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롯데는 선후배 사이 기강이 가장 확실하면서도 경상도 사나이 특유의 '끈끈한 정'이 흐르는 팀이었습니다. 성적이 저조하다가도 '한번 하자'하는 오기가 솟아나면 일을 내는 그런 구단이었죠. 롯데를 책임지게 된 이상 옛날의 롯데를 부활시켜보고 싶습니다.'
8월 6일 백인천 전 감독에 이어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지휘봉을 잡게 된 김용철(46) 감독 대행이 펼쳐보이는 포부다. 그는 롯데 구단으로서는 강병철 도위창 우용득씨에 이어 4번째 감독 대행이 됐다. 정식 감독은 아니지만 롯데 선수 출신으로 롯데 지휘봉을 잡은 것은 김용희씨에 이어 두번째.
김 감독대행은 지난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자 김용희(48·전 롯데 감독) 박용성(45·㈜오영플라스틱 상무)씨 등과 함께 롯데의 클린업 트리오로 부산 야구팬들의 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특히 더부룩한 구레나룻에다 독특한 카리스마로 팬들의 인기를 모았다.
그에게는 부산 사나이의 배짱도 있었다. 프로야구 선수들의 권익을 지키겠다며 선수회를 만들기 위해 앞장섰다 89년 최동원(45·KBS야구해설위원)씨 등과 함께 팀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수석 코치로 감독을 보좌하던 그에게 감독 대행이라는 자리는 이만저만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특히 백인천 전 감독이 그를 발탁,롯데 코치로 데려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제 감독대행으로 겨우 1주일을 보냈지만 벌써 머리가 아프다.
선수 시절에는 제 자리를 잘 지키면서 방망이만 잘 치면 됐지만 이제 팀을 이끌고 가는 입장에서 선수단의 모든 면을 하나하나 챙겨야 하기 때문에 신경쓸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밤잠이 안 올 정도입니다. 과거에 선수로 뛰었던 팀을 이끌게 됐다는 기쁨보다는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감이 더 큽니다. 성적을 내야 하지만 현실은 그에 못 미치는 게 더욱 힘듭니다.'
김 감독대행이 가장 신경쓰는 부분은 팀 분위기. 지금 같아서는 아무리 해도 이기기 힘들고 내년 시즌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자꾸 지니까 선수들의 의욕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해야 한다는 의지가 없는 것 같아요.'
그는 감독대행을 맡은 뒤 선수들에게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질 것을 요구한다고 한다. 실수할 때도 있지만 그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롯데 선수들은 플레이를 할 때 더그아웃의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는 게 그의 안타까운 고백. 앞으로 선수들이 살아 남으려면 상황 판단을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하지만 성적을 끌어올리려고 남은 시즌 동안 무리하게 선수들을 기용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생각. 투수와 타자 모두 기존 멤버에서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장은 물론 신인 선수들도 지난 시즌부터 이미 실력을 검증받았습니다. 더 이상 선수들의 능력 테스트는 필요없다고 봅니다.'
노장 선수들에게 우선권을 부여하되 기대에 못 미칠 경우 신인급 선수들에게 카드가 넘어가게 될 것이라는 게 김 감독대행의 말이다. '이름값에 얽매여 야구하지는 않겠습니다. 공평하게 팀을 꾸릴 겁니다.'
그가 보는 롯데의 문제점은 이미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선 쓸만한 선수가 절대적으로 모자라고 여기에 강타자가 없다. 투수력에서는 마무리에 구멍이 나 있고 부상 선수가 많다는 것. 젊은 선수들 중에서도 1군에서 활용할 만한 자원이 눈에 띄지 않는다. 전력 보강이 급선무인 셈.
'당장 급하다고 용병에만 의존해서 팀을 운영해서는 안됩니다. 과거 롯데가 펠릭스 호세에만 기대다 그가 팀을 떠나자 바로 무너진 것은 시시하는 바가 큽니다. 국내 선수들의 전력이 탄탄한 가운데 용병은 힘을 보태주는 수준에 머물러야 합니다.'
성급하지만 내년 시즌 전망을 물어봤다. 대뜸 투수력 자랑부터 늘어놓는다. 손민한 박석진이 부상에서 회복했고 이용훈 강민영 등도 내년부터는 제 기량을 발휘할 것이라는 게 김 감독대행의 설명. 투수력에서만큼은 과거 투수 왕국의 면모를 되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올해는 투타의 균형이 너무 안 맞았습니다. 투수들이 잘 던지면 타자들이 못 치고,타자들이 불방망이를 휘두르면 투수들이 무너졌습니다. '
야구는 투수에 좌우된다는 게 김 감독대행의 생각이다. 투수력이 안정되면 타력은 잘 칠때도 있고 못 칠때도 있다. 따라서 내년 롯데 투수력이 안정되면 올해보다 나은 성적을 충분히 거둘 수 있다는 논리다.
롯데 팬들에 대해서도 그는 할 말이 많다. 성적이 나쁘니까 팬들이 야구장을 외면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지만 정말 롯데를 사랑한다면 부진한 가운데서도 꾸준히 선수들을 성원해줘야 한다는 것.
'지더라도 정말 재미있었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경기를 할 겁니다. 현재 시즌 최하위에 머물러 있지만 남은 경기에서 뒤집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끝까지 물고 늘어질 작정입니다. 팬들이 선수들을 끝까지 격려해준다면 3년 연속 최하위의 불명예를 벗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