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생품사
최 민 자
‘폼생폼사’라는 말이 있다. 폼(form)에 죽고 폼에 살 만큼 겉멋이 들어 있다는 뜻이다. 영어와 한자어의 합성어지만 얼추 뜻을 알아듣는 걸 보면 그만큼 널리 통용된다는 말이 된다. 어딘지 비아냥거림이 섞인 것 같은 이 말은 외제 차를 몰고 다니며 ‘야! 타!’를 외치는 머리 빈 젊은이들만 지칭하는 게 아니다. 3000원짜리 우동을 먹고도 5000원짜리 커피를 마시는 철부지 연인들을 힐난하는 말도 아니다. 정수리의 서리꽃을 감쪽같이 감추고 굽 높은 구두를 즐겨 시는 나도 때로는 엄연한 폼생폼사족이다. 아는 척도 하고 잘난 척도 하며 부지불식간에 폼을 잡고 산다. 정답도 모범답안도 없는 인생. 풀 죽지 않고, 궁상떨지 않고, 제 멋에 취해 살겠다는데 그게 뭐 그리 잘못된 일이런가.
광화문 근처에 모임이 있어 오후에 지하철을 타고 나갔다. 맞은편 의자의 일곱 사람 중 네 사람의 손에 휴대폰이 들려있다. 무언가 화급한 연락을 기다리는 사람들 같다. 때없이 울리는 벨소리, 큰 소리로 통화하는 말소리로 하여 지하철 안은 늘 시끄럽다. 휴대폰 공화국 대한민국이 목하 ‘지금은 통화중’이시다. 문자도 보내고, 사진도 찍고, 게임도 하고, 은행 일도 보니 친구요, 비서요, 마법사가 따로 없다. 폰(phone)에 죽고 폰에 사니 폰생폰사족이라 할까.
팥알만 한 자판이 보이지 않아 문자조차 보내지 못하는 나도 기실은 어엿한 폰생폰사족이다. 어쩌다 그놈을 두고 오는 날에는 육지에 간 빼두고 온 토(兎) 선생처럼 한구석이 허전하여 안절부절못한다. 시류를 따라 살다 보니 폼생폼사도, 폰생폰사도 하지만 내가 정말로 원하는 삶은 폼도 아니고 폰도 아니다.
짐 되지 않고, 해 끼치지 않고, 최소한의 품위와 자존심을 지키며 자족하는 마음으로 살다 가기를, 그리하여 내 삶이 머물고 간 자리가 쓸쓸하고 향기로운 폐허로 남기를, 진부하지만 쉽지만은 않을 품생품사(品生品死)를 간절히 꿈꾸어 보곤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