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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상 서원문 수련법은 있는가?
길타원님 임윤길교도를 먼저 소개합니다. 길타원님(임윤길교도)은 원래 재래 사찰에 불심이 장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득병을 하여서 병원에 갔더니,
6개월 시한부 사형선고를 받으신 불치병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절에 가서 불상 앞에서 헌배를 올리다가 죽을 폭 잡았습니다. 절에서 지극 정성으로 헌배와 기도를 하다가 죽자고 하고..... 여름이라서 땀으로 젖으면 갈아 입을 몸뻬를 7벌 가지고 갔습니다 .
강원도 작은 암자를 아주 전세를 내어서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하루에 3천배로 시작하여서 한달후에는 하루에 1만배씩를 올리면서 기도를 하였는데...
6개월 마치는날에 마직막 헌배를 올리는데 못일어나겠더랍니다.
"에라! 죽을바에는 마지막 절을 채우고 죽자.."
마지막 절을 올리고 일어나는데 몸이 가뿐하더랍니다 뜻밖으로 난치병을 쾌하게 치료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암자에서 마지막날밤 꿈에 큰 도인(한복 회색두루마기)을 만나 뵈웠습니다. 그분이 일러 주신 대로 묻고 또 묻고 익산역을 내려서 원불교 총부에 오게 되었습니다. 총부에 와서 조실에 대종사 진영을 보고 깜짝 놀랬습니다. 강원도 암자에서 꿈에 뵈온분이자 총부로 가라고 일러 주신분이 바로 대종사님인 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후에 대산종사님 권유로 총부 상주 선원에 와서 2년간 재가교도 전문 훈련을 받았습니다. 후에 대산종사님 권유로 총부 상주 선원에 와서 2년간 전문 훈련을 받았습니다. 저(헌산 박남주)는 그 당시에 상주선원 강의를 출강하면서 인연이 되어 길타원님 전후 사정을 알게 되었고 듣게 되었습니다. 우선 인상 깊으신 것은 도문(道門) 보다 영문(靈門) 열리신 도인이었습니다. 영가도 잘 보시고 전생사도 잘보시고..때로는 앞일도 보시고.... 길타원님이 처음에 총부 정문에 들어서니 영가들이 꽉 차서 걸어 다닐수가 없더랍니다. 몇 년을 지나서..(후일에 아들 김도0교무를 학사 편입하여 교무로 출가 시켰습니다.) 대산종사는 특별히 임교도님에게 길(吉)타원 법호를 내리셨습니다. 그분은 일원상서원문을 10만 독을 하기로 작정하고 기도와 독경에 용맹정진 하였습니다. 매일 1000독씩 3개월 쉬지 않고 하셨습니다. 길타원님이 밝히신 서원문 독경의 공덕과 위력입니다. 1)독경에 주력하면 천지기운이 내몸에 어린다. 2)독경에 주력하면 정신이 맑아진다. 영문이 흐려지면 독경에 주력한다. 3)사심(邪心)이 겉히면서 원하는 일들이 쉽게 이루어진다 하셨습니다.
우리도 일원상 서원문 독경에 주력하면 어떤 위력이 생길까요? 오늘 주제입니다
1.일원상 서원문을 발표하신 과정은 어떠하였는가요?
원불교 교단사에 일원상 봉안은 언제 정식으로
대각전(법당) 불단에 봉안하셨는가?
원기 20년 4월에 익산 총부 대각전이 준공되었고,
그 정면 불단에 심불 일원상(心佛一圓相)이 정식으로 봉안되니,
비로소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확정 시행하신 것입니다.
일원상 서원문은 어제 발표되셨는가?
원기 23년 11월 동선에는 심불 일원상 봉안법을 정식으로 선포하시고,
[심불 일원상 내역급 서원문]을 친히 제정하시어 발표하시었습니다.
대종사 열반 5년전 일입니다.
초창당시에는 일원상 서원문이라고 하지 않고
[심불 일원상 내역급 서원문]이라고 하셨습니다.
2.일원상 서원
문을 발표하게 된 배경
일제 치하, 익산 총부에서 상주하며 원불교(불법연구회)를 감시하던순사 황가봉씨가 어떻게든 대종사님의 흠을 잡아야 되니까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결국, 대종사님께 감복이 되어 나중에는 제자가 되어서
'황이천(二天)' 이라는 법명까지 받았습니다.
한번은 어떤 집에서 생일을 한다기에 황이천씨가 따라갔답니다.
그런데 그 때는 초창기니까 불교처럼 독경 같은 것이 없어서
전부 입정만 하고 앉아 있더랍니다. 초상집에서도 마찬가지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황이천씨가 답답해서 말을 했답니다.
"대종사님, 우리도 불교처럼 경을 읽는 것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곳에 와서 기도하고 의식을 진행할 때 읽을 수 있는 것 말입니다."
대종사님께서 "그래, 그럼 만들어야지." 하시고는
일원상서원문을 호롱불 밑에서 밤이 깊도록 제정하셨다고 합니다.
대종사 서원문에 대하여 특별히 하신 말씀은 없었습니끼?
대종사님께서 [난리가 나서 다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일원상서원문 하나만 남겨두면
내가 와서 다시 법과 회상을 펼 수 있다]고 말씀하시었다.}
(대산종사 법문)
3.서원문의 핵심은 어디에 있는가? 먼저 순서를 바꾸어서 생각하면 될것입니다. 1)일원의 체성에 합하는길입니다. 어떻게 합하는가? 일심으로 독송하면 망념이 쉬고...그러면 우주의 본성에 하나가 됩니다. 분별 사량심.모든 분별심이 끊어지면 우주의 본체에 하나가 됩니다. 즉 천지여아 동링체의 경지입니다. 2)위력을 얻는길입니다. 망념이 쉬고 사심이 끊어지면 위력이 생겨납니다. (대산종사 정전대의.서원문 주해 참고)
4.서원문 독송의 일화
돈 일원이 그렇게도 귀한 것인지 ......
균타원님께서 처음 총부에 와서 전무출신 서원하고 식당 감원생활을 할 때,
그때가 대종사님께서 일원상서원문을 발표해주시어
모두들 틈 나는대로 열심히 외우고 있을 때라서,
오나가나 사람들이 ">"일원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소리를 듣고
"[원불교(불법연구회) 사람들은 돈 일원이 그렇게 귀한 것인지
일원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일까]하고
(오죽이 돈이 없으면 돈 일원 타령과 주문을 외울까..)하고
다른 선진님께 용기를 내어서 일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 대종사님께서 일원상서원문을 내려주시어
(모두들 그 서원문을 외워라 )"
말씀을 해주시면서 [너도 베껴서 외우라]하시기에<
일원이 무어래요]하고 물었더니
일원은 우주의 진리의 본체를 말한다
우리의 마음고향 자리를 가리킨다 너도 외어 보아라]하셨다고 한다.
<이진하교무 설교집 >
5.일원상 서원문 독경! 위력이 있는가?
1)信타원 김혜성교도의 서원문독경
중앙일보 홍석현회장의 어머니인 信타원 김혜성씨가 40대 때 일이다
그 당시 암에 걸려 거의 생을 포기했다고 한다.
아까운 교도분이 암으로 죽어 간다고 소문을 들으신
훈타원 양도신종사님이 찾아 가셨다. 그
런데 훈타원 양도신법사님이 병문안을 가서 보니까,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살아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훈타원님께서 "당신은 눈이 살아있으니 안 죽습니다.
일원상서원문을 하루에 200독씩만 외우시오. 그러면 반드시 암을 이겨낼 겁니다.
꼭 살겁니다."하고는 희망을 주고 가셨다고 한다.
따라서 김혜성씨가 이때부터 하루에 일원상서원문을 200독씩 외우기 시작하여
그 때 죽는다고 했는데 80세가 넘은 지금까지 살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나이가 드셔서 하루에 200독은 못하고 60독만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늘 하시는 말씀이 "저는 일원상서원문을 외우고 다시 살아났습니다.
지금은 천지기운과 하나되어 살고 계십니다."라고 하신다.
< 원기 88년 제7차 전무출신훈련에서 관타원 원장님 주제강의 일부>
2) 김진권교도님의 서원문독경
저가 남원교당을 내왕하는데
양산종사님께서 교무로 게시었습니다.
정초가 되어서 교도님들이 신앙담을 하시는데
김진권 교도님도 신앙담을 하신는것을 보았습니다.
당시에는 무슨 말씀인지를 잘 몰랐습니다.
당시에 김교도님께 직접 받들었던
여순 반란 사건을 겪었던 이야기를 올립니다.
김진권교도님은 현재 수도원에 계시는 친타원 김봉식 원로님의 친오빠로서
생존해 계시면 95세 정도이시다.
당시 김진권 교도님은 남원읍 광한루 부근에서 조그만 잡화상을 경영하고 계셨다.
신발도 취급하셨는데 신발을 도매로 구입하기 위하여 기차를 타고 여수로 갔었다.
남원에서 여수는 1시간 거리였다.
여수에서 시장을 보던 중 빨치산 공비들의 여수반란사건에 휩싸이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붙잡혀서 산속으로 이끌려 가게 되었고,
큰 구덩이에 한줄로 죽 늘어서서 총을 쏘아 큰 구덩이에 떨어지면
묻어버리게 되어 있었다.
이때에 김진권 교도님은 대종사님을 생각하면서
일원상 서원문과 반야심경을 독송하고 있었다.
일원상 서원문을 독송 할 때마다 마음의 평화가 ?아왔고
생사도 무섭지 않았다. 일원상 서원문을 염송할수록 죽지 않을 것만 같아서
지극정성으로 송경을 하였다.
이때에 인민군이 오더니 너무나 태평한 얼굴에
“당신은 무슨 주문을 외우고 있소?”하고 물었다.
그래서 “원불교 주문을 외우고 있습니다.”고 했더니
인민군 왈:나는 종교를 모르오만 당신의 얼굴 표정을 보니
죄짓지 않고 산것 같소 하면서
김진권씨를 끌어내고 나머지는 총으로 다 쏘아버린 것이다.
선혈이 낭자하고 비명이 처량하여 계곡을 덮으니 모두가 전멸을 한것이다.
김진권 교도님은 그 충격에 많이 놀랐지만
평생 일원상 서원문 송경을 놓지 않고 살면서 생활에 굽이굽이
어려운 경계를 무사히 넘기면서 남원교당 요인과 회장직을 역임하고 열반하셨다.
김교도님은 키가 작으시고 앞이마가 벗어지셨으나
항상 후덕하고 인자한 얼굴로 교당내왕을 하신 기억이 새롭게 납니다
김교도님이 그렇게도 정진 적공하셨던 일원상 서원문!
우리도 정진적공합시다.
사례3.
1983년 신촌교당에서의 일이다.
당시 신촌교당의 교무는 각타원 장경진(覺陀圓 張敬眞) 교무였다.
3월4일 새벽 6시경 신촌교당에 전화가 걸려 왔다.
아주 젊은 이경숙이라는 교도가 갑작스럽게 죽었다는
소식을 그의 형부가 전해 왔다. ...상가집에 가서 보니 죽은 경숙이가
자신에게 오려다 되지 않으니
언니를 영매 삼아 자신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교무는 처음 보는 경숙의 언니를 향하여 말했다.
「아이쿠, 너 경숙이지. 네가 어쩌다 그렇게 되었어?」
교무가 아는 체를 하니까 언니(동생 경숙이 목소리로)는 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끔 발작을 하던 언니(경숙)가 처음 보는 교무님께 경숙이의
죽는 순간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교무님, 저는 안 가려고 안 가려고 했는데 할머니가 저보고
가자고 가자고 해서 끌려갔어요.」
경숙의 언니는 자신의 일을 얘기하듯이 슬피 말하고 엉엉 우는 것이었다.
교무님이 가족 모두를 자리에 앉게 하고 함께 1시간 정도 독경을 하자
영가의 언니는 제 정신이 돌아오고, 오히려 반문하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어?」
초상을 치른 다음 날 교무는 교당의 문밖이 소란하여 방안에서 나왔다.
그런데 경숙의 언니가 지난번과 같이 발작하여 남편과 아버지의 부축을 받으며
교당 문을 들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찾은 교당을 언제나 드나들었던 집처럼
교무의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이었다. 교무는 말했다. 「경숙이가 웬 일이야?」
「교무님, 절 데리고 오지 않고 왜 혼자 왔어요?」
「왜, 집에 잘 꾸며 주고 왔는데, 또 남편은 어쩌고?」------------
이렇게 독경을 하고 나면 경숙 영가는 언니의 입을 통해
교무님께 죄송하다고도 하고 배가 부르다고도 했다. 교무님은 경숙 영가의
그런 말에 괜찮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독경은 곧 법식이라고 일러주었다.
영가는 교무님께 고생스럽게 여러 가지 독경을 하지 말고 대종사님이 만드신
일원상 서원문만 해줘도 배가 부르다고 했다.
그래서 그 이후 교무님은 일원상 서원문을 3독 하는 것으로
독경을 마치곤 했다. (이하생략)
사례4.
죽은 군인 귀신을 천도하는데...
교무님 한 분이 아버지가 물려 준 돈 몇천만원으로
춘천교당 부교무로 있으면서
잘 알던 가평에 건물 전세를 얻어 교당을 냈습니다.
그런데, 그 교무님이 암에 걸렸습니다.
내가 기왕 죽으면 뭐 하려고 병원에서
죽어 원불교 공사나 열심히 하다가 죽지."하고는 가평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군인 중에 춘천교당 학생회에 다니던 제자가 한명 있었는데
그 부대 병사들이 저녁마다 귀신이 달려들어
죽을 지경이라며 교당을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교무님이 이 영가의 이름을 가져오라고 해서 49재를 지내고
100재까지 지냈습니다.
그런데 재를 지낼때는 물론 재가 끝난후에도 영가를
위한 축원 일념으로 일원상 서원문 독송을 틈나는대로 올렸습니다
일원상 서원문을 올릴때마다 마음이 더욱 뭉처지면서 영가를 위한
염원도 더욱 강렬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꿈에 영가가 나타나 자기 시체 묻어진 데를 가르쳐주 었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면 저리 떠내려 갔을 것 같은데 정작 파 보니 반대쪽에
가서 묻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전 국립묘지에다 갖다묻고 나니까
부대가 편안해졌답니다. 그 뒤로 부대 내에 절이 하나 있는데,
원불교 교무님이 와서 이 절을 마음대로 하라고 해서 군교화가 날로
일취월장한 때가 있었습니다.
7.서원문을 많이 염송하여라 (대산종사)
(일원상 서원문 독송의 위력은 특별하니라)
대산종사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려서 한때 비몽사몽간에 이상하게 생긴
잡귀들이 접근하게 되었다, 여러주문을 들여대도 물러서지 않더니만
일원상 서원문 독송을 하였더니 스스로 다 물러 서고 잠잠하더라,
그래서 일원상서원문 독송의 위력은 특별한 것으로 알았다
일원상 서원문을 많이 염송하도록하라
망념이 쉬면 우주의 진리의 체성에 합할것이고
사심이 없으면 위력이 나타날것이다
결론입니다.
일원상 서원문 수련법! 어떻게 하는가?
신비한 般若心經 수련 이야기 (감성 지능 EQ)를 한국에서 최초로
저술한 황태호씨의 이야기이다
그는 여러 방송사에 명특강을 하고 있는 분이며, 저서만도 20여종이 된다
황태호씨 말이다 내가 6살 때 저녁을 먹고 난후 숨이 끊어저 죽은 것이다.
그때만 해도 의사가 없는 시골인지라 침구사가 부랴 달려 왔지만,
이미 황천문을 넘어 섰다며, 침 한 대도 놓아주지 않고 가버렸다
어머니는 새옷으로 갈아입혀 당신의 잠자리에 아들을 눕혀 놓았다.
그리고는 한겨울 찬물을 길어다가 부엌에서 목욕을 한
어머니는 먼길 가버린 내 앞에서 반야심경을 독경하셨다.
잠시 잠깐도 쉬임없이 날밤을 꼬박 새우며.......
다음날 새벽 일찌감치 죽은 나를 산으로 내다 버리려는 순간
마치 한숨 푹 잘 잔 것처럼 꼼지락 거리며 되살아나 났다는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어머니의 장장 8시간에 걸친 (반야심경)독경 덕분에 죽었던 내가 되살아났다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며칠후 어머니 손을 잡고 암자에 갔다.
스님 앞에서 무릎 꿇고 배운(반야심경)을
나는 지금까지 49년 동안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수련해 오고 있다.
명상과 참선을 통하여 깨친바를 <반야심경 수련 5대비결>을 체계화 하여
108가지 성공 비법을 책으로 내놓는다.
49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반야심경 수련을 하여
온 나로서 반야심경으로 성공할 수있다는 <성공>의 신념을 굳게 갖고 있다.
다음의 다섯 가지 반야심경 수련 방법이 그대를
사랑과 행복 그리고 성공의 주인공이 되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1.독경(讀經) / 입으로 소리를 내서『반야심경』을 읽는다.
2.견경(見經) / 『반야심경』의 문자를 눈으로 바라본다.
3.사경(寫經) / 『반야심경』의 문자를 손으로 베껴 쓴다.
4.묵독경(默讀經) / 『반야심경』을 소리내지 않고 속으로만 읽는다.
5.문경(聞慶) / 『반야심경』을 테이프나,씨디등 녹음을 귀로 듣는다.
다섯가지 모두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인연 따라
마음 끌리는 대로 평소에 습관이 되도록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5대 비결을 100일 동안 지극정성을 들여 수련하면
그대에게는 놀라울 정도로 대운(大運)이
다가오면서 어떠한 소망이라도
반드시 실현하게 된다.
그만한 신비로운 힘이
반야심경 수련에는 있는 것이다.
일원상 서원문 수련법일원상 서원문 수련법도 마찬가지입니다
1.독경(讀經) / 입으로 소리를 내서『일원상 서원문』을 읽는다.
2.견경(見經) / 『 일원상 서원문』의 문자를눈으로 바라본다.
3.사경(寫經) / 『 일원상 서원문 』의 문자를 손으로 베껴 쓴다.
4.묵독경(默讀經) / 『일원상 서원문 』을 소리내지 않고 속으로만 읽는다.
5.문경(聞慶) / 『 일원상 서원문 』을 녹음 테이프나 씨디등을 귀로 듣는다.
다섯가지 모두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 인연 따라 마음 끌리는
대로 평소에 습관이 되도록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5대 비결을 하루에 108독씩 100일 동안 지극정성을 들여 수련하면
그대에게는 놀라울 정도로 대운(大運)이 다가오면서
어떠한소망이라도 반드시 실현하게 된다.
일원상서원문 공덕은독송을 많이 하면 수양력도 길러지고,
신앙심도 생기고,진리의 위력도 얻어지고
원하는 크고 작은 일도 이루어진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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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하하하하하! 영가도 잘 보시고 전생사도 잘보시고..때로는 앞일도 보시는 분이
우리 헌산 박남주 교무님 아니신가요?
고맙습니다. 일원상의 수행법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깁니다.
1)독경에 주력하면 천지기운이 내몸에 어린다.
2)독경에 주력하면 정신이 맑아진다. 영문이 흐려지면 독경에 주력한다.
3)사심(邪心)이 겉히면서 원하는 일들이 쉽게 이루어진다 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