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의 산
정선-삼척 풍악산(1,208.6m)
지형도에 이름 조차 없는 오지 중 오지의 산
바람의 산 풍악산(1,208.6m)은 국토지리정보원 발행 지형도에조차 이름도 없고 산악인들에게도 전혀 알려지지 않은 오지 중 오지의 산이다. 태백 한마음산악회원 임대수(57), 석용환(54), 박복재(51), 권택경(46), 박현숙(49), 권태로(49), 서정옥씨(49)는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 역둔리 장터거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좌표 N 38°07′10.4″ E 128°52′30.2″, 해발 618m).
진눈깨비가 추절거리는데 희끗희끗 눈을 뒤집어쓴 우중충한 산들이 사방으로 둘러싼다. 장터거리를 빠져 큰 길로 나오니 역둔보건진료소 앞 '둔전리←역둔리→대전리' 버스정류소 삼거리다. 서쪽으로 412번 지방도를 따라 잠시 걸으니 하장초교 역둔분교장 교문에 이르렀다. 여기서 412번 지방도와 이별하고 북으로 크게 입을 벌린 역둔골로 든다. 역둔골 입구에는 마을표석, 마을회관, 금옥각, 성황당 건물들이 반긴다(좌표 N 37°41′1″ E 128°52′49.9″, 해발 643m).
금옥각 현판이 걸린 건물 안을 기웃거리니 특이하게 눈에 띄는 양각 주조된 2기의 철비가 안치되어 있다. 그중 하나는 1835년에서 1839년 사이 삼척부사로 재임한 이규헌이 1837년 극심한 기근이 들자 이곳을 방문하여 역둔창을 열어 백성을 구제하는 등의 선정을 베풀어 1838년 주민들이 그에 대한 감사표시로 세운 '부사이규헌영세불망비' 이고, 또 하나의 철비는 그 이듬해 부사의 영세불망비 건립에 참여한 주민들을 위한 금옥첨원비이다. 그리고 비각 우측에는 금옥각이전 중수비가 있다.
성황당에 묵례하고 황소가 우는 초입의 농가를 지나니 진눈깨비가 멎는다. 수렛길 개울 건너 농가 한 채는 다복솔에 싸여 있고, 껑충한 소나무 홀로 비스듬히 멋을 부리고 섰다. 이쯤에서 역둔골 수렛길을 버리고 왼편 개울에 걸친 시멘트다리를 건너 구불구불한 농로를 따라 배나무골로 올라선다(좌표 N 36°17′57.9″ E 128°52′40.7″, 해발 673m).
경운기도 버려 있는 밭둑길로 15분쯤 고도를 올리자 일본이깔나무 아래 꽃대를 쳐든 처녀치마 식물들이 서식하는 농로 삼거리다(좌표, N 37°17′48.5″ E 128°52′28.9″, 해발 764m).
오른쪽 산릉을 끼고 도는 농로를 따라 방향을 튼다. 역둔골에 띄엄띄엄 자리한 농가들은 발아래 놓여 있고, 코앞의 풍악산 정수리는 구름을 안고 솟았다. 갑자기 후드득 콩알만한 우박이 떨어지더니 이내 멈춘다. 세상이 허옇다. 산모퉁이를 돌아 외택골(뫼터골)이다. 골짜기 마지막 농가의 개 짖는 소리에 집주인은 툇마루로 나와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다.
역둔골에서 배나무골을 거치지 않고 이곳으로 곧바로 산행이 더 수월하겠으나 배나무골을 거쳐서 외택골로 오는 길은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여서 좋다. 산사태로 큼지막한 돌들이 쌓인 돌서덜을 타고 넘으며 뫼터골 막장에 이르러서 오른편 지능선으로 더터 올라서니 노란 색 페인트칠을 당한 소나무가 선 능선에 희미한 길이 나타나 반갑다(좌표 N 37°17′52.0″ E 128°52′04.8″, 해발 862m).
이후부터는 남서쪽 지능선의 노란 페인트칠을 당한 나무들을 따라 간다. 아주 심한 된비알을 올라친다. 정선군 동면 호촌리와 삼척군 하장면 역둔리 군경계 해발 1,071m의 뫼터골 안부에 닿았다(좌표 N 37°17′44.0″ E 128°51′50.3″).
제법 눈이 쌓인 오른쪽 북릉을 따라 간다. 흙이 조금씩 섞인 좁은 암릉이다. 풍악능선은 산짐승들이 다니는 칼등능선이다. 눈과 안개와 바람을 가르며 20여 분쯤 올라가자 삼각점(임계 461, 2005 재설)이 있는 풍악산 정상이다(좌표, N 37°18′00.6″ E 128°51′31.9″).
바람과 함께 눈이 온다. 눈은 까만 벌레처럼 허공에 뒤웅박친다. 잠깐 바람이 멎은 사이로 호촌리의 건물들이 지나간다. 장갑은 얼고, 카메라 렌즈도 뿌옇다. 설춤 때문에 조망을 접고 북쪽 주능선을 따라 하산이다. 바위들이 나타나는 칼등능선의 나무들이 옷을 잡아당기며 보행속도를 느리게 한다.
면도날 같은 서북풍이 되지게 분다. 왼편 절벽에 부딪친 바람이 공중으로 솟구쳤다가 동쪽 역둔골로 곤두박을 쳐대니 오른쪽 골짜구니가 바람골(바랑골)이란 이름을 얻었다.
약 30분 군경계를 따르니 삿갓봉(1,177m)이다. 왼편으로는 능선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하산할 군경계 능선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길을 잘못 들기 십상이겠다(좌표 N 37°18′15.8″ E 128°51′30.8″). 볼록한 삿갓봉을 넘어 오른쪽 급경사 군경계 능선에는 길이 없다. 물기를 머금은 눈도 미끄럽고 슬그머니 어둠이 밀려와 덕심치까지 가는 능선길을 접고 오른쪽 역둔골 방향으로 하산한다(좌표 N 37°18′18.5″ E 128°51′33.6″, 해발 1136m).
급경사 계곡은 낙엽 위에 눈이 쌓여 아이젠도 먹혀들지 않는다. 엉덩이썰매, 아예 봅슬레이를 한다. 옷은 젖고 흙투성이다. 약 50분쯤 물을 쏟듯 내려서니 농가를 만나며 역둔골 개바닥이다(좌표 N 37°18′16.6″ E 128°51′55.0″, 해발 825m). 역둔골에는 12호가 산다. 가로등이 켜진 마을길을 터덜터덜, 풍악의 바람도 잠이 들었다.
*산행길잡이
역둔 장터거리~(20분)~배나무골 입구~(10분)~외택골~(1시간)~외택골 안부~(20분)~정상~(30분)~삿갓봉~(50분)~역둔골~(30분)~역둔 장터거리
*교통
태백-역둔 시내버스터미널(033-552-3100)에서 1일 2회(08:00, 14:40) 운행.
역둔-태백 12:00, 18:00.
역둔-정선 08:30, 15:00, 20:00. 곧바로 돌아감.
*숙식 (지역번호 033)
역둔 장터거리에 있는 나원식당(554-0463), 평화식당(553-1010).
글쓴이:김부래 태백 한마음산악회 고문·태백여성산악회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