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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기맥2] 수망령 - 금원산 - 기백산 - 바래기재 - 망실봉 - 관술령 - 망설봉 - △669.2
2014년 5월 16-17일 (2일간)
다우, 칼용담, 요물
산행코스
5월 16일 : 수망령 - 금원산 △1,352.3 - 기백산 △1,330.8 - △819 - 상비재 - 바래기재(24번국도) - 솔고개 - 개목고개- 덕산마을
5월 17일 : 덕산마을 - 공전마을 임도 - 활공장 - 망실봉 △681.2 - 활공장 - 관술령 △606.1 - 숙패령 - 망설봉 △619.5 - 기선봉
△669.2 - 임도 - 내춘마을 - 춘전리(1084번 지방도)
산행거리 : 기맥거리 32.5km + 하산거리 2.1 km = 34.7km
[산행지도]
남부터미널에서 거창행 심야버스에 올랐다. 한참을 자고 나니 안의 봉전마을을 지나고 있다. 거연정이 있는 봉전마을
이었다. 버스는 동호정과 농월정이 있는 금강을 따라 26번 국도가 끝이나는 경남 함양군 안의면 安義에 우리를 내려 놓았
다. 캄캄한 밤이다. 버스정류장옆 옛 낡은 상점에 '개구리튀김'이란 메뉴가 있는 흔적으로 보아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팔
았던 것이 신기한 것을 보게된다.
미리 예약해 놓은 택시인줄 알고 타고 지우천이 흐르는 길따라 용추계곡으로 올랐다. 용추사를 지날 무렵 다우님의 핸드폰
이 울렸다.
미리 예약해 놓은 택시가 전화를 했던 것이다. 버스에서 내리니 택시는 분명 한 대였는데 손님 한 분을 태우고 어데론가 갔다
온다면서 우리를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 후 택시 한 대가 또 대기하기에 그 택시인가 하고 무심코 탔는데 예약해 놓은 택시
가 아니고 다른 택시가 우연히 시간에 맞았던 것이다.
옥신각신 전화소리와 함께 수망령에 올랐다. 생각해 보니 우리는 잘못한게 아니었다. 먼저 와 있던 택시는 욕심을 부려 손
님한 분을 태웠고 그 뒤 택시는 확실한 대답을 받지 않고 택시를 탄 우리도 잘못하기는 마찬가지.
내원참 별일을 캄캄한 어둠속에 홀라당
수망령에 내리니 세찬 바람이 밤길을 가른다. 임도 아래에 자리를 펴고 뜨끈한 라면을 먹고 산행준비를 하고 정자앞에 서서
먼저 찍었던 사진과 같이 또 한 방 찍으려 했으나 여의치 않아 아무 빛조차 없는 수망령을 떠났다. 가는 바람을 잡아 두고 싶
은 것이었을까.
밤하늘 별이 있었다. 음력으로 4월 18일, 둥근 달이 하늘에 떠 온 세상을 환히 비추는 산길이 텅 빈 것같이 밝았다. 바람
소리가 세차게 불던 바람이 멎은 듯 고요했다. 산을 흔들어 깨우려던 바람을 안고 잰걸음으로 계단을 걷기도 하면서 금원산
으로 갔다. 거창을 수없이 다녔지만 난 금원산에 대한 산행은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것은 왜였을까.
철쭉이 어느 나무엔 피어있고 어느 나무엔 아직 못진 흔적의 연분홍빛이 5월의 산속 풍취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수망령을 올라선지 한시간 남짓 금원산 정상에 섰다. 둥근 달이 밝고 선명했다. 산 안에 몇 백리 긴 골짜기와 우뚝 우뚝 솟
아있는 섬같은 산은 둥근 모습으로 우리를 둘러 싸고 있었다.
밤하늘에 달님이 어제보다 작아져 더 작아지면서 둥근 달이 계곡에서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온다. 백두대간 민령에 섰던 때가 몇
년이던가. 그때도 그랬던 생각이 난다. 저 산을 넘어 넘어 가던 육십령을 지나 민령의 어느 산기슭,
저 산줄기인가 , 기백산으로 가는 산줄기에 입맞춤을 하면서 금원산 산릉을 걸었다. 이름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고요함은 움직
임을 다스리는 새날의 밤하늘인것을
정자가 있는 넓은 공터에 기백산으로 가는 이정목에 4.3KM의 발걸음을 놓고 한 숨돌려 가기로 했다. 어둠이 걷히고 기백산으로
가면 어떤 모습으로 산이 되어 있을까. 월봉산에서 바라보던 흰 바위는 어떤 빛깔을 품고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 있을까 모든게
궁금증으로 다가왔다.
[기백산 정상 2.4KM의 이정목]과 임도를 지나면 점점 가까이 다가워 오는 기백산은,
산죽이 발섶을 묻는 발걸음은 산뜻했고 훤히 비추어 오는 기백산 정상이 오고 있었다.
철쭉이 피어있는 산길을 걷고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감흥이 있었다. 산뜻하다고 할까, 상쾌하다고 하면 부족할까.
연두빛 실록의 산속!
이름모을 산군의 저편 위천을 넘어 떠 오르는 둥근 해가 온 세상을 비추어 오고 있었다. 해는 거창에서 둥근 달은 안의에서 그
빛을 대칭하며 견주고 있던 그 하늘을 보았다.
[황석산과 거망산]의 산줄기는 산군들을 호령이라도 하듯 했으며
쳐다보고 또 쳐다 보아도 좋다.
기백산의 산줄기와 황석산과 거망산의 산줄기와 월봉산산의 산줄기가 한 눈에 보이는 이곳이 ..
[조망대]에서 바라보는 기백산의 새벽은 연두색 치맛자락을 펼친듯 넓다란 바위로 부터 퍼져 나갔다. 연두빛 향연의 기백산을
보아 쳐다 보는 것만으로 시너지의 기대를 더 많이 얻는 느낌이라고 해야겠다.
[철쭉앞에서]
[철쭉앞에서 2]
우아(優雅)한 곡선(曲線)속에 품위(品位)가득하다고 해야 하나.
그림이라고 해야하나.
[지나온 월봉산과 금원산을 ]
[ 오른쪽으로 흰대미산 - 보해산의 수도산으로 조망]되는 산릉들이 줄줄이 하늘금을 긋고 있었다.
나에겐 특별한 산이 있었다. 잊지 못할 몇 군데중 가조의 산들이다. 저 산길을 걷던 100키로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날 정도로 산이 시리다 못해 저려온다.
이제 잊지 못할 추억을 담아 내는 산이 있기에 또 산에 오르는지 모르겠다.
기백산으로 가면서 걷던 [책바위]라 하는데,..멀리서 보면 뾰족한 삼각형으로 보이던 봉우리였다.
오를 수도 있는 것 같다. 저 책바위 아래로 걷는다.
[지나 온 길을 담아]
[흰 줄을 잡고 위험한 듯 비스듬한 바위를 지나] 다정한 듯 ..오랫만에 재미가 솔솔난다.
돌무덤이 있는 기백산 정상에 서다.
거센 바람은 자고, 둥근 달도 지고, 어두운 밤도 지나고 기백산에 올랐다. 기백산 其白山, 1,330M의 기백산은 말 그대로였다.
멀리서 바라보면 저 바위가 하얗게 보였던 봉우리였지. 조망대에서 바라보면 치마선의 모습이 찬탄을 하던 새벽녘을..
기백산의 멋이 높이보다 더 했다.
[기백산의 삼각점]
[그림같은 산군들이 줄줄이 산으로 이어져 있는 조망된다]
위천을 중심으로..
[기백산을 내려간다] 산릉에서 이정표가 고학마을로 되어 있는 곳으로 길따라 동쪽으로 이어진다.
숲속이 싱그럽다. 걷는 느낌만으로 상쾌하다. 이런 숲속이 마냥 좋은 느낌으로 발걸음이 내려 가는 길 솔솔 재미가 있다.
[황석산]의 조망하면서 걷는 길 하루종일 저 산이 우리를 쳐다본다. 우릴 불러대며 오라는 것 같이 손짓을 하건만
아직은 그 길을 갈 수가 없단다.
살다 살다 보면 갈 길있으련만.
처음으로 바래기재로 가는 6.3KM의 이정목을 만난다. 기백산은 벌써 언제 내려왔냐는 듯 저 멀리 어서 가라 하고 있었다.
산릉은 내려서기를 반복하면서
[황석산과 거망산 산줄기]도 조망하게 된다.
저 산릉들을 하루종일 내 눈에서 뛸 수가 없다.
[기백산]을 뒤돌아 본다. 듬직하다 할까. 언제 그렇게 뾰족했냐는 듯 그녀의 치맛자락을 하늘에 날린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반갑네 그랴!!
가야산 두리봉에서 단지봉 - 의상대와 비계산, 여인네 젖가슴 내밀고 누워있는 두무산, 군시설물로 하늘아래 뾰족한 산처럼
오똑한 오도산의 추억과 함께 펼쳐진 가조의 산들, 볼수록 옛 그림처럼 지나가는 산릉을 보면서 베낭을 내려 놓는다. 내가
산이 되었던 것처럼, 산도 나 였었다.
수도지맥의 산릉이다.
바래기재로 가는 5.2KM의 이정목을 지나고 3.5KM의 이정목엔 넓은 공터를 지나게 된다.
[829M의 삼각점]
양탄자처럼 깔려 있는 애기나리가 즐비하다. 햇빛에 발해 비추는 은빛이라 말할까 환상적인 길이 우리를 인도한다.
고인돌같은 바위를 지나 또 화살표바위같은 바위도 있다.
소나무숲이 즐비하다.
거창이 조망된다.
[상비마을로 내려가는 상비재다]
상비재를 지나 소나무숲 그늘아래서 점심상을 펼쳤다. 어느 새 라면을 먹은 힘으로 금원산과 기백산을 올랐는데 벌써 배는
꺼져 있었다. 눈이 호강하기를 다리와 배는 꺼지고 아뿔샤. 인생사 배를 채워야 가는 산행길과 같다.
몇 시간을 달고온 찬과 밥이 한가득,
배를 채우고 일어설 줄을 모른다. 이 소나무숲이 좋다고 앉아 있자니 슬슬 잠이 온다.
걸망을 메었다.
[나무계단을 따라 오른다] 밥 먹은 힘이 숨소리를 크게 한다.
[△581.9봉의 월암산]은 소나무숲을 그냥 지나쳤는데 다우님이 부른다. 무슨 일이라도 난듯 되돌아 갔더만 글쎄 월암산이라고.
[소나무숲은 하늘을 가리우리 만큼 가득한 길을 걸었다]
월암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가지고 있는 지도보다 남쪽으로 길이 나 있었다. 한 계곡을 사이에 두고 ..
햇빛이 뜨겁다. 달고온 물도 달달거리고 바래기재로 내려간다. 처음 이정목을 만나면서 걷던 6.3키로의 길도 끝이 나고
있었다.
밭가로 돌아 나온다. 식당이 있고 앞으로 다육을 키우는 마메들 다육이 집으로 가서 공손이 인사를 하고 물좀 있냐고 물으니
흔쾌히 먹고 가란다. '고마운 분들' 내심 걱정했는데. 베낭메고 물 얻는 나. 바쁜 일손이 모자라 달달대는 손길이 죄송
스러워 목소리조차 크지 못하기에 언제나 조심하게 된다.
[수없이 넓고 많은 다육이]만큼이나 주인인심이 좋았다. 먹을 물을 정수기에서 담고 커피도 먹고 가란다. 심을 수 있는 다육기
까지 인심을 쓰는 주인장 부부였다.
집가까이 있으면 한 개쯤 사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뿐, 고마운 마음으로 바래기재를 떠났다.
바래기재는 함양군 마리면과 안의면의 경계였다.
안의면쪽으로 조금 내려서면 24번 국도와 4차선도로의 통로를 지나야 했다.
어느 농부의 농약을 치고 있는 사과밭 사이로 임도끝 산으로 올랐다. 폐타이어가 쌓인 옆 어느 무덤엔 석물이 유난히 뾰족하다.
아카시아꽃이 피어 있는 산이었다. 햇빛을 가려 아카시아꽃 향내음 나는 산이 좋으리만큼 더운 날씨가 가리워져 있었다.
사람다닌 흔적이 흐미한 산길을 조심조심 발 더듬어 올랐다. 행여 올라친 발걸음이 도박이 아니길 바라면서 기맥길을 머리
에 담아 방향을 마추어 갔다.
어느 산님의 표지기를 만나면서 잘못 걸어온 발걸음으로 되돌아가기도 했고 보이는 임도가 솔고개로 착각을 하면서 잡목을 헤
치며 찾아 갔으며 긴가민가 하는 의아심으로 지맥을 찾고 보니
산릉의 개목고개 3.2KM의 이정표가 어느 이정표보다 반가웠다.
쉬어가자. 지도를 꺼내여 한 번 더 공부한 뒤 걸망을 멘다.
[뒤돌아본 기백산은 저 멀리 하늘아래 있었다.]
[망실봉 6.3KM의 이정표가 있다]
박동마을이 조망된다. 아카시아꽃과 찔레꽃의 진동으로 꽃향기가 가득해서 좋다.
사람의 발길이 적은 듯 해 보이는 솔고개는 나무계단으로 쉽게 갈 수 있는 고개였다.
[사과밭가를 지나]절개지위로 지나야 했다. 전기줄따라 간다.
[X586봉의 산은 산같지 않은 정상이었다. 안시산으로 쓰여져 있는 이름표를 보고 알수 있었다.] 잡목과 수풀덤으로 가득한
산이었다.
담배밭으로 내려서는 길은 그물망과 잡목으로 쌓여 있었다. 이리저리 길을 찾아 보았지만 갈 수 있는 길은 이곳 뿐,
그물망을 넘어서야 했다.
고약한 길.
담배밭을 가로질러 갔다.
[앞에 보이는 산줄기가 기맥이었다. 망실봉에서 이어지는 함양과 거창의 경계] 우리가 가야 할 길로 내려가는 개목고개로
가는 길은 벌목을 해 놓은 길따라 갔다.
기맥아래에 덕산마을과 그 안으로 공전마을이 있다. 산이 아카시아꽃이 피어 있었다.
[개목고개였다] 거창군과 함양군을 잇는 경계의 차도의 고개였으며 마리면과 안의면의 또한 경계이다.
망실봉3.1KM의 이정표가 있는 나무그늘 아래에서 쉬어간다.
앉아 있자니 개목고개를 오가는 차가 유혹하는 길, 박동마을에 산다는 농부가 마리면 고개를 넘어간다. 무엇하러 가는지
동편저수지아래 논밭이 있을런지.
한가로워 보이는 농부의 뒷모습을 보게된다.
개목고개를 넘어 산릉을 넘어 덕산마을로 왔다. 느티나무아래 쉴 수 있는 곳, 덕산마을회관 앞이었다. 89세의 할아버지가
하루종일 우리가 왔어도 궁금하지도 않은 듯 말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 시원한 곳, 한동안 그곳에 머물러 있어도
좋은 곳 아늑한 덕산마을은 산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듯 조용한 마을, 안의면 초동리 덕산마을이었다.
태극기가 휘날리는 덕산마을회관에서 할머니들과 시간을 보냈으며 명종왕후의 묘를 찾아 세재쪽으로 논가를 걸으며 임도를 따
랐다. 이쯤이면 있을까. 임도가 끝날 무렵 아늑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거창 신씨 묘를 찾았으나 아니었고 내려와서 대나무
숲으로 가 보았으나 찾을 길 없어 덕산마을로 내려왔다.
내용인즉 마을어른 중 어느 분도 확실한 명종왕후의 묘를 확인할 수가 없었다. 지도에 기록되어 있어 간혹 명종왕후의 묘를 찾
는 분들이 있다고 했다.
벌명당이라고만 들을 수 있었다.
이야기가 많은 하룻밤이 될 것 같았다. 마을회관에서 먹은 저녁밥과 하룻밤을 지냈다.
이른 새벽 마을회관을 떠났다. 밥 한 주먹씩 걸망에 메고 물을 보충하여 공전마을로 가서 망실봉으로 오르기로 했다.
[공전마을 이름없는 절 뒤 망실봉]
공전마을로 가는 길은 오지였다. 논과 밭을 가로 질러 사진으로 보이는 절 위가 망실봉이기에 논두렁을 걸어 공전마을로
갔다.
마을에는 아직도 남아있는 담배건조실이 흙집으로 지어져 있는데 잠겨져 있고 마을안으로 길을 따라 큰 집이 있는데 분위기로
보아 절 같아 보였다.
[황석산과 거망산이 큰 산줄기로 조망되는 공전마을 뒷산으로 오르는 길은 시멘트길로 옛날에는 거창 마리면을 넘는 고갯길
였을꺼라 짐작되어졌다.
길가에 아직 피지 못한 산딸기꽃이 눈낄을 끌며 고개의 기맥 산릉에 섰다.
거창읍이 내려다 보이는 활공장이었다. 居昌渭川이 흐르는 거창읍 시가지가 한 눈에 조망되는 헬기장이기도 했다. 30년
동안 오간 시가지에 금귀봉이 가까이 있고 수도지맥이 하늘을 긋는 산줄기가 수도산에서 보해산과 두무산, 오도산으로 거창을 호
위하듯 했다.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담아야 하나. 이 수많은 날들을. 숫한 사연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나의 삶중 한가운데 차지
하고 있는 보따리들을!!
아침을 먹고 어느 산줄기보다 커피맛이 다르다. 쓰다면 약이 될 테이고 달다면 병이 될테인데..
걸망을 두고 망실봉으로 올랐다. 망실봉 이정표엔 운정마을과 둔동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표시되어 있었고 바래기재에서
망실봉까지 8KM나 걸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봉우리였다.
망실봉 삼각점 △681.9 와 각시붓꽃이 넓은 풀덤에 묘지 한 기가 있는 봉우리였다.
활공장을 지나 거열산성터가 있음을 알게 되고.
둔동마을과 덕천서원으로 가는 갈림 길을 지나
헬기장을 지나고 있었다.
[새재]는 덕산마을 가는 길이 오른쪽으로 내려 갈 수 있었다.
우리가 하룻밤 묵었던 마을을 지나간다.
경계선인 산줄기가 거창인 웅곡(곰실)마을 갈림 길도 지나게 되고 산속은 말 그대로 풀숲으로 녹음이 짙은 산릉이었다.
철탑을 지나고 있었다.
높지 않은 산릉인데 사람 하나 만날 수 없는 오지처럼 숲이 산을 이루는 산길이 이어져 갔다.
잡목이 우거져 있는 관술봉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봉우리였다. 관술봉 官述峯, 함양에 옛 선비들이 살 던 곳이라 官述峯
이란 의미인가하는 궁금함을 생각하며
잡목숲 사이로 비집어 삼각점에 섰다.
[관술봉의 삼각점]거창439 △607.2m
[거창 둔동마을과 함양 관동마을 내려가는 이정표를 지나] 표지기를 따라 가다 잘못 들어온 것을 알게 되었다.
주섬주섬 하얀 봉지를 채우는 허리굽는 일을 하면서 갔다.
이곳까지 산릉에서 내려선 것도 모르게 욕심을 걸망에 채우고 나섰다. 빨간 표지기 하나가 있는데 그 것은 산길에 표시한
분만이 알 수 있으리라.
할 수 없이 계곡에 내려서서야 쉽게 임도로 내려왔고 관동소류지 아래
관술령에 닿을 수 있었다. 맞는 거지.
관술령 임도에서 오르며 발섶에 즐비한 은방울꽃이 지천인 길가을 걸었다.
[숙패봉]은 지도에도 없는 곳의 봉우리를 지나 지맥은 산릉을 따라 나갔다. 수풀이 우거져 길이 보였다 숨기를 반복
하면서 발걸음도 느려져 가고 있었다.
가다서고 가다서고 앉았다 걷는다.
숙패령으로 내려오는 산길은 급경사로였다.
이제 망설봉으로 올라야 했다. 내려온 만큼 오름 길, 찌는 듯 한낮의 더위가 등짝에 땀으로 걸망사이로 스며든다.
무거운 걸망이 가는 길 잡고 있는 오름 길을 오르고
[망실봉] 561m의 표지석이 있는 곳은 산릉으로 삼각점 못가 있었다.
바람이 시원하게 분다. 어제 수망령에서 불어오던 바람이 어데 갔다 온 것같이 이마에 땀방울을 씻어 준다.
걸망을 내려 놓고 쉬어간다.
오르다 오르다 못 오를리 없건만 산릉을 간다.
다우언니가 무거운 걸망을 지고 힘들어 한다. 같이 가자 했는데 가다 앉는다. 숙지령을 지나면서 못 참겠다는 듯
가는데 까지 걸어보자고 했다.
얼마 남지 않았으니..
[둔동마을 갈림 길을] 을 지나
大山川길따라 88올림픽 고속국도와 1084번 지방도로가 나란히 조망되면서 춘전치로 가는 길임을 알 수 있었다.
[德雨山 望雪峰]△619.5봉은 지도에는 망설봉만이 기록되어져 있었다.
나무계단으로 되어 있는 숙지령은 2틀동안 걸은 걸음으로 힘겨운 내림과 오름길였다.
신기마을 1.5KM의 갈림 길, 4.4KM을 더 가야 하는 기선봉의 이정표를 만나면서 기선봉까지 가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올라가야 할 차시간과 걸어갈 힘도 부쳐 오기에 오늘 산행은 거기까지로 하고 기선봉 3.1KM의 이정표를 지난다.
높아 보이는 X643.5봉이 무명봉이라 할지라도 오늘은 높아 보이네.
기선봉 3.0KM의 이정목을 지나 기선봉 2.8KM의 이정목은 계속 기선봉 가는 길을 표시해 놓았으며 기선봉도 가까워 온다.
가져온 물이 동나 한모금씩 목을 축이며 걷는데 갈증을 참을데까지 참았는가 보다.
바짝 타 오는 산길은 다우님이 힘들어 하는 산길만큼이나 버겁다.
무거운 걸망이 자꾸 등짝을 밀어내기에
왼쪽 저편 산릉에 감악산이 싱그런 짙은 녹음으로 날 맞는다. 그 뒤로 황매산이어라.
[고인돌 바위]
철쭉꽃이 피면 오르리라던 희망이 물거품된 황매산과 삼봉이 조망되는 산릉을 걸으면서 기선봉으로 간다.
기선봉 2.8KM, 기선봉 2.5KM의 이정표를 지나면서 다우언니가 이곳에서 거창쪽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고서야 걷는다.
안의 버스정류장에서 17시 20분 차표을 예매해 놓고 만날 것을 약속하며 언니의 뒷모습을 보며 걷는다. 점심도 통털어 먹고
물을 아껴 동이나 버렸다.
기선봉 2.4KM, 1.3KM의 이정표는 더 가까이 다가 오면서 △669.2봉 기선봉에 섰다.
△기선봉 정상에 서다.
오늘의 마지막 산행 봉우리는 어느 봉우리보다 반가웠다. 내려갈 길이 바빠 급한 마음에 정상을 급히 빠져 나가 듯 내려갔다.
기맥은 더 앞으로 진행한 뒤 기별산으로 가는 이정표 임도 1.4KM에서 거창쪽으로 산을 내려갔다.
안의쪽으로 내려 갈까도 했으나 길이 있지 않아 도박하다가 길이 험하면 오늘 귀가하지 못할 것 같아 길따라 갔다. 임도를 만나
가다 물탱크에 물이 줄줄 내려오는 곳에서 목욕을 했다 . 험한 산길을 걸은 2틀동안의 땀이 다 씻어져 내려가는 기분만큼이나 시
원했다.
임도는 어느 비닐하우스를 지나 내촌마을을 지나 1084번 국도앞 춘전마을 표지석앞까지 내려 왔다. 4시 30분 거창가는 버스를
타면 17시 20분 버스를 타지 못할 것 같아 마음이 조급했는데 마침 거창으로 가는 봉고 한 대가 세워준다. 천만다행. 다우언니
도 안의 버스터미널에서 예매해 놓고 있다고 하는 연락을 받게 되고.
우리를 태워준 봉고차는 대산천을 따라 차도를 달려 남상을 지나 거창 시외버스터미널까지 태워다 준다. 거창읍에 사시는 목사
님 내외분인데 고맙다는 인사를 수도 없이 하고 내렸다.
버스가 거창에서 출발하는 것을 알기에 다우언니와 연락을 하여 이곳에서 탈 것을 약속하며 아이스크림과 맥주와 빵과 우유를 사
서 먹고 버스에 오른다.
서울로 가는 버스는 차창 밖으로 서경병원 옆으로 보이는 산줄기가 기맥인 망실봉을 보았다. 버스는 바래기재를 지나 안의
로 왔다. 다우언니가 차에 올랐다. 언니는 거창쪽으로 하산하는 모습을 보았으나 길이 없고 아무래도 안의로 하산해야 할
것 같아 독자로 내려와 히치를 하고 터미널에 왔단다. 하산 길이 험했으며 터미널근처에서 콩국수도 먹었다고 하는 이야기
로 오가고 버스는 달리고 달려 남부터미널에 도착했다.
2틀동안 보았던 산군들과 진양기맥길에 나눈 이야기가 잠못 이루는 밤, 먼저 와 있다 친구 만나고 들어서는 애가 늦게 '엄마' 하
고 들어온다. 거창에 있는 산을 갔다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
두 번째 날 잡목숲에서 걷던 산길에 갈퀸 상처가 팔뚝에 험상궂다. 에궁 이렇게 해서야 어데 여자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기백산에서 본 풍경은 '정말 멋졌어'라고 말해주고 싶다.
며칠이 지나 산행기를 정리하는 중 숭산님으로 부터 반가운 소식을 받게 된다. 지리산 진양호 태극왕복종주 240km를 93시간
에 완주했다며 숙제를 끝낸 기분이라고 했다. 먼저 다른 산친구보다 8시간이나 단축했으니 빠른 기록을 냈다. 아들과 마나
님이 지원했으며 편도에서 시간단축을 했으나 되돌아 가는 새봉에서 밤머리재까지 헛개비 만난 듯 했고 아미랑재 지나면서 잡목
에 길이 잘 없어 힘들었던 이야기로 긴 통화를 했다. 누구보다 선답자였던 내가 진양호태극에 애착이 가거늘..
6월 첫주쯤에 지인인 몇 사람들과 축하을 해야 하지 않겠나.
☆사진 촬영: 다우님
첫댓글 근접하지 못하는 우리의 일상을 벗어나 자연속으로 들어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슴으로 머리로 아니 온 몸으로 느끼는 짜릿함
그대들은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