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니엘의 하나님(창 32:24-32)
할렐루야!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야곱의 생애 가운데 큰 이정표가 있다면, 벧엘의 하나님을 만난 것과 브니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야곱은 “벧엘의 하나님, 브니엘의 하나님, 엘벧엘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여러분은 언제 하나님을 만났습니까?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있습니까?
20년 전 아버지를 속이고, 집을 떠나왔던 야곱, 20년의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20년 전 이야기가 꿈만 같았습니다.
20년 전, 야곱이 정든 고향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다가 한 곳에 이르렀을 때, 해가 졌습니다. 그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서 유숙하려고 누워 자고 있을 때, 꿈에 사닥다리 환상을 보았습니다.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닥다리 위에는 하나님께서 서 계셨습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 28:13-15)
야곱이 잠이 깨어 일어났습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집, 하늘의 문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이 서원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창 28:20-22)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내가 벧엘에 하나님의 집을 세우겠습니다. 내가 십일조를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야곱이 벧엘의 하나님을 만난 후, 세 가지 서원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20년의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20년 동안, 야곱에게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라헬을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져 버렸습니다. 라헬을 위하여, 7년을 수일같이 일하였습니다. 결혼을 했는데, 신부가 바뀌었습니다. 라헬이 아닌 레아였습니다. 또다시 라헬을 위하여 7년을 일하였습니다. 그리고 삯을 위하여 또다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네 명의 부인을 맞이하게 되었고, 아들 12명과 딸 하나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웬만큼 재산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20년의 세월이 흐르다보니,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졌습니다. 고향 산천이 그리워졌습니다. 부모님이 보고 싶었습니다. “잠깐 다녀와라”고 했는데, 20년의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렴풋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네 명의 부인과 자식들을 이끌고 고향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하란을 떠나 고향을 향해 나아가는 야곱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격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형 에서를 생각할 때, 두려움이 몰려오기도 했습니다. 형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야곱을 마중 나온다는 소식을 들을 때 기쁜 것이 아니라 두려움이 앞서게 되었습니다. 비록 20년 전이었지만, 형에게 못할 일을 저지른 야곱에게는 마음에 큰 부담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때 야곱은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창 32:9-12)
야곱은 하나님께 형 에서의 손에서 건져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하고 나서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습니다.
야곱이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여, 종들의 손에 맡겨, 자기 앞에 세웠습니다.
“내 형 에서가 너를 만나 묻기를 네가 누구의 사람이며 어디로 가느냐 네 앞의 것은 누구의 것이냐 하거든 대답하기를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자기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오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창 32:17-18)
왜 이렇게 했을까요?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창 32:20)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얍복가에 이르렀을 때, 네 명의 부인과 자식들, 종들과 짐승들을 다 건너가게 하였습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습니다. 그런데, 야곱 앞에 어떤 사람이 나타나, 그 사람과 날이 새도록 씨름을 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습니다. 비록 허벅지 관절은 어긋났지만, 씨름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이니이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습니다. “브니엘”이란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이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습니다.
비록 야곱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걸어야 했지만, 그의 가는 길은 해가 돋는 것처럼 환하게 밝아왔습니다.
여러분! 옛날 말에 의하면,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1년만 지나도 모든 것이 다 변하는 세상입니다. 엄청난 빠른 속도로 모든 것이 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엄청난 변화의 속도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마음의 변화입니다.
20년 전, 야곱은 정든 고향집과 아버지와 어머니를 뒤로 남겨두고, 그리고 형 에서를 피하여, 광야 한 복판에 이르렀습니다. 형 에서로부터 장자권을 빼앗았지만, 아버지로부터 장자의 축복을 가로챘지만, 그는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홀로 광야에서 잠을 청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가지지 않는 빈털터리 신세였습니다. 가장 힘들고 어렸을 때, 홀로 있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를 만나 주셨습니다. 그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만나고 난 후,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벧엘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20년의 세월 동안, 그의 마음 속에는 라헬로 가득 차 있었고, 재물 모으는 것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동안,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기록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삼겠다고 했는데, 하나님께 예배드린 기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세우겠다고 했는데, 하나님의 집을 세운 것이 아니라, 20년 동안 야곱 자신의 집을 세우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 중에 십일조를 드렸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어려움을 당했을 때, 하나님 앞에 서원기도를 하지만, 문제가 풀려지면, 언제 무슨 내용으로 서원했는지 아무 것도 기억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2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잊고 지내온 것이 있었습니다. 형 에서를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해 보니, 형 에서의 일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앞서 보낸 종에게 소식이 오기를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온다고 할 때, 두려움이 온 몸을 휘감았을 것입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형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20년 후, 야곱은 정든 고향집과 아버지를 앞에 두고, 그리고 형 에서를 만나기 위하여, 얍복강가에 이르렀습니다. 형 에서를 두려워하여, 부인과 자식들을 다 건너게 했기 때문에, 홀로 얍복강가에 있게 되었습니다. 모든 재물을 앞서 건너게 했기 때문에, 아무 것도 가지지 않는 빈털터리 신세였습니다.
20년 전, 형 에서로부터 도망칠 때에는 “이제 살았구나”라는 그런 마음 때문에 잠을 청할 수 있었지만, 20년 후, 형 에서를 만나야만 하는 상황에서는 “이제 죽는구나”라는 그런 마음 때문에 잠을 청할 수 없었습니다.
20년 전에는 꿈 속에서, 하늘 사닥다리 환상을 보았지만, 지금은 꿈 속이 아닌 두 눈 뜨고 있다가 씨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군지를 알 수 없었습니다. 형 에서가 보낸 사람인지, 하나님인지 분간할 수가 없습니다.
씨름하면서, 야곱이 요청한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야곱에게 무슨 축복을 주었습니까? 이름을 바꾸어 주었습니다.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었습니다.
역대상 4:9-10절을 보면,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고 했습니다.
“야베스”란 이름은 “슬픔, 고통, 아픔”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야베스”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아픔아, 슬픔아”라고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슬픔을 좀 잊어버릴 때만 하면, 사람들이 “슬픔아”라고 부름으로, 또 슬픔이 떠오르고 했을 것입니다.
“야곱”이란 “발목을 붙잡는 자, 속이는 자, 거짓말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거짓말쟁이야”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거짓말쟁이야”라는 이름을 90평생 들으며 살아왔습니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살아왔겠습니까?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인 모든 것을 잊고 살고 싶어도, “야곱”하는 순간, “거짓말쟁이, 속이는 자”라고 불리는 순간, 형을 속인 일, 아버지를 속인 일들이 기억나곤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이라는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엄청난 선물을 받았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죄인인 우리를 의인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얼마나 큰 은혜요, 큰 사랑인줄 모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남은 생애를 야곱으로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이스라엘로 사시겠습니까?
야곱이 아닌 이스라엘로 사셔야 합니다. 야곱이 변하여 이스라엘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복을 받습니다.
야곱으로 살 때에도, 세상 기준으로 보면, 성공한 것입니다. 네 명의 부인과 열두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 종들과 두 떼를 이룰 만큼 엄청난 재물, 그러나 야곱의 마음 속에는 뭔가 허전한 것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얍복강가에 홀로 남아 있는 야곱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날 밤, 무엇을 해 달라고 요청했겠습니까?
“형 에서의 마음을 돌려 주세요. 형 에서를 멀리 멀리 쫓아주세요.”
그러나 야곱은 전혀 다른 기도를 합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여기서 야곱이 말하는 축복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물질을 더하여 달라는 것일까요?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자기를 죽이려고 다가오는데, 물질을 축복하여 달라고 기도했을까요? 그렇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야곱이 물질의 축복을 구하였다면, 그 사람이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고, 간다고 했을 때, 그 사람을 놓아 주었을까요? 이름 바꾸는 것 말고, 물질의 축복을 더하여 달라고, 어쩌면 더 모질게 그 사람을 붙들었을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것이 아니다. 이름은 아무 상관이 없다. 물질을 달라. 뇌물로 쓸 물질을 더 많이 달라”고 했을 것입니다. 물질의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건강을 달라고 기도했을까요? 형 에서로부터 자기의 안전을 지켜 달라고 했을까요?
“나에게 건강을 주세요. 나의 안전을 지켜주세요.”
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망가뜨렸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그 사람을 놓아주었습니다. 건강과 안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그의 삶이 변화하였습니다. 그의 몸이 변화하였습니다. 밤새도록 씨름을 하고 난 후, 야곱은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허벅지 관절이 망가졌습니다. 멀쩡했던 다리가 고장난 것이었습니다. 절뚝 절뚝 다리를 절으면서 걸어갔습니다. 비록 다리를 평생 절뚝거리면서 다녀야 했지만, 야곱은 두렵지 않았습니다.
우리 같으면 “내 성한 다리 내놔” 했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형 에서가 군사 400명을 데리고 왔는데, 형 에서를 마주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삼십육계 줄행랑을 쳐야 하는데, 다리가 고장난 절뚝거리면, 어떻게 빨리 도망칠 수 있겠습니까? 다리를 절뚝거린다는 것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형 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야곱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당당한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체,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걸어가는 야곱의 모습을 본다면,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20년 전,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여, 장자권을 빼앗고, 장자의 축복을 받고 난 다음, 도망친 동생이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다가온다면, 형 에서의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노로 타 올랐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장자권을 빼앗고, 장자의 축복까지 가로채고 난 다음 도망친 동생이 20년 만에 고향 땅에 돌아왔는데, 지팡이를 의지한 체, 절뚝거리면서 온다면, 얼마나 형의 마음이 안쓰럽겠습니까?
“장자권을 빼앗고, 장자의 축복기도마저 가로챘다면, 잘 살아야지. 이게 뭐냐. 이러려고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인거야. 이 못난 동생아”
아마 형이 동생을 꼭 껴안아 주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형 에서가 동생 야곱을 보자, 달려와서 야곱을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울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얍복강가가 있었습니까? 홀로 하나님과 밤새도록 씨름을 했던 곳이 있었습니까?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까? 하나님은 언제나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은 벧엘의 하나님, 브니엘의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여러분! 그 사람과 언제까지 씨름을 했습니까?
“야곱”이란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줄때까지 씨름은 계속되었습니다. 이름이 바뀐 후에 야곱이 그 사람을 놓아주었습니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 사람이 간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야곱에게 축복해 주었고, 야곱은 자신이 원하는 축복을 받았기에, 그 사람을 놓아준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이런 경험이 있습니까?
밤새 씨름한 적이 있습니까? 밤새 씨름했다는 것은 밤새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밤새 기도해 보셨습니까?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얻을 때 까지, 찾을 때까지, 문이 열릴 때까지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20년 전 벧엘에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은 그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되어지면 보답하겠다고 서원했습니다.
20년 후, 브니엘에서는 하나님과 씨름했습니다. 하나님께 밤새 기도했습니다. 벧엘에서 말씀하셨던 그 말씀을 붙들고 기도한 것입니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와 함께 하며, 너를 지키고, 너를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네 누운 땅을 네게 주리라. 너와 네 자손에게 복 주고, 네 자손들을 통하여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할 것이다.”
야곱은 밤새도록 기도했습니다. 20년 전과 똑같은 야곱으로는 안됩니다.
야곱으로 살면 안됩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변화되어야 합니다. 야곱이 아닌 이스라엘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우리의 주변 상황도 변합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것이 변한다 해도 내가 변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 옛성품, 옛성격, 옛모습 등을 다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야 합니다.
축복 가운데 축복은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은 야곱은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얍복강을 건넜습니다. 아침 햇살이 환하게 돋았습니다. 어쩌면 환경은 더 나빠졌을지는 모르지만 야곱이 가는 길을 환하게 밝아왔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브니엘의 하나님을 만남으로, 여러분의 나아가는 길도 환하게 밝아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