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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미용사 돌쇠
태어나서 할부로 물건을 구입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최필례.
그런 그녀가 어느 날 큰맘 먹고 할부로 엄청나게 비싼 물건을 덥석 구입해 버렸다.
매달 60만 원씩 장장 60개월간의 무이자 할부.
그 할부로 구입했다는 물건은 다름 아닌 인간형 로봇이었다.
돈 쓰기를 겁내 하고 빚을 지면 절대 다리를 뻗고 편히 잠을 잘 수 없는 까탈스러운 성격의 그녀가 50년의 생애 동안 할부로 물건을 구입한 것도 처음이었지만, 또한 이렇게 얼리어답터가 되어본 것도, 즉 말하자면 남들보다 먼저 신개념의 제품을 구입해 본 것도 이번이 난생처음이었다.
삐삐가 나왔을 때도, 컴퓨터가 나왔을 때도,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도 그녀는 늘 꼴애비로 그런 신제품들을 구입했었다.
그런 그녀가 빚을 져서라도 얼리어답터가 된 것은 어인 사연이란 말인가!
그녀는 나주시 남평면이라는 시골 소도시의 5일장 근처에서 혼자 경대 세 개만을 둔 아담한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미용실 원장이었는데, 거의 쉬지도 않고 일을 해서인지 손목터널증후군이 왔고, 또 무릎도 약해져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몸이 아프다고 직원을 들이자니 비싼 인건비에다, 또 사람 관리에도 젬병인 소질이라, 인력을 쓰는 것은 영 쉽게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근래에 미용실 근처에 ‘헤어전설미용실’이라나 뭐라나 새로 미용실이 생겼는데, 새 미용실의 주인장이 서울에서 10년 정도의 경력을 쌓고 귀향한 30대 중반의 팔팔한 미혼녀에다
미용실 자리도 사람들의 통행이 빈번한 오일장 입구쪽의 목이 엄청 좋은 곳이라 구식 분위기에 허름한 느낌이 나는 최필례 원장의 미용실은 점점 매출이 저조해져만 갔다. 그리고 기술마저도 자신은 옛날 방식의 기술만을 고수하며 운영했는데, 헤어전설미용실은 최신식 기계에 최신식 기술로 중무장을 하고 영업을 하니 도저히 해 볼 도리가 없었다.
게다 생각해보니 미용실 이름마저도 헤어전설에 비하면 싸구려 티가 팍팍 났다.
'최필례미용실'
이렇게 간판 이름까지 경쟁 미용실에 밀리는 형편이라 최필례미용실의 미래는 점점 암담해져가고 있는 판이었다.
이런 차로 최필례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딸을 보러 서울의 딸네 자취방에 갔다가 남평으로 내려가기 전날 들렀던 대형 미용재료상에 전시된 로봇미용사를 발견하게 되었을 때, 굳이 이것저것 따지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바로 충동적으로 로봇을 구입하게 돼버린 것이었다.
직원의 설명에 의하면 이 로봇 미용사는 세계 내로라할 로봇 기업 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회사라 할 수 있는 현다이차의 보스통로봇 기종인데 일단, 다른 회사 로봇에 비해 엑츄에이터의 정밀도가 높아서 관절 동작이 버터처럼 부드럽고, 또 관절 수도 52개로 월등히 많고, 내부 몸체 소재는 티타늄이나 카본을 능가하는 특수합금으로 돼 있어서 튼튼하면서도 가볍고, 손의 표면 소재는 지금까지 개발된 소재 중 가장 인간의 피부와 유사한 소재로 감싼 것으로 손가락의 경우는 지문까지도 새겨져 있고 거기다 가죽보다 훨씬 질기기까지 하다는 것이었다.
또, 클라우드 서버를 거치지 않는 자체 연산을 하는 온 디바이스 ai방식 로봇이라 해킹 염려가 없으며, 기본적인 미용기술은 회사의 훈련소에서 1등급 미용기술자들이 미리 훈련시킨 최첨단 최고 사양의 미용로봇이라는 것이었다. 다만 팔려간 미용실의 현장 상황은 로봇이 난생 처음 경험하는 것이니만큼, 현장의 분위기에 맞는 간단한 일거리들은 미용사가 직접 익혀주며 실무에 적응시켜 나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최필례는 담당직원의 강도니 소재니 소프트웨어가 어쩌니 하는 설명이 너무 어려워 알아듣기가 힘들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크게 게의치 않았다.
어차피 미용실을 폐업을 하네 마네 하는 상황에서 찬밥 더운밥 가려가며 결정을 고민할 계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저 로봇이라야만 쓰러져가는 자신의 미용실의 위상을 다시 벌떡 세워 줄거라 생각하니 집에 굴러다니는 메리야스나 팬티를 팔아서라도, 신도림역 앞에서 스트립쇼 하며 구걸을 해서라도 기필코 로봇을 구입 하고야 말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당장 현금이 없어도 할부로 그것도 무이자 할부로 구입이 가능하다 하니 망설일 것도 없이 바로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만 것이었다.
"오메! 매장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삐까뻔쩍 해부네잉"
현다이차 광주 직영매장의 직원들이 미용실로 가져온 로봇을 개봉하자 필례는 연신 감탄사를 터트렸다. 기술 담당 직원이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서 필례에게 로봇의 여러 사양에 관한 설명을 세세하게 해주고 돌아갔다.
"이제 원장님 미용실은 돈벌 일만 남았어요"
직원들이 가자마자 필례는 당장 가게 이름부터 바꿨고 새로운 간판은 다음날 바로 설치됐다.
'최신식미용실'
그리고, 로봇에게는 정감 가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은데 무슨 이름이 좋을까 궁리하다 도저히 좋은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작명에 능하신 아버지께 전화하여 '돌쇠'라는 이름을 얻었다. 아버지 최강인씨는 원래 전직이 강력계 형사였는데 지금은 은퇴하고 화순의 화학산(華鶴山)이란 산에서 약초채취로 소일하며 귀여운 당나귀 한 마리를 가족 삼아 자연인으로 은둔하고 있었다.
필례는 그 이름을 매직으로 명찰에 큰 글씨로 예쁘게 쓴 다음 초강력 접착제로 로봇 가슴팍에 자랑스레 붙여주었다.
돌쇠의 성능은 직원이 설명한 그대로였다. 아니 상상 이상이라고 해야 할까? 이미 회사에서 훈련시킨 기능은 명령만 하면 그대로 수행하였다.
"돌쇠야 손을 올려 보그라! 손을 내려 보그라! 디스코를 춰 보그라!"
시키는 명령마다 다 수행했는데 심지어는 물구나무서기나 덤블링까지도 했다.
"아따 저것이 뭐시당가 로봇이 아니더라고? 오메 로봇이 벨 것을 다 헐 줄 아네잉, 오메오메 공중제비를 다 넘어부러야!"
돌쇠에 대한 소문은 삽시간에 지역에 퍼져나갔다. 특히 남평 5일장을 구경 온 할머니들에 의해 소문은 더 급속히 확산했다.
"그 최필례미용실말이여 아니 아니 최신식미용실로 이름을 바꽜다제, 거그 로보트가 머리를 헌닥 허드라고, 누가 그러는디 사람보다 낫다여"
소문은 필례원장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인 헤어전설미용실의 박금자 원장의 귀에도 들어갔다.
"전설원장 큰일났어, 필례네는 로보트가 직원으로 들어와부렀는디 일을 그렇게나 잘 헌다네"
필례원장네 최신식미용실은 소문을 듣고 구경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런데 사실, 그 찾아온 사람들이 머리를 하러 오기보다는 로봇 돌쇠가 어떻게 생겨 먹은 물건인가 그 호기심을 풀려고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필례에게 당장 주어지는 이득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당장 이득이 없더라도 이 사람들이 미래에 곧 머리하러 방문해줄 예비손님이라 생각하니 필례 입장에선 그리 고맙고 뿌듯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다이차 담당 직원의 설명에 의하면 돌쇠는 두상 나누기 기술, 파마 연화 보기와 마는 기술, 염색약 배합과 도포 기술, 커트 기술등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당장 일을 시키지 말고 어느 정도 미용실 분위기를 익힌 연후에 일을 시키라는 것이었다. 예를 들자면 미용은 아무래도 사람을 대하는 일이다 보니 각각의 사람들의 성향을 파악해서 그에 맞게 대해야 하고 또 미용실 구조도 익혀야 하는 등 얼마간은 익숙해지는 시간을 겪어야 실수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돌쇠야 너 말이여 파지는 혹 개봤는가 모르겄다잉?"
필례는 샴푸대에서 파마지를 빨아 수건으로 물기를 짜내어 테이블에 펼치면서 돌쇠에게 물었다.
"아직 파마지를 개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원장님이 시범을 보여주시면 할 수 있습니다“
돌쇠는 현다이차 보스통로봇 미용기술 시뮬레이션 훈련소에서 기술 담당 미용사들로부터 갖가지 미용 기술을 따라 하기 모션 훈련을 통해 전수받았다. 그러나 그런 훈련 중 파마지 개기는 없었다.
"뭐시라고야 파지를 못 갠다고야! 얼척이 없다야잉, 아니 파지도 안 개 본 사람한테, 아니 로보트한테 내가 뭔 파마를 시키겄냐? 자 내가 허는 대로 개 보드라고"
필례는 한 번 더 수건으로 물기를 꽉 짜내고 파마지를 적당히 집어 들어 두 손으로 손뼉을 치듯이 하며 탈탈탈탈 털어냈다. 그러자 찌그러진 파마지들이 개기 수월하도록 펼쳐졌다.
"자 보드라고 요롷게 펴서 하나하나 쌓아 올리는 것이여"
필례가 파마지를 펴서 착착 쌓아 올리자 돌쇠도 파마지를 착착 쌓아 올렸다.
"허허 그것이 아니제! 그렇게 똑바로 가지런히 쌓지 말고 요렇게 지그재그로 쌓으란 말이여, 봐봐 요롷게 요롷게"
합리적인 마인드로 딥러닝 된 로봇 돌쇠의 입장에서는 규칙성 없이 무질서하게 파마지를 쌓는 필례가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었다.
"요로코롬 마구잡이로 개 놯야 파마 말 때 집기가 편허단 말이여"
"예 알겠습니다!"
"돌쇠 너 빗자루질은 헐 줄 알어?"
"못 합니다"
"그럼 마대질도 못허겄네?"
"못 합니다"
"먼지는 털 줄 알어?"
"못 합니다"
"롯드는 빨아 봤어?"
"안 해 봤습니다"
"커피는 타 봤어?"
"안 타 봤습니다"
"뭐시여 허드렛일은 앙끗도(아무것도) 못 하는 거시여?"
"전 최신유행의 세팅펌, 매직스트레이트, 스핀스왈로우펌, 에쉬그레이염색, 솜부레옴부레 염색, 허쉬컷, 리젠트컷..."
"니미 염병헐꺼! 기본적인 거시기는 앙끗도 헐 줄 모름시로 먼 늠의 최신유행이 어찌고저찌고 나불나불 대쌌냐! "
돌쇠의 언어 회로에 순간 혼란이 왔다. 딥러닝 훈련으로 어느 정도 기본적인 사투리는 익혔지만 지금 듣는 사투리는 전혀 생소한 것이었다. 그러나 정확한 뜻은 몰라도 상대방의 태도나 말이 영 탐탁치 않아 빈정거릴 때 쓰는 언어라는 것은 추론할 수가 있었다.
"안되겄어, 기본적인 것부터 싹 다시 배워야겄어! 기본사항도 안 갈챠놓고, 요런 빈껍데기 깡통을 3600만원씩이나 받어 처묵어부렀구만잉!"
필례는 돌쇠를 앉혀놓고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그것은 자기가 미용실에 처음 입사해서 보조일 하며 겪은 고생담을 빗대어 너도 그렇게 열심히 살지 않으면 이 험한 미용계에서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훈계조의 연설이었는데, 감정을 드러 내지 못 하도록 시스템이 설정되어 있는 로봇 돌쇠로서는 이 장황한 아줌마의 설교를 표정 자제하고 장시간 묵묵히 입력 처리해야하는 것이 보통 고역이 아닌지 두뇌 소프트 회로의 스트레스 지수를 표시하는 램프가 빈번하게 깜빡였다.
그런데 어찌 보면, 이것은 필례가 자신이 보조였을 때 상급자가 다른 곳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편으로 자신을 앉혀놓고 장시간 잔소리 늘어놓던 상황을 답습하여 돌쇠한테 대물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풍경이었다.
돌쇠에 대한 훈계가 점점 무르익다 그것이 다시 필례 자신의 신세타령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을 무렵 한 사내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그는 자칭 남평의 낭만주의자 나광남이었다. 그는 필례보다 다섯 살 어린, 마흔다섯의 우람한 체격의 남자로 일정한 직업이 없었는데, 빈둥거리는 게 일이라면 일이었다. 과거 그의 부모가 나주에서 꽤 넓은 과수원을 하였는데 어느 날 과수원 자리에 한전 건물이 들어서면서 벼락부자가 되었고, 그 돌아가신 부모님으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으면서 나광남은 빈둥거리는 것을 직업으로 삼게 된 것이었다. 그의 집은 나주 시내에 있었는데 어떤 계기로 1년 전부터 필례네 미용실을 다니기 시작했고 필례를 좋아하는지 굳이 머리를 하지 않으면서도 수시로 미용실을 드나들었는데 근래에 출입이 부쩍 더 잦아졌다.
그는 필례가 물어보지도 않는데도 자신이 부자인 것을 은근 자랑했고 특히 미혼이라는 것을 자주 힘주어 강조했다. 필례는 이러는 나광남이 영 탐탁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그는 순수한 낭만주의자가 아니고,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라 할 수 있는 한량으로 보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필례에게 치근덕대는 남자는 나광남뿐이 아니었다. 5년 전 어느 비 오는 여름밤에 개인택시 기사였던 남편이 택시 운행 중 트럭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고로 별세한 이후 그 혼자된 사정을 아는 남정네들이 너도나도 추파를 던져오는 것이었다. 필례는 이런 인간들이 너무 싫었다. 미용실이라는 게 온갖 별의별 인간들을 수도 없이 상대해야 하는 곳이다 보니 인간 자체에 환멸을 느끼는데, 자기 취향과는 영 거리가 먼 쉰내 나는 남자들이 자기를 어찌해보려고 되지도 않을 수작을 부리면 속으로 얼마나 역겨운 감정이 일었는지 몰랐다.
물론 나광남은 그치들보다 외모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고 상대적으로 젊은 축이지만 푼수데기처럼 스스로 부자라며 떠벌리고 다니는 것은 영 못마땅했다. 그리고 부자치고는 지질한 면이 많았다.
"아따 원장님 간판 바꿔부렀소잉, 주인 바뀐지 알고 겁나게 놀래부렀구마안, 근디 요 고철깡통은 뭐다요. 요 옆에 고물상에서 주워 왔소?"
"아니, 새로 들어온 직원이에요오, 로보트미용사! 휴먼 로봇이라고 들어 봤는가 모르겄네!“
"휴먼로봇 잘 알지라, 내가 그것 모르겄소, 현다이차가 잘 만들지 않소 휴먼로봇!“
"요거 바로 그 현다이차꺼에요"
"그라요! 말도 헐 줄 아요?”
"그럼요, 말도 허고 춤도 추고 공중제비도 돌고 다 해요오"
"머리도 깎을지 아요?"
"암요, 머리도 깎고 파마도 하고 염색도 해요! 한 번 깎어 보실라요?"
"근디 영 못 미더워서 못 깎었소"
"한 번 깎어봐요, 최신 유행 스타일도 다 짜를 줄 알어요"
"아니 도저히 겁나서 못 허겄소, 글고 나는 원장님이 짤라주는 것이 맘에 든당께요"
돌쇠에게 깎아보라고 아무리 권유해도 나광남이 한사코 거부하니 필례는 할 수 없이 직접 잘라줄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나광남이 돌쇠를 거부하는 이유는 돌쇠가 겁나는 것 보다도 자기가 짝사랑하는 필례의 손길을 느끼는 게 더 컸기 때문이었다.
필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들으며 부드러운 손길로 머리를 자르는 잠깐의 시간이 나광남에게는 세상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한 시간인데 그 꿀맛 같은 필례와의 시공간을 차가운 금속기계로 대체한다는 것이 너무 끔찍하게 생각되었다.
로봇이 자신의 머리를 연예인보다 더 멋있게 잘라 준대도 필례의 손길과 바꾸는 것은 절대로 싫었다. 설령 필례가 실수로 쥐 파먹은 것처럼 자른다손 쳐도 나광남은 차라리 필례한테 자르는 게 더 좋았던 것이다.
"원장님, 언제 같이 곰탕 한 그릇 먹장께요"
머리를 하러 올 때마다 나 광남이 입버릇처럼 식사 대접을 해 주겠다고 했지만 필례는 갖은 이유를 대며 한사코 사양했는데 그 이유는, 자기 딴에 외모가 섹시한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자신을 짐짓 문란한 여자로 여길 것이 뻔한데, 남자들과 같이 밥이라도 같이 먹고 다니게 되면 온갖 안 좋은 소문이 지역 호사가들의 입을 매개로 여기저기 사방팔방으로 확산하고 그것이 미용실 영업에 지장을 입히게 될 것이라는 염려가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실 자신이 섹시하다는 생각은 필례 자신의 착각일뿐 손님이나 지역 사람들은 되레 필례를 미용사치고는 너무 가꾸질 않아 외모가 전혀 미용사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평범하고 또 평소 행실도 조신하여 남자들과 밥 몇 번 먹으러 다닌다는 것만으로 문란한 여자 취급당하는 것은 결코 없을 일이었다.
아무튼 그런 망상 때문에 어떤 남자의 식사 제의에도 반응하지 않던 필례였는데 오늘만은 생각이 달리 먹어졌다.
다가오는 장날에 돌쇠를 데리고 장터를 돌며 미용실 홍보를 할 계획을 세웠는데 아무래도 남정네 도우미가 한 명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광남이 그 도우미로 적합하단 생각이었다.
"그래요 곰탕 한 그릇 묵죠, 근디 돈은 내가 내께요, 대신에 부탁이 있는디 모레 장날에 남평장 같이 돌아댕김시로 미용실 홍보 좀 도와줄 수 있으까요, 홍보 도와주면 곰탕이 아니라 드들강 비싼 디 가서 홍어삼합 대접해 드리께요"
드들강은 남평의 유명한 유원지였고 필례의 집도 그 근처에 있었다. 남편이 죽고 나서 받은 보험금과 택시 권리금 판 돈으로 필례는 강바람이 불어오는 경치 좋은 자리에 있는 제법 근사한 단독주택을 마련했던 것이다.
"아따 여부가 있겄어요, 나가 남는 것이 시간빼끼 없는 사람인디 당연히 도와 드려야제라잉"
나광남이 자신의 부탁을 호쾌히 받아주자 필례는 너무 고마운 마음에, 약속을 더 확실히 해두기 위해 공짜로 파마까지 해주기로 했다.
필례의 파마 시술은 현다이차에서 제공한 모션 장갑을 끼고 진행되었다. 모션 장갑은 초미세 압력까지도 감지하는 센서가 부착되어 필례의 모든 세세한 손동작까지도 돌쇠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는 기술이 탑재된 장갑이었다.
이미 현다이차에서 미용기술 훈련을 받은 돌쇠지만 '최신식미용실' 이라는 새로운 공간 그리고 '최필례'라는 새로운 사람과 최적화 되기 위한 적응훈련을 다시 또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이윽고 파마가 완성되었다. 그러나 거울 앞에 앉아 있는 나광남의 표정은 그리 썩 만족해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분명 웃고는 있었지만 30년 동안 수 많은 손님들의 미묘한 표정들을 세세하게 관찰하고 터득한 필례의 예리한 감각으로 정밀 분석해 봤을 때 그 웃음은 허탈한 감정이 배어있는 거짓 웃음이란 게 느껴졌다. 사실 파마가 나광남의 맘에 안 들만도 했다. 그 스타일은 나광남이 멋있어지라고 한 스타일이기보다는 돌쇠에게 기술 전수 목적이 더 큰 스타일이었으니 말이다.
필례는 하루라도 빨리 돌쇠에게 일을 시키고 싶었다. 필례네 미용실을 찾는 손님은 대부분이 시골 할머니들이었다. 그 때문에 나광남에게 어울릴만한 굵고 자연스러운 파마보다는 미용실을 가장 많이 찾는 단골 할머니들의 주 스타일인 뽀글이파마를 나 광남을 실습모델 삼아 시연했던 것이다. 당연히 나광남의 맘에 안 들 수밖에 없었다.
"오메 겁나게 꼬불거려부요잉, 이거 할매파마 아니요? 꼭 돌아가신 우리 엄니 머리같소잉!“
"머리숱 많어보이라고 일부러 꼬불거리게 했어요, 광남씨같이 숱이 적은 사람들은 뼈다구롯드로 꼬불거리게 해줘야지 너무 굵게 하면 머리가 지푸라기처럼 날아댕기고 볼륨도 안 살어서 못 써요, 야 돌쇠야 니가 봤을 땐 어쩌냐?"
"나이 든 어머니들이 많이 하는 파마라, 노인 이미지가 연상되어 고객님께서 거부감을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 파마는 파마의 궁극적 목적에 가장 부합한 파마입니다. 파마의 가장 궁극적 목적은 숱을 많아보이게 하고 힘없는 머리카락에 볼륨을 주는 것입니다. 이 꼬불이파마가 괜히 멋쟁이 한국 여성들의 국민파마요 쏘울파마가 된 것이 아닙니다. 원장님이 힘없고 숱이 부족하고 두상이 납작한 고객님을 위해 유니언 롯드를 선정하여 강력한 웨이브를 구현하신 것은 정말 더 할 것과 뺄 것이 단 1프로도 없는 탁월한 선택이셨습니다. 숱도 엄청 많아보이고 볼륨도 확 사니까 생기가 돌아 9년 8개월 23일 어려보입니다, 완벽합니다, 오늘 나이트 가면 바로 부킹..."
"돌쇠야, 너는 항상 말이 너무 길드라, 어렵게 말 허지 말고 쉽게 좀 말해주더라고"
"겁나게 멋있습니다"
장날이 되었다. 오전 일찍 필례는 나광남과 돌쇠를 데리고 남평장으로 갔다. 필례는 사람들한테 전단지를 나눠주고, 돌쇠는 가위춤을 추거나 공중제비를 돌면서 퍼포먼스를 벌였다.
나광남도 자기의 일인 양 운율까지 넣어가며 선전에 열을 올렸다.
"자 날이면 날마다 하는 일반 미용실이 아닙니다아. 로보트가 커트를 하고 파마를 하고 염색을 하는 최신식 미용실이 되겄습니다아, 로봇미용 개시 기념으로다가 30프로 세일을 하고 있으니 많은 방문 부탁 드리겄습니다아"
사람들이 돌쇠의 퍼포먼스를 구경하러 여기저기서 몰려들었는데 이 시끌벅적한 풍경은 필례네가 홍보활동을 벌이는 바로 근처에 있는 헤어전설미용실 박금자원장을 자극하고 있었다. 필례가 헤어전설 근처에서 홍보를 벌이는 것은 사실 박금자 원장 약 오르라고 일부러 치밀히 계산하여 벌인 행동이었다. 그만큼 필례는 헤어전설에 맺힌 것이 많았던 것이다.
"아니 저것들이 일부러 나 망하게 하려고 작정들을 했나!"
필례는 전단지를 돌리면서도 신경은 온통 헤어전설미용실쪽으로 향해져 있었다. 홍보활동 내내 힐끗힐끗 곁눈질하며 헤어전설쪽을 틈틈이 보고 있었다. 미용실 통유리 너머로 박금자가 엄청 화난 표정으로 레이저를 쏘며 자기 쪽을 노려보는게 보였는데 그게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었다.
박금자 입장에서는 다른 곳도 많은데 하필이면 자신의 업장 근처에서 시끄럽게 홍보질을 하고 있는지 배알이 뒤틀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로봇이 가위춤을 추고 덤블링을 하는 모습이 자신 미용실에 엄청난 위협을 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어이 여봐요, 지금 남의 영업장 앞에서 머더고(뭐하고) 있는 것이요?"
박금자의 목소리가 워낙 우렁차서 그런지 구경꾼들 시선이 전부 박 금자에게 향했다.
"남의 가게 앞에서 이것이 뭔 난리발광이냔 말여요, 5분 안에 다른 디로 안 옮기면 영업방해로 경찰에 콱 신고 해불텡께 신고 허기 전에 퍼뜩 사라지더라고!"
" 이녁(당신)이 따로 돈 주고 전세 놓은 자리도 아닌디, 나가 여자리서(이 자리에서) 튀밥 장시(뻥튀기 장사)를 허건 깨 홀딱 벗고 미친년 춤을 추건 뭔 상관이다요? 신경 끄고 드가서 볼일이나 보씨요"
이렇게 계속 주거니 받거니 말싸움이 이어졌고 말싸움은 이윽고 육탄전으로 비화됐다. 필례가 먼저 박금자의 머리끄덩이를 잡았고, 이에 질세라 박금자가 필례의 머리끄덩이를 잡았다. 이 순간 필례는 초등학교 3학년 때 하교하다가 동네 친구였던 정혜란과 말다툼을 하다 둘이 머리끄덩이 잡고 싸우던 40년 전 아득한 날의 손맛이 문득 느껴져 왔다. 그 손맛의 기세로 박금자의 머리끄덩이를 맹렬히 잡아당겼고 박금자도 질세라 필례의 머리끄덩이를 잡아챈 후 필례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려 버렸다. 바닥에 나뒹구러지면서도 둘은 결코 머리 붙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돌쇠는 이 상황이 딥러닝으로도 경험한 적이 없는 너무 생소한 상황이라 너무 당황스러웠는지 스트레스 지수 표시 램프가 엄청나게 빠르게 깜빡거렸다. 나광남은 달려들어 둘을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광분으로 드세어진 여자들의 악다구니는 우람한 체격을 가진 장정의 힘으로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한참 동안 나광남 혼자서 떼어내려다 안 돼서 구경꾼들 몇 명이 거들고 나서야 사태가 일단락 되었다.
전날 박금자와의 육박전과, 이후 나광남과 함께 드들강 홍어집에서 너무 과식과 과음을 한 탓에 몸이 힘들었음에도 필례는 평소보다 훨씬 일찍 출근을 서둘렀다. 어제 박금자와의 육박전이 필례에게 큰 자극이 되어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된 것이다.
한겨울이라 기온이 추웠음에도 필례는 캐시미어 소재의 짧은 치마 정장에 얇은 패딩을 걸치고 집을 나섰다. 늘 펑퍼짐하고 수수하게만 입고 다녀서 감추어져 있었을 뿐이지 드러난 필례의 몸매, 특히 스타킹을 신은 다리는 50 나이에도 30대 정도로 보일 만큼 날씬하고 예뻤다.
돌쇠는 필례의 경차 자가용 뒷좌석에 밤에 필례가 구동을 꺼놓은 상태 그대로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돌쇠의 음성기능 중에는 기존 음악이나 돌쇠 스스로의 자작곡등 다양한 음악을 생성하는 기능이 있었는데 오늘은 돌쇠의 자작곡 음악을 들으며 출근을 하였다.
미용실에 들어와서는 경대 앞에 앉아 예쁘게 화장을 했다. 평소 같으면 로션에 비비크림 정도의 기초화장만 대충 하고 말았는데 오늘은 립스틱이랑 아이라인에 아이섀도우 마스카라까지 정성들여 화장을 했고, 머리까지도 정성들여 업스타일을 했는데 그렇게 제대로 꾸며놓으니 필례 자신조차도 스스로에게 반할 만큼 섹시하고 예뻐보였다.
어제 장터의 홍보효과 때문일까, 믹스커피를 마시며 까딱문자를 확인하려는데 일찍부터 누군가가 밖에서 문을 두들겼다. 시간을 보니 문 열기 30분 전이었다. 블라인드 사이로 보니 단골할머니 손님 세 분이 문 앞에 서 계셨다.
"엄니덜 추운디 왜 이렇게 일찍 나오셨소덜"
"오메 누구당가? 쥔이 바낀 모냥이네"
"아녀요 엄니 화장해서 그래요, 나 맞어요?"
"오메 그래? 화장해농께 영판 이삐네잉! 쎄일 헌닥 해서 사람덜 몰릴깜시로 겁나게 일찍 나와부렀어!"
세 할머니는 파마를 한다고 했다. 필례는 오늘부터 당장 본격적으로 돌쇠에게 파마 마는 일을 시킬 작정이었는데 파마 손님이 세명씩이나 와주니 잘 됐다 싶었다.
이미 남평장날 이전에 돌쇠는 할머니 파마 손님을 두 분이나 실수 없이 완벽하게 성공했다. 파마 마는 것 외에 약 바르기나 롯드 풀기등 곁가지 일은 필례가 했지만 어쨋든 파마말기는 정확하면서도 빠르게 해냈다. 필례가 했으면 30분 이상 걸릴 것을 돌쇠는 필례보다 각도나 텐션도 알맞고 머리카락을 균등하게 잡아 삐져나오지 않게 얇은 슬라이스로 촘촘히 말면서도 10분 안에 끝내버렸다.
샴푸는 원래 돌쇠가 현다이차 모션훈련센타에서 뒤에 서서 하는 샴푸만을 훈련한 탓에 필례네 샴푸대 설치 구조상 옆에 서서 하는 샴푸를 해야 하니 처음에는 샴푸를 할 수 없었지만, 필례가 모션장갑을 끼고 샴푸 기술을 전수해 주어 이제는 옆샴푸도 거뜬히 해낼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나는 원장이 해줘야 쓰겄어, 로보트는 당췌 무수와서(무서워서) 못 허겄당께“
"나는 로보트양반한테 맽겨 볼랑만!(맡겨 봐야지)"
"나는 뒤에만 로보트한테 시키고 앞에는 원장이 몰아줘(말아줘)"
할머니들은 이렇게 세 패로 갈렸다. 필례는 어느 경우건 권유나 강요 없이 할머니들이 해달라는 대로 해주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할머니들도 만족해했고 필례도 대만족이었다.
특히 속도가 너무 빨라서 좋았다.
일의 능률이 몇 배가 느는 것이었다. 할머니 파마 손님들은 이렇게 거부감 별로 없이 돌쇠의 손길을 받아들였지만, 문제는 남자 커트 손님들이었다. 대부분이 돌쇠의 차가운 기계적 속성을 거부하여, 커트는 물론 샴푸 하는 것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래도 30대 이하 남자 손님들은 비록 커트는 가위가 머리 뒤에서 왔다 갔다 하니 무슨 사고라도 날까 하는 두려움에 거부를 할지라도 샴푸는 받기를 거부하지 않았는데, 나이 든 남자 특히 50대 이상 남자 손님들은 커트, 샴푸는 물론이거니와 돌쇠가 하는 그 어떤 서비스도 받기를 별로 반기지 않는 눈치였다. 그렇지만 그런 거부감에도 어쩌다 돌쇠의 파마나 샴푸를 경험하게 된 손님들은 그 속도감과 정확성에 만족하고 다음에 머리를 하러 올 때면 돌쇠를 찾는 손님들이 점점 많아졌다.
돌쇠에 대한 소문은 남평뿐 아니라 남평 근교 지역으로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나주시에서 오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함평, 영암, 무안, 화순에서도 오는 손님이 있었고 심지어는 광주에서 오는 손님이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구름같이 여기저기서 손님들이 몰려오니, 좁은 미용실을 들어오지 못하고 한참 동안을 밖의 다른 장소에서 대기하다 자리가 비면 들어와 머리를 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을 지경이었다. 손님은 이렇게 나날이 늘어났다. 이렇게 손님이 많을 경우 예전 같으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일을 했을 텐데 자신이 없어도 돌쇠가 일을 척척 잘하니 돌쇠에게 일을 잠시 맡겨놓고 편안하게 밥을 먹을 수가 있으니 좋았다.
한편 나광남은 홍어집에서 필례와의 회식 이후부터 필례의 최신식미용실을 이전보다 훨씬 뻔질나게 드나들더니 이제는 맘 내키면 아무 때고 미용실이 제집인 양 수시로 드나들며 허드렛일이나 여자인 필례가 하지 못하는 일을 돕고 가끔씩 감 놔라 배 놔라 참견도 하고 그랬다.
호칭도 원장님이라고 부르던 것이 어느새 누님으로 바뀌었는데, 이렇게 둘의 거리가 한층 가까워지게 된 데에는 영암 월출산 달구경 갔던 날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3월 초순, 낮에는 엄청 바쁘다 늦은 오후에는 손님이 아예 없어서 일찍 문을 닫아버린 날이었는데, 그간 커피 한 번도 사줘 본 적 없던 나광남이 웬일로 밥을 사주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원장님 돈만 벌어서 뭐덜 것이오, 가끔 놀기도 허고 그래야제, 오늘 정월 대보름날인디 일찍 문 닫은 김에 월출산에 보름달이나 보러 갑시다잉, 간 김에 나가 잘 아는 횟집이 있는디 거가서(거기 가서) 회도 묵고요, 나가 사주께요"
아닌게 아니라 돌쇠를 들인 날로부터 두 달 동안 필례는 쉬는 날도 없이 일만 했다. 설날에도 안 쉬고 일을 했을 정도였다. 돌쇠의 할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 농협에서 빌린 대출금을 갚으려면 열심히 일하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전에는 손님이 너무 없으니 자포자기 심정으로 될 대로 되라 하면서 쉴 거 다 쉬면서 게으르게 일했다면 돌쇠를 들인 이후부터는 장사가 잘되니 의욕이 솟구쳤다. 앞으로 석 달 정도면 농협 빚쯤이야 충분히 변제하고도 남을 것이니 그때까지만은 쉬는 날 없이 열심히 하자는 계산이었다.
"좋아요, 안 그래도 맛있는 것이 땡기고 술도 고팠는디 잘 됐구만요잉"
필례는 집과 미용실을 오갈 때면 언제나 돌쇠를 조수석에 태우고 다녔다. 남편이 별세하고 나서 늘 안전에 대한 걱정이 많았고, 딸이 서울로 가버리고 나서는 그런 불안이 더 심해졌는데 돌쇠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면서는 그런 불안이 사라지고 편안해졌다. 이제는 어디를 다녀도 돌쇠 없이는 다닐 수가 없을 지경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나광남이 돌쇠를 두고 둘이서만 가자고 그러는 것이 아닌가!
"깡통은 걸리적거리니까 그냥 두고 가장께요"
"그럼 혼자 가시더라고요, 인자 돌쇠는 내 몸 일부가 되아부러가꼬 돌쇠 없으면 영 불안해서 암디도(아무데도) 못 강께"
"아따 나가 있는디 머가 불안 허다고 그라요, 나가 나쁜짓이라도 헐까봐 그라요, 걱정 허덜덜덜 말랑께 그래싸쏘잉"
필례는 나광남이 미용실을 드나들며 수시로 눈도장을 찍어대고, 허드렛일을 도와주고 하니 처음보다는 경계심이 많이 누그러졌지만, 그렇다고 마음의 문을 완전히 연 것은 아니었다. 외모적으로는 싫을 게 없었지만, 그가 직업이 없다는 것이 여전히 마음에 걸렸고, 자기가 부자라고는 하지만 고급승용차를 끌고 다니는 것 외에는 눈으로 확인한 적이 없으니 확실히 미덥지가 않았다.
"돌쇠 안 데리고 가면 나도 안 갈텡게 그리 아시고 혼자 달구경 잘 허고 오시요!“
그렇게 해서 돌쇠도 나 광남의 자가용에 꼽사리 끼어 가게 된 것이다.
영암으로 가는 도중 나 광남은 뭔가 보여줄 게 있다면서 영암으로 곧장 가지 않고 나주 시내로 들어갔다. 그리고 중심가 갓길에 차를 세우고 어떤 5층짜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가 한참 있다 다시 나와 차에 오르더니 뜬금없는 말을 했다.
"원장님 쩌것이 내가 말한 그 내 건물이요, 그라고 쩌것 말고도 건물 한 개 더 있어라우"
필례는 눈이 휘둥구레졌다. 나광남이 다시 보였다.
이윽고 영암에 도착했다. 해가 지기 전이었다. 나광남은 밥을 먼저 먹자며 필례를 데리고 횟집으로 갔다. 돌쇠는 차 안에 두고 갔다. 나광남이 얘기한 대로 횟집 음식은 맛이 너무 좋았다. 음식이 맛이 좋은 만큼 술맛도 좋았고 기분 좋게 취했다. 자신만 취하는 게 섭섭했는지 음주운전 하면 안 된다며 거부하는 나광남에게도 술을 권했다. 필례의 권주(勸酒)를 못 이긴 나광남은 결국 혈중 알콜이 절대 운전대를 잡아서는 안 되는 농도로 높아져 버렸다. 술 열쇠에 말 자물통이 열린 나광남은 필례에게 사랑을 고백했고 느닺없이, 1년 후에 자기 건물 1층 옷가게가 계약기간이 끝나니 그때 필례가 자기 건물에 공짜로 들어와서 미용실을 하도록 해주겠다는 묻지도 않는 약속을 했다.
횟집을 나오니 쟁반처럼 둥근 보름달이 월출산 봉우리 한참 위로 둥둥 떠서 사방을 비추고 있었는데 필례는 그것이 자기와 나 광남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처럼 여겨졌다. 둘은 2차로 노래방엘 갔다.
"달아달아 바알근 달아 이태배액이 노울든 달아아..."
노래방 바로 옆 건물에는 '얼레리꼴레리'라는 모텔이 있었고, 달아오른 둘은 노래방 시간이 끝나자마자 들어올 때 주인에게 그렇게 간절히 요구했던 서비스 시간도 마다한 채 부리나케 그리로 달려가 격정적인 키스를 나누었다. 둘이 나눈 게 어디 키스뿐이랴! 그렇게 영암의 밤은 둥근 보름달과 함께 사랑이 둥글게 둥글게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자신이 왜 이토록 오랜 시간을 차 안에 방치돼 있어야 하는지 영문을 모르는 돌쇠는 밤새 저 환하고 아름다운 달을 달맞이꽃처럼 넋을 잃고 바라보다 달이 저물자 노란 환각을 앓다 굳어 망부석이 되어버린 듯 미동도 않고 부동자세를 한 채 주인을 기다리며 아침까지 앉아 있었다.
원래는 어두운 새벽이면 일어났던 필례였는데 전날 너무 과음한 탓에 날이 훤히 밝아서야 일어나게 되었다. 둘은 차가 세워져 있는 곳으로 갔다. 차를 세워둔 곳은 달맞이 장소로 유명한 넓은 공원 근처였는데 필례는 깜짝 놀랐다. 차 안에 있어야 할 돌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매일 퇴근할 때마다 돌쇠를 차에 두고 내렸지만 이렇게 사라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차에서 내릴 때는 언제나 구동 기능을 정지시켜 놨었고, 어제도 분명 감지 기능만 놔두고 구동 기능은 정지시켜 놨었기에 절대 스스로 사라졌을 리가 없었다. 분명 누군가가 훔쳐간 게 분명했다.
"오메 어찌야쓰까 누가 돌쇠를 훔쳐가부렀네, 워떤 호로자식들이 우리 돌쇠를 훔쳐가부렀다냐"
"누님 너무 흥분허지 말고 진정허씨요"
”광남씨 나가 지금 흥분 안 허게 생겼소! 돌쇠가 얼마짜린디..."
"걱정만 헐 것이 아니라 같이 찬찬히 돌아 댕김시로(돌아다니면서) 찾아 보자고요 누님"
근처를 아무리 둘러봐도 돌쇠가 안 보이자 둘은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일요일이라 공원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 곳에서 음악 소리가 크게 들려, 보니 그곳에 무슨 구경거리라도 난 듯 사람들이 엄청 모여 있었다. 노란 산수유꽃이 흐드러지게 만발해 있는 곳이었는데,필례는 무슨 일로 사람들이 저렇게 모여있는 것인지 궁금증이 일었다. 혹 돌쇠가 저기에 있지 않을까도 싶었다.
"쩌짝으로 가보자고"
필례와 나광남은 그곳으로 허겁지겁 달려갔다. 둘러싼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는 그 구경거리가 무엇인지를 알았을 때 둘은 그 광경이 너무나 진기하여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돌쇠가 자신의 스피커에서 나오는 EDM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누님 뭔일이다요, 아무리봐도 깡통이 완전히 맛탱아리가 가분 것 같소야!"
"조용히 해보드라고 광남씨"
돌쇠는 필례가 온 것도 모르는지 계속 무아지경으로 춤사위를 멈추지 않고 있었다. 춤은 막춤이었는데 얼마나 관절을 부드럽게 잘 돌리며 추는지 몇몇 구경꾼들조차 돌쇠의 율동에 흥이나서 신나게 같이 몸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춤에 호응하지 않는 사람들조차 돌쇠의 신들린 춤사위에 홀려버린 듯 모두 넋을 잃고 구경하고 있었다. 필례는 돌쇠가 춤을 추는 것을 더 보고 싶었지만 가게 문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을 손님들이 신경이 쓰였다.
"돌쇠야!“
목소리가 작아서 듣지 못한 것인지, 댄스 삼매경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돌쇠는 필례의 부름에도 아랑곳 없이 계속 춤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더 쩌렁쩌렁한 소리로 불렀다.
"도올쇠에야아~"
소리를 들은 것인지 돌쇠의 스피커 음악이 갑자기 멈추었고 그와 동시에 동작도 딱 멈췄다.
구경꾼들의 시선은 멈춰선 돌쇠보다 필례에게로 옮겨갔고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쩌 여자가 로보트 주인인갑네"
"한참 재밌을락 했는디 끊쳐부렀네, 겁나 아숩구만잉"
그런데 정적도 잠시, 박제된 듯 정지해있던 돌쇠가 필례쪽으로 스르르 몸을 틀고 고개를 들더니 필례를 향해 매력적인 저음의 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오 나의 주인님 돌쇠를 찾으러 오셨습니까!"
하더니 갑자기 가슴팍 스피커에서 육중한 반도네온 선율의 탱고음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컴온 원장님! 이쪽으로 컴온 컴온!"
필례가 머뭇거리자 돌쇠는 슬금슬금 필례에게 다가갔고 방심한 필례의 허리를 덥석 낚아챘다.필례는 깜짝 놀라 고함을 지를 뻔 했지만 돌쇠의 손가락이 허리 곡선을 타고 내려와 단단히 고정되는 순간 그동안 잊고 지냈던 춤의 본능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사실 필례는 과거에 몇 개월간 라틴댄스를 배운 적이 있었다. 남편이 별세한 이후 한동안 우울에 빠져 지낼 때 같이 미용학원을 다녔던 친구가 외로움 이기기엔 이만한 게 없다며 같이 광주에 있는 콜라텍을 다니게 되었고 거기서 자연스럽게 라틴댄스를 배우게 되었다.
그런데 춤은 좋았지만, 술 냄새 담배 냄새 땀 냄새 노인 냄새 향수 냄새를 짬뽕 범벅으로 풍기며 끈적하게 달라붙는 영감탱이들의 추태에 진절머리를 치며 몇 개월 만에 구두를 벗어 던져 버리고 발길을 딱 끊어 버렸다.
필례의 허리를 끌어안은 돌쇠는 자로 잰 듯한 정확한 텐션으로 그녀를 이끌었고 그녀도 그런 돌쇠의 이끎에 안심하며 몸을 맡기고 품에 파고들어 함께 리듬을 탔다. 그 이끎이 얼마나 정교하던지 혹 돌쇠가 이미 자신의 춤 실력을 정확히 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정도였다.
"아따 누님 인자 둘 다 해까닥 해부렀는갑소잉, 그만 빨리 가장께요"
"쉿"
나광남이 분위기 깨는 소리를 하자 필례는 검지 손가락을 입술 가운데로 대며 조용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따-단-단-단-단’
강렬한 스타카토 비트에 맞춰 돌쇠가 필례를 밀었다 다시 확 낚아채며 '간초(ganchos, 다리를 거는 동작)'를 유도했다. 필례는 자신도 모르게 돌쇠의 매끄러운 금속 다리 사이로 발을 집
어넣어 우아하게 꼬아 올렸다.
"오메 그만 가장께는... 이 깡통놈의 자슥을 콱!"
나광남이 다가오며 멈추기를 종용했지만, 이번에는 아예 거들떠도 보지 않고 돌쇠의 리드에 맞춰 동작을 계속 이어 나갔다. 이에 화가 난 나광남이 돌쇠의 팔을 잡아당기려 하자 돌쇠는 교묘하게 몸을 비틀어 강철 팔꿈치로 나 광남의 명치를 툭 밀어버렸다.
"오메오메오메 이 고철 깡통놈의 자슥이 이젠 사람을 치네!"
나광남이 고통스런 표정으로 소리를 지름에도 둘은 그에 아랑곳없이 여전히 댄스 삼매경이었고 구경꾼들은 재밌다는 듯이 깔깔대며 웃어댔다.
화가 난 나광남이 다시 돌쇠에게 덤벼들려 하자, 돌쇠는 필례를 들어 올려 품에 안고 팽이처럼 빙빙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 동작이 서커스를 방불케 할 정도로 현란한지라 구경꾼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돌쇠와의 완벽한 파트너쉽에 너무나 감정이 고양돼버린 필례는 도저히 이 흥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돌쇠야 나가 웬만한 난다 긴다 허는 영감들허고 스탭을 맞춰봤지만 너맹키로 잘 이끈 사람은 없었시야, 야 돌쇠 너 다시 봐야긌다, 좋아부러 이번에는 살사 어떠냐? 자 살사 한판 때려불자고잉"
"예 좋아요 원장님, 자 그럼 갑니다잉!"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돌쇠는 필례를 공중으로 들어 올렸고, 돌쇠의 손에 의지한 필례의 몸은 나비처럼 날아올랐다. 그러다 다시 사뿐히 내려와 이리저리 회전하고 그러다 다시 왔다리 갔다리 하며 완전하게 서로 호흡을 맞췄다. 필례는 이 순간 자신이 저 흩날리는 산수유꽃보다 더 홀가분한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생각됐고, 그 홀가분함 속에 산수유꽃 향기보다 더 진한 행복감이 밀려왔다.
이는 어쩌면 돌쇠가 자신이 어젯밤 앓았던 노란 환각의 세계로 필례를 유괴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몽환적 상황이라 할 수 있겠는데, 나중에 필례가 현다이차 로봇 as부서에 이날 일어난 돌쇠의 일을 소상히 전하고, 이런 일 즉, 로봇이 구동 스위치를 꺼놨는데도 스스로 움직일 수가 있으며, 그것도 멀리 스스로 걸어가서 춤을 추는 일이 가능한가를 문의 했지만 담당자의 대답은,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너무 신기한 일이라 현다이차 말고도 다른 로봇 관련 전문가들을 백방으로 수소문해서 의견을 물었지만 모두 한결같이 로봇이 그렇게 자의식을 가진 것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절대 결단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이렇게 돌쇠의 영암 춤 사건은 영암지역 사람들 입에만 회자 되는 영원한 미스터리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영암사건 이후, 그것이 나광남과의 으샤으샤 건 때문인지 아니면 돌쇠와의 춤판 건 때문인지는 몰라도, 필례의 얼굴에는 전보다도 훨씬 기깔나게 화색이 돌았다. 주인장이 이렇게 밝은 기운이 되니, 손님들도 그것을 은연중에 느끼는 듯 미용실은 손님들로 더욱 문전성시를 이뤘다. 전에는 파마 마느라고 손가락 관절이 아팠다면 이제는 돈 세느라고 손가락 관절이 아플지경이었다.
"오메 집이(you)가 남평 돈을 빗자루로 싹 다 쓸어 담어븐갑소야(쓸어 담아버리는 것 같네요)"
돌쇠의 기술은 3개월여만에 장족의 발전을 하여 이제 웬만한 미용실 일은 허드렛일까지도 필례의 간섭이 없이 척척 다 알아서 잘 해내는 수준이 되었다.
"돌쇠야 물떠오니라"
하면, 한방울도 흘림이 없이 컵에다 물을 따라서 대령해오는 수준이었으니 다른 것은 말해
무엇하랴! 사실 처음에는 허구한 날 클레임이나 컴플레인이었다. 기술적인 부분은 주로 힘 조절을 세밀하게 못 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고, 고객 응대적인 부분에서는 말귀를 못 알아들어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자면 손님이, '머리좀 멋있게 쳐줘봐' 하면 엉거주춤한 자세로 손님 머리를 툭툭 치는가 하면 샴푸할 때도, '시원하게 감겨줘' 하면 차가운 물로 감겨주는 식이었다.
그 외 인간 미용사들이 초보 때 겪을 수 있는 실수도 빈번히 일으켰는데 염색약이 얼굴 쪽으로 너무 묻게 하거나, 파마약이 두피로 너무 흘러내리게 바르거나, 중화제가 눈으로 튀게 하거나 하는 실수들을 했다. 또, 염색약이 손님 옷에 튀어 옷값을 물어줬던 적도 있었고, 가장 잊지 못할 실수를 들라면 성깔 안 좋은 손님을 샴푸 해 주다 손님의 등짝까지 시원하게 등목을 시켜준 적이 있었는데 이때 손님의 화를 진정시키려 필례가 얼마나 죄송하다며 싹싹 빌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돌쇠가 기특한 것이, 언어에 관련된 실수는 설명을 해 주면 바로 이해를 했고, 기술적인 실수는 모션장갑을 통해 세세하게 교정을 해 주면 다시는 같은 실수를 재발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돌쇠의 기술도 좋아지고, 미용실도 잘 됐지만 필례에겐 새로이 떠오르는 고민이 하나 생겼다.
그것은 미용실이 너무 할머니 손님 위주라는 것이었다. 너무 할머니 손님들뿐이니 미용실이 경로당 느낌이 되어버렸다. 게다 나광남이 드나들면서 적게나마 있었던 필례를 흠모하던 남자 손님들까지 싹 떨어져 나가버려서 미용실은 그야말로 할머니들의 사랑방이 되어버렸다. 거기다 가격까지 너무 싸니 아무리 돌쇠가 손이 빨라도 매출에 한계가 있었다. 사실 필례는 나광남이 자신의 건물을 보여주고 그곳에 미용실을 무상으로 임대해 주겠다는 제의를 하기 전까지는 현 공간만으로 충분히 만족하고 더 이상의 욕심을 갖지 않았다.
그런데 나광남이 그런 잔잔한 필례의 마음호수에 돌을 던져 고이 자는 욕심 물고기가 생동하도록 만든 것이다. 필례는 할 수만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이 누추하고 협소한 곳을 벗어나 화려하고도 여유로운 공간으로 옮겨갔으면 했다. 그래서 나광남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져보았다.
"광남씨! 우리미용실 광남씨 건물에 들어가는 거 좀 더 빨리 서둘러 줄 수 없으까?"
"아따 누님 성격도 급하요잉, 계약기간이 내년 봄까진디 어떻게 강제로 나가라고 헌다요? 1년만 기다려 보드라고요, 나는 약속한 말은 꼭 지키는 사람잉께 걱정허지 말더라고요"
일리가 있는 말이라 필례는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대신 나주시내의 넓고 새로운 공간으로 옮길 때를 대비하기 위해 세팅파마기, 아이롱기, 매직기등 여타 새로운 기구와 기계들을 들이고 돌쇠로 하여금 그것들을 활용한 기술들을 미리 익히게 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시설과 기술에 투자를 아끼지 않으니, 그에 맞게 젊은 손님들도 점차 조금씩 늘어가며 최신식미용실은 더욱 활기가 넘쳐났다. 그 덕에 농협 빚은 예상보다 빨리 상환해버렸고, 이후 통장에 잔고가 점점 쌓여가니 이젠 돈을 어디다 보관해야 통장보다 안전할까를 걱정하는 처지가 되었다.
온난화 때문에 허구한 날 온열 질환자들이 속출할 정도로 살인적인 더위가 기승을 부리며 사람들을 괴롭히던 지독한 여름이 필례에게는 되레 포근한 추억으로만 남을 것 같았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가을로 접어들 무렵의 어느 날, 돌쇠랑 파마지 개는 시합에 여느 때처럼 패배한 나 광남이 밖에 나가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들어와 카운터에 앉아 돈을 세다 졸고 있던 필례를 깨웠다.
"저 필례누님 할 말이 있는디요!“
"무슨 말?"
"다른 것이 아니고 우리 건물 1층 옷가게말여요, 계약기간을 안 채우고 보증금만 빼주면 당장 나가겄다 허네요"
"그래요? 존 소식이네, 그럼 미용실 바로 들어갈 수 있겄네, 빨리 빼주지 그래요, 얼른 드가게(들어가게)!"
"근디 보증금을 빼줘야 허는디 당장 융통헐 돈이 부족해부러가꼬 말여요, 지난달까지만 해도 여유가 있었는디 광주 사는 사촌 여동생이 아파트 산다고 빌려 가는 바람에... "
"얼마가 부족헌디!"
"보증금이 3000인디 2000만원이 부족허구만요, 사촌동생한테 달라고 말했더니 5개월 후에나 갚는다고 허네요, 1000만원은 딴디서 돈 받을디가 있어가꼬 해결 가능헌디 딱 1000만원이 부족해브네요, 그래서 그런디 누님이 한 1000만원만 빌려줄 수 없으까요...사촌동생한테 돈 받으면 바로 갚어줄텡게...안 되면 놔 두고요, 나야 내년 계약기간까지 기간 여유가 충분히 있응께..."
" 광남씨 걱정말어 , 나가 1000만원이 없겄다고...빨리 계좌번호 불러!"
이렇게 해서 필례는 나 광남에게 1000만원을 입금시켜주고, 나주시내로 미용실을 이전할 생각에 기분이 한껏 부풀게 되었다. 건물주에게는 현 미용실을 내놓겠다는 통보를 했고, 나주 시내로 옮겼을 때의 계획을 이리저리 궁리했다.
넓고 쾌적한 새 미용실로 옮길 생각에 기분이 들뜨니 일이 손이 잡히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거의 모든 미용실 업무를 웬만하면 돌쇠에게 맡겨버리고, 자신은 주로 나주 시내로 이전하는 구상에만 몰두했다. 필례는 그런 구상을 나광남과 상의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나 광남이 돈을 빌려간 이후로는 숫제 미용실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전화를 하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필례를 회피하는 듯 하였는데 어느 날부터는 아예 전화를 받지도 않았다.
안 되겠다 싶어 필례는 미용실 문을 닫고 돌쇠를 대동하고 3월 보름날 나광남이 자기 건물이라며 들렀던 나주 시내의 그 빌딩을 기억을 더듬어 찾아갔다.
1층 옷가게는 문이 닫혀 있어서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은 당구장이었는데 손님은 없고, 주인장인듯한 50대 남자가 쇼파에 기대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저 뭐 좀 여쭤볼 것이 있어가꼬 왔는디요“
"예 물어보시요"
"이 건물 사장님 이름이 나광남씨가 맞죠잉?"
"나광남?..."
"예 나광남!"
그러면서 필례는 핸드폰에 저장된 나광남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전에는 광남이가 건물 주인이긴 했는디 2년 전에 경매로 지금 주인한테 넘어가부렀응께 지금은 주인이 아니죠잉, 건물이 하나 더 있었는디 그 건물도 1년 전에 경매 걸려가꼬 딴 사람한테 넘어가부렀고...광남이 그 자슥 즈그 아부지 돌아가심시로 유산 허벌차게 받었는디 노름으로 다 날려부렀어요, 재산 다 날렸으면 처자식 생각해서 정신 차려야 헐 것인디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다니나 보드라고요, 혹시 아짐도 광남이한테 돈 빌려 줬소? 나도 3월달 대보름날인가? 갑자기 급한 일 있닥 해서 30만원 빌려줬는디 아직도 못 받고 있어요, 이후로 아예 나타나지도 않고..."
나광남이 분명 자신한테는 총각이라 했는데 처자식까지 있었다니 필례는 기가 막혔다. 돈을 잃은 것도 열이 받는 일이었지만, 믿은 사람한테 사기를 당했다는데 더 화가났다. 주인장과 이런 저런 얘기를 더 나누다 나중에 나광남이 나타나면 연락 달라고 명함을 주고는 당구장을 나와버렸다.
"광남이 찾더라도 돈 받기 힘들것이요, 광남이한테 돈 빌려주고 못 받은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여요오"
미용실로 돌아온 필례는 다시 한번 나광남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예 없는 전화번호로 나왔다.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이오니 다시 확인하시고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호로자식, 나한테 사기를 쳤단말이지! 걸리면 모가지를 확 비틀어불 것이구만"
필례는 너무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눈물이 나왔다.
필례가 울고 있으니 돌쇠도 필례의 속상한 마음을 아는 것인지 필례 옆으로 다가와 앉으며 필례를 안아주었다. 이때 돌쇠의 몸은 사람의 몸처럼 따뜻했는데, 돌쇠의 기능 중에는 ‘위로 기능 모드’라고 해서 주인의 얼굴 표정과 몸짓을 통해 주인의 감정이 낙담이나 실의의 상태임이 파악됐을 때, 그때 주인의 손을 잡아주거나 포옹을 해주는 기능이 있었는데, 이때에는 돌쇠의 표면온도가 자동으로 사람체온만큼 37도로 올라가도록 되어있었다. 돌쇠의 따뜻한 포옹이 필례에게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원장님 몸 상하니까 너무 낙심 마세요, “
"나 힘든지 어찌 알고 따뜻허니 안아주고, 돌쇠 니가 사람보다 훨씬 낫다잉, 인자 나는 너밖에 없시야, 나 죽을 때까지 평생 같이 잘 지내도록 허자잉"
"원장님 여부가 있겠습니까! 저 역시도 제가 고장 나서 폐로봇이 되기 전까지는 원장님을 끝까지 잘 보필할 것이구만요, 이번 일은 빨리 잊어버리시는게 건강에 좋을 것이에요. 제 딥러닝 데이터상 나광남같이 도박에 빠져서 돈 빌려가는 부류들은 79.78프로가 빚 안 갚습니다, 그렁께 빨리 잊어버리고 평정심을 찾으세요, 이 돌쇠가 그깟 천만원쯤이야 금방 벌어 드릴 수 있습니다"
"말이라도 고맙다 돌쇠야, 니 말 들응께 다시 열심히 할 의욕이 솟는구나! 그래 너랑 나랑 합심해서 돈 허벌나게 벌어가꼬 광주 충장로, 아니 이왕지사 서울 청담동에다가 겁나게 멋있는 미용실 차려불자!“
만일 돌쇠가 필례를 잘 다독이지 않았다면, 필례는 사람에 대한 배신감과 금전의 손해에 대한 충격에 건강을 크게 해쳐 한동안 몸져누워 지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비록 로봇이지만, 돌쇠의 따뜻한 손길과 말 한마디가 큰 위안이 되어 심란해진 기분을 금방 추스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굴욕에서 벗어나 평정심을 되찾을 길은 다시 열심히 일하는 길밖에 없다는 판단이 들었기에 필례는 매일 돌쇠와 의기투합하고 밝은 모습으로 손님들을 맞이했다. 나광남의 행방에 대해서는 의외로 일부 입방아꾼 할머니들 외에는 별로 묻는 사람도 없었고 나광남의 부재가 오히려 손님들을 더 편안하게 해주는 것 같아 어찌 보면 장기적으로 잘된 일 같았다. 그렇게 별일 없이 미용실의 사정은 순탄하게 흘러갔고, 어느덧 계절은 연말에 접어들었다.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어서 돌쇠는 미용실 홍보용으로 캐롤송을 매일 밤낮없이 스피커로 울려댔고 또 그런 음악에 맞춰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어대며 즐거운 듯 일을 하였다.
돌쇠의 업무범위는 점점 넓어져서 이제는 일반쓰레기와 재활용을 분리하여 쓰레기 집하장에 가져다 버리는 일까지도 할 수 있는 경지가 되었다.
그 날은 크리스마스 이브날이었다. 손님이 일찍 끊겼기에 여느 때처럼 필례는 돌쇠에게 꽉 찬 쓰레기봉투를 쓰레기장에 버리고 오라고 시켰다. 그런데 다섯 번도 더 왔다갔다 할 시간이 되어도 돌쇠가 오지 않는 것이 아닌가! 무슨 일이 있겠다 싶어 필례는 얼른 쓰레기 집하장으로 가 보았다. 어디로 간 것인지 돌쇠의 모습은 발견할 수가 없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3월 보름날 나광남과 영암에 달구경 간 날 사라졌던 일 말고는 한 번도 돌쇠가 스스로 사라진 일이 없었는데, 이렇게 또 증발해버리다니 불안한 생각이 엄습해왔다. 필례는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돌쇠를 찾아보았다. 간혹 근처에 사람이 보이면 이러이러한 모양의 로보트를 보았느냐고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보았다는 사람이 없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미용실에 다시 가봐도 없고 거의 두 시간가량을 찾으러 다녔는데도 돌쇠의 행방은 묘연하니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필례는 남평지구대를 찾아갔다.
" 무슨 일때문에 오셨나요?"
필례는 너무 안절부절 불안한 표정이었던 반면 경관들은 지극히 차분한 표정이었기에 그 모습이 너무나 대조가 되었다.
"저어 실종신고 하러 왔어요, 우리 돌쇠가...그러니까 그게 사람이 아니고 로보튼디..."
필례가 돌쇠를 실종신고를 하겠다고 하자 담당 경찰관은 이런 건은 사람이 아니기에 실종신고가 아니라 분실신고로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분실신고서를 작성하고 지구대를 나와서도 필례는 한참 더 돌쇠를 찾으러 다녔다.
"발견되는 즉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자신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큰 일인데도 담당경관은 너무나 태연하게 사무적으로만 답하니 참으로 환장할 일이었다. 그날 자정이 넘도록 결국 돌쇠를 찾지 못한 필례는 불안한 마음에 밤을 꼴딱 새우고 다시 지구대를 찾아갔다. 그러나, 담당 경관은 여전히 태연자약한 태도로 어제와 같은 말만 반복했다.
"기다리고 계세요, 발견되는 즉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어차피 문을 열어도 돌쇠가 없으면 미용실 영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가 없기에 돌쇠를 찾을 때까지는 영업을 중단하기로 하고, 미용실 입구에 크게 안내문을 써 붙여 놓았다.
'해외 세미나 참가로 부득이하게 열흘간 영업을 중단합니다'
그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돌쇠의 행방은 찾을 길이 없었고, 지구대를 찾아가도 여전히,
'발견되는 즉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라는 말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구대 경관들에게 의지하는 것만으로는 돌쇠를 찾을 가망이 전혀 없을 것 같아, 필례는 자신이 직접 해결 하는게 낫겠다며 돌쇠를 찾을 방도를 이리저리 궁리했다. 하지만 도저히 찾을 방법이 떠오르지 않자 급기야 생각해낸 게, 화순군 화학산에서 자연인 생활을 하고 계시는 아버지한테 도움을 요청해야겠다는 것이었다. 비록 낼모레면 연세가 80의 노구지만, 전직 강력계 형사였기에 아버지는 찾을 실마리를 제공해 주실 것만 같았다.
"필례냐, 뭔 일이다냐 니가, 평소에는 연락도 없다가?"
"아부지 죄송해요, 다른 게 아니고 올 초에 제가 로보트 사가꼬 아부지가 이름도 지어주고 했잖아요잉, 돌쇠라고요, 근디 그 로보트가 지금 행방불명 되아부렀어요, 밤에 쓰레기 버린다고 나가가꼬 여태껏 안 들어온당께요, 아부지 어째야쓸까요잉, 그놈 돌쇠땀시 지금까지 미용실도 허벌차게 잘 되았는디 큰 일 나부렀어요"
"그런 일 있었으면 아부지한테 진작 연락을 했어야제, 인자사 허면 어쩐다냐, 기다려봐라 안 그래도 조만간 내가 남평에 볼 일 있어가꼬 갈락 했는디 잘 되아부렀다"
전직 강력계 형사였던 필례아버지 최강인씨는 비록 지금은 초야에 묻혀 이름 없이 살아가지만, 젊은 시절 수사관으로의 활약상은 어마어마했다. 80년대에 광주 번화가를 무법지대처럼 활보하고 다니며 선량한 시민들에게 횡포를 부리고 다니던 간악무도한 조직폭력배들을 무력화시키고 소탕하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던 전설적인 인물이 바로 최강인이었다. 그는 격투기에 재능이 많아 형사라는 직업을 택했지만, 다른 형사들과 달리 공부하는 것을 너무 좋아했다. 사실 은퇴 후 그가 깊은 산으로 들어가 자연인의 삶을 사는 이유도, 그간 일 때문에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공부를 은퇴 후에는 원 없이 실컷 해보고 죽자 하는 소망 때문에 그런것이었는데, 그러려면 사람들이 찾아오기 힘든 곳에서 공부를 해야 제대로 집중이 잘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고전적인 공부를 좋아했지만 그렇다고 고전분야만 공부한 것이 아니고 현대적인 것이나 첨단적인 분야까지 호기심이 이는 것은 모두 공부하였다. 호기심이 풀려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다른 시골 사람들이 멀리 다닐 때 자동차를 늘 끌고 다니는 것과 달리, 항상 당나귀를 타고 다녔다. 당나귀는 최강인이 가족이나 친구처럼 소중히 여기는 반려자같은 존재로 그의 지론에 의하면, 당나귀야말로 고도의 첨단기술이 집약된 운송수단이오 교통수단이라는 것이었다.
다음날 필례 아버지 최강인씨는 그 당나귀를 타고 딸네 집으로 왔다.
"아부지 지금이 어느 시댄디 아직도 당나귀를 타고 댕기세요, 인자 당나귀는 그만 집에 묶어두고 택시 대절해서 오세요!”
아버지는 으레 다른 사람들에게 늘 해주는 식으로 딸에게 말했다.
"니가 몰라서 그런다, 이래봬도 이 당나귀가 지알아서 척척 길 잘 댕기는 최고레벨 자율주행차란다잉, 들길 산길 물길도 가리지 않고 전천후로 댕기고 또, 오염 없는 친환경에다 연료비도 안 들고, 어디 그것 뿐이간디? 아부지랑 정서교감까지 나눌지 안당께, 이보다 더 최첨단 자동차 있으면 나와보라고 허랑께!"
"알았어요, 그건 그렇고 돌쇠 좀 찾아줘요 아부지"
"걱정 말그라 이 아부지가 누구냐, 안 그래도 어지께 밤에 광주경찰서장 허다 은퇴헌 아부지 후배한테 부탁 해놨다, 곧 연락 올것이다"
필례는 간만에 뵌 아버지를 위해 따뜻한 밥상을 차려드리고, 그간 못 나눈 회포를 풀었다.
아버지는 당나귀 타고 볼일 보러 가시고 필례가 설거지를 끝내고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건조대에 널고 있을 때, 필례의 전화벨이 울렸다. 지구대에서 온 것이었는데, 돌쇠를 찾았다는 것이었다.
"저 최필례 선생님이십니까?"
"예 제가 최필례인디요"
"다른게 아니고 그 의뢰하신 사건 해결되었습니다, 로보트를 찾았어요"
필례는 뛸 듯이 기뻤다.
"그런데 저...물론 오셔서 확인하고 결정하셔야 할 문제지만, 상태가 많이 안 좋군요"
"예? 그게 무슨 말이여요?“
"아닙니다. 일단 지구대로 오시기바랍니다"
"예 알겠어요"
필례는 차를 몰고 부리나케 지구대로 갔다. 필례가 지구대 안으로 헐레벌떡 들어왔을 때 담당경관은 예전 태도와는 사뭇 딴판으로 정중한 태도로 필례에게 인사하고 필례를 창고같은 곳으로 안내했다. 경관이 창고 문을 열었을 때 필례는 경악하고야 말았다. 창고바닥에 돌쇠가 관절이 대부분 떨어지거나, 붙어있어도 덜렁거리고, 몸체 여기저기는 찌그러진 채, 널브러져 있는 것이 아닌가!
성한 곳이 거의 없었다. 그것은 흡사 뭉게진 채 얽혀있는 고철 덩어리 같았다. 돌쇠의 처참한 모습에 필례는 엉엉 대성통곡을 하였다.
"엊그제까지도 너랑 나랑은 깊은 정을 나누었는디 어찌다가 이렇게 처참한 몰골이 되았다냐 꺼이꺼이, 너 없으면 외로운 나는 인자 누굴 의지하고 혼자 험한 세상을 살끄나 꺼이꺼이, 이리 짜그라질 때까정 얼마나 괴롭고 고통시러웠을까나 꺼이꺼이, 오메오메 짠헝거 오메오메 불쌍헝거 돌쇠야 꺼이꺼이"
필례는 찌그러진 돌쇠의 몸체를 부둥켜안고 숨이 넘어 갈듯 하염없는 통곡을 하였고, 찌그러진 고철덩어리 앞에서 오열하는 한 여인의 울부짖음에 담당경관은 몹시 어리둥절하였다.
"선생님 그만 우시고 진정하세요"
경관이 필례를 돌쇠에게서 떼어내려 했으나 필례는 경관의 만류를 한사코 뿌리치고 흐느끼며 돌쇠의 떨어진 몸체 여기저기를 어루만졌다.
"어쩔꺼나 어쩔꺼나 불쌍해서 어쩔꺼나 돌쇠야 우리 돌쇠야!"
이렇게 정신을 놓고 한참을 울던 필례의 울음이 잦아들고 진정을 찾자 담당 경관은 필례를 민원인 쉼터로 안내하여 돌쇠를 찾은 경위를 소상히 설명하였다.
"순경님, 우리 돌쇠가 어쩌다 저렇게 되어부렀다요, 교통사고요? 아니면 누구한테 뚜드러 맞어부렀다요?
"두들겨 맞았습니다"
"예? 어느 놈이요, 어떤 놈이 우리 돌쇠를 저렇게 박살내부렀답니까?"
"지금 범인은 잡혀서 이미 나주경찰서로 인계했습니다, 범인은 선생님이 아는 면식범일 것 같은데 한 번 봐보세요"
하면서 경관이 휴대폰에 찍힌 범인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필례는 범인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나광남이었다.
"이 나쁜 자식 나한테 사기친 것도 모자라서 돌쇠까지 이렇게 만들어놔? 이 썩을 놈을 당장에..."
"더 자세한 사항은 나주경찰서로 가서 확인하셔야 할 거구요, 아마 조사를 위해서 곧 선생님께 통보가 갈 거니까 집으로 가셔서 기다려보세요, 참 그리고 저 로봇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로봇은 이미 증거물로서는 조사가 충분히 끝났으니 가져가셔도 됩니다. 폐기처분 할 거면 고물상에 전화해서 직접 와서 수거해가라고 해도 되고요"
필례는 경관의 도움을 받아 돌쇠를 자가용 뒷 자석에 실었다. 마음이 짠해서 도저히 돌쇠를 고철로 폐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혹시라도 수리가 가능할까 싶어 현다이차 광주직영매장의 as센타에 전화를 해보았다.
다음날 현다이차 로봇부 as기사가 필례를 찾아왔다. 자동차 뒷좌석에 널브러진 채로 실려 있는 돌쇠를 보자 기사는 한숨부터 쉬더니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저 상태로는 도저히 회생이 불가능할 것 같네요, 저렇게 다 부러진 걸 어떻게 고쳐요, 저런 건 부품으로도 못 써요, 새 제품을 다시 사는 수밖에 없어요"
야속한 말만 하고 만져보지도 않고 기사는 냉정히 돌아서려고 했다.
필례는 가려는 기사의 팔을 덥석 잡았다.
"기사님 제발 돌쇠 좀 살려주세요, 돌쇠 원상 복구해주면 내 평생 머리 꽁짜로라도 잘라드릴텡게 제발요잉“
필례가 너무나도 간절히 애원을 하니 기사는 그 모습이 너무 안타깝게 생각됐는지 발걸음을 멈추고 돌쇠를 차에서 끄집어내어 바닥에 진열하고 돌쇠의 몸체 여기저기를 살펴보았다.
"구동기능도 완전히 작살나 있네"
하면서 드라이버로 구동 기능 쪽 나사를 풀어 부속을 나름대로 요리조리 만져댔다. 그리고 다시 몸체들도 여기저기를 한참 더 살피더니 기사는 필례를 향해 웃어보이며 말했다.
"다행히 머리 쪽 안에 있는 두뇌 부분은 살릴 수 있겠네요!"
그 말을 듣자 필례의 얼굴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졌다.
"정말인가요 기사님! 그럼 돌쇠 원래대로 복원할 수 있당가요?"
"예 두뇌부분인 ai기능은 충분히 살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신기하게도 머리가 이토록 심하게 찌그러졌는데도, 부품은 크게 파손된 곳이 없네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렇게 심하게 찌그러진 몸체를 그 살아난 ai소프트웨어에 연결하는 것은 기술적인 난도가 너무 높아서 연결하기도 힘들거니와 연결한다 해도 찌그러진 상태라 동작을 제대로 할 수가 없으니 거의 무의미하다고 봐야해요, 그리고 새 몸체로 연결한다 해도 기술적 난도가 높으니만큼 그 비용이 사는 것보다 두 배 정도가 더 들어가고 연결하다 잘못하면 지금까지 저장된 학습데이터들마저 다 잃을 수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차라리 새제품을 사는 게 수리하는 것보다 낫다고 한 겁니다"
"그럼 돌쇠가 식물인간...아니 식물로봇으로 살아야 한단 말이여요?"
" 비유하자면 그렇죠! 하지만 ai기능이 살아있고 스피커 기능도 부품만 새것으로 갈면 정상 작동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몸체 수리 못 해도 말동무로는 충분히 유용하게 사용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아이고 기사님 고마워요, 그거라도 어딘가요 그거라도 얼른얼른 고쳐 주세요"
"여기서 바로는 안 되고요, 본사로 가져가서 수리해와야 합니다. 한 일주일 정도 걸릴 거에요"
다음날 필례는 나주경찰서 범죄수사팀으로부터 방문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경찰서 담당형사는 돌쇠사건에 대한 경위를 필례에게 자세하게 얘기해 주었다.
필례가 들은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사건의 범인 나 광남은 막대한 재산 상속으로 갑자기 부자가 되었는데 ,주위 친구들의 꼬임으로 도박에 빠져들고 결국 전 재산을 탕진하게 된다. 재산을 탕진했음에도 정신을 못 차린 나 광남은 이후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면서까지 계속 도박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토토로 시작했던 도박이 경마, 파친코, 바카라에까지 이르게 된다. 돈을 빌려준 지인들은 나광남에게 채무변제를 독촉하지만, 갚을 방법이 없던 나광남은 이후에는 사기를 쳐서 도박자금을 마련하게 되는데, 그 타깃 중 한 명이 최필례였고, 최필례에게 사기 친 1000만 원도 얼마 지나지 않아 탕진하게 되자 다시 도박자금이 필요해져, 최필례의 앙숙이었던 헤어전설미용실 원장인 박금자에게 접근하여, 수고비 100만 원을 요구하며 최필례의 로봇미용사 돌쇠에게 테러를 감행하기로 약속한다. 나광남은 돌쇠의 동선과 약점을 잘 파악하고 있었기에 미리 해머를 준비하여, 돌쇠가 쓰레기를 버리러 나오는 으슥한 시간에 미리 cctv사각지대에 잠입하여 있다가 돌쇠가 쓰레기를 버리러 오는 순간 뒤에서 잔인하게 해머 테러를 감행하였던 것이다’
필례는 담당형사의 설명을 듣고, 나광남에게 사기당한 1000만 원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하려 하였는데 형사는 나광남은 최근 이혼하면서 마지막 남은 재산이었던 자동차마저 처자식에게 넘겨버려서 완전 무일푼이라 단 1원도 변제받기는 힘들 것이라고 일러줬다.
일주일 후, 현다이차 직영점의 as기사의 연락이 왔다. 돌쇠의 두뇌 기능과 스피커가 무사히 잘 수리됐다는 연락이었다. 필례는 돌쇠를 미용실로 배송해달라고 했다.
돌쇠가 미용실로 배송된 날은 필례가 외국으로 세미나 갔다는 안내문을 뜯어내고 다시 영업을 개시한 날이었다. 간만에 문을 열어서인지 그간 못 왔던 손님들이 한꺼번에 몰려 몸이 녹초가 된 날이었고, 그래서 그간 돌쇠가 미용실에 얼마나 존재감이 큰 일꾼이었는가를 뼈저리게 느꼈다. 필례는 돌쇠가 수리되어 돌아오면 편안하고 안정감 있는 자세로 거치되게 하려고 남평의 유명한 가구점에 미리 돌쇠의 사이즈에 맞는 장식장을 미리 맞춰 제작하여 미용실에 들여놓았는데, 그날 오후에 돌아온 돌쇠를 장식장에 앉혀보니 너무나도 딱 들어맞게 안치가 되었다. 연극이 끝난 듯 그날의 손님들이 모두 돌아가고 간판불이 소등되고, 미용실에는 필례와 돌쇠 단둘이만 남았다.
필례는 간만에 근처 홍어집에다 주문한 홍어 요리를 탁자에 정갈하게 차려놓고 손님에게 선물받은 ‘남평양조장’에서 제조한 40도짜리 증류소주의 뚜껑을 따 두 개의 소주잔에 따랐다. 한잔은 자신의 잔이고, 한 잔은 돌쇠의 잔이라는 듯 두 잔을 따른 것이다.
필례는 현다이차 직원이 하라는대로 돌쇠의 가슴팍에 새로 설치한 스위치를 형광등 스위치를 올리듯 위로 올렸다. 직원의 말대로 전원이 들어왔다. 두근두근 심정으로 돌쇠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돌쇠야 돌쇠야 살아났냐!"
필례의 질문에 돌쇠는 전혀 반응이 없고 컴퓨터가 부팅할 때 머뭇거리는마냥 계속 점등불빛만 깜빡거렸다.
"돌쇠야 돌쇠야 살아났냐고,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누구인지 알겄어!"
점등 불빛이 드디어 깜빡임을 멈추고 안정화 단계에 이르자 드디어 돌쇠가 말을 뱉었다.
"원장님, 징허게 방가워요, 겁나게 보고싶었습니다"
별세했던 어머니나 남편이 살아온 듯 필례는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오메 니가 죽지 않고 다시 살어 돌아왔구나잉!"
필례는 너무 기쁜 나머지 감격의 눈물을 뚝뚝 흘렸다.
"원장님 제가 죽긴 왜 죽어요, 잠깐 한숨 자다 일어났을 뿐인디말입니다"
필례는 너무 기분이 좋아 소주를 연거푸 세 잔이나 마셔버렸다. 독한 술이라 바로 취기가 올라왔고, 취기 때문인지 오래도록 그녀가 가슴속에 쌓아 놓고 그간 못 했던 말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이 아줌마의 장황한 연설은 돌쇠가 필례를 처음 대면하던 그 날처럼 또 다시 돌쇠를 당황하게 만드는 것인지 스트레스 지수를 표시하는 깜빡등이 그 때처럼 연신 깜빡거렸다.
"돌쇠야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고, 내가 남자만 잘 만났으면 지금쯤 겁나게 편한 인생을 살고 있을 것인디, 그러고봉께 너도 쥔장을 잘 만났으면 지금쯤 광주 충장로 아니 서울 청담동에서 삐까뻔쩍허니 허벌나게 잘나가고 있을 것이 아니더라고! 너나 나나 영락없이 뒤웅박 팔자다잉, 내 말이 어쩌냐? 디답을 좀 해보그라 돌쇠야!"
스트레스 깜빡등이 잠깐 깜빡거리다 잠깐 멈추다를 몇 번이나 반복하다 멈추었다. 깜빡등이 멈추고서도 돌쇠의 입에서는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고, 한참 뜸을 들인 후에야 입이 열렸다.
"듣고 봉께 원장님 인생이나 내 인생이나 겁나게 거시기허요잉!"
-終-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