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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소 |
공부방, 군청 |
일 시 |
2005.8.1 |
내 용 |
지역사회 개괄적 이해, 안정선님 특강 |
작 성 |
박장미 |
처음 선생님께서 독일 가는 사람을 발표했을 땐 기쁨반기대반 이었다.
선생님이 주시는 종이를 보고 분석했다. 영월의 인구 환경 등.. 처음에는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조금씩 설명을 이해 할 수 있었다. 그 뒤 자세한걸 알기 위해서 우리 모두 군청으로 갔다. 선생님께서 군청 사회복지과로 가셔서 이야기를 나누신 뒤 2층으로 올라가서 책 한 권을 받았다. 영월에 대한 책이다. 다시 공부방으로 와서 다같이 모여서 그 책을 보았다. 그 책에 아까 궁금해 했던 것들을 책에서 알 수 있었다. 영월의 인구를 통계해서 그래프로 나타내어져있었고 영월에 살면서 몰랐던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보고 서로 의견도 나누며 토론도 하였다.
다음은 연하초등학교운영위원장 이신 안정선 선생님에게 인터뷰를 하러 타랭이 골로 갔다. 도착하니 안정선 선생님께서 반겨 주시고 시원한 개울가에서 인터뷰를 하였다. 이런저런 것을 말했다. 처음 이 일을 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지? 가장 보람을 느낄 때에는? 인터뷰를 하고나니 이런저런 생각이 났다. 아 정말 이분은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시는 분이구나 정말 존경스럽다.
내가 오늘 하루를 이렇게 한 뒤 느낀 점이 있다면 오늘 하루 짧은 시간 이었지만 많은걸 배웠다는걸... 내가 살고 있는 이 고장에 대해서 많이 몰랐다는 것. 하지만 오늘 이런 일을 통해서 많은 걸 알게 되었다. 어떤 곳이 내가 살고 있는 곳 인지 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안정선 선생님께 정말 배울 점이 많았다.
내 삶의 일부분도 배운 것 같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내가 기뻐서 하는 일이지 다른 사람이 보라고 하는 일은 아니다. 내가 이일을 하는 데에서 내 자신이 기쁨을 느끼고 보람을 느끼고 즐거워하면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졸업한 학교이기도 하고, 지금은 작은 학교이다. 이 학교에 대해서도 의논을 하였는데 참 맞는 말이셨다. 학생이 적다고 자꾸 부끄러운 게 아니라 그 한분의 선생님에게 더 많은 걸 배워 갈수 있다는 걸 참 그리고 사랑이란 사랑하는 게 감사에 밑바탕이 되어야 나올 수 있는 것이란 걸 .. 오늘 배운 건 지식으로 써 배운 게 아니라 아름다운 삶의 일부분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
장 소 |
공부방, 군청 |
일 시 |
2005.8.1 |
내 용 |
지역사회 개괄적 이해, 안정선님 특강 |
작 성 |
신요한 |
1시 20분경 제2기 토막길토막여행 선정자가 뽑혔다. 곽온겸, 최현덕, 오보배, 박장미, 조양혜, 안다미로, 나(신요한)이였다. 우리들은 선생님과 같이 우리 고장(영월)이 어떤 지역인지 살펴보았다. 우리들은 우리 고장을 더 자세히 알기 위해 영월 군청에 갔다. 선생님께서 사회복지기관에 들어 가셔서 군청에 일하시는 분과 이야기 하시다가 우리 고장에 대한 통계자료들이 있는 책을 빌리셨다. 우리는 공부방으로 돌아가서 우리 고장에 대해 공부했다. 우리는 우리 고장의 광업이 줄어들면 인구도 줄고, 사업계가 많이 들어 설 때는 인구도 늘어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보건 시설이나 교육 시설등 시설들이 거의 영월읍내에만 모여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소년 범죄, 풍수해, 사회 복지 시설등을 더 알아보았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 고장에 대해 조사해보고 타랭이 골로 갔다. 타랭이 골에 가서 안정선선생님에게 인터뷰를 했다. 우리는 개울가에 의자를 놔서 앉아서 인터뷰를 했는데 시원하고 색다른 느낌이었다. 안정선선생님은 연하초등학교 운영위원장님이신데 아동사회복지업을 하고 계신다. 우리는 이 일을 하시게 된 동기와 시작하신지 얼만큼 되셨나도 물어보았다. 이런 일을 하신지는 20년이나 되셨고, 이 일을 하시는 이유는 내가 좋고 기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 것 외에도 선생님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관, 우리 지역사회의 학교의 중요성, 사랑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등도 질문해보았다. 우리는 이번 활동들로 인해 우리 고장이 반산촌, 농촌 뿐만 아니라 폐광 지역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인구에 따라 산업, 지역 경제가 변화하지만 교육에 대해선 늘 변함이 없다는 등 통계를 통해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안정선선생님과 인터뷰를 하면서 경청에 대해서도 좀 더 배우고, 좋은 일들은 내가 좋아해야지 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들의 시선 신경쓰는 것이 아니다. 또 사랑은 감사로 부터 나온다고 하신것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느낀 것 같다. 오늘 활동을 통해 새로운 것을 얻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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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소 |
공부방, 군청 |
일 시 |
2005.8.1 |
내 용 |
지역사회 개괄적 이해, 안정선님 특강 |
작 성 |
안다미로 |
두근두근... 처음 도담공부방에 들어갔을때의 일이다.. 나는 떨려서 할말을 잊고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과도 대화를 하지도 못하였다. 오랜만에 선생님과 친구들, 동생들을 봤는데 반가움보다 어색함이 앞섰다. 그래서 친구들과 인사는커녕 눈도못마주쳤다. 그런분위기는 내가 싫어하지만 저절로 그렇게되는 분위기와 그에맟추어가는 나를발견하였다. 친구들도 마찬가지인지 나에게말을 걸지않았다. 특히 요한이가 말을걸지않자 많이 야속했다. 이런생각들을계속 하며 수업에집중을 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선생님께서 수업때 하였던이야기를 다시꺼내시며 군청에 가자고 하셨다. 나는 솔직히말하면 그때 군청에 왜가야 하는지 모르고있었다. (그전에 선생님께서 군청에서 자료를 찾아와야한다고 그렇게 설명을 하셨는데도 말이다.) 그당시 나의 생각은 '어떻게하면 어색하고 뻘쭘한분위기를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바뀔수있을까?' 밖에 없었다. 군청에가서 나는 친구들의 관심사와 내가 궁금한것들을 가지고 대화를 시도하였고 대화에 성공하였다. (그때 선생님께서 우리가 필요한 자료가 들어있는 책을 가지고 오셨고 그제서야 우리가 군청에 왜왔는지 다시 깨달을수 있었다.) 그후에는 분위기가 자연스러워서 집중하여서 공부를 할수있었다. 진짜 재미있었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수업한다는 것을 느끼자 재미가 두배는 되는것같았다. 또 더욱더 정리도 잘되고 많이 알아낸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아빠에게 인터뷰를 하러갔다. 나는 쓰기를 했는데, 제대로 정리를 하지못했다. 왜냐하면 우리아빠의 멋진말씀에 귀기울이느냐 정작해야하는 정리는 하지못했다.. 이점 선생님께 정말 죄송하다. 오늘 나는 정작 중요한것을 해내고 깨달은것같다. 일단 오랜만에만난 친구들과 관계회복에 성공하였고 주위 사람에게 언제나 관심을가지고 사랑해야한다는 것이다. 또 가장 중요한것하나!!!!
우리아빠는 정말 멋진분이다. |
장 소 |
공부방, 군청 |
일 시 |
2005.8.2 |
내 용 |
덕포 수혜지역 조사 |
작 성 |
박장미 |
우리 영월의 수해 지역을 알기위해서 덕포로 갔다. 차에서 내려 덕포 마을을 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 걸어다니면서 조사를 하였다. 날씨도 덥고 길도 약간 경사가지고 해서 힘들었지만 열심히 보고 관찰 했다. 정말 수해를 당한 곳이여서 그런지 새로 지은 집들마다 높게 지어서 밑에 층은 찬고로 사람이 살지 않도록 해놓았고 위에 층에 사람이 살고 있고 담을 높이 샇아져 있었다. 그 반면 옛날 집 처럼 허술해 보이는 집들은 모두 담이 낮고 홍수로 인해 피해를 입어서 그런지 많은 곳이 붕괴되어 있었다. 참 안타가워 보였다. 하지만 주위의 환경은 평범한농촌 산지 처럼 나무와 풀들은 무성 하게 꽃들과 밭에 심어져 있는 수수등의 곡물은 여전히 잘 자라고 있었다. 왠지 주위의 건물들도 다시 다 지어져있고.. 참많이 변한것 같다. 홍수가 났을 때 직접 보진 못했지만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잘 알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은 우리학교 주위 였다.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알지못하고 그냥 있었던게 많이 안타갑게 생각이 된다. 오늘 하루 견학하면서 느낀점이 있다면... 수해를 당했을때 보다 많이 바뀌어서 몰랐는데 오늘 알게 되어서 좀 그렇다... 무엇 보다 안 좋은 일이니까 말이다. 선생님 친구분도 어렸을때 홍수로 집이 물에 잠겨서 무엇보다 쌀이 먹고 싶다고 했을때 선생님이 쌀을 가져다 주셨다고 한다. 그말을 듣고 정말 감동했고, 그짧은 이야기 지만 그 말에서 많은 것을 느낄수 있었다. 내 주위에서 수해를 당하거나 힘들땐, 주위의 있는 내가도와주면 된다. 나만의 이익을 찾지 말자 등이 생각이났다. 다시 한번 덕포리에 수해에 대해선 정말 오늘의 견학으로써 알게됬지만 안타갑다. 또 다시 수해라는 사건은 이러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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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소 |
공부방, 군청 |
일 시 |
2005.8.2 |
내 용 |
덕포 수혜지역 조사 |
작 성 |
신요한 |
우리는 1시 30분경 우리 고장의 수해지역인 덕포에 갔다. 선생님을 포함해 우리 8명(다미로는 서울에 감)은 덕포리를 돌아다니면서 덕포수해지역에 대해 알아보았다. 선생님께서 먼저 덕포에 얼만큼 잠겼는지 알려주셨다. 선생님은 굴다리서부터 봉래 중학교 밑에까지 잠겼었다고 하셨다. 한번 굴다리서부터 쭉 봐 봤는데 정말 많이 잠긴 것 같았다. 우리는 쭉 돌면서 덕포에 있는 집들을 봐봤는데 거의 다 헐어있었다. 그리고 수해가 안 닫는 위쪽으로 갈수록 집들의 담들이 낮았다. 또 반대로 수해피해가 큰 아래쪽 집들은 2층집이나 담이 상당히 높았다. 2층집들은 2층만 집처럼 가꿔놓고 1층은 거의 창고나 다름없이 놓여져있었다. 이런 것들을 보아 위쪽은 수해위험이 약하니까 담을 낮게 짖는 것이고 아래쪽 집들은 수해피해를 대비해서 먼저 담을 높이 쌓거나 1층같이 낮은 곳들은 집처럼 제대로 가꾸지 않고 창고 같은 것으로 쓰는 것 같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지금은 길로 놔져있는 곳이 예전에는 다 마을이었는데 수해피해로 다 이사가고 떠났다고 하셨다. 우리는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다시 차를 타 덕포 시장쪽으로 가면서 이 곳들이 얼마나 심하게 잠겼었는지 보면서 또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이야기하시면서 옛날 친구도 수해로 인해 큰피해를 당했고, 덕포지역의 시장이나, 철물점, 여러 가게들이 돈을 벌려고 하면 수해로 돈이 날라가고 벌면 날라가고 해서 재물적으로도 피해가 컸다고 하셨다. 이렇게 수해가 한번 나도 피해가 많이나는데 덕포지역은 한번도 아니고 여러번 났으니까 정말 피해가 컸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재해 때문에 인구나 집, 지역 경제가 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장 소 |
공부방, 군청 |
일 시 |
2005.8.2 |
내 용 |
덕포수혜지역 조사 |
작 성 |
안다미로 |
병원치료로 인한 결석 |
장 소 |
광산지역사회연구소, 철암어린이공부방, 태백신나는집 |
일 시 |
2005.8.4 |
내 용 |
사람을 찾아, 삶을 찾아.. |
작 성 |
박장미 |
원기준 소장님을 뵙고, 폐광지역의 석탄 저장하는 곳을 보고 태백의 여러 공부방을 보고 왔다.
원기준 소장님께서는 여러 지역의 싸움을 할때가 힘들다고 하셨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저 지역의 편을 들어주면 또 다른 지역의 사람들은 원 소장님을 욕하고 손가락질하신다고 한다. 이렇때가 정말 힘드시다고 하신다. 하지만 어느 사람들은 원소장님의 판단이 옳으시다고 위로와 격려해주시며 희망을 주신다고 한다. 그럴때면 소장님은 기쁘시다고 한다. 소장님은 페광지역 마을 을 보존하시면서 발전시키고 싶으셔하신다. 하지만 국가에서는 그 곳을 다 부서트리고 다시 건설하려 한다. 하지만 소장님이 말씀 하셨다 시피 .. 사람이 있어야 발전이 되는 것이고, 즐거운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폐광 지역을 통재로 관광지로 만들려고 하시는 소망이 있으시다.
그 방법이 좋은것 같다. 내 생각도 원 소장님과 공통 되는 부분이 많이 있기때문이다. 아마 폐광지역은 미래의 큰 관광 산업이 발달한 탄광 박물관이 되어 있지아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동찬 선생님에게는 독일 같은 다른 나라를 가면은 해야하는 예의 등을 배웠고, 박미애 선생님에게는 공부방 이야기를 들었는데 철암 공부방 친구들의 생활 선생님과의 관계등을 들을수 있었다.
폐광지역을 보고 느낀점은 사람들이 생활이 힘들고 하지만 서로서로 도와가면서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 같다.
우리도 그런점을 배워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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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소 |
광산지역사회연구소, 철암어린이공부방, 태백신나는집 |
일 시 |
2005.8.4 |
내 용 |
사람을 찾아, 삶을 찾아.. |
작 성 |
신요한 |
우리는 11시 30분 쯤에 1기생(인경이 누나, 은미누나)과 2기생이 선생님 2분과 같이 봉고차를 타고 태백시 철암동에 있는 광산지역사회연구소로 출발했다. 우리는 1시경 태백시 철암동에 위치한 광산지역사회연구소에 도착했다. 우리는 먼저 김동찬 선생님을 뵙고, 조금 있다가 원기준 소장님을 만났다. 우리는 원기준 소장님께 인터뷰를 청했다. 원기준 소장님께서는 태백에 오신지 20년이 되셨고, 광할자원봉사로 청음 오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처음에 다친 노동자들을 위해 어떻게 하면 더 보상을 잘 받을까 등 광산노동자들과 상담을 해주는 일을 하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광산이 폐광되면서 직업을 잃은 노동자들을 위해 인권운동을 하다가 교도소에서 1년 반씩이나 계셨다고 하셨다. 원기준 소장님께서는 감옥에서 폐광지역을 위해 생각도 많이 하고 기도도 하셨다고 1년 반 뒤 출소하신 뒤에 철암에 가셔서 철암을 위해 일하시기로 하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신학을 공부하셨던 원기준 소장님은 관광학에 공부하셔서 철암을 위한 일에 한걸음 더 다가 가셨다. 또 원기준 소장님께서는 석탄을 북한에게 갖다 줄려고 하셨는데 운반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나눔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연탄을 북한에 나누기로 하셔서 지금까지80만장의 연탄을 보내셨고 북한 뿐만 아니라 남한에 잘 못사는 장애인이나, 소년소녀강장, 독거노인들에게도 60만장의 연탄을 보내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원기준 소장님께서 가장 힘드실 때는 지역간에 싸움이 일어날 때라고 하셨다. 서로 없을 때는 싸우지 않고 잘 지냈는데 조금 먹고 살려고 하니까 욕심이 생겨 서로 싸우실 때 마음이 아프다고 하셨다. 특히 그 싸움들을 말릴 때 양쪽 지역들한테 서로 욕을 먹고 태백시민들이 우리편 안든다고 욕을 할 때 마다 마음이 아프시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래도 이런 일이 옳다고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기때문에 보람을 느끼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원기준 소장님은 철암지역이 7~80년대 거리의 모습이 거의 흡사하다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파리와 같이 철암지역 그 자체를 박물관으로 만들 계획을 추진하고 계신되 되실 것 같다고 하셨다. 그리고 김동찬 선생님께도 짤막하게 인터뷰를 했다. 김동찬 선생님께서는 다른나라에 기본 예절을 잠깐 말해주시고, 우리들에게 명함을 주시며 인사를 청했다. 그리고 남아메리카를 오토바이를 타고 돌은 사람에 대해 말해주셨다. 또 박미애 선생님께도 인터뷰를 했는데 철암 공부방 학생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인터뷰를 하고 우리는 광산지역사회연구소를 구경한 뒤 철암 공부방에 들렸다. 철암공부방에 가니까 광할자원봉사자들이 어린이들과 같이 재밌게 놀고 있었다. 우리는 철암 공부방에서 책 10권 정도 기증받았다. 그리고 태백시내에 있는 신나는? 공부방에도 갔다. 신나는 공부방에 갔다가 자장면을 먹고 영월로 돌아가니 6시 10분이었다. 오늘 조금 피곤했지만 많은 것을 느낀 것 같다. 원기준 소장님께서 많은 사람들에게 욕을 먹기도 하시지만 소수의 지지로 인해 큰 힘을 얻는다는 것은 정말 소수의 지지가 큰 힘을 발휘 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원기준 소장님께서 옳다고 생각하시면 교도소에 가셔도 남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욕을먹어도 하시는 것이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였던 같다. 그리고 이번에 광산지역사회연구소에가서 가장 많이 느낀 것은 김동찬 선생님께서 주신 명함에 적혀있던 말이다. '꿈을 꿀 수 있다면 꿈을 이룰 수도 있다'그 걸 본 순간 정말 많은 것을 느낀 것 같다. 정말 이번 방문으로 인해 많은 것을 느낀 것 같다. |
장 소 |
광산지역사회연구소, 철암어린이공부방, 태백신나는집 |
일 시 |
2005.8.4 |
내 용 |
사람을 찾아, 삶을 찾아.. |
작 성 |
안다미로 |
오늘은 태백으로가서 원기준소장님을 만났다. 그리고 원기준소장님께서 어떤일생을살아오셨는지에 대하여 알아도보았다. 선생님께서는 내가상상하신 것 이상으로 훌륭하신분이셨다. 폐광사람들을 위하여 감옥에 들어가시기도 하고, 남.북 한반도전체에 연탄을 불우한 이웃에게 나누어주기도하고, 지역싸움을 말리시는등 셀수없이 많은일을 하신것을 알고 훨씬 놀랍고 소장님이 존경스럽게 비추어 졌다. 소장님께서 하신말씀중에는 폐광지역에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소장님은 주로 '좋은편이다'라고는 하시지않고 '좋게만들려고 노력하겠다.'는 쪽으로 말씀을 하셨다. 그러시는 모습을 보니 왠지 나의 개인적인생각이 들었다. 아마소장님이 계시는한 폐광지역의 미래는 밝을것이라고 말이다. 소장님의 말씀이 끝나신 후 김동찬 선생님과 박미애 선생님과 말씀을 나누었다. 김동찬 선생님께서는 사람은 처음에 인사가 중요한 것이라고 가르쳐주시고 자신에게 맞는 인사법에 따라 인사하라고 가르쳐 주셨다. (독일에서 요긴히쓸수있을것같다.) 박미애 선생님께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대하여 배웠다. 폐광지역을 계속보다보니 내가 부러워 하는것들 투정부리는 것들이 정말 그래야 하는것들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폐광지역에 있는 사람에 비하면 얼마나 잘사는 사람인지 알았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지금상황에 감사하고 불평보다는 노력하려고 해야겠다. 이제부터는 내가 하고싶은말이다. 일단은 원기준소장님과 대화를 할때 간식이 있었기에 더욱더 잘 들을수 있었던것같다. 그리고 강아지를 주셔서 원기준소장님이 너무감사하다.(이름은 '토리'라고지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를 이렇게 많은 체험을 할수있게 해주신 도담공부방 선생님들이 정말 감사하다. |
장 소 |
광산지역사회연구소, 철암어린이공부방, 태백신나는집 |
일 시 |
2005.8.4 |
내 용 |
사람을 찾아, 삶을 찾아.. |
작 성 |
손인경 |
도담 공부방에서 철암으로 가는 여행은 너무 힘들었다. 배고프고 졸리고 어지럽고.. 하지만 철암 원기준 소장님의 집을 방문하고 나서 배고픔도 잊은채 얘기를 들었다. 원기준 소장님을 처음 본 소감은 보조개가 참 이쁘시다.훗.. 이런 얘기는 예의에 어긋날지도 모르지만 웃으실때 정말 보조개가 이뻤다.^-^ 원기준 소장님의 얘기 속에서 많은 것을 듣게 됬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소장님을 뵙게 된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처음에 광활로 태백에 봉사활동을 오면서 일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폐광사람들을 위하여 법을 어겨 감옥에 들어가시기도 하고 남과 북을 위한 한반도전체에 사랑의 연탄나누기 운동을 하였고 지역싸움을 말리시면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셨다. 소장님 같은 분은 좋은 소리만 들을 것 같은데 사람들은 그게 아닌가 보다. 옳은 것만 바라다보면, 중립을 지키다보면 나중에 날아오는것은 사람들의 손가락이라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소장님은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으셨고 나중에는 결국 사람들이 소장님의 뜻을 알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하루빨리 알기를 바란다. 그래서 소장님의 선행과 소장님의 손길이 사람들에게 더욱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소장님이 계시는 한 폐광지역은 밝아질 것이다. 이제 내년이면 나도 20살이 된다. 어엿한 사회인이 된다. 사회인으로서 내가 받은 도움만큼 나도 나누길 원한다. 소장님처럼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힘들지만 주저하지 않는것처럼 나 또한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공부방과 어려운 분들께 나누는 삶을 실천하길 원한다. 소장님을 뵐 수 있도록 도와주신 공부방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지금 소장님께서 계획하시는 철암을 박물관으로 만든다는 것 그외의 모든 계획들이 좋은 사업이 되길 바란다. 소장님!! 소장님 웃음속의 보조개처럼 모든일이 아름다움으로 마칠 수 있는 사업이 되길 바랍니다. 과정속에서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
장 소 |
읍사무소,북면사무소,마차,도서관 |
일 시 |
2005.8.5 |
내 용 |
연하초교 및 폐광 현지 조사 |
작 성 |
안다미로 |
음... 일단은 오늘은 무척더웠습니다. 그래서 머리에 들어오는 것이 없었습니다. 기억에 남는것은 마차에 있는 폐광에 갔다가 온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본 탄광.... 물론 폐광이었지만 나에게 감동을 주기는 충분했습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예전 석탄을 캘때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하고 이리저리보며 열심히 관찬하였습니다. 무더운 날씨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덥지가 않았습니다. 정말 신기하였습니다. 그리고 폐광이 되어 황폐해진 모습이 너무 아쉬 었습니다. 폐광.... 정말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에게 아쉬움으로 남는 폐광이 아닌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탄광이 되면 좋겠습니다. |
장 소 |
읍사무소,북면사무소,마차,도서관 |
일 시 |
2005.8.5 |
내 용 |
연하초교 및 폐광 현지 조사 |
작 성 |
박장미 |
오늘 하루는 정말 힘들었다. 더위 때문인지 더욱더 지치고 힘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오늘하루도 힘차게 출발한것 같다. 차를 타고 연하초등 학교에 가서 그 곳 주위의 있는곳 연혁을 보고, 읍사무소에 잠깐갔다가 마차에 있는 폐광지역을 보았다. 그 곳 엔 사람이 아무도 없고, 조용 했다. 오직 석탄 가루들만 땅에 정신없이 뿌려져 있었고, 시설도 다 부서져 있었다. 왠지 안타가워 보였다. 우린 그 곳에서 땅에 떨어 져 있는 석탄 조각을 주었다. 빛에 반사 되어서 반짝 반짝 빛났다. 이뻤다. 그 곳에서 내려오면서 주위를 보니 석탄을 파다 남은 자국들을 흔히 볼수 있었다. 왠지 그 곳에서 열심히 일하던 사람들이 다 망해서 지친 몸으로 병에 걸려 떠나가는 모습이 생각이 났다, 정말 안쓰러웠다. 하지만 그 곳도 이제 박물관으로 바뀐다고 하니 조금은 희망이 있다. 오늘 하루를 보내면서 느낀점이 있다면 ... 폐광지역 사람들이 현재 그 일을 그만 둔뒤 병걸리고 지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주위의 안 좋아 보이는 환경 지저분하게 보이는 환경들 ... 과연 광산들이 문을 닺은 뒤의 그 일을 한 사람들에게 돌아온 것은 무엇일까?? 지금 현재의 자신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말이다. 나는 지금도 안타갑게 여기고 이런 곳이 한시라도 더 빨리 좋은 일로 발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특히 (폐광지역) 발전 하여서 주위의 사는 주민들도 이제 좀 잘살고 희망 있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든다. |
장 소 |
읍사무소,북면사무소,마차,도서관 |
일 시 |
2005.8.5 |
내 용 |
연하초교 및 폐광 현지 조사 |
작 성 |
신요한 |
1시에 연하초등학교로 출발했다. 우리는 연하초등학교로 가서 학교연혁을 살펴 보았다. 그리고 학교주변의 동네 이름들과 그 이름들의 유래를 보았다. 우리는 연하초등학교의 연혁과 동네의 유래들을 살펴본 뒤 영월 읍사무소로 가서 영월에 대한 잡지들을 받았다. 우리는 영월에 대한 잡지를 얻은 뒤 마차리로 갔다. 우리는 마차리로 가서 폐광된 광산을 볼 수 있었다. 폐광된 광산을 보고 정말 안타까웠다. 그 넓은 광산이 폐광되면서 일자리도 잃고 사회에서도 소외당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생겼을까? 생각하니 정말 안타까웠다. 또 넓은 광산이 아무사람도 없고 폐허가 되어 1995년부터 그냥 방치되어있다니 정말 그 자체가 너무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 광산은 박물관으로 된다니까 발전이 보이지만 광산이 폐광되어 일자리를 잃고 병에 걸린 그 사람들은 보상받을 길이 별로 없다고하자 더 안타까운 것 같다. 그래도 완전히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희망을 잃어가는 폐광지역의 병들고 소외감을 받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일하시는 원기준 소장님과 같은 분들이 많이 있다고 선생님께서 말씀 하셨기에 희망이 점점 보이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마차리의 폐광된 광산을 보고 영월도서관으로 갔다. 영월 도서관에서 폐광지역의 관한 책을 찾고 공부하기 위해 책을 빌릴려고 했는데 회원증이 없어서 다음에 빌리기로 했다. 폐광지역의 관한 책을 보고 서로 이야기하면 더 좋았을 텐데 책을 못 빌려서 아쉽다. 오늘은 정말 더운 날씨였기에 조금만 움직이는 것도 힘겨웠지만 폐광지역을 위해 이 더운 날도 끝없이 일하시는 많은 분들도 있기에 힘들어도 참고 견디며 폐광지역에 대해 알아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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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소 |
주천 큰나무공부방 |
일 시 |
2005.8.6 |
내 용 |
동강댐 백지화 운동에 관해.. |
작 성 |
박장미 |
평소 보다 좀 더 일찍 출발 하게 되었다. 어제 잠을 설쳐서 졸음이 약간 떨 깬 상태 에서 출 발하게 되었다. 차를 타고 주천에 갔는데 가면서의 창밖의 풍경은 아주 보기 좋았다. 도착하여 보니 상태가 좀 안 좋았다. 겉 모습을 이리 저리 둘러보니 폐교를 이용 하여서 공부방을 만든 것 같았다. 들어가는 입구에는 큰나무 공부방이 라고 표말이 있었다. 드디어 큰나무 공부방 선생님이 오셨다. 선생님께서는 우리를 안으로 안내 하였다. 와 정말 깜짝 놀랐다. 완전 겉과 속이 달랐다. 안은 나무로 되어있는데 형광등 장식도 깔끔하게 잘 되어 있었다. 이게 모두 선생님 혼자서 만드신 거라고 하니 정말 놀라웠다. 이번엔 목사님이 공부방을 보여주신다고 하셔서 모두 옆의 건물로 옮겨 갔다. 정말 좋았다. 컴퓨터도 .. 도서실도 목사님의 서재도 말이다. 다음은 자리에 앉아 동강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동강의 댐 건설은 나도 들어보았다. 선생님께선 동강은 우리 후손에게 물려 주어야할 것 중의 하나인 자연은 우리가 잘 보존하고 아껴 두었다가 그 뒤에 물려주어야 후손들 앞에서도 당당 할 수 있을 거라고 하고 , 말씀하셨다. 그러기 위해서 는 동강댐 반대를 위해서 많은 일을 하셨다. 예를 들면 동강 살리기 운동이라든가 언론을 통해서 동강댐에대한 반대를 하시기도 했다. 그 이유는 영월의 지하의 부분은 석회암으로 되어있어서 물에 잘 녹아서 붕괴위험이 아주 크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곳에 삶의 터로 살고 있는 천념기념물들도 많이 있고, 야생화초라든가 꽃들도 많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댐을 만들어 버리면 그곳에 살고 있는 자연 환경이 다 파괴 될 것이다. 자연을 보존 한다는 것은 그 자연을 보존한다고 해서 물을 정화시켜주고 이런게 아니라 그냥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고 그대로 두는 것이 선생님께서 자연을 보존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동강은 우리 영월의 대표하는 것 중 하나에 포함되는 그런곳을 파괴 한다면 경제적 또 한 타격이 커질것이다. 동강 축제등은 우리 영월에서 하는 축제로써 각지에서 사람들이 와서 구경하고 , 놀고 가는데에서 수입이있는데 그것 또한 못하게 될것이고, 영월을 대표하는게 없어진다는점 등이 문제가 많을 것이다. 그 외에도 좋은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 참 좋았고, 재미있었다. 동강을 위해서 힘쓰시는 분들 덕에 지금의 동강이 있는 것 같고, 오늘하루 보람있었고, 많은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앞으로는 자연을 소중이 여기고 피라미하나라도 작은 생물체하나라도 소중하게 여기어야겠다. |
장 소 |
주천 큰나무공부방 |
일 시 |
2005.8.6 |
내 용 |
동강댐 백지화 운동에 관해.. |
작 성 |
신요한 |
오늘도 역시 1기생들과 같이 주천의 큰나무 공부방을 방문했다. 큰나무 공부방의 목사님은 동강 댐 반대운동을 하셨던 분이셔서 동강 댐에 반대의 이유같은 것들을 우리가 물었다. 우선 목사님께서 제일 큰 이유는 바로 동강이 석회암 지대라는 것이다. 석회암 지대에 댐을 건설하면 댐이 붕괴될 위험이 있어서 홍수를 막기는 커녕 그런 것 때문에 영월이 침수 될 수도 있고, 물안의 갱도를 타고 가서 영월뿐만 아니라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지역이 침수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누구나 다 알듯이 환경문제이다. 동강에는 우리나라의 천연 기념물들과 세계에서도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도 많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또 그 것 뿐만 아니라 동강에만 존재하는 꽃들도 많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강에 댐을 만들게 되면 이 모든 것들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동물들과 식물들이 죽게 된다면 우리 고장의 경제적으로도 큰 손해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막기 위해 동강 댐 반대 운동을 했는데 언론이 정부편에 들지 않고, 동강 댐 반대하는 환경단체의 편에 들어 동강 댐 반대 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가 결국에는 환경단체의 승리하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동강을 잘 보존해야 되는데 목사님께서는 보존하는 방법은 동강을 건들지 말고 그냥 지켜본다는 것이다. 자연은 스스로 정화시키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냥 나두어도 살아날 수 있는데 사람이 신경쓰고 그 곳에 담을 쌓고 자꾸 건들면 더 망친다는 것이다. 다만 인간이 할일을 위에서 좋은 물을 흘려보내기 위해 윗물을 적어도 2급수 정도는 만들어 보내 주어야한다는 것이 목사님이 생각하신 보존의 방법이다. 이 외에도 자연에 대해서도 정말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셨는데 그 중 가장 생각나는 말은 동강댐을 만들려는 사람이 피라미 하나 죽는 것 갖고 뭘 그렇게 난리를 피우냐? 라고 말하자 목사님이 그 피라미가 죽고 수달이 죽고, 또 다른 동물이 죽고, 죽고, 하면 결국에는 우리 인간이 죽는 다고 하셨던 말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언제나 정의는 승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연을 더 사랑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자연이 없으면 인간도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된 것 같다. |
장 소 |
주천 큰나무공부방 |
일 시 |
2005.8.6 |
내 용 |
동강댐 백지화 운동에 관해.. |
작 성 |
안다미로 |
오늘은 주천에있는 큰나무 공부방에 갔다. 나는 출발하기전부터 계속 고민을했다. 도대체 왜 공부방이름이 큰나무 공부방인가? 라는 문제 때문이다. 가는 시간이 오래걸려서 핸드폰을 계속 봤는데 위 질문 때문에 핸드폰은 보나마나가 되었다. 나의 질문은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풀렸다. 그 공부방은 폐교를 공부방으로 지은것이었는데 무턱이나 큰 나무가 두그루나 되었다.(족히 몇백년은 되어보았다.) 우리는 목사님을 만나뵈고 공부방을 둘러보았다. 나는 거기서 깜짝놀랬다. 솔직히 밖은 조금 초라해 보였는데 안은 정말너무 좋았다. 컴퓨터실, 도서실, 시청각실 사무실... 그리고 식당까지! 정말 멋진 공부방 이었다. 우리는 시원한 식당에서 인터뷰를 하였다. (말이 식당이지 그 곳은 거의 큰 방 같았다.) 주로 동강 댐건설에 대하여 하였다. 선생님께서는 동강댐건설을 반대하셨다고 하셨다. 그 이유는 참 많았다. 일단은 첫 번째로는 동강이 석회암 지역이기 때문이다. 석회암지역에 댐을 세우면 정말 위험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환경적 문제 때문이다. 동강은 우리나라에서 손꼽혀도 손색이 없을 만큼 뛰어난 환경을 가지고 있다. 8등급의 산림과 정말 휘기한 동물, 식물 깨끗한 물..... 이런것들은 댐이 생기면 파괴가 되기 때문에 댐을 반대하는 이유였다. 세번째로는 경제적인 이유때문이다. 우리는 현재 동강에 놀러오는 관광객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댐이 생기면 관광객은 오지 않을 테고 관광객 덕분에 먹고 살던 많은 사람들이 손해를 입게 된다. 마지막이유는 정서적인 이유이다. 목사님께서는 다음으로 동강을 지키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그냥 간단하게 가만히 놔두면 된다고 하셨다. 우리가 할일은 동강을 건드리지 말고 상류 물을 더러운 물이 아닌 최소한 2급수 정도되는 물을 보내주면 된다고 하셨다. 다음으로는 목사님께서 어떻게 댐건설은 반대하셨는지 어떤 고통을 받으셨는지에 대하여 들었다. 그런데 이부분에서는 내가 정말 오줌이 급해서 똑바로 듯지못하고 그냥 무척 힘들게 하셨다, 언론이 목사님 편을 들었다, 김대중대통령이 결국에는 항복을 하였다, 등 간단간단하게밖에 듯지 못하였다.
영월읍내에 나가면 언제나 볼수있는것이 바로 동강이었다. 매일보고 또보고 계속보았지만 나는 동강댐이 왜 건설되려 했는지, 동강이 왜 소중한지 조차도 못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목사님을 뵙고나서 동강에 대하여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겨우 흥미야?' 이렇게 생각할수도 있지만 혹시아는가? 내가 동강애호가가 될지?? 어쩐지 동강이 새롭게 보이는 것 같다. |
장 소 |
주천 큰나무공부방 |
일 시 |
2005.8.6 |
내 용 |
동강댐 백지화 운동에 관해.. |
작 성 |
손인경 |
전날에 늦게 잤지만 들뜬 마음으로 일찍 일어났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주천이라는 곳을 가게 됬는데 어떻게 늦잠을 잘 수 있겠는가?^-^v 근데 문제는 mp3가 없어져서 지각을 했다는 것이다. 암튼 순조롭게(?) 차를 타고 주천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맑은 아침 햇살을 받으며 주천 "큰나무 공부방"에 도착했서 이야기로만 듣던 목사님을 뵐 수 있었다. 일단 인사를 하고 공부방을 둘러봤는데 정말 좋았다. 우리 공부방보다 좋았다.^-^;; 암튼 근래에 새로 지어진 식당에 가서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영월 동강댐 반대의 주동자이시기도 한 목사님을 만나서 정말 길고 험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영월은 석회암지대라서 댐을 만들면 홍수가 일어나면 석회암의 갱도속에 물이 새 들어가 다른 지역까지 피해를 줄 수 있다. 또 천연기념물이 깔린 영월을 잠겨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말씀에 동감을 하게 되었다. 사실 영월은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은 정말 아름다운곳이 많다. 어라연만 봐도 정말 아름답다. 산이며 나무며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다. 목사님의 말씀에 어느 정도 공감도 하고 화도 났지만 언론들의 후원으로 동강댐 반대를 승리로 이끄신 목사님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동강을 보존해야하는 이유를 말씀하셨는데 그대로 나두는게 보존이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의 손이 닿으면 파괴되기 마련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이렇게 해서 동강댐 이야기는 끝 이났다. 그 다음은 질문이 이어지는데 목사님께 인생교육을 받게 됬다. 이야기중에서 영국사람들의 검소함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①영국사람들은 1년동안 열심히 돈을 번 후 가족들이 한번 모여서 한달이나 6개월정도를 아프리카나 도움이 필요한 나라에가서 봉사하면서 돈을 쓴다고 한다. ②친구집에 갔는데 친구가 할머니댁에 놀러가자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친구집이 별루 잘 사는 집은 아니어서 별 기대는 하지 않고 갔는데 정말 놀래 자빠질 뻔 했다고 한다. 무슨 할머니집이 300개가 넘는 방이 있는 호텔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그들의 절약정신이 투철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들의 삶은 정말 검소했고, 또 검소했다. 난 이야기를 듣고 반성을 하게 되었다. 저런 사람들도 있는데, 18살이 되면 독립해서 돈을 벌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도대체 나는 19살이 되도록 무엇을 하고 살았으며 내가 이룬 것은 무엇이있는가.. 또한 한국사람들의 사치스럼, 한국사람들처럼 옷을 연예인처럼 입고 다니는 나라도 드물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 한번의 충격을 받게 되었다. 다른 나라사람들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정말 내가 너무 한심하고 우물안 개구리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나에게 충격과 반성을 주신 목사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동강에대해서 알지 못했던 것들, 인생에 대한 새로운 것들 정말 감사드린다. 정말 목사님으로 인해 큰나무 공부방이 더욱더 성장하여 아이들의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새로운 경험을 하게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
장 소 |
공부방 |
일 시 |
2005.8.8 |
내 용 |
태평농법 |
작 성 |
신요한 |
오늘은 어떤 기관을 방문하여 목사님을 뵌 것이 아니라 방송으로 박승규 목사님의 삶을 들어 보았다. 박승규 목사님께서는 농촌을 위해 10년간 일을 하셨다고 한다. 박승규 목사님은 신기교회에 부임하신 뒤 교회에서 마을이 협력하고 서로 재밌게 살아가기를 바랬지만 처음에는 성도들끼리만 이루어 졌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박승규 목사님이 점점 노력할수록 마을 주민들은 서로 협 력하고 재밌게 살아갈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목사님은 전교생이 4명 밖에 되지않아 폐교 위기에 처한 마산초교 용천분교를 위해 큰 힘을 쓰셨다. 자신의 아들을 전학 시키는 것으로 시작하여 자꾸 읍내로 아이들을 보내고 있는 마을 주민들에게 마을에 학교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것을 설명하고 설득해서 용천분교의 학생이 34명이나 되게 만들셨다. 그리고 새터 공부방이라는 공부방을 만드셔서 아이들의 제 2의 학교의 역활을 해주셨다. 박승규 목사님께서는 새터 공부방의 아이들을 위해서 목사님의 체면이고 뭐고 다 제쳐두고 절의 스님에게 새터 공부방 아이들에게 다도를 알으켜 달라고도 부탁하셨다. 새터 공부방은 6년째 하고 계신데 이 공부방은 왠 만한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도 나은 것들도 배운다. 새터 공부방은 서예교실,독서교실,음악교실(보통 접하기 힘든 플룻도 배운다고 한다.) 차마시는 법과 예절을 배우는 다도도 배운다. 그리고 박승규 목사님은 학교의 행사같은 것도 잘 참여하시고 마을사람들도 함께 어울려 마을의 잔치는 학교의 축제이고, 학교의 운동회는 마을의 단합대회같은 것으로 이루어 지게 되었다. 이것은 마을에 학교가 있어야 마을이 산다는 안정선 선생님의 말도 다시 생각나게 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농촌을 위해 일하시는 목사님이 가정에서는 아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못 주고 많이 못 놀아준다는 것이 정말 안타깝다. 정말 남을 위해 살려면 가정에서든 어디서든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또 이렇게 방송을 보면서 느낀 점은 우리가 기관을 방문하면서 지역을 위해 일하시는 선생님들을 만나는 것과 방송으로 보는 것과는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직접 방문하여 경청할 때는 직접 눈앞에도 계시기 때문에 잘 들을려고 하는 것 같고 궁굼한 것들은 그 자리에서 질문도 하지만 이렇게 방송으로 볼 때는 직접 방문을 할 때보다 더 딴청도 많이 하고 궁굼한 점도 못 푸는 것 같다. 이런 것들을 볼때 그냥 방송으로 보는 것보다는 역시 직접 가서 들으며 배우는 것이 더 나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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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소 |
태백청소년자활지원관 |
일 시 |
2005.8.9 |
내 용 |
삶 배우기 |
작 성 |
신요한 |
오늘 1시 20분쯤에 태백청소년 자활후견기관으로 출발했다. 우리는 1시 20분쯤에 출발하여 거의 3시 가까이 되서 도착했다. 우리는 청소년 자활센터에 가서 정신애선생님을 만났다. 정신애 선생님은 우리 도담 공부방에 오셔서 프로그램도 하셨었고, 우리도 태백청소년 자활센터에 가서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어서 몇 번 보셨던 분이다. 먼저 선생님께서 정신애 선생님과 공부방이나 프로그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셨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신 다음에 정신애선생님에 대해 소개를 듣고 본격적으로 인터뷰에 들어갔다. 정신애 선생님의 고향은 청주이신데 태백시를 위해 일해 볼 생각이 있는냐고 조언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11년전에 태백시로 오셨다고 했다. 정신애 선생님께서는 처음에 오실 때부터 태백시의 청소년들을 위해 일하신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진폐 환자들을 위해 일하셨다고 한다. 옛날에는 광산에서 석탄을 캐다가 폐에 석탄물질이 들어가서 암에도 걸리고 다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환자들을 간호하는 일을 하셨다고 한다. 그런 일을 4년 정도 하셨다가 이 지역의 어른들에게만 신경쓸 것이 아니라 청소년이 더 문제인 것 같아서 청소년들을 위해 일을 하시기로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이 청소년 자활후견기관은 우리들이 다니는 공부방들과는 달리 나라에서 예산을 잡아서 돈을 주고 지역 청소년들을 위해 만들어진 나라에서 세운 기관이다. 이 청소년 자활센터는 우선 청소년들의 진로를 찾기 위해 프로그램을 진행하신다고 하셨다. 또 그 것뿐 만이 아니라 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하셨다. 태백 청소년 자활센터는 정말 할 것들이 많다 비디오며, 당구장이며, 컴퓨터, 책도 정말 엄청 많다. 그렇게 할 것도 많지만 선생님도 적극적으로 청소년들을 위해 일을 하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리고 정신애 선생님께서 뭐든지 다 무료로 해주니까 아이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무조건 다 무료로 하는 것은 안좋은 것 같다고 하셨다. 뭐든지 다 내가 조금이라도 힘을 써서 해야지 아이들이 가치를 느끼고 도와주는 분들에게 감사를 느끼지 그냥 다 공짜로 해주면 가치도 못느끼고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도 안하고 안 좋다는 것 같다. 나도 작은 일에도 나를 격려하고 지지하는 분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할 수있다는 것을 깨닫고 항상 감사하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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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소 |
태백청소년자활지원관 |
일 시 |
2005.8.9 |
내 용 |
삶 배우기 |
작 성 |
박장미 |
청소년자활센터에 다녀 와서...
1-1 봉래중학교
태백에 있는 청소년자활 센터에 갔다. 그 곳에서 정신애 선생님을 만나 뵙게 되었다. 첫인상이 참 좋게 보였다. 선생님께서 하시는 일은 이 곳 청소년들을 위해서 일을 하신다고 하신다 그 곳이 페광지역이 되고 사람들은 진폐환자가 된 사람이 많고, 자신의 삶을 포기한 사람도 보았다고 하신다. 그런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했다고 하셨다. 지금은 그 지역(태백) 청소년들을 위해서 일하고 계시지만 .. 힘든 점도 많이 있다고 한다. 청소년들과 자신과 멀어졌다고 생각 하고, 그 아이들을 잘알고 싶은데 아이들이 꺼려하고 싫어 할 때가 있다고 한다. 동감하는 부분이다. 나도 어쩔 땐 공부방을 하는게싫은 적도 있다. 어떻게 보면 하기 싫어 하는게 아니라 .. 잠시 귀찮아질때가 있어서 그러것 갔다. 조금만 이해해주시고 하면 사이가 좋아질 수도 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도 독일에 가게 되어서 축하한다고 격려도 해주시고, 부럽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들으니 왠지 독일 간다는게 뿌듯하고 좋았다. 선생님은 참 좋으신 일 을 많이 하시는 것 같다. 살아오시면서 지금 까지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태백 지역의 나쁜 환경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시간적 투자를 많이 하신 것 같다. 시설도 아주 좋았다. 청소년 들이 사용하기엔 아주 좋았다. 당구장이며 영화보는곳, 노래방, 도서관등...
이렇게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 안 보이는 곳에서 어떠한 단체에서 주위의 사람들과 서로 도와 가겠다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과 도와가면서 살아가야된다.. 나도 커서 휼륭한 사람이 되어서 서로 나누는 서로를 믿고 지지해주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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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소 |
태백청소년자활지원관 |
일 시 |
2005.8.9 |
내 용 |
삶 배우기 |
작 성 |
안다미로 |
오늘은 태백청소년 자활후견기관이란 곳에 갔다. 나는 도착할 때 까지도 그 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몰랐다. 도착을 하여서 정신애선생님을 만나뵜는데 많은 아이들이 선생님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왠지 나만 동떨어진 기분 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정신애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단 먼저 무슨 일을 하시느냐고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여러 가지 설명을 하셨지만 간단히 줄여서 태백시의 청소년들이 올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문화체험과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주신다고 하셨다. 다음으로는 이 일을 하신지 얼마나 되었는지 여쭈어 보았는데 무려11년동안 하셨다고 하셨다. 다음은 선생님께서 가장 기쁘실때와 힘드실때를 여쭈어 보았는데 선생님께서는 기쁘실때는 아이들이 잘 성장을 해 줄때 힘드실때는 아이 들이 선생님의 마음을 모라주고 불참여, 말을 듯지 않는 등의 행동을 하였을 때라고 하셨다. 그리고 요즘은 아이들이 기관의 물건을 자신들이 막 써도 된다고 잘못인식하여서 물건을 막 써서 힘들다고 하시고 우리보고는 그러지 말라고 하셨다. 다음으로는 우리가 궁금한것을 집접여쭈어 보았는데 나는 주로 예산에 대하여 여쭈어 보았다. 귀찮은 질문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답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나는 오늘깜짝 놀랐다. 일단 청소년자활후견기관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오늘 처음 알게 되었고 그런 것이 서울에 있지 설마 태백같은 곳에 있을 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핏.... 영월에도 한곳정도는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 놀란 것은 우정수 선생님 이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옆에 서 몸으로 부딫치고 같이 있는 것이 그렇게 힘든 것인지 몰랐다. 그런데 오늘 그 선생님 말씀은 그렇게 하는 것은 정말 힘들다고 하셨다. 그래서 오늘 말하고 싶었던 것인데 말을 못 하였다. '우정수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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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소 |
태백청소년자활지원관 |
일 시 |
2005.8.9 |
내 용 |
삶 배우기 |
작 성 |
손인경 |
태백으로 가는 길은 정말 즐거웠다.
예전에 한번 가본적이 있는 태백자활후견기관을 간다니 기분이 좋다. 태백에 도착해서 정신애 선생님을 만났다.. 저번에 뵜었는데 살이 많이 빠지신것 같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선생님은 11년전에 태백으로 오셨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진폐환자들을 위한 일을하시고, 그 분들 뿐만 아니라 태백에는 청소년들 또한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아시고 청소년 사업에도 뛰어들으셨다고,, 공부방과 다른 청소년들을 위한 프로그램 진행과 후원으로 11년동안 태백에서 살면서 결혼도 하시고 애기도 낳고 하면서 많은 정도 들었다고 하신다. 선생님께서 가장 기쁠때는 예전에 자신이 도움을 준 친구가 찾아와서 옳은 길로 가 이제는 떳떳한 삶을 살때가 가장 기쁘며, 가장 힘들때는 친구들이 모두 태백을 떠나려고 할때, 선생님의 말씀에 서로의 의견이 충돌할때 힘드시다고 하셨다.
또한 학생들의 "당연히"라는 생각때문에 태백자활후견기관의 물건이 많이 망가지기도 한다고 한다.
우리는 독일 여행이 즐겁고 행복한 여행이 되길 바란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끝으로 이야기를 마쳤다. 선생님의 짧고 간략한, 재미있는 말씀을 들으며 기분좋게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선생님을 보면서 얼굴이 환하다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아이들과 맞추려는 선생님의 모습이 이야기를 듣는 내 마음을 더 편안하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선생님들을 만나면 이야기도 길고 우리가 평소에 접하지 못했던 이야기로 글을 쓸때 부담을 느낄때가 많았는데 정신애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부담을 덜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더 기분좋게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 선생님의 꿈과 소망이 이루어지시길 기도한다. (선생님이 이 일을 쉴때 여행도 하고, 좀 더 공부하여 교수직도 하고 싶다고 하셨다. 선생님은 그냥 꿈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정말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글을 늦게 쓰게 됬지만 그래도 선생님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뵜으면 한다. 오늘 하루도 사고나지 않고 무사히 집에 도착 할 수 있도록 지켜 주셔서 감사드리고, 우리를 챙기시느라 수고하신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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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소 |
강원랜드복지재단, 흑빛지역아동센터 |
일 시 |
2005.8.10 |
내 용 |
삶 배우기 |
작 성 |
신요한 |
오늘도 태백 쪽으로 갔다. 태백 쪽으로 가다가 강원랜드 입구에서 멈췄다. 우리는 강원랜드 입구 쪽의 있는 휴식처에서 선생님에게 설명을 들으면서 김영민선생님을 기달렸다. 조금? 기달리니까 김영민선생님(사회복지사)이 오셨다. 김영민선생님이 오셔서 먼저 선생님소개를 들었다. 선생님은 어렸을 때 정말 어렵게 사셨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덜 어렵게 살았다. 매사에 긍정적으로 사신 것 같다. 우리는 선생님의 소개를 듣고 선생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서 들었다. 김영민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을 유럽연수 보내는 일을 당담하신다고 하셨다. 유럽연수에 가는 아이들은 대부분 옛날 광산에서 일했던 광부들의 자녀들이 라고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유럽연수에 가는 청소년들이 모이는 일이 있는데 한 여자아이가 올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김영민 선생님께서는 그 여자아이보고, 오라고 하는데 자꾸 오지 않자 "너 유럽에 안가도 좋으냐?" 이렇게 물어봤다고 하셨다. 그러자 그 여자아이가 안가겠다고 말했다고 하셨다. 김영민 선생님께서는 그 좋은 기회를 마다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서 그 여자 아이의 고모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모는 당연히 보낸다고 하고 그 아이와 상의를 했지만 그 아이는 또 안간다고 하였다. 김영민 선생님께서는 정말 안타까우셔서 다시 한번 전화하여 "너 같은 놈은 꼭 가야해" 이렇게 말하시고 그 여자 아이도 오게 됬다고 하셨다. 김영민 선생님께서 그아이가 안간다고 해서 "그래 가지마라"이러시고 끝냈으면 그 여자 아이가 자신의 미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여행도 못 가고 선생님과의 관계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그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시고, 적극적으로 유럽연수에 참가하게 하셔서 그 아이의 미래에 좋은 영향이 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진심으로 그 아이를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하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영민 선생님께서는 이 이야기 외에도 노인복지, 사회복지등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우리는 김영민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고한의 흑빛공부방을 방문하였다. 우리는 흑빛공부방의 선생님을 만나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먼저 각자 자기소개를 했다. 그리고 선생님께 흑빛공부방에 대해서 들었다. 흑빛공부방의 제일 큰 자랑은 선배들이라고 한다. 흑빛공부방의 선배들을 흑빛공부방을 떠나서도 정기적으로 흑빛공부방에 와서 활동을 하고, 또 흑빛공부방의 운영차도 사줬다고 한다. 또 흑빛공부방은 학생들에게 기준을 세워서 장학금도 준다고 한다. 이것 뿐만아니라 여러가지 프로그램도 알려주시고, 행사에 대해서도 알려주셨다. 우리는 흑빛공부방에 대해서 듣고 또 흑빛공부방의 앨범도 봤다. 그리고 집에 돌아갈 때는 라면과, 도시락통, 4각미니 휴지통도 주셨다. 이렇게 흑빛공부방을 방문 함으로써 우리 공부방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이 기관방문 마지막 날 이였다. 그 동안 정말 기관을 방문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운 것 같다. 독일에 가서도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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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소 |
강원랜드복지재단, 흑빛지역아동센터 |
일 시 |
2005.8.10 |
내 용 |
삶 배우기 |
작 성 |
박장미 |
태백 강원랜드의 출입구 벤치에서 김영민 사회복지사 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분이 하시는 일 은 특수 차량을 가지고 가서 어르신들을 목욕 시켜드리는 일 ,그 지역의 폐광지역에서 일하신 분들 지금은 퇴직 하고 , 일을 안하고 있는 분의 자녀들의 기준으로 해외여행을 보내주는 이러한 일들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그 외 에 1차에도 갔다 왔다고 한다. 우리도 1차는 다녀왔다. (일본으로..) 그리고 각 지역에 중, 고등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고 한다. 인경이 언니도 강원랜드에서 장학금을 받았고, 내 친구는 우리 학교에서 장학금을 (강원랜드에서 지원) 받았다. 좋은 일을 많이 하신다. 인상도 좋으시고 ,,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재미있었던것 같다. 그리고 아이들과 대화하고 서로를 알아준다고 한다. 그 다음은 흑빛 공부방에 갔다. 그 곳 에서 선생님이 반겨 주셨다. 선생님께선 흑빛 공부방을 설명해주었도 앨범도 보여주시고 ,, 있었던 일들을 상세하게 알려 주었다. 자랑도 하셨다. 흑빛 공부방에는 그 곳의 선배들이 언제 언제 와서 서로 체육 대회도 하고 캠프도 같이 하고 많은 걸 도와준다고 한다. 밖에 있는 흑빛공부방이라는 스티커가 붙여져 있는 봉고 차 한대도 선배들이 준 거라고 하셨다. 그말을 듣자 나도 나중에 크게 되면 도담 공부방을 찾아서 좋은 일을 하고 후배들에게도 떳떳한 선배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이 났다. 그 뒤 선생님 께선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 공부방에 들어 올 때에는 부모님에게 말씀드리기를 "공부를 위해서 우리 공부방을 보낸 것이라면 차나리 학원을 보내시라고......" 그말을 듣자 아~~ 정말 이 공부방은 공부을 배우는 터전이 아니라 서로를 믿고 서로를 지지해주고..하는 인생의 삶을 배우는 아니 서로를 통해 알아 갈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곳은 선생님이 도와주는 그러한게 거의 없었다. 축제도 자신들 끼리 단합 하여서 캠프도 여러가지 프로그램들도 말이다. 그런 점이 보기에 좋은 것 같다고 하셨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독일을 가서 많이 것을 배워와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많이 알려주라고.. 잘 다녀오라고 말씀 하셨다. 그 말에 정말 큰 격려가 됬고, 가서도 열심히 하고 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흑빛공부방의 장학금의 지급기준은 공부를 하고 싶은데 돈 때문에 못할 때, ....... , 가정 형편이 안좋아서...등의 세가지의 기준이있다고 한다. 좋은 기준 같다.
오늘이 마지막이었는데 이 같이 한 날들을 통하여서 아름다운 삶, 그 지역의 경제 또 환경경문제 다른 청소년 문제에 대해서 많이 알수 있어서 좋았고,. 돌아다니면서 서로 함께 하면서 느낀게 많았던거 같아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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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소 |
강원랜드복지재단, 흑빛지역아동센터 |
일 시 |
2005.8.10 |
내 용 |
삶 배우기 |
작 성 |
박은미 |
점심을 먹고 1시쯤에 출발해 태백의 강원랜드 앞 벤츠에서 김영민 사회복지사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김영민 사회복지사님은 어릴때 가난하게 자라셨다고 하신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해서 태백에 오게 되었는데 태백에 사회복지사가 한명도 없어서 황당 하셨다고 하신다. 하지만 요즘은 몇명 있다고 하신다. 그리고 현재 김영민 사회복지사님은 강원랜드에서 지급해주는 돈으로 중학생 부터 고등학생까지 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폐광지역의 아이들 중 부모님이 광부이시거나 퇴직을 하신 분이시면 유럽쪽으로 여행을 보내주는 일을 하신다고 한다. 정말말뜻깊은 일을 하시는 것 같다. 그런데 김영민 사회복지사님이 안타까운것은 장학금을 준 아이들을 직접 만나보고 많이 이야기 해보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우시다고 한다. 장학금을 받는 학생이 워낙 많다 보니까 그런것 같다. 인경이 언니도 거기서 장학금을 받았는데 그 분은 처음에는 잘 못 알아보시더니 나중에는 기억이 난다면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 장면을 보았는데 정말 그러신것 같다. 그리고 김영민 사회복지사님은 장학금을 주고 그사람이 나중에 대학 가서도 연락이 되는 그렇게 하고 싶으시다고 하셨다. 그리고 김영민 사회복지사님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돕는 다고 한두명이서 20명..30명정도를 대리고 돕는다는게 별로 그렇게 좋게 보이지는 않는다고 하셨다. 하긴 그런것은 무리 일 것 같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게 소수의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을 돕고 있어서 많이 힘드실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분들을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은 돌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흑빛공부방으로 향했다. 다음은 흑빛 공부방에 갔다. 그곳에서 기타를 배우고 있는 아이들을 엿볼수 있었다. 그리고 흑빛공부방 선생님들을 만났는 데 흑빛공부방은 가장 자랑스러운것이 선배들이 있어서라고 한다. 그리고 선배들이 봉고차도 사 주셨다고 한다. 그리고 흑빛공부방은 많은 프로그램을 한다고 한다. 한우리 한기쁨,종이접기 교실, 영화만들기,컬러 믹스......등 많은 프로그램을 한다고 한다. 그 프로그램들 한번씩 다 해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공부방을 공부를 목적으로 보내시는 부모님이 계시면 이렇게 말씀드린다고 한다. "저희 공부방은 공부를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공부를 목적으로 하시면 학원으로 보내십시오." 이렇게 말이다. 그런데 우리 공부방은 삶을 배우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게 우리 공부방과 흑빛공부방과의 차이점인 것 같다. 오늘도 좋으신 분들께 좋은 이야기를 들어서 좋고 폐광지역을 살리기 위해서 정말 많은 분들이 노력을 하시는 데 폐광지역인 태백이 도박 도시가 아니라 많은 직업이 생겨서 모든사람들이 광산을 할때 처럼 잘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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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소 |
강원랜드복지재단, 흑빛지역아동센터 |
일 시 |
2005.8.10 |
내 용 |
삶 배우기 |
작 성 |
손인경 |
고한으로 가서 강원랜드 큰 문앞에서 김영민 사회복지사님을 만나게 되었다. 김영민 사회복지사님은 내가 강원랜드에서 장학금을 받을때 뵜었던 분이었다. 처음에는 어디서 뵌거 같다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나중에는 장학금 받았을때 뵜던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됬다. 내가 선생님의 말씀을 녹취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선생님 뒤에서 이야기를 들어서 잘 못 들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꿋꿋이 들었다.. 선생님 말씀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학생들을 뽑아 여행을 가는데 한 학생이 나오질 않아 전화를 했는데 그 학생이 작은 고모집에 간다고 못간다고 한다. 그래서 선생님이 전화를 끊고 작은 고모와 이야기를 나눈 후 다시 학생에게 전화를 걸어 하신 말씀에 나는 자지러지는 줄 알았다. "너 같은 놈은 반드시 와야해!" 라는 선생님의 간결하고도 짧은 말씀에 정말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만약에 선생님께서 오지말라고 했으면 그 학생은 주어진 기회를 잃어버렸을텐데.. 지금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넓어지고 좀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어렵게 사셨다는 선생님은 그래도 막내라서 덜 어려웠다고 하셨다. 참 긍정적인 말씀이셨다. 어렵게 자랐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도 가고 결혼도 해서 살림을 꾸리다가 이 곳으로 오게 됬는데 정말 황당하셨다고 한다. 사회복지사가 없는 태백을 보고 정말 어이없으셨다고 하셨다. 그래서 이곳에 자리를 잡고 청소년들을 위한 장학금 후원과 폐광지역에서 광부들의 자녀였던 아이들을 대부분으로 유럽여행을 가는 일을 담당하신다고,, 가장 안타까운 일은 장학금을 주는 아이들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싶고, 연락이라도 하고 싶지만 서로 바쁘고, 많은 학생들을 일일이 많날 수 없다는게 안타까우신 모양이다. 그래도 많은 학생들을 후원하시는 선생님을 보면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인사를 나누며 흙빛 공부방으로 다시 출발했다. ====================================================================================== 흙빛 공부방에 도착했다. 선생님께서는 반갑게 맞아주셨다. 우리는 수박을 먹으며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흙빛 공부방의 제일 큰 자랑은 오래된 선배들이 있다는 것이다. 선배들이 돈을 모아 흙빛 공부방 봉고도 사 주시고, 일년에 몇 번씩 와서 축제나 운동회도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흙빛공부방은 여러가지 프로그램이 상당히 많다. 한우리 한기쁨,종이접기 교실, 영화만들기,컬러 믹스등 많은 프로그램이 있다. 도담공부방도 많지만 이곳은 학생들이 어우러져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인 것 같다. 또 흙빛 공부방은 공부를 목적으로 하는 공부방이 아니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하지만 고3학생들의 진로와 늦었더라도, 학교 담임선생님과 싸우더라도 학생이 잘 하는 것 소질을 키워주는데 힘쓰신다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하실 때 약간 마음이 쏠리기도 했었다...^-^;; 암튼 흙빛과 도담은 다르지만 학생들을 위한 곳이라는 점에서 하나가 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자신감을 갖는것] 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물쭈물하지 말고 자신을 생각을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또 장학금을 받았을때 기죽지 말고, 그렇다고 당연하게 생각하지말았으면,, 이게 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바라는 것이라고 하셨다. 비록 공부를 목적으로 하지 않지만 학생들의 미래를 생각해주는 흙빛공부방을 보면서 선생님들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 만난 김영민 선생님과 흙빛공부방 선생님을 만나서 따뜻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기분 좋았다. 삶의 방식을 배울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만남을 위해 수고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