다. 주제 넘은 이야기인 것 같지만 누가 인생을 알겠습니까? 성철 스님이? 법정 스님이? 아니면 고 김수환 추기경님이? '오직 모를 뿐'입니다. 그렇기에 선배님의 모습에 울림이 있겠지요.
어려서 부터 전 명쾌한 것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었습니다. 뭔가 분석하고, 탐구하고, 원리를 알아야하고, 궁금한 것은 그 무엇이든지 설명이 되어야 만족했지요.(수학문제 풀이는 아니었던 것 같구요^^) 역사를 전공한 이유도 지나간 인간들의 행적을 쫒다 보면 언젠가 인생, 도 같은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한 분명하진 않더라도 만족할만한 답을 얻을거라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엄청난 서적을 뒤지고, 수 많은 사람과의 만남을 이어가는 지금까지도 명쾌하게 다가오는 그 무엇은 없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하겠지만 지금은, 적어도 지금은 제가 공부를 시작했을때 보다 더 혼란스런 상황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분들은 저와 달랐을까요?
한진님, 댓글 감사합니다. 아버지가 산 시절이 혼란했던 것은 인정합니다. 아버지가 독립운동한 것까지 비하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정말 정말 제가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목숨까지 걸고 나라의 독립을 위한 정의로운 마음을 가진 아버지가 왜 힘 없는 엄마를 그렇게 때리고 착취해야 했는지, 왜 그렇게 살아야했는지 저도 이해가 가지 않은 부분입니다. 저도 혼란스럽습니다. 세상에서 자신의 부모를 나쁘게 말하고 싶은 자식은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일에 진실을 알아야 한다면 고통스럽고 부끄러워도 솔직하게 다가서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 그래서 용기를 냈습니다. 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힘이 없어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것에 분개하여 목숨까지 바칠 각오로 독립운동을 한 분이 어째서 대항할 수 없는 힘 없는 여자를 개 패듯 패고 착취 했을까? 저도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습니다. 아니, 존경하고 싶어요. 그런데 그럴 수가 없는 제가 더 답답합니다. 언니들 말대로 자신의 뜻을 펴지 못해 타락해서 그런 걸까요.우리 형제들이 모이면 아버지의 독립투사 정신을 기리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맞은 얘기, 엄마를 때린 얘기, 도망 다닌 얘기, 집 판 돈을 가지고 달아난 얘기, 엄마가 몇 번이나 죽으려고 목을 맨 얘기들을 합니다. 왜 그런 얘기만 해야 하는지 말하는 저희도 씁쓸합니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그런 일들 뿐이니
그래서 쓰려고 합니다. 엄마의 일을 쓰다보면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얘기도 쓰게 되겠지요. 그러면서 아버지를 용서하고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습니다. 물론 어려운 일이 되겠지요. 정의로운 마음을 가진 독립운동가가 힘 없는 자신의 아이들과 부인은 개 패듯 팬다. 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던 어떤 가느다란 실마리라도 찾고 싶습니다..그래서 저도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얘기를 떳떳하게 하고 싶습니다. 형제들이 만나 아버지 얘기를 하며 맞았다는 얘기보다 독립투사로서 정의로운 일들을 한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역사를 전공하셨다니 정말 반갑습니다. 앞으로 제가 모르는 것을 많이 알려주세요. 좀 귀찮으실 겁니다. ^
나도 부끄러운 일 많은 집안에서 자랐소. 명아 누나 짱이야~ 지난 번 책도 너무너무 술술 잘 읽혀서 좋았어요. 난 무조건 명아 누나편!! (그나저나 위에 이모씨를 게이 아니냐고 도발 하셨던데... 내가 알기론 호색한이요. 걱정 마셔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