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까지는 그래도 날씨가 견딜만 하였는데....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서늘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고 낮에도 웬일인지 그렇게 덥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4월에 들어서면서 더위가 절정에 이르고 있습니다. 습도는 없지만 햋빛에 노출되는 것은 머리가 아플 정도입니다. 오후가 되면 여전히 그레이스 홈 아이들은 축구와 풋살을 즐기고 있습니다.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아이들이 때로는 부럽기도 합니다.
방학 동안에 오기로 한 6명의 아이들중 3명의 아이가 먼저 왔습니다. 이중 2명의 아이들은 아스파와 아미라는 오누이입니다. 이 두명의 오누이는 중국계 리수족의 아이들로 치앙마이의 최북단인 버마와의 국경지역인 위앙행이라는 지역에서 온 아이들 입니다. 그곳에서 사역하시는 중국계 싱가폴 선교사님이 사역하는 지역으로 그곳은 태국이긴 하지만 태국말보다는 중국어가 공용어인 곳입니다. 3,4년 전엔가 위앙행의 바로 인근인 므앙나 지역을 갔는데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태국어를 하지 못하였고 중국어 학교와 중국계 교회등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TV가 있고 초등학교에 다니기에 태국어에는 전혀 문제가 없으나 어른들은 대부분 중국에서 불법으로 넘어왔거나 중국에서 버마로 갔다가 버마 국적을 가지고 태국으로 불법으로 넘어와 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제가 그곳에 가서 지내면서 중국계 학교와 중국계 교회를 돌아보았는데 아이들은 낮에는 태국어 학교를 다니고 저녁에는 오후 6시부터 8시까지는 중국어학교에 가서 공부를 합니다. 그곳의 공용어는 태국어가 아니고 중국어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국어를 사용하고 있고 교회도 전도사님은 중국어와 태국어를 하시는 분으로 주로 중국어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레이스 홈에 온 두명의 오누이, 아스파와 아미도 태어날 때부터의 정확한 기록이 없는 아이들입니다. 아스파와 아미에게 자신들의 기록에 대해 물어보니 정확한 나이를 알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임시로 만든 기록에는 18세로 되어 있었는데 현재 중학교 2학년에 다닐 예정인 여자 아이 아미와 6학년에 다닐 예정인 남자 아이 아스파는 도시에는 처음 나와본다고 합니다. 처음 수영장에도 가보았구요. 싱가폴 선교사님을 따라 같이 온 이들의 친할머니에 의하면 이 오누이의 아버지는 아이가 태어난지 6개월만에 이름모를 병으로 돌아가셨고 할머니와 함께 살던 어머니도 여섯살때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후 할머니가 계속 돌보아왔고 싱가폴 선교사가 그지역으로 와서 같이 사역하면서 간간이 돌보아왔다고 합니다. 그후 저희들의 소식을 듣게 되었고 할머니가 거의 80이 다되어 이들을 돌보아주기가 어려워지자 저희에게 위탁하고자 하였습니다. 할머니와 싱가폴 선교사와 함께온 아이들은 할머니와 싱가폴 선교사가 고향으로 돌아가자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지만 남자아이는 금새 아이들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에 다니는 여자 아이는 도시의 낮선 문화에 낮설어하였지만 점차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제 이곳에 온지 일주일이 다되어 가는 아스파는 매일 아이들과 축구도 하고 장난도 치면서매일 매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고 점차 하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아스파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대채로 말이 없고 언니뻘인 낍의 안내를 받으며 말없이 잘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아빠가 새로 사다준 성경을 받아서 매일 읽고 암송하며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때로는 이해되지 않은 부분도 많지만 차차 나아질 것입니다. 날마다 말씀을 읽으며 때로는 고향을 그리워하기도 합니다. 이제는 차차 나아지겠지요. 공부에도 점점 관심이 가겠지요.(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