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사회의 거울이다. 해방 후 한국 사회에는 전례 없이 한국사상사 저술이 쏟아져 나왔다. 김득황은 1950년 『한국사상의
전개』를 출간했는데, 이 책에는 한국의 고대사상으로 ‘홍익인간의 건국사상’과 ‘상고조선의 공화정치사상’이 편장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나중에
증보된 『한국사상사』(1958년)와 『증보 한국사상사』(1973년)에서는 ‘건국’과 ‘공화’라는 단어가 장 제목에서 사라졌다.
유자후의 『조선민주사상사』(1949년)도 한국사에서 민본사상과 민주주의의 연원을 검출하려고 애쓴 노작이다. 그는 멀리는
홍익인간부터 시작해서 가까이는 조선시대 여러 국왕의 왕정 이념과 김시습·이이·유형원 등의 정치사상, 그리고 반정혁명의 전통을 ‘민본민주’의
개념으로 꿰뚫었다.
장도빈의 『조선사상사』(1945년)도 우리나라 역대 사상의 흐름과 ‘십대 사상가’를 서술한 이색적인
작품이다. ‘십대 사상가’에는 ‘정의주의자’ 정몽주, ‘현실주의자’ 이이, ‘혁명주의자’ 최제우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해방 후 민족국가 수립기에
일어나는 사상의 각성과 이에 따른 사상사의 실험을 엿볼 수 있다.
망국사의 아픔에 좌절하지 않고
해방 후 장도빈의 또다른 저술로 『한국말년사』(1945년)가 있다. 조선 말기의 역사를 다룬 자신의 3부작 「대원군과 명성황후」,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갑오동학란과 전봉준」을 한데 모아 ‘말년사’라는 제목을 붙여 준 것이다. ‘말년사’라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박은식으로부터 감화를
받아 대한제국기부터 사회활동을 했던 장도빈에게 ‘말년사’란 무엇보다 대한제국기에 널리 읽힌 폴란드 망국의 기록 『파란말년사』를 연상시켰을
것이다.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등 인접 강국의 압력과 외세의존적인 폴란드 귀족의 내분으로 망국에 이른 폴란드의 역사는
대한제국을 살았던 지식인에게 러일전쟁 전야 현실의 위기를 인식하는 거울이었다. 폴란드의 ‘말년사’는 이집트의 ‘근세사’[애급근세사], 베트남의
‘망국사’[월남망국사]와 더불어 대한제국이 국권을 상실해 갔던 러일전쟁 전후 지식인의 사상적 각성을 촉발시킨 주요 타산지석이었다.
이 맥락에서 빌헬름 텔을 중심으로 스위스 사람들이 외국인 지배자를 몰아내고 자유를 되찾은 스위스의 장엄한 건국
이야기[서사건국지]가 대한매일신보 주필 박은식에 의해 번역된 것은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하겠다. 그는 ‘망국’의 아픔에 좌절하지 않고 ‘건국’의
희망을 지피고자 했던 것이다.
박은식은 나라 잃은 후 중국 상해에서 한국의 아픈 역사, 곧 『한국통사』(1915년)를
지었지만, 책의 제목이 ‘통사’라고 해서 이 책에 아픔만 있고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조선 말기 고종·순종이 재위했던
시기(1863~1910)의 역사를 그는 자강, 인도, 혁명이라는 3가지 키워드로 읽었다. 그 역사는 자강하지 못한 한국이 국망으로 치달았던
‘망국사’이기도 하였지만, 인도 정신이 전무한 일본이 야만적으로 이웃나라를 강탈한 ‘침략사’이기도 하였으며, 무엇보다 구시대에서 벗어나 신시대를
이룩하려 노력했던 한국인 스스로의 ‘혁명사’이기도 하였다.
‘망국사’의 시각에서만 본다면 이 역사책은 단지 한국의 비극을
전하는 ‘한국사’로 그치겠지만, ‘침략사’의 시각에서 본다면 일본의 침략에 맞서 한국과 중국의 연대를 고취하는 ‘동아시아사’로 읽힐 수 있으며,
‘혁명사’의 시각에서 본다면 인류의 새로운 문명을 건설하자는 ‘세계사’로 읽힐 수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사, 동아시아사, 세계사의 3가지
측면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한국통사』는 망국사로서의 한국사 한 가지일 뿐이다.
침략사를 넘어 혁명사의 완성을
『한국통사』에서 그려진 한국의 ‘혁명사’는 흥선대원군의 섭정, 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과 같은 역사적 사건이었으며, 종국적으로는
한국의 독립운동에 의해 실현될 새로운 문명사를 의미하였다. 박은식은 일찍이 『몽배금태조』(1911년)를 지어 한국의 독립운동이 평등주의 신문명의
건설이라는 세계사적 사명을 띠고 있음을 설파한 바 있다. 그는 평등주의를 바깥으로 제국주의 질서를 타파하여 국가와 국가의 평등을 실현하고 안으로
사회적 불평등을 타파하여 인간과 인간의 평등을 실현하는 이념으로 보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조선시대는 물론 일제강점기
역시 구시대에 불과하고, 오직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독립을 달성하여 평등주의 신문명을 건설하는 시기가 되어야 신시대라 이를 수 있을 것이다.
1945년 그 해 일본제국주의는 마침내 패망했고 한국은 독립을 얻었다. 하지만 그것이 곧 한국 ‘혁명사’의 완결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그가
꿈꾼 평등주의 신문명은 이 땅에 얼마나 실현되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