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곰소염전은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천일염을 제조하는 곳으로 소금 맛이 으뜸이다. © 고은희 기자 | | 고창에서 격포항까지 길이 순조롭다. 흥덕으로 가다가 정읍 가는 오른쪽 길에서 부안으로 들어섰다. 곧 우리나라 제일의 소금 맛을 자랑하는 곰소에 도착하는 동안 내비게이션은 톡톡히 제 몫을 해냈다.
곰소염전은 전북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에 위치한다.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천일염지다. 보통 바다와 인접한 다른 염전과 달리 곰소만 안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염전이 쭉 펼쳐져 있다. 마치 촘촘한 바둑판같은 모양의 염전은 개펄을 다져서 만들었다.
▲ 격포항에 정박중인 작은 어선들. © 고은희 기자 | |
허름한 소금창고가 마음을 뒤흔든다. 수십 년 천일염 생산만 해온 염부의 녹록치 않은 삶이 엿보인다. 소금을 얻기까지 애간장을 태운 염부들의 피와 땀이 얼마만큼 인지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바닷물이 소금이 되기까지 날씨가 좋을 때는 15일 정도 걸리는데, 비가 오기라도 하면 낭패를 본다. 하얀 소금의 이면에는 까맣게 타는 가슴의 염부가 있다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될 일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이곳의 생활이 얼마만큼 고된 일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아서다.
곰소에서 나와 격포항까지 가서 위도로 들어가는 배를 기다리다 채석강 주변을 둘러보았다. 채석강은 중국 당나라 시대의 시인 이태백과 연관이 있다. 배 위에서 술을 마시며 강물 속에 잠긴 달을 잡으려다가 강물에 빠져 죽었다는 채석강과 흡사해 채석강이라 이름을 지었다는데, ‘변산8경’중의 하나로 경관이 빼어나다.
▲ 채석강은 바닷물에 침식되어 퇴적한 절벽이 마치 수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하다하여 책석강이라 불리기도 한다. © 고은희 기자 | | 햇볕이 쨍쨍한 한 가운데 카페리호를 타고 40분 정도 지나 위도의 관문 파장금에 이르렀다. 위도의 남쪽 바다는 조기잡이로 유명했던 칠산어장으로 이곳에서 잡은 조기는 파시를 열었기에 파장금으로 불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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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0월 10일 위도 페리호 대참사로 희생된 승객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위령탑. ©고은희 기자 |
섬의 모양이 고슴도치를 닮아서 고슴도치 위(蝟)를 쓰서 위도(蝟島)라 불리고 있는 이곳 복잡한 해안선을 격포항에서 부터 싣고 온 차를 타고 돌았다.
위도에서는 무엇보다 1993년 10월 10일 있었던 대참사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362명의 승객을 싣고 풍랑이 이는 바다를 헤쳐 가르던 초만원 여객선의 해난 사고는 얼마나 마음 아픈 일이었던가. 온 국민이 비통 속에 빠져야 했던 그 날의 희미한 기억을 떠올리며, 위령탑에서 성난 파도에 비명으로 가신 영혼들을 위한 묵념을 올렸다.
▲ 꼴뚜기를 비롯해 생선을 찌고 있다. © 고은희 기자 | |
환상의 섬이라고도 불리는 위도는 최근 선상 낚시로 부상하고 있어 관광객이 많이 늘었다. 특히 이곳 특산물 중 하나인 꼴뚜기에 시선이 모아진다. 이 꼴뚜기는 조개젓과 같이 많이 담가 먹는다고 하는데, 꼬록젓 고록적(전북), 호래기젓 호리기젓(경상도) 등으로 불린다.
잠시 눈앞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이 보인다. 분명 대게를 삶는 것은 아닌데, 궁금증에 못이겨 살펴보았더니 꼴뚜기를 찌고 있는 거다. 아마 찌고 난 후 말릴 모양인가 본데, 말린 꼴뚜기는 마른안주로도 쓰인다. 이곳을 방문한 기념으로 한 봉지를 사고 해삼 비슷한 물건에 시선을 보냈다. 검은 빛이 도는 해삼은 ‘흑삼’으로 불리는데 기대만큼 맛은 덜하다.
▲ '지는 해가 더 아름답다', 위도에서 본 해넘이는 편안함을 안겨주었다. © 고은희 기자 | |
위도를 일주하고 한 횟집 앞에 다다랐을 때 해는 바다 건너 저편 산 아래로 몸을 숨기기 시작이다. 일출의 감흥과 사뭇 다르게 여유를 가져다주는 일몰의 장관은 지는 해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어느새 바다 저편 산등성은 오렌지 빛으로 물들고 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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