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상을 떠난 이들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하곤 합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죽음과 최후 심판 사이에 정화의 장소인 ‘연옥’이 있다고 가르치지만, 성공회는 초대교회 교부들과 동방정교회가 공유해 온 ‘중간상태(Intermediate State)’를 믿습니다.
로마 가톨릭의 연옥이 천국에 이르기 전 형벌과 정화의 과정을 강조한다면, 성공회의 중간상태(음간)는 육체의 죽음 이후 부활과 최후 심판 때까지 영혼이 하느님의 평화로운 품 안에서 안식하며 온전한 부활을 기다리는 ‘휴식과 회복의 장소’입니다. 성공회 39개 신조(제22조)에서는 성경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당시의 연옥 교리를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성공회가 독자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와 동방정교회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동방정교회 역시 로마 가톨릭의 연옥 개념과는 구별되는, 의로운 이들의 영혼이 평화와 빛 가운데 머물며 안식하는 중간상태(음간)를 믿습니다. 2~4세기 초대교회 교부들 또한 죽은 이들의 영혼이 부활의 날을 기다리며 평안히 쉬는 처소가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이처럼 성공회는 초대교회의 오랜 신앙 전통에 따라 동방정교회와 ‘중간상태에서의 평안한 안식’이라는 신앙적 시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죽음과 부활 사이에 영혼이 주님과 함께 누리는 평안을 증언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의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루가복음 23:43)고 말씀하신 것처럼, 구원받은 영혼은 죽음 직후 주님과 함께 안식의 처소에 거합니다.
세상을 떠난 우리 사랑하는 이들은 하느님의 따뜻한 자비 아래서 부활의 그날을 기다리며 깊은 안식과 회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성공회는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이 하느님의 영원한 빛 안에서 평화롭게 안식하기를 간구합니다.
[원주교회 관할사제 조정근 프라시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