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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님 화엄경 입법계품 제121강(三十. 大天神 -- 第九無縛無着解脫廻向善知識)
三十. 大天神 -- 第九無縛無着解脫廻向善知識
1. 依敎趣求
爾時에 善財童子가 入菩薩廣大行하며 求菩薩智慧境하며 見菩薩神通事하며 念菩薩勝功德하며 生菩薩大歡喜하며 起菩薩堅精進하며 入菩薩不思議自在解脫하며 行菩薩功德地하며 觀菩薩三昧地하며 住菩薩總持地하며 入菩薩大願地하며 得菩薩辯才地하며 成菩薩諸力地하고 漸次遊行하야 至於彼城하야 推問大天이 今在何所오한대 人咸告言호대 在此城內하야 現廣大身하사 爲衆說法이니라
2. 見敬諮問
爾時에 善財가 至大天所하야 頂禮其足하고 於前合掌하야 而作是言호대 聖者여 我已先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호니 而未知菩薩이 云何學菩薩行이며 云何修菩薩道리잇고 我聞聖者는 善能敎誨라하니 願爲我說하소서
3. 授己法界
(1) 授法方便
爾時에 大天이 長舒四手하사 取四大海水하야 自洗其面하며 持諸金華하야 以散善財하고 而告之言하사대 善男子야 一切菩薩은 難可得見이며 難可得聞이며 希出世間이며 於衆生中에 最爲第一이며 是諸人中에 芬陀利華며 爲衆生歸며 爲衆生救며 爲諸世間하야 作安隱處며 爲諸世間하야 作大光明이며 示迷惑者에 安隱正道며 爲大導師하야 引諸衆生하야 入佛法門이며 爲大法將하야 善能守護一切智城이라 菩薩은 如是難可値遇니 唯身語意無過失者然後에 乃得見其形像하며 聞其辯才하며 於一切時에 常現在前이니라
(2) 正授法界
善男子야 我已成就菩薩解脫호니 名爲雲網이니라 善財가 言호대 聖者여 雲網解脫이 境界云何니잇고 爾時大天이 於善財前에 示現金聚와 銀聚와 瑠璃聚와 玻瓈聚와 硨磲聚와 瑪瑙聚와 大焰寶聚와 離垢藏寶聚와 大光明寶聚와 普現十方寶聚와 寶冠聚와 寶印聚와 寶瓔珞聚와 寶璫聚와 寶釧聚와 寶鎖聚와 珠網聚와 種種摩尼寶聚와 一切莊嚴具聚와 如意摩尼聚가 皆如大山하시며 又復示現一切華와 一切鬘과 一切香과 一切燒香과 一切塗香과 一切衣服과 一切幢幡과 一切音樂과 一切五欲娛樂之具가 皆如山積하시며 及現無數百千萬億諸童女衆하고 而彼大天이 告善財言하사대 善男子야 可取此物하야 供養如來하야 修諸福德하며 幷施一切하야 攝取衆生하야 令其修學檀波羅蜜하야 能捨難捨어다 善男子야 如我爲汝示現此物하야 敎汝行施인달하야 爲一切衆生도 悉亦如是하야 皆令以此善根熏習하야 於三寶所와 善知識所에 恭敬供養하야 增長善法하야 發於無上菩提之意케호라 善男子야 若有衆生이 貪着五欲하야 自放逸者면 爲其示現不淨境界하며 若有衆生이 瞋喪憍慢으로 多諍競者면 爲其示現極可怖形호대 如羅刹等의 飮血噉肉하야 令其見已하고 驚恐惶懼하야 心意調柔하야 捨離寃結하며 若有衆生이 沈懶惰하면 爲其示現王賊水火와 及諸重疾하야 令其見已하고 心生惶怖하야 知有憂苦하야 而自勉策케하노니 以如是等種種方便으로 令捨一切諸不善行하야 修行善法하며 令除一切波羅蜜障하야 具波羅蜜하며 令超一切障碍險道하야 到無障處케호라
4. 謙己推勝
善男子야 我唯知此雲網解脫이어니와 如諸菩薩摩訶薩은 猶如帝釋하야 已能摧伏一切煩惱의 阿修羅軍하며 猶如大水하야 普能消滅一切衆生의 諸煩惱火하며 猶如猛火하야 普能乾竭一切衆生의 諸愛欲水하며 猶如大風하야 普能吹倒一切衆生의 諸見取幢하며 猶如金剛하야 悉能摧破一切衆生의 諸我見山하나니 而我云何能知能說彼功德行이리오
5. 指示後友
善男子야 此閻浮提摩竭提國菩提場中에 有主地神하니 其名이 安住니 汝詣彼問호대 菩薩이 云何學菩薩行이며 修菩薩道리잇고하라 時에 善財童子가 禮大天足하며 遶無數帀하고 辭退而去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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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十. 大天神 -- 第九無縛無着解脫廻向善知識
1. 依敎趣求
爾時에 善財童子가 入菩薩廣大行하며 求菩薩智慧境하며 見菩薩神通事하며 念菩薩勝功德하며 生菩薩大歡喜하며 起菩薩堅精進하며 入菩薩不思議自在解脫하며 行菩薩功德地하며 觀菩薩三昧地하며 住菩薩總持地하며 入菩薩大願地하며 得菩薩辯才地하며 成菩薩諸力地하고 漸次遊行하야 至於彼城하야 推問大天이 今在何所오한대 人咸告言호대 在此城內하야 現廣大身하사 爲衆說法이니라
그 다음 삼십 번째 선지식입니다. 53선지식이니까 숫자는 반이 훨씬 넘어갔는데 책은 아직도 멀었네요. 어떤 이는 내용이 상당히 긴 분들이 있어요. 한 권이 아마 한 사람의 내용이 차지하는 그런 선지식도 있고 그렇습니다.
대천신(大天神) 무박무착해탈신(無縛無着解脫)이라, 속박도 없고 집착도 없는 해탈이라, 집착하면 속박되지요. 속박되었다고 하는 것은 누가 묶어서 속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집착해서 속박이 되는 거예요.
무박무착이란 말이 참 재미있는 말입니다. 속박도 없고 집착도 없는 해탈이라, 그런 것에서부터 벗어날 때 그것이 참으로 해탈인거지요. 참 어려운 일이지요.
의교취구(依敎趣求)라,
그때 선재동자가 보살의 광대행(廣大行)에 들어가며, 보살지혜의 경계를 구하고 보살의 신통의 일을 보며, 또 보살의 수승한 공덕을 생각하고 보살의 대환희를 내고,
또 보살의 견정진(堅精進), 아주 굳건한 정진을 일으키고 또 보살의 부사의한 자재해탈에 들어가며, 또 보살의 공덕지(功德地)를 행하며, 보살의 삼매지(三昧地)를 관하며, 또 보살의 총지지(總持地), 모든 것을 다 가지는 그러한 지위에 머물며, 또 보살의 큰 원의 지위에 들어가며,
또 보살의 변재지위(薩辯才地)를 얻으며, 보살은 원력도 있어야 되지만 변재도 좋아야 되지요. 삼매도 있어야 되고 ??기억력도 좋아야 되고,
또 보살의 제력지(諸力地), 보살이 가져야 할 여러 가지 힘을 전부 이루고, 점차 점차 남행, 유행해서
지어피성(至於彼城)하니, 저 성에 이르러서
추문대천(推問大天)이 금재하소(今在何所)오, 추궁하여 묻기를 대천신이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이렇게 묻되
인혹고언(人咸告言)하대, 사람들이 고해 말하되
재차성내(在此城內)하야, 이 성 안에서
현광대신(現廣大身)하야, 크고 넓은 몸을 나투어서
위중설법(爲衆說法)이니라. 대중들을 위하여 설법하고 있다, 라고 누가 가르쳐 주더라는 이야기이지요.
2. 見敬諮問
爾時에 善財가 至大天所하야 頂禮其足하고 於前合掌하야 而作是言호대 聖者여 我已先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호니 而未知菩薩이 云何學菩薩行이며 云何修菩薩道리잇고 我聞聖者는 善能敎誨라 하니 願爲我說하소서
견경자문이라,
그때에 선재가 지대천소(至大天所)하여 정례기족(頂禮其足)하고, 대천의 처소에 이르러서 그 발에 정례하고 그 앞에 합장해서 이 말을 하되,
성자시여, 나는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먼저 발했으나 알지 못하겠습니다.
보살이 어떻게 해야 보살행을 배우며 어떻게 해야 보살도를 닦겠습니까?
내가 듣건대 성자께서는 선능교해(善能敎誨)라 하니, 잘 능히 가르치신다 하니 원위아설(願爲我說) 하소서, 원컨대 나를 위해 설하소서.
선지식을 만날 때마다 질문하는 것은 거의 똑 같아요.
3. 授己法界
(1) 授法方便
爾時에 大天이 長舒四手하사 取四大海水하야 自洗其面하며 持諸金華하야 以散善財하고 而告之言하사대 善男子야 一切菩薩은 難可得見이며 難可得聞이며 希出世間이며 於衆生中에 最爲第一이며 是諸人中에 芬陀利華며 爲衆生歸며 爲衆生救며 爲諸世間하야 作安隱處며 爲諸世間하야 作大光明이며 示迷惑者에 安隱正道며 爲大導師하야 引諸衆生하야 入佛法門이며 爲大法將하야 善能守護一切智城이라 菩薩은 如是難可値遇니 唯身語意無過失者然後에 乃得見其形像하며 聞其辯才하며 於一切時에 常現在前이니라
수기법계(授己法界)라, 이것은 대천신이 자기가 터득한 법을 여기서 이제 소개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대천(大天)이 장사사수(長舒四手)하사, 네 손을 길게 뻗어서, 손이 네 개였는지 다리까지 합해서 그랬는지 어쨌건 네 손을 길게 뻗어서,
취사대해수(取四大海水)하야, 동서남북 4대의 바닷물을 전부 취해 가지고서
자세기면(自洗其面)하며, 먼저 스스로 그 얼굴을 씻으며,
아주 대단한 신이지요.
얼굴을 씻고는 지제금화(持諸金華)하야, 또 여러 가지 금으로 된 꽃을 가지고서
이산선재(以散善財)하고, 선재에게다 이렇게 뿌리고, 꽃공양부터 올리는 거지요.
이고지언(而告之言)하사대, 고하여 말하되
선남자(善男子)야
일체보살(一切菩薩)은 난가득견(難可得見)이며, 일체 보살은 보기가 어려우며, 보살은 참으로 가히 얻어 보기 어려우며,
난가득문(難可得聞)이며, 듣기도 또한 어려우며
희출세간(希出世間)이며, 아주 드물게 세간에 나온다는 거지요. 어중생중(於衆生中)에 최위제일(最爲第一)이며, 또 중생 가운데 제일이며, 이 세상에서 제일이라 이거예요.
시제인중(是諸人中)에 분다리화(芬陀利華)며, 여러 사람 중에서는 연꽃이며, 흰 연꽃이지요, 분다리화.
위중생귀(爲衆生歸)며, 모든 중생들이 귀의할 바이며
위중생구(爲衆生救)며, 또 중생을 구제하는 바이며
위제세간(爲諸世間)하야 작안은처(作安隱處)며, 모든 세간을 위해서 안은처를 짓는 것이며, 편안한 곳을 짓는 것이다.
지장전이나 관음전에 가서 보살의 명호를 부르고 가만히 이렇게 앉아 있으면 편안하지요? 법당에 들어가면 일단은 편안해요. 보살상을 모셔놓고 우리가 그 분을 보살이라 여기는데도 하물며 그러한데 정말 그런 보살의 덕을 갖춘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가면 얼마나 마음이 편안하겠습니까? 그런 걸 우리가 알 수가 있어요.
큰 나무 밑에만 가도 여름에는 그늘이 되고 비가 올 때는 어느 정도 비도 피할 수 있잖아요.
하물며 사람이 최고의 덕을 갖춘 보살의 경지라면 정말 모든 사람에게 흰 연꽃처럼 아름답고 빛나는 사람이다, 라고 표현을 아주 멋지게 했어요.
보기 어렵고 듣기 어렵고 세상에 출현하기가 드물다고 해 놓고는 이제 일체 중생 중에 제일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흰 연꽃이며, 모든 중생들의 귀의처이며, 모든 중생들을 구제하는 입장이며, 모든 세간에서 편안한 곳이 되며, 세상 사람들에게 아주 편안한 곳이 된다고 했습니다.
위제세간(爲諸世間)하야 작대광명(作大光明)이며, 또 모든 세간을 위해서 대광명을 지닌다, 빛이 된다 이거예요. 세상의 빛이 된다, 라고 문학적으로 아주 표현을 잘 하고 있어요.
천수경에 보면 수지신시광명당(受持身是光明幢)이라는 말이 있지요? 불법을 제대로 공부해서 불법이 충만해 있는 사람을 보고 불법을 수지(受持)했다고 그러지요. 그런 사람은 광명의 깃발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어두운 길을 가는 사람에게 인생의 등불이 된다는 그런 뜻으로 수지신시광명당(受持身是光明幢) 수지심시신통장(受持心是神通藏)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는 제 세간을 위해서 대광명을 지닌다고 했습니다. 세상이 어두우면 빛을 발해 주고 또 어두운 인생길을 가는 사람에게는 말하자면 지혜의 빛을 가르쳐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라는 거지요.
시미혹자(示迷惑者)에 안은정도(安隱正道)며, 미혹한 사람에게 편안한 바른 길을 보여 주며,
위대도사(爲大導師)하야, 크게 인도하는 사람, 부처님을 가리켜 삼계 도사(導師)라고 할 때에는 이 도(導)자를 써요. 길 도(道)자를 쓰는 게 아니고 인도할 도(導)자를 씁니다. 크게 인도하는 리더, 또는 안내자, 그런 인도하는 사람이 되어 가지고서
인제중생(引諸衆生)하야, 모든 중생들을 인도해서 불법문에 들어가게 한다.
또 대법(大法)의 장군이 되어 가지고서
선능수호일체지성(善能守護一切智城)이라, 일체 지혜의 성을 잘 능히 지키느니라.
장군이 한 나라를 잘 지키듯이 지혜의 성을 잘 수호하는 사람이다.
보살(菩薩)은 여시난가치우(如是難可値遇)니, 보살은 이래서 만나기 어려우니
유신어의무과실자연후(唯身語意無過失者然後)에, 오직 몸도 말도 마음도 아무런 허물이 없는 사람이 된 연후에 그때서야 비로소
내득견기형상(乃得見其形像)하며, 이에 그 형상을 볼 수가 있다.
문기변재(聞其辯才)하며, 그리고 그 분의 변재를 들을 수 있다. 어일체시(於一切時)에 상현재전(常現在前)이니라, 그렇게 되면 일체 시에 그 사람 앞에 다 나타나 있다.
현재전, 앞에 다 나타나 있는 그런 입장이다.
여기에서 조건을 신어의(身語意)라고 했는데 그 세 곳에 말하자면 아무런 허물이 없는 입장, 경전에서는 보면 그냥 외형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 가운데 원리를 가르쳐주는 뭐라고 할까, 힌트 같은 그런 것이 나타나요.
보면 오직 몸과 말과 생각에 허물이 없는 연후에 라고 그랬어요. 만약에 참으로 그리 되면 이 사람은 선지식이에요. 이 사람 자신이 이미 보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따로 굳이 무슨 선지식이나 보살이 필요치 않다고요. 그래서 우리가 선지식을 보려면 그 쯤 되어야, 그 사람하고 비슷해야 볼 수가 있는 것이고 보살을 보려면 보살과 그 급이 비슷해야 보살을 볼 수 있는 것이고, 부처님을 보려면 부처님과 급이 비슷해야 부처님을 볼 수가 있는 거예요.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고 세상에도 보면 더불어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은 수준이 비슷해요. 수준이 엇비슷하다고요. 서로 그런 거예요. 그런 것을 우리가 여기서 엿볼 수 있습니다.
수기법계(授己法界)라, 이것은 대천신이 자기가 터득한 법을 여기에서 소개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신어의(身語意) 삼업에 대해서 아무런 과실이 없다고 했는데 그럼 그게 바로 보살이지요. 뭐.
그러니까 당연히 그 형상을 볼 수가 있고 그 변재를 들을 수 있고 또 일체지혜가 상현재전(常現在前)이라, 항상 그 사람 앞에 나타난다고 하는 것이 당연하지요.
그러니까 옆에 있어도 자기의 수준이 그쯤 안 되면 모르는 거지요. 지척이 천리라고 전혀 상관없는 관계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요컨대 정신세계가 또는 그 사람의 삶이 그런 입장이 되면 아무리 멀리 있어도 서로가 통하고, 수준이 아니면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서로 몰라보는 거지요. 이 대목을 우리가 그런 뜻으로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2) 正授法界
善男子야 我已成就菩薩解脫호니 名爲雲網이니라 善財가 言호대 聖者여 雲網解脫이 境界云何니잇고 爾時大天이 於善財前에 示現金聚와 銀聚와 瑠璃聚와 玻瓈聚와 硨磲聚와 瑪瑙聚와 大焰寶聚와 離垢藏寶聚와 大光明寶聚와 普現十方寶聚와 寶冠聚와 寶印聚와 寶瓔珞聚와 寶璫聚와 寶釧聚와 寶鎖聚와 珠網聚와 種種摩尼寶聚와 一切莊嚴具聚와 如意摩尼聚가 皆如大山하시며 又復示現一切華와 一切鬘과 一切香과 一切燒香과 一切塗香과 一切衣服과 一切幢幡과 一切音樂과 一切五欲娛樂之具가 皆如山積하시며 及現無數百千萬億諸童女衆하고 而彼大天이 告善財言하사대 善男子야 可取此物하야 供養如來하야 修諸福德하며 幷施一切하야 攝取衆生하야 令其修學檀波羅蜜하야 能捨難捨어다 善男子야 如我爲汝示現此物하야 敎汝行施인달하야 爲一切衆生도 悉亦如是하야 皆令以此善根熏習하야 於三寶所와 善知識所에 恭敬供養하야 增長善法하야 發於無上菩提之意케호라 善男子야 若有衆生이 貪着五欲하야 自放逸者면 爲其示現不淨境界하며 若有衆生이 瞋喪憍慢으로 多諍競者면 爲其示現極可怖形호대 如羅刹等의 飮血噉肉하야 令其見已하고 驚恐惶懼하야 心意調柔하야 捨離寃結하며 若有衆生이 沈懶惰하면 爲其示現王賊水火와 及諸重疾하야 令其見已하고 心生惶怖하야 知有憂苦하야 而自勉策케하노니 以如是等種種方便으로 令捨一切諸不善行하야 修行善法하며 令除一切波羅蜜障하야 具波羅蜜하며 令超一切障碍險道하야 到無障處케호라
그 다음 정수법계(正授法界)라, 바로 법계를 준다.
선남자(善男子)야 아이성취보살해탈(我已成就菩薩解脫)호니, 나는 이미 보살해탈을 성취했으니
명위운망(名爲雲網)이니라, 이름이 운망이니라. 구름 운(雲)자 그물망(網)자, 구름처럼 또는 그물처럼 여러 곳으로 두루두루 펼쳐져 있다는 그런 뜻이 운과 망의 의미겠지요.
선재(善財)가 언(言)호대
성자(聖者)여 운망해탈(雲網解脫)이 경계운하(境界云何)니잇고, 운망해탈이 경계가 어떻습니까?
그때에 대천(大天)이 선재 앞에서 나타내 보이다, 시현(示現), 저 뒤에 가서 새기는데 무엇을 나타내 보이는가 하면 아주 여러 가지를 많이 나타내 보여요.
금무더기, 은무더기, 유리무더기, 파려 무더기, 이게 전부 칠보에 들어가지요? 차거무더기, 대연보취(大焰寶聚) 그 빛이 큰 불꽃이 활활 타오르듯이 비치는 그런 보배 무더기, 또 이구장보무더기, 말하자면 어떤 때도 없는 깨끗한 그런 보배무더기,
대광명보취(大光明寶聚) 크게 광명을 발하는 그런 무더기와
보현시방보취(普現十方寶聚) 시방에 두루두루 나타나는 그런 보배무더기와
보배관(寶冠聚)의 무더기와 보배로 된 도장무더기와 보배 영락무더기와
보당취(寶璫聚) 이건 이제 귀걸이당(璫)자로 보배 귀걸이 무더기와
보천(寶釧) 이건 이제 비녀지요. 보배비녀입니다.
보쇄(寶鎖)는 보배 장쇄이고
주망취(珠網聚), 구슬로 그물을 만든 그런 것입니다. 가지가지 마니보배 무더기와
일체장엄구(切莊嚴具), 그 위에 또 여러 가지 장엄구 꾸밀 거리들 그런 장엄구 무더기와
여의마니취(如意摩尼聚), 마니나 여의가 같지요. 마니주무더기가 개여대산(皆如大山) 마치 큰 산과 같은, 그런 것을
시현(示現), 나타내 보였다.
아주 신통이 대단한 신이에요.
그리고 또
우부시현(又復示現), 또 다시 나타내 보이는데
일체화(一切華)와 일체만(一切鬘)과 일체 꽃과 꽃 타래와 일체향과 일체소향(一切燒香), 태우는 향과 일체도향(一切塗香), 바르는 향과 일체 의복, 일체 당번, 일체 음악, 일체오욕락지구(一切五欲娛樂之具), 일체 오욕으로써 즐기는 그런 도구, 그런 것들이 개여산적(皆如山積) 산처럼 쌓여 있는 것을 나타내 보이시며
급현무수백천만억제동녀중(及現無數百千萬億諸童女衆)하고, 그 외에 또 무수 백천만억 동녀의 무리들을 갖다 나타내 보이고
그런 뒤에 대천이 선재에게 말하되, 그러니까 별별 것을 환상같이 나타내 보이고는
선남자야 가취차물(可取此物)하야, 이 물건을 가지란 말이지요. 이 물건을 가져서 공양여래(供養如來)하라. 여래에게 공양을 올려라.
그래서 수제복덕(修諸福德), 여러 복덕을 닦아라.
여기에 내가 이렇게 많이 물건을 갖다 나타내었으니 이걸 가지고 부처님께 공양올리고 그것으로써 복덕을 닦도록 하라,
그리고 병시일체(幷施一切)하야, 아울러 일체 사람들에게 이것을 베풀어서
섭취중생(攝取衆生)하야, 중생들을 포섭해서
영기수학단바라밀(令其修學檀波羅蜜)하야, 단 바라밀은 보시바라밀이지요. 그들로 하여금 보시바라밀을 배우고 닦게 해서
능사난사(能捨難捨)어다, 능히 버리기 어려운 것을 버리도록 가르치라는 거지요.
능사난사(能捨難捨) 이게 참 어려운 말이면서 좋은 말입니다. 능히 버리기 어려운 것을 버리도록 하라, 버리기 어려운 것을 버리는 훈련을 자꾸 쌓아야 돼요. 그러면 쉬워져요. 베푸는 것도 쉬워지고 봉사하는 것도 좀 쉬워지지요. 마음이 영 없어서가 아니라 훈련이 안 되어서, 안 해봐서 못하는 그런 경우도 많습니다.
선남자야, 여아위여시현차물(如我爲汝示現此物)하야, 내가 그대를 위하는 바와 같이 이 물건을 시현해서
교여행시(敎汝行施)인달하야, 그대에게 보시 행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과 같이
일체중생에게 하는 것도
실역여시(悉亦如是), 다시 이와 같이 하여
개령이차선근훈습(皆令以此善根熏習)하야, 모두가 이런 선근으로써 훈습을 해서, 익히고 익혀서
어삼보소(於三寶所)와 불법승 삼보가 있는 곳과 또
선지식소(善知識所)에 선지식이 있는 곳에 공경공양하여
증장선법(增長善法)하야, 좋은 법을 증장해서
발어무상보리지의(發於無上菩提之意)케호라,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그런 마음을 내도록 하라.
선남자야 만약에 어떤 중생이 오욕락을 탐착해서 자방일자(自放逸者)면, 스스로 방일하여 게으름을 피우고 오욕락이나 즐기는 그런 사람이라면
위기시현부정경계(爲其示現不淨境界)하며, 그를 위해서 부정한 경계를 나타내 보이며, 너무 오욕락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는 부정한 아주 안 좋은 것을 나타내 보이며,
약유중생(若有衆生)이 진상교만(瞋喪憍慢)으로, 만약에 어떤 중생이 성냄과 교만함으로써
다쟁경자(多諍競者)면, 많이 다투면, 대개 이제 성을 내고 분노하고 또 자기의 아만을 내세우고 교만하고 또 무시당했다고 이쪽에서 발끈하고 저쪽에서 또 발끈하고, 그런 것을 다 쟁경(諍競)이지요. 경쟁이라고 하지요. 많이 다투는 것입니다.
다투는 사람은 알고 보면 화를 잘 내거나, 교만이 있거나, 자기 잘난 체 하는 그런 사람들이 그렇다고요. 자기를 비워버린 사람은 다투지를 않아요. 그냥 상대가 말하면 가만 듣기만 하고 그러는 거지요. 그런 것 때문에 많이 다투는 사람을 보면,
위기시현극가포형(爲其示現極可怖形)호대, 그를 위해서 지극히, 가히 아주 두려운 형상을 나타내 보이되, 그런 사람 화를 잘 내는 사람에게는 자기보다 더 무섭게 나타내 보여야 되니까 어떤 모습을 나타내요?
여나찰등(如羅刹等)의, 아주 험상한 얼굴을 가진 나찰귀신 등의 음혈담육(飮血噉肉)하야, 피를 마시고 고기를 씹는, 사람의 살코기를 막 씹는 그런 모습을 나타내어 가지고서 그로 하여금 보게 하고 그리고
경공황구(驚恐惶懼)하야, 아주 두려워 놀래고 떨며, 질리고 겁 내도록 그렇게 해서
심의조유(心意調柔)하야, 그 사람의 마음을 좀 수그러들게 한다는 거예요. 대천신이니까 뭐 그러한 능력이 있는가 봐요. 마음이 좀 수그러들게 조유하게, 부드러워지게 해서
사리원결(捨離寃結)하며, 다투지 말고 서로 미워하지 말도록 원결을 떠나서 버리게 하며
그러니까 중생들의 병을 따라서 베푸는 방편이 여러 가지라는 그런 뜻이지요.
약유중생이 오욕에 탐착하면 부정한 경계를 보이고, 성내고 교만해서 다투기를 좋아하면 또 이렇게 무서운 모습을 보여서 그 사람들의 원결, 서로 미워하는 마음을 풀도록 하지요.
또 약유중생(若有衆生)이 만약에 어떤 중생이
혼침나태(昏沈懶惰)하면, 혼침하거나 게으르거나, 잠자기를 좋아하거나 게으를 것 같으면 그 사람을 위해서
왕적수화(王賊水火)와 그리고 또 여러 가지 무거운 병, 이런 것을 나타내 보이는 겁니다. 왕이 뭐라고 꾸중을 한다든지 아니면 도적이 와서 어떻게 한다든지 아니면 물난리가 일어났다든지, 불난리가 일어났다든지, 아니면 그 사람한테 무거운 병이 있도록 나타내 보인다든지,
(건너 뜀)
근심거리가 있도록 그렇게 만드는 거예요.
대개 잠이나 자고 게으름을 피우고 아무 것도 안 하려고 하는 그런 사람에게는 혼이 나도록 어떤 두려움거리를 줘야 정신을 차리니까 그래서 그 사람에게는 우고(憂苦), 근심 걱정거리, 또 괴로워 할 거리, 이런 것이 있는 것을 알려가지고서
이자면책(而自勉策), 스스로 노력하고 또 경책하고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싶어 정신을 차리도록 그렇게 하느니, 이와 같은 종종방편(種種方便)으로, 이런 여러 가지 방편으로서
영사일체제불선행(令捨一切諸不善行)하야, 일체의 불선행을 버려서
수행선법(修行善法)하며, 수행을 선법하며,
영제일체바라밀장(令除一切波羅蜜障)하야, 모든 바라밀을 닦는데 장애를 제거하게 해서
구바라밀(具波羅蜜)하며, 그래서 바라밀을 갖추며,
영제일체장애험도(令超一切障碍險道)하야, 일체 모든 장애나 험한 길을 뛰어넘게 해서
도무장처(到無障處)케호라, 장애가 없는 그런 곳에 이르게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이런 두려움, 근심 걱정거리, 또 무슨 병, 이런 것들도 그러니까 대천신이 일부러 주는 거예요. 정신 차려서 열심히 수행하고 공부하라고 병을 준다고 볼 수 있어요.
여기에 보면 중질(重疾)을 준다고, 여러 가지 중한 병을 보여 가지고서 생사가 두렵도록 해 가지고서, 열심히 염불하고 공부하도록 만든다고 해 놨어요.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좋게 받아들일 수가 있어요.
‘아, 나보고 공부하라고 몸에 병이 왔구나, 나더러 정신 차려서 열심히 살라고 팔자를 이렇게 기구하게 만들었구나,’이렇게 전부 자신을 경책하는 걸로 해석을 하라는 거예요. 내용이 다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사실은 그게 전부 좋은 거예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피했으면 싶고 없었으면 싶은, 그런 애로사항들을 어려움이라 생각하고 애로라고 생각하지만 자녀들 학교 보낼 일이 없어 봐요, 누가 기도하러 오겠어요? 한 사람도 기도하러 안 와요. 아주 생각하면 속이 시원해요.
아 솔직하게 말해 봐요. 그런 어려움 없으면 부처님께 올 사람 누가 있어요? 한 사람도 없다고요. 법당 앞에 풀을 매려고 해도 놉을 해서 매야 돼요.
아, 옛날에 선지식들이 그런 말을 다 해 놓으셨더라고요. 그런 어려움이 있으니까 그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와서 기도하고, 그러다보면 불법이 이렇게 좋은 건가 싶어서 아이들 학교를 다 보내고도 이렇게 공부하잖아요.
나는 그 전에 어줍잖게 생각할 때는 저렇게 애들 학교 보내려고 기도하는 것이 불교인가 싶은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참 그거야말로 좋은 일이다, 그런 문제가 없으면 누가 절에 오겠냐 이거예요.
즐거운 일이 세상에는 천지인데요. 요즘은 특히 더 많은데 다른 곳에 놀러나 다니지요, 즐길 거리가 얼마나 많은데 다리 아프게 산에까지 옵니까? 돈이 들지요, 또.
안 온다고요.
그런데 그 애로사항이 너무나 고마운 거예요. 집 안의 애로 사항, 위급한 상황, 힘든 상황, 속상한 일들, 그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그게 최고의 선지식입니다. 그 선지식에 이끌려서 절에 온 겁니다. 그렇게 오다보니 또 온갖 세계가 펼쳐져 있고 또 여러 가지 이런 저런 세계가 눈에 들어오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인생에 대해서 이런 저런 것을 깨닫게 되고 부처님의 깊은 법문들도 하나하나 깨우치게 되고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 공덕이 집안의 우환 때문입니다. 우환 공덕이 보통 공덕이 아니에요. 집안의 우환 공덕이 제일 큰 공덕입니다. 사실은 사람을 철들게 만들어요. 뭔가 부처님 앞으로 인도하게 만들지요.
가만 보니까 이게 전부 다 대천신이 그렇게 했네요. 난 왜 몸이 아픈가 했더니 이 대천신이 아프게 해 가지고 그래서 좀 정신을 차리게 하고, 하이고 이래 가지고는 안 되겠다, 공부를 해야지. 뭔가 좋은 것이 있으면 얼른 남을 다 주고, 조금이라도 힘이 있을 때 공부해야지 하는 그런 마음이 나도록 하는 게 가만히 보니 대천신입니다. 보니까 전부 그래 놨어요.
이 내용이 몇 마디 안 되지만 전체 줄거리가 그런 이야기입니다.
대천신이 했다고 하는 건 내가 한 말이고, 실지로 그런 것을 그렇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해요. 그렇게 이해해야 제대로 철든 사람의 이해입니다.
‘나는 왜 팔자가 기구해서 이렇게 속 썩이는 사람뿐인가, 왜 이런가’라고 자꾸 신세타령을 해 봐야 그게 누구에게 돌아가요? 누가 도와줍니까? 그런 상황이 없는 사람이 없거든요.
그럼 그런 상황을 여기 경전에서처럼 이렇게 해석을 해야 된다고요.
‘아, 내가 전생에 너무 게으름을 피우고 놀고먹어서 금생에는 열심히 기도하라고 하는구나,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는 구나. 너무 철딱서니 없이 살았다고 나보고 철들게 하는 거구나.’이렇게 해석을 할 줄 알아야 돼요.
그게 인생에서 철든 사람의 소견입니다. 소견이 그리 되어야 된다고요. 그러면 또 편안해요. 거기에서 이제 인생이 성숙해 가고 철들어 가지요. 또 거기서 지혜가 나고 그렇습니다.
이 대목을 보면서 대천신이 일부러 시켜서 사람을 경책하기 위해서 한 것처럼 이야기는 그렇게 됐으나 우리가 이렇게 해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에게 처한 난관과 어려움과 속상한 일들은 이러나 저러나 밀려오도록 마련되어 있어요. 어떤 상황에 처해지든 정도 차이는 있어도 그런 일이 없는 사람이 없다고요. 다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우리가 이렇게 해석하고 ‘아, 나더러 철들라고 하는구나. 나더러 공덕 지으라고 하는구나. 나더러 열심히 기도하라고 하는구나. 나더러 열심히 부처님 공부를 하라고 하는구나.’라고 이렇게 해석을 해야 그게 제대로 소견 난 사람이고 제대로 불법 배우는 사람이라는 이런 이야기이지요.
우리가 그렇게 이해하는게 제대로 해석하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입니다.
나만 속상하고, 나만 애로가 많고, 나만 불우하고, 다른 사람들은 다 저렇게 웃고 아무 탈 없이 잘 사는데 나만 이렇게 팔자가 기구한가보다, 대개는 그런 생각을 하지요. 속속들이 들여다보니까 똑 같아요. 거의 평등해요.
부처님 말씀에 ‘고해(苦海)’라고 했잖아요. ‘괴로움의 바다’라고 했다고요. 괴로움의 바다에 우리가 빠져있는 거예요. 바다 속에 빠져있는 사람치고 옷 안 젖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옷 안 젖는 사람이 없어요.
옷이 젖는다고 하는 말은 그 나름대로 다 괴로움을 겪으면서 산다는 뜻이에요. 그 나름대로 다 괴로움을 겪으면서 사는 거예요. 비닐옷을 해 입더라도 바다 속에 들어가 봐요. 그 비닐옷도 젖는다고요. 뭐 무명옷만 젖는 게 아니에요. 바다 속에 들어가면 옷이란 옷은 다 젖어요.
그러니까 그 나름대로 밖으로 드러내지 않아 그렇지 남모르는 사이에 겪어서 그렇지 다 그 나름대로 고통이 있게 마련이고 근심거리가 있게 마련이고 속상하기 마련이지요.
그걸 이제 슬기롭게 이해하고 슬기롭게 해석을 해야 해요. 인생은 해석을 잘 해야 돼요. 자기 팔자 해석을 잘 해야 돼요.
통광스님이 올라와가지고 조계사에서 저녁을 먹고 인사동에서 차를 한 잔 하고 가자고 해서 같이 갔는데 통광스님이 아는 집에는 아무도 없어요. 그래서 그냥 집에 가서 차를 마시기로 하고 걸어가는데 통광스님이 아시는 비구니 두 분하고 어떤 처사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나는 처음 본 사람들이지요.
나한테 자랑하느라고 “아, 이 사람이 우리 동네 스님”이라고 하면서 하는 말이 통광스님 동네에서 스님이 여섯 분이 났는데 그 중에서 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나한테 소개를 하고 자랑을 해요.
그래서 이 사람이 누구냐고 하니까 불교방송에서 ‘차 한 잔의 선율’을 진행하는 진명스님이라는 거예요. 아이구, 그러시냐고 나도 진명스님 팬이라고 하고 찻집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스님이 음악을 담당하시는 분이니까 음악에 대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가 평소에 음악에 대해서 다른 건 아는 것이 전혀 없고 ‘해석’이라는 낱말 하나를 좋아한다고 했어요. 예를 들어서 베토벤은 역사적으로 누가 잘 해석을 했고, 연주자로서는 누가 잘 해석했고 지휘자로서는 누가 잘 해석하고 또 글로 해석을 잘 한 사람은 누구이고 하는, 이런 이야기들이 음악계에는 있는데 ‘해석’이라는 낱말을 음악계에서 제일 취할 거리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나도 부처님의 경전을 매일 들여다보면서 이 시대에 사는 우리가 어떻게 해석을 해야 제대로 해석하며 또 바로 해석하느냐, 이게 내 평소의 관심거리이며 평생의 화두이듯이 예를 들어 애국가를 세상 사람들이 다 부르지만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해석을 해서 자기가 느낀 대로 그것을 표현을 해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느냐 하는, 이것이 말하자면 음악에 있어서 해석의 문제가 아니냐고 했더니 음악에 대해서 깊이 안다는 겁니다.
내가 음악에 대해서 알기는 뭘 알아요.
차를 마시면서 음악에 대해서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음악이 그렇듯이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매일은 자기가 살아가는 그 주옥같은 인생이에요. 아무리 좋든 싫든 속상하든, 그 속상한 순간에도 아주 귀중한 순간이라고요.
우리가 사람으로서 살아 있기 때문에 속상할 일도 있고 슬퍼할 일도 있는 거지요. 그런 매 순간순간들을 우리가 어떻게 제대로 해석을 하느냐? 철든 사람처럼 해석을 하느냐?
‘그건 재수 없다’고 한다든지 ‘무엇이 나는 팔자가 이 모양’이냐고 한다든지, 혀나 차면서 ‘이런 인생은 얼른 좀 달라졌으면 좋겠다.’고 해봐야 그런다고 또 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배타적인 마음자세를 가지고 자기 인생을 볼 게 아니라 그것을 제대로 해석을 해 내는 거 이것이 중요해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기 인생은 최소한도 자기가 잘 해석해야 돼요. 무슨 베토벤 해석은 못하더라도 자기 인생은 자기가 해석을 잘해야 된다고요.
그건 모든 사람의 과제입니다. 자기가 겪어온 하루하루의 인생은 자기가 최소한도 해석을 잘 해야지, 이 세상에 아무도 대신 해석을 해 줄 사람이 없어요.
자기가 느끼는 인생의 맛은 아무도 못 봐요, 자기 혼자 보는 거예요. 오늘의 내 인생의 맛은 나만 보는 거지 딴 사람이 보는 게 아닙니다.
나만 보는 그 맛이 쓴맛이든 짠맛이든 매운맛이든 간에 그 맛을 자기가 잘 해석을 해야지요. 해석 할 사람이 자기뿐이지요.
부처님의 이런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가 자꾸 바르게 해석해 나가는 거, 이게 중요해요. 참으로 중요하다고요.
음악에 있어서도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게 중요하지요. 연주자들도 자기가 느끼는 대로 해석 하다 보니까 같은 곡을 연주해도 전혀 다르잖아요. 맛이 영 다른 거예요. 연주하는 사람에 따라 영 달라요.
요즈음 많이 알려진 장사익씨 같은 이는 그 전에 부르던 노래를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해석을 해서 노래 부르는 걸 봐요. 얼마나 멋있습니까? 참 대단하거든요. 그게 뭐 박자가 맞습니까. 곡이 제대로 맞습니까. 본 악보에는 하나도 안 맞지만 그 나름대로 자기가 새로이 해석해서 내어 놓으니 아주 기가 막힌 음악이 되잖아요.
그런 식으로 본래 우리 인생의 악보가 정해져 있다고 해서 꼭 그대로 해석할 게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 그것을 잘 소화를 하고 해석을 해서 새롭게 자기 인생을 노래 부르면 멋진 음악이 된다고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도 그 이야기를 했어요. 장사익 그 사람이 어떻게 보면 음악을 완전히 버려놓은 사람이지만 듣고 감동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그게 전부가 악보에는 안 맞는 곡이지만 정말 멋진 음악으로 새로이 해석을 했듯이 거기에 묘가 있는 거다, 라고 하는 그런 등등의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어쨌건 그 사람을 봤어요. 통광스님이 자기와 한 마을에서 난 스님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아이고, 지리산에서 인물 둘 났네.”라고 내가 그랬지요.
그 동네가 무슨 동네인지.. 쌍계사에서 그 위로 올라가다가 칠불암과 갈라지는 의실이라고 하는 마을인데 아주 산골짝에 있어요. 그 마을에서 스님이 여섯이 났대요. 한 스님이 통광스님이고 한 스님이 진명스님이고 또 통광스님 조카가 하나 있고 그래요. 스님들 세계에서는 그런 일도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대천신이 우리가 겪는 일들을 ‘만약에 어떤 중생이 혼침 해태하면 내가 이런 이런 중병을 보여주며, 또 누가 교만하고 진심이 많아서 잘 다투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무서운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지요. 세상에는 자기보다도 더 무서운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아이구, 저 사람 겁난다.’이렇게 되면 그 사람의 마음이 좀 바뀌게 되지요. 이런 등등을 우리가 부연해서 이해하면 거기까지 이야기가 안 되겠나하는 이런 생각입니다.
4. 謙己推勝
善男子야 我唯知此雲網解脫이어니와 如諸菩薩摩訶薩은 猶如帝釋하야 已能摧伏一切煩惱의 阿修羅軍하며 猶如大水하야 普能消滅一切衆生의 諸煩惱火하며 猶如猛火하야 普能乾竭一切衆生의 諸愛欲水하며 猶如大風하야 普能吹倒一切衆生의 諸見取幢하며 猶如金剛하야 悉能摧破一切衆生의 諸我見山하나니 而我云何能知能說彼功德行이리오
그 다음은 겸기추승(謙己推勝)이라, 그 나름대로 다 위대하지만 선지식들의 자세는 늘 자기는 겸손해 하고 보다 더 나은 선지식을 추천하지요, 그것이 겸기추승입니다. 다른 선지식을 여기서 추천하고 넘어가는 그런 형태입니다.
선남자(善男子)야 나는 오직 이 운망해탈(雲網解脫)만 알지마는 저 다른 보살마하살들은 유여제석(猶如帝釋)하야, 마치 제석천과 같아서.
우리가 석제환인이라고 하는 것도 다 여기 경전의 제석에서 유래가 되었지요. 제석은 특히 공부하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공부하는 사람들을 뒷바라지 하는 그런 천신이라고 되어 있지요.
마치 제석과 같아서
이능최복일체번뇌(已能摧伏一切煩惱)의 아수라군(阿修羅軍)하며, 일체 번뇌의 아수라군대를 꺾어서 항복시키며
또 유여대수(猶如大水)하야, 마치 큰물과 같아서
보능소멸일체중생(普能消滅一切衆生)의 제번뇌화(諸煩惱火)하며, 모든 중생의 번뇌의 불길을 다 소멸하며,
좋은 말이네요. 번뇌의 불길을 큰물이 되어서 다 꺼버리듯이, 큰 비가 와서 불을 꺼버리듯이 사람 사람의 번뇌의 불길을 그렇게 꺼버리는 그런 선지식이 있다는 거지요.
또 유여맹화(猶如猛火)하야, 그 반대이지요. 처음에는 제석이고 그 다음 대수(大水), 큰물이고 그 다음 맹화(猛火), 아주 사나운 불길과 같아서
보능건갈일체중생(普能乾竭一切衆生), 일체 중생의 애욕의 물을 다 말려 버린다는 말이지요. 불이 있어서 애욕의 물을 다 말려버리는 그런 보살도 있다, 이 말이지요. 표현이 아주 능숙하지요. 제석과 같아서 중생의 번뇌의 아수라 군대를 다 항복받고, 큰물과 같아서 중생의 번뇌의 불길을 다 꺼버리고, 또 맹화와 같아서 중생의 애욕의 물을 다 말려 버리지요.
또 대풍(大風), 큰 바람, 회오리 바람과 같아서
보능취도일체중생(普能吹倒一切衆生)의 제견취당(諸見取幢)하며, 견취당(見取幢)이라는 것은 자기 소견의 깃발입니다.
뒤에도 아견산, 소견의 산이 나오는데 견취라는 말은 자기의 소견이 어떤 하나의 사상, 하나의 주의 주장으로 분명히 굳어져 가지고 거기에 자기의 집착이 딱 생겨서 그래서 하나의 깃발을 세상에 세우는 것을 말합니다.
술집 주막 같은 곳에도 깃발을 세우지만 여기에서의 당(幢)은 하나의 사상을 이룩한 큰 사찰에서 그 사찰의 사상과 가풍과 그 격을 나타내는 큰 깃발을 세우는 그것이 당간지주인데 그때 쓰는 깃발 당(幢)자 이거든요.
그와 같이 중생들이 그 나름대로 자기 인생에 대해서 또 배운 사람은 배웠다는 대로 자기가 살아온 나름대로 그 소견이 다 있어가지고 누구도 그걸 어떻게 하지를 못하는 거예요. 찌그럭 째그럭 싸우는 것이 다 그거 아니에요? 전부가 자기 소견이 옳다는 거야, 그냥.
그런데 여기서 대천신이 소개하고 있는 이 보살은 큰 바람과 같아서 그런 소견의 깃발을 다 꺾어서 넘어뜨려 버리는 그런 사람입니다.
또 유여금강(猶如金剛)하야, 마치 다이아몬드와 같아 가지고
실능최파일체중생(悉能摧破一切衆生)의 제아견산(諸我見山)이라, 자기 소견입니다. 아견(我見), 아집(我執), 저 위에는 견취라고 해서 자기의 사상, 견해였지요. 여기는 이제 ‘나’라고 하는 아집과 ‘너’라고 하는 소견의 산을 깨뜨려 버린다는 거지요. 다이아몬드는 이 세상에서 제일 견고한 것이지요. 다이아몬드를 깨뜨릴 게 아무 것도 없지요. 그래서 다이아몬드가 아견의 산을 다 깨뜨려 버린다는 뜻입니다.
금강경 육조스님 서에도 이런 말이 나옵니다마는 일체 아견의 산을 다 깨뜨려 버리나니, 그런 것을 내가 어떻게 능히 알고 능히 그런 공덕행을 설할 수 있겠는가, 나는 도저히 그렇지를 못하다. 그러니 내가 좋은 선지식 한 분을 소개 하겠다 하면서
5. 指示後友
善男子야 此閻浮提摩竭提國菩提場中에 有主地神하니 其名이 安住니 汝詣彼問호대 菩薩이 云何學菩薩行이며 修菩薩道리잇고하라 時에 善財童子가 禮大天足하며 遶無數帀하고 辭退而去하니라
선남자(善男子)야, 이 염부제 마갈제국 보리장중, 마갈타국이지요. 성도(成道)마갈타, 성도 하신 곳이 마갈제국입니다. 그리고 법보리장중, 부다가야 보리수나무 밑에서 금강보좌에 앉아 성도했다고 하는 그곳이 바로 마갈제국 보리도량이지요.
보리장중에 신이 있어요. 주지신(主地神)이 있는데 땅을 맡은 신이라는 말이지요. 땅을 담당하는 신이 있는데 그 신의 이름이 안주라는 거지요. 안주 주지신인데
여예피문(汝詣彼問)호대, 그대는 거기에 가서 물어라. 보살이 어떻게 해서 보살행을 배우며 어떻게 보살도를 닦으리잇고, 라고 그렇게 물으라.
그때에 선재동자가 예대천족(禮大天足), 대천신의 발에다 예배를 하고
요무수잡(遶無數帀)이라, 무수한 바퀴를 돌고서
사퇴(辭退)하고 물러 갔다.
안주신을 소개를 받고 그리고 또 안주주지신을 찾아서 다음 선지식을 만나러 나아가는 그런 대목입니다.
오늘 대천신의 끄트머리 부분이 상당히 인상적이고 우리가 살아가는데 정말 생각해야 할 그런 대목들이 아닌가 느껴집니다.
첫댓글 '자기가 느끼는 인생의 맛은 아무도 못 봐요, 자기 혼자 보는 거예요. 오늘의 내 인생의 맛은 나만 보는 거지 딴 사람이 보는 게 아닙니다. 나만 보는 그 맛이 쓴맛이든 짠맛이든 매운맛이든 간에 그 맛을 자기가 잘 해석을 해야지요.무슨 베토벤 해석은 못하더라도 자기 인생은 자기가 해석을 잘해야 된다고요.' ^*^ 잘 읽었습니다. ()()()
능사난사(能捨難捨)하라. ㅡ 능히 버리기 어려운 것을 버리도록 하라.그러므로 수지신시광명당(受持身是光明幢)이요. 수지심시신통장(受持心是神通藏)이리라ㅡ 광명의 깃발이요.그 마음이 신통의 창고... 녹취법사가 되어 주신 연보리님 덕분에 화엄의 세계에서 좋은 결실을 얻어 갑니다. 고맙습니다._()()()_
能捨難捨... _()()()_
내 인생은 내가 맛보는 것,누구도 대신 맛볼 수 없다. 단맛 쓴맛 모두 맛보는 자신이 해석을 잘 해야 인생에 발전이 있다는 말씀 깊이 사유합니다..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
()()() 감사히 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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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매일 매일은 자기가 살아가는 그 주옥같은 인생이다. 고맙습니다. _()()()_
능히 버리기 어려운 것을 버리도록 하라...연보리 님! 수고하셨습니다..공부 잘 하고 갑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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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이런 두려움, 근심 걱정거리, 또 무슨 병, 이런 것들도 그러니까 대천신이 일부러 주는 거예요. 정신 차려서 열심히 수행하고 공부하라고 병을 준다고 볼 수 있어요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닥치는 어려움,난관,질병,속 썩이는 일,집안의 애로사항들은 부처님법을 공부하게 만드는 선지식이다
대천신;잠자기 좋아하고 게으른 사람에게는 왕이나 도적이 야단치고 수해,화재가 나게 하고 중병이 나게 해서 불법을 공부하게 한다
--중병이 들고 우환이 생길 때 이렇게 생각해야 제대로 된 것
"나는 왜 팔자가 기구해서 이렇게 속 썩이는 사람뿐인가"하고 신세 타령해 봐야 헛거다
---내가 전생에 게으름피워서 열심히 공부하라는 것이고 철들라는 것으로 해석해야 맞다
-대천신이 이렇게 중생을 교화하듯
인생은 해석을 잘 해야 되요.자기 팔자 해석을 잘 해야 되요.
매일 매일이 살아가는 그 순간이 주옥같은 순간이다.속상하고 슬픈 순간도 아주 귀중한 순간이다."그건 재수가 없다","나는 팔자가 이 모양" 이라고 배타적 마음을 가질 것이 아니라 해석을 잘 해야 한다
자기 인생을 자기가 해석을 잘 해야 하는 것은 자기의 과제다.누가 대신해 줄 수 없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제대로 해석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
자기만이 맛보는 인생의 맛이 쓰고 짜고 맵더라도 그 맛을 잘 해석해야 한다.해석할 사람이 자기 뿐이다
諸我見山을 부수다
身語 意가 과실이 없어진 후에,청정해진 후에 보살을 볼 수 있고 보살의 말을 들을 수 있고 항상 보살이 눈 앞에 나타나게 된다
대천신;게으른 사람에게 갖가지 재난,질병을 주어서 불법에 들게 한다
나무 입법계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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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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