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메일
  • |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더불어숲 사랑방
 
 
 
카페 게시글
숲속의 소리 나의 엄마는 권반을 나온 엘리트 기생이었다
박명아 추천 0 조회 282 12.05.21 22:48 댓글 21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12.05.22 14:11

    첫댓글 아픈 가족사가 있네요…기운 내시고, 마음이 하고 싶은 데로 하시면 됩니다.

  • 작성자 12.05.22 17:30

    네, 그런데 엄마의 글을 쓰려면 엄마가 돼 미치지 않음 못 씁니다. 일단 올해엔 논문만 대충 써 내고 내년부터 쓸 계획인데 저 역시 두렵습니다. 과연 내가 엄마의 한을 풀어낼 수 있을까, 1년간 엄마가 돼 살면서 엄마의 삶을 미치지 않고 견디어 낼 수 있을까, 두렵습니다. 저의 책을 쓸 때 9K가 빠졌습니다. 그땐 40대로 젊었지요. 지금 이런 건강 상태에서 내가 제대로 엄마의 얘기를 쓸 수 있을지, 두렵습니다. 하지만 써야한다는 의무감이 어깨를 짖누릅니다. 언젠가 엄마를 만나면 " 엄마, 나 엄마의 한을 썼으니 이제 너무 슬퍼하지 마." 라는 얘기를 꼭 하고 싶습니다. 엄마가 저에게 힘을 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 12.05.23 00:29

    지나온 아픔이....가늠하기 힘들 만큼 심합니다.....힘내셔서 글로 풀어내고 홀가분하게 치유하길 바랍니다...계속 힘내세요-

  • 작성자 12.05.23 12:49

    그렇게 되기를 저도 바랍니다. 어쩌면 저의 고질병인 우울증이 나을 지도 모르지요. 그렇지 않는다 하더라도 엄마에게 미안하거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지 못해 답답하지는 않겠지요.

  • 12.05.23 07:30

    제가 감히 그래도 되는지 모르지만 울컥하는 분노가 일었습니다..
    선배님.. 힘내셔서 글 쓰시고 자유로워 지시길 바랍니다

  • 작성자 12.05.23 13:01

    그럴게요, 다현씨, 고마워요. 이렇게 격려를 해 줘서 큰 힘이 되요. 아파트 밖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동생에게서 일 년 전에 전화가 왔더군요. 미안하다고, 아파트 밖에서 고래고래 소리만 질렀다면 용서했을 겁니다. 하지만 병 들어 누워 계신 엄마 앞에서 제 머리채를 잡고 이년 아버지가 누군지 대라고 엄마에게 포악스럽게 달려들지만 않았다면 용서했을 겁니다. 그래서 그 동생은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내 딸 목에 칼을 들이댄 조카를낳은 동생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저의 아이들은 말합니다. 엄마의 형제니까 엄마가 살아 있을 때까진 이모들을 보는 것 반대하진 않겠다.하지만 엄마가 돌아가시면 우리에게 이모란 없다고.

  • 작성자 12.05.23 13:30

    그러면 안 된다고 아이들에게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도 그때 칼에 찔려 팔뚝에 상처를 가진 딸에게 전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 다행히 우두자국 같이 상처가 아물어 칼자국 같지는 않습니다. 딸이 체육과를 나온 덩치가 큰 사위와 결혼한 것에 대해 전 그일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지켜 줄 듬직한 사람이 필요했겠지요. 그때 아이들 아빠가 병들어 누워있어 아무 힘이 못 돼 줬거든요. 이 얘기는 죽을 때까지 저를 가슴 뻐근하게 만들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가슴이 져리네요. 그 후 저의 가슴에 굳은 살이 베겼다고 생각했거든요.

  • 작성자 12.05.23 13:32

    형제들은 제가 거지가 될 줄 알았나봐요. 저도 그럴 줄 알았거든요. 일본에 있는 아이들 아빠의 아들이 생활비만 꼬박꼬박 보냈다면 아이들과 제가 호적에 올라 부인이 되어 상속을 받는 일은 없었을 거예요.너무 큰 욕심이 화를 부른 거지요. 그때 알았어요. 너무 욕심을 내더니 결국은 더 큰 걸 빼앗기는구나. 아이들 교육과 아이들 아빠의 투병에 서울 집도 팔고 제가 살고 있는 땅도 이자를 못 내 은행으로 넘어갈 지경이었지요. 그러면 전 꼼짝없이 거지가 되는 거지요. 다행스럽게도 아들의 욕심이 저를 거지가 안 되게 만든 거지요. 그러고 보면 세상은 참 재미있습니다. 화가 복이 되고 복이 화가 되는 세상이.

  • 12.05.23 23:37

    그런 생각 들어요. 어느 집이건 '봉'이 하나씩 있는것 같아요. 그 봉 하나에 이사람 저사람 뜯어가죠. 봉 된 사람은 나중에 돌이켜보고, "아, 내가 봉이었구나. 내가 이 썩을 집안의 봉이었구나.."하고 느끼죠.
    그래서 저는 형제들한테도, 남편한테도, 남편 형제들한테도 말해요. 각자가 잘 사는게 서로를 도와주는거고, 서로 행복하게 사는 길이다라구요. 부하게도 가난하게도 말고, 그냥 자기 밥벌이 잘하면서 제먹을것, 자기 자식 먹을것 스스로 벌정도는 하면서 살자고, 그게 가장 형제를 우애있게 만드는 길이라구요. 다행이 제형제나 남편의 형제나 자기의 밥벌이를 잘해서...현재는 우애있고 웃으며 살고있지요.

  • 12.05.23 23:41

    명아선배의 글을 보면서 그냥 이런저런 생각들이 드네요.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 우리가 어찌할수 없는 부모라는 존재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이런저런 고민들, 어찌할수 없음을....뭐 이런거요.
    그래도 잘은 모르지만, 명아선배님이 씩씩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드네요. 그 씩씩함이 앞으로 선배가 살아갈 인생에 가장 큰 동력이 되어줄거라 믿어요. 엄마 얘기는 아주 쬐금 슬프네요. 흠....화이팅하시길, 기원해요.

  • 작성자 12.05.24 09:07

    저는 돈이 있고 풍족해야 우애가 있는 집안이 될 줄 알았어요. 적어도 돈 때문에 삭막해지는 일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게 아니더군요. 지금에야 알았습니다. 물질이 우애를 만드는 것이 아니란 걸.사람들은 흔히 말하지요. 고기를 잡는 방법을 배워줘야지 고기를 잡아주면 안 된다고. 하지만 고기를 잡으라고 그물을 사줬는데 그물 살 돈으로 고기를 사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그런데 신기한 것은 제가 도와주지 않으면 꼭 죽을줄 알았던 형제들이 제가 도와주지 못하게 되자 다들 각기 죽지 않고 살아가더라구요. 그때 알았어요. 사람은 닥치면 뭐든 하면서 살게 된다는 사실을. 그물도 사주지 않았어야 했다는 사실을.

  • 작성자 12.05.24 09:19

    그래도 지금은 마음이 편해요. 저 혼자 잘 먹고 잘 살려고 형제들을 나몰라라 하고 살진 않았으니까요. 최선을 다했고 할 만큼 했고 언니들의 말처럼 그보다 더 충분히 했으니 이젠 됐다고요.저 혼자 잘 살려고 했다면 형제들 말대로 빌딩 하나는 샀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전 그 빌딩에 갇힌 돈의 노예로 살고 있을 겁니다. 후회는 없습니다.아이들도 다 잘 크고 제 길들을 찾아가고 있고.이제는 저의 엄마의 일생을 발로 찾아 다니며 글을 써야 하는 일만 남았지요. 지금도 엄마의 뼈는 유언대로 이곳 산천에 뿌리고 작은 비명한 하나 세웠습니다. 아이들 아빠의 뼈도 이 산에 뿌리고 비명도 엄마와 함께 있지요. 힘 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 12.05.24 21:18


    이제는 60이 넘어 7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자 객기도 꺽이고 도도함도 사라지고 목소리에 힘이 빠져 자신의 생을 담담하게 살고 있는 언니들은 엄마를 만나러 올 때마다 자신의 비명은 여기에 세워달라고 벌써 자리를 잡아놨어요. ^^ 제가 살고 있는 이곳은 엄마가 사라고 해서 82년에 천 만원에 오천 평을 샀습니다. 일본과 재판이 길어지면서 먹고 살려고 천 오백평은 팔았지요. 이곳을 한 번도 저만의 땅이라고 생각한 적 없습니다. 과부언니들과 형제들이 묻힐 곳이지요. 나의 자식들은....이해해 줄 겁니다. 용기 주셔서 감사합니다!!!

  • 12.05.24 22:20

    파란만장합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굳건히 살아나온 한 마리 새 같습니다. 힘내십시오. 그리고 좋은 글 쓰시길 빕니다. 지난 번 모임 때 처음 뵙고 그냥 글 잘 쓰시는 멋쟁이인줄 알았는데 그런 내공을 간직하신 분인줄 몰랐습니다. 박선생님의 글을 읽고 저또한 용기를 가집니다. 부디 건승하십시오!

  • 작성자 12.05.24 21:29

    용기 주셔서 감사합니다!! 산전 수전 지구전 공중전 우주전까지 그러니까 육해군과 공군 지구군까지 격은 사람이지요. 사람들은 저의 얼굴에 그런 파란만장한 굴곡이 보이지 않아 참 이상하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그것도 머리가 좋아야 기억하고 얼굴에 새기지 어쩔 땐 제 이름도 잊어버리는 IQ100이 못 되는 제가 무엇을 기억하고 얼굴에 새기겠냐고.하루 밤만 자고 나면 다 잊어버리는 머리인데ㅠ.ㅠ 며칠 전엔 진료를 받고 돈을 내고 처방전을 타 약을 가지고 와야 하는데 진료만 보고 그냥 나왔습니다. 집에 오니 약이 없더군요.곧 이름표를 걸고 다녀야 할 것 같습니다. 부디 양변기에 꽃꽂이까지는 하지 않기를ㅠ.ㅠ

  • 12.05.27 12:01

    '고기를 잡으라고 그물을 사줬는데 그물 살 돈으로 고기를 사는 사람', '산전 수전 지구전 공중전 우주전까지','양변기에 꽃꽂이' 같은 재미있는 표현들을 보면서 약간의 위안을 삼아봅니다. 인생이라는 파도를 가르는 배의 키가 아직 든든한 상태라는 느낌에... 선배님 사실 댓글 달기 힘든 내용이었습니다. 누구나 공감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당사자에게 섯불리 뭐라 말을 건낼수 없는 그런 마음! 아시죠? 몇 번을 망설이다가 필이 와서 몇자 적어봅니다. 주제 넘은 이야기인 것 같지만 누가 인생을 알겠습니까? 성철 스님이? 법정 스님이? 아니면 고 김수환 추기경님이? '오직 모를 뿐'입니다. 그렇기에 선배님의 모습에 울림이 있겠지요.

  • 12.05.27 12:14

    어려서 부터 전 명쾌한 것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었습니다. 뭔가 분석하고, 탐구하고, 원리를 알아야하고, 궁금한 것은 그 무엇이든지 설명이 되어야 만족했지요.(수학문제 풀이는 아니었던 것 같구요^^) 역사를 전공한 이유도 지나간 인간들의 행적을 쫒다 보면 언젠가 인생, 도 같은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한 분명하진 않더라도 만족할만한 답을 얻을거라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엄청난 서적을 뒤지고, 수 많은 사람과의 만남을 이어가는 지금까지도 명쾌하게 다가오는 그 무엇은 없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하겠지만 지금은, 적어도 지금은 제가 공부를 시작했을때 보다 더 혼란스런 상황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분들은 저와 달랐을까요?

  • 작성자 12.05.28 13:08

    한진님, 댓글 감사합니다. 아버지가 산 시절이 혼란했던 것은 인정합니다. 아버지가 독립운동한 것까지 비하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정말 정말 제가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목숨까지 걸고 나라의 독립을 위한 정의로운 마음을 가진 아버지가 왜 힘 없는 엄마를 그렇게 때리고 착취해야 했는지, 왜 그렇게 살아야했는지 저도 이해가 가지 않은 부분입니다. 저도 혼란스럽습니다. 세상에서 자신의 부모를 나쁘게 말하고 싶은 자식은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일에 진실을 알아야 한다면 고통스럽고 부끄러워도 솔직하게 다가서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 그래서 용기를 냈습니다. 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 작성자 12.05.28 13:07

    힘이 없어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것에 분개하여 목숨까지 바칠 각오로 독립운동을 한 분이 어째서 대항할 수 없는 힘 없는 여자를 개 패듯 패고 착취 했을까? 저도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습니다. 아니, 존경하고 싶어요. 그런데 그럴 수가 없는 제가 더 답답합니다. 언니들 말대로 자신의 뜻을 펴지 못해 타락해서 그런 걸까요.우리 형제들이 모이면 아버지의 독립투사 정신을 기리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맞은 얘기, 엄마를 때린 얘기, 도망 다닌 얘기, 집 판 돈을 가지고 달아난 얘기, 엄마가 몇 번이나 죽으려고 목을 맨 얘기들을 합니다. 왜 그런 얘기만 해야 하는지 말하는 저희도 씁쓸합니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그런 일들 뿐이니

  • 작성자 12.05.28 12:47

    그래서 쓰려고 합니다. 엄마의 일을 쓰다보면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얘기도 쓰게 되겠지요. 그러면서 아버지를 용서하고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습니다. 물론 어려운 일이 되겠지요. 정의로운 마음을 가진 독립운동가가 힘 없는 자신의 아이들과 부인은 개 패듯 팬다. 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던 어떤 가느다란 실마리라도 찾고 싶습니다..그래서 저도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얘기를 떳떳하게 하고 싶습니다. 형제들이 만나 아버지 얘기를 하며 맞았다는 얘기보다 독립투사로서 정의로운 일들을 한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역사를 전공하셨다니 정말 반갑습니다. 앞으로 제가 모르는 것을 많이 알려주세요. 좀 귀찮으실 겁니다. ^

  • 12.06.12 18:10

    나도 부끄러운 일 많은 집안에서 자랐소. 명아 누나 짱이야~ 지난 번 책도 너무너무 술술 잘 읽혀서 좋았어요. 난 무조건 명아 누나편!! (그나저나 위에 이모씨를 게이 아니냐고 도발 하셨던데... 내가 알기론 호색한이요. 걱정 마셔요. ㅋㅋㅋ)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