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츠로 유명한 요한 스트라우스(Strauss Johann 1825-1899) 아 버지(1804-1849)와 아들 성이 같기 때문에 혼동하기 쉽지요. 그래서 아버지를 슈트라우스 1세 아들을 슈트라우스 2세라고 합니다. 슈트라우스 부자는 비엔나 왈츠를 세계적인 음악으로 완성시켰기에 아버지를‘왈츠의 아버지’, 아들은 ‘왈츠의 왕’이라고 부릅니다. 오 스트리아의 작곡가·지휘자. ‘왈츠의 왕’으로 불리며 ‘왈츠의 아버지’ J.B.슈트라우스의 장남이다. 아버지는 처음 그를 상공학교(商工學校)에 입학시켜 은행업을 배우게 하였으나, 음악에 대한 집념이 강한 그는 아버지 몰래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다. 1843년 아버지와 어머니가 별거생활을 하자 이를 기회로 생애를 음악에 바치기로 결심하고 피아노 교수로 생계를 꾸리면서 바이올린 외에 작곡이론을 배웠다. 처음에는 교회음악 작곡에 뜻을 두었으나, 19세 때 시 당국의 허가를 얻어 15인조악단을 조직, 무도회에 데뷔하여 그 자신의 작품 1∼4번의 무도곡을 연주하여 크게 성공하였다. 아버지와의 갈등은 46년에 일단 수습되었으나 그는 아버지의 악단에는 가담하지 않고 자기 악단을 인솔하여 독립활동을 계속하였으며, 49년 아버지가 죽자 아버지의 악단도 지휘하게 되어, 동생이 악단에 가담하기까지 수년간 그는 분주한 세월을 보냈다. 51 년에는 함부르크·프라하·드레스덴·라이프치히·바르샤바 등지에서 연주를 하고, 분주한 가운데 작곡에도 열중하여 53년에는 1년 동안에 27곡 이상을 작곡하였다. 그러한 정열적인 활동으로 마침내 병석에 눕게 되자 악단을 동생에게 맡긴 후 요양지로 옮겨다니다가 건강을 회복한 그는 55년에 다시 러시아의 페테르부르크까지 연주여행을 하였다. 62년 통칭 예티(Jetty)라고 불린 가수 헨리에테 트레프츠와의 결혼으로 커다란 전기를 맞았다. 그의 연주는 공원에서의 연주회와 자기 작품의 첫공연에 한정되고, 온갖 정력이 작곡에 투입되어 새로운 독자적인 왈츠양식 ‘연주회왈츠’를 낳았다. 《아 침 신문》(1864)을 비롯하여 67년부터는 왈츠에 처음으로 합창이 곁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예술가의 생애》 《빈 숲속의 이야기》 《술·여자·노래》 《빈 기질》 등의 대규모 왈츠의 걸작을 계속 작곡하고, 70년 어머니와 동생 요제프가 모두 세상을 떠나 큰 타격을 받았으나 오펜바흐와 수페 등에게서 자극을 받아 그때부터 오페레타의 작곡도 시작, 《박쥐》 《집시남작》을 비롯한 작품으로 당시 빈 오페레타계에 군림하게 되었다. 78년 아내가 죽자 30세 연하인 릴리 디트리히와 재혼했으나 어울리지 않는 이 결혼은 얼마 후 파탄되고 87년 아델레 도이치와 재혼, 빈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축복받는 만년을 보냈다. 그는 오페레타 16, 왈츠 168곡을 비롯하여 많은 무도곡을 작곡하였는데, 이 모든 작품에는 인생을 찬미하는 빈의 독특한 분위기가 담겨 있다. Vienna 사랑의 예감으로 가슴 뛰는 도시 영화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의 두 주인공 제시와 셀린느. 그들은 비엔나라는 도시에서 하루 동안 사랑과 실연, 죽음, 결혼 등에 대해 자신들의 생각을 솔직히 나눈다. 비 엔나에 도착한 순간 영화 속 장면부터 시작해서 사랑에 대한 상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화려한 표정, 듣는 것만으로도 벅찬 과거의 영광으로 무장한 비엔나. 하지만 영화의 여운이 남아서일까? 내게는 언제나 설렘 가득한 사랑을 만들어낼 것 같은 기대를 갖게된다. 나도 셀린느를, 아니면 또 다른 제시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하는. Scene #1 몸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그뿐 비 엔나에 도착하기 전 흔히 하는 걱정 하나. 음악의 도시라는데 음악에 문외한인 나 같은 사람이 도시의 진면목을 알아볼 수 있을까. 하지만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던 링로드를 가로질러 복스 가르텐(Volks Garten)이라 불리는 비엔나의 주공원 안에 소담스럽게 피어있는 80가지 종류의 장미꽃을 본 순간 주눅 들었던 마음이 비엔나 시민들의 표정처럼 평온해진다. 그래, 비엔나에 왔으니 그저 비엔나를 충실히 즐기면 그뿐이지. 화려하면서도 평온한, 상반된 이미지가 잘 어우러진 도시 비엔나. 이방인들은 그 모습을 성실히 즐기면 된다. 복 스 가르텐을 가로지르면 바로 옛 합스부르크 왕가의 건물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정면과 좌우로 독립된 건물들이 하나의 성처럼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각각의 건물들은 왕가가 세습될 때마다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건물 하나하나가 깊은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건물들에는 특이하게도 오스트리아 국기가 게양되어 있는데 이것은 국경일에 국기를 다는 우리와는 달리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건물에 행하는 일종의 표식과 같다고 한다. 건 물을 뒤로한 채 아기자기하게 자리잡은 상점들 사이로 난 케른트너 거리에 들어서면 지금 서 있는 곳이 비엔나라는 것을 더욱 실감할 수 있다. 이름 모를 거리악사들이 들려 주는 클래식 선율, 따사로운 햇살과 맑게 펼쳐진 하늘, 아름다운 색으로 장식된 야외 카페의 파라솔과 테이블, 비엔나의 아이콘이 된 성 슈테판 성당, 그리고 그 성당에서 들려오는 종소리. 그저 가만히 서 있어도 좋다. 길을 따라 가볍게 걸어도 좋다. 제시와 셀린느도 이런 기분이었으리라. 그래서 서로에게 터놓고 속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겠지. 여행자가 어떤 느낌을 가져야 한다는 강요도 받지 않고, 느낄 것을 찾아다녀야 한다는 의무감도 없이 그저 몸이 이끄는 대로, 가슴이 느끼는 대로 비엔나를 느끼는 것. 이것이 비엔나에 다가서는 최고의 방법이다. 비 엔나는 다양한 모습으로 여행자들을 유혹한다. 음악 애호가들에게는 모차르트와 베토벤 등 유명한 작곡가들의 주요 활동 무대였던 도시로, 역사가들에게는 유럽의 최고 왕가라고 칭해지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역사가 담겨 있는 도시로, 건축가들에게는 다양한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수많은 건물들이 있는 도시로, 자연주의자들에게는 비엔나숲과 다뉴브강가로 아름답게 이루어진 자연 도시의 모습으로, 비엔나는 그때 그때마다 옷을 갈아입고 나타난다. 이처럼 비엔나는 어느 누구에게나 손을 내민다. 각자가 비엔나에 대해 다른 느낌을 간직하지만 그 느낌은 그래서 모두 다 옳을 수밖에 없다.
Scene #2 자유와 지성의 숲에 서다. 박 물관이라고 하면 근엄하고 딱딱한 느낌만 떠오르는가. 그러나 비엔나에선 다르다. 자유롭다. 지식도 자유로운 포즈를 취한다. 비엔나의 다양한 박물관과 미술관들은 시간과 공간의 역사와 현재를 향유하는 곳이다. 건물 안에도 마찬가지이지만 건물 밖에서도 시간과 공간의 여유가 있는 곳에서 비엔나 사람들은 뭐든지 읽고 있다. 롤 러블레이드를 타다가 풀밭에 엎드려 책을 읽기도 하고, 가로수 아래 벤치는 무언가 읽을 거리를 손에 든 사람들의 차지다. 풀밭 위 나무 그늘 아래, 광장에 세워진 조형물이 만들어내는 그늘 아래에서도 틈만 나면 책을 펼쳐 든다. 포즈도 다양하다. 발을 올리고 눕거나 두 다리를 쭉 뻗고 편안하게 앉아 있기도 한다. 남녀노소 구분도 없다. 하물며 대학 캠퍼스 내에서도 여유롭게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기 어려운데 우리 도시 어디에서 이런 광경을 볼 수 있을까. Scene #3 다뉴브강과 비엔나숲, 사랑의 왈츠를 추세요. 비 엔나가 더욱 풍요롭게 보이는 까닭은 바로 비엔나숲과 다뉴브강이 있기 때문이다. 도심에서 20여 분만 벗어나면 다뉴브강을 만나게 된다. 다뉴브강 하면 왈츠와 요한 스트라우스가 먼저 떠오르듯 오래 전부터 많은 음악가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곳이다. 다뉴브강 사이에 위치한 다뉴브섬 또한 다뉴브를 더욱 운치있고 여유롭게 만드는 요소다. 이 곳에서 비엔나 사람들은 한적한 오후를 즐긴다. 가족들은 정겨운 시간을 나누고 연인들은 사랑을 속삭이며 끝없이 푸르른 하늘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면서 그렇게 흘러간다. 강에서 유유자적 보트를 타면서 슈니첼(오스트리아식 커틀렛)과 와인 한잔을 즐기는 ‘보트 피크닉’을 즐기기도 한다. 그 위에서 시와, 음악과 사랑과 인생을 나눈다. 비 엔나숲에 다다랐다. 울창한 숲 속, 돌로 만들어진 길 위를 차를 몰고 달리는 것 또한 경험하지 못했던 특별한 운치이다. 이 숲에선 그냥 숲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휴식이 된다. 베토벤이 이곳에서 전원교향곡의 악상을 얻었다는 것이 온전히 이해가 된다. 생 동감 넘치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며 오래된 것 위에 싱그러움을 유지하고 있는 도시, 비엔나. 숲속 나무 그늘 아래 여인들의 수다가 정겹고 편안하다. 옛날부터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배어 있는 여유로운 그 모습을 보니 이 도시에서 많은 음악가와 예술가들이 배출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닌 듯하다. 인생의 강약을 조절할 줄 알고 철저히 즐길 줄 아는 그 모습이 바로 예술이자 제시와 셀린느가 얘기했던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