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다 다윗처럼, 구운 소금처럼... / 이준행 목사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억울한 일을 겪은 경험들이 여러 번 있었을 것입니다. 잘못된 편견과 오해로 억울함을 겪게 하는 것은 생사람을 잡아 죽이는 무서운 죄입니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억울한 일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시기를 당하여 아무런 죄도 없이 종으로 팔려갔고, 성추행의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다니엘은 다른 신하들의 시기와 질투로 사자굴속에 던져지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그 마음에 담긴 억울함과 분노, 상처를 어떻게 달랬을까요?
억울한 일을 많이 겪은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교회 지체들이 ‘하나님의 마음에 딱 맞는 다윗,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룬 다윗’을 줄여서 ‘딱다 다윗’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딱다 다윗’도 사울왕의 시기와 질투로 인해 반역의 누명을 쓰고 광야로 도망 다녔습니다. 왕이 된 후에도 아들 압살롬이 반역으로 도망가야만 했습니다. 권력이 무엇이기에 장인에게, 아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공격을 받았습니다.
사단은 조금만 유혹해도 쉽게 넘어가는 사람, 억울한 일을 조금만 겪어도 상처 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분노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억울한 일을 당해도 요동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사단은 두려워하고 긴장하며 더욱 세게 위협합니다. “대충대충 하자. 너만 그렇게 잘났냐? 너 한 번 당해볼래? 하지 않겠다고 집어 던지라” 이러한 태클을 걸어옵니다. 하지만 ‘딱다 다윗’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는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는 기가 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크게 억울한 일을 겪으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 당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노하지 않고, 오히려 피를 흘려서 그 생명 값으로 잃어버린 영혼을 살리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죄로 인해 무가치하게 전락한 죄인들을 예수님의 생명 값으로 올려놓는 기회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십자가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제자들은 너무 억울해서 분노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고, 말할 수 없는 깊은 상처로 마음이 아팠지만 성령께서 주님의 마음을 알게 해 주셨을 때 변했습니다. 매 맞고 굶주려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때문에 참았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그의 사랑하는 동역자들에게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했습니다.
요즈음은 소금도 열 번 구운 소금을 더 좋아합니다. 중금속이나 더러움에 오염된 소금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소금이라고 말하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많이 세상에 오염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와 그리스도인을 오염되지 않은 세상의 소금으로 단련하시길 원하십니다. 단련의 도구가 십자가입니다. 억울한 일 당해도 미워하지 않고, 분노하지 않으며, 십자가로 승화시키는 예수님 닮은 소금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를 단련하십니다. 고난이 올 때, 억울한 일들이 밀려올 때 십자가 붙들고 있는 세상의 소금으로 단련되길 원합니다. 그래서 나를 흔드는 사람들이 많을지라도, 불평과 미움, 분노의 언어로 오염되지 않고, 사랑과 존중의 언어로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딱다 다윗처럼 단련되고 단련되어 오염되지 않은 소금으로 단련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