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산 그 푸름 속에 흘린
웃음
권 옥
희
비가 온다고 했으니 오겠지.
덥다, 덥다 하면서 맞았던 팔월.
염천이라 하기 딱 좋은 며칠을
에어컨 켜놓고 시원한 바람 맞으며 보내다보니
시도 때도 없이 울어서 지랄맞다는 욕까지 먹어가면서도
기어이 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말던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웬 일로 뚝 끊긴다 싶더니
아침저녁 스산해지면서 벌써 가을인가? 하는
의아함까지 생겼다.
말복과 입추가 함께 들고 휴가도 끝나가는 광복절과
처서를 앞둔 팔월 셋째주 일요일은
우리 고향사람들의 천마산 팔현계곡 물놀이 산행날이다.
비가 오지 않은 마른 장마와 비켜간 두어 개의 태풍으로
계곡마다 물이 말라서 걱정이라고 했는데
미리 답사 갔다온 우리 기룡이는 물 많이 있으니
아무 걱정 말고
여벌의 옷 준비하고 물에 뛰어들 마음의 준비만 하라고 했다.
새벽같이 일어나니 신랑이 잠꾸러기가 웬 일이냐고 한다.
천마산으로 계곡물놀이산행 간다고 하니
"미쳤군. 어깨 아파서 골골대는 사람이
어디 산을 가!"" 하면서 화를 낸다.
그럼 둘러대야지.
"아니~ 산에는 안 가고 오남저수지 위에 계곡에서
몸보신 하고 물놀이 하고 올거아."
비 온다는데 무슨 물놀이야~
하면서 신랑은 투덜댄다.
그러면서도 냉장고에 씻어놓은 복숭아 있으니 가져가란다.
다른 때 같으면 됐다고 해도 굳이 군자역까시 태워주더니
삐졌다고 시위하는지 그냥 잔다.
흑~어깨 아픈데...
할 수 없지. 내가 안 가면 우리 은희 혼자 외로울 테고
여름내 무릎에다 발가락 다쳐 병원 신세 진 지영이도
점심 시간 맞춰 보고 싶은 친구들 보러 온다는데
가야지.
여덟시에 집을 나서는데
철현이가 까치산역에서 어디로? 하는 문자가 왔다.
아무래도 산행대장이니 먼저 가서 형님 동생 맞아야 할 것 같아
나 신경 쓰지 말고 얼른 가라고 했다.
여전히 은희는 부지런해서 내 한몸 치장하고 나오기도 바쁘구만
부침개 부친다고 더워 죽겠다는 맨트를
밴드에서 봤는데 벌써 종로란다.
지각하지 않게 시간 맞춰 군자역에 내리니
해동오빠가
어이구~ 반갑니더~ 하며 반갑게
인사한다.
영주 무섬마을과 고향 일대를 돌며 찍은
사진을
조금 전 지하철 안에서 카스를 통해
봤는데
홍길동인가요? 언제 벌써?
우리랑 함께 계곡 물놀이 즐기기 위해
새벽에 올라오셨단다.
참 말리지 못할 고향 사람들에 대한
사랑.~
다시 한번 느껴본다.
이렇듯 서로 동질감을 느끼면서
정다운 사람들끼리 함께 한다는 건
언제나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같은 모습으로 고향을 보면서
같은 억양의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
몇십 년 서울에 살면서
고향 사투리를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정다운 안동 껑꺼이의 왔니껴? 잘
지냈니더~
군자역은 반가운 인사로 시끌거리고 깊
은 산속 옹달샘 가든에서 보낸 버스는
30여 명의 들뜬 우리들을 싣고 천마산을 향해 간다.
우리가 향우회 행사나 산행에 처음 따라다닐 땐
거의 막내이다시피 했었다.
그런데 그 새 세월이 산천을 몇구비 돌았다고
후남이언니도 산행에 안 나오고 보니
여자로서는 어느덧 지천명을 넘어가는
우리가 제일 언니고 누나였다.
그래서 무릎이 시원찮다고 산에 갈 때마다
끝까지 올라간다, 못 올라간다 엄살을 부리곤했다.
실제로 가다가 못 가는 날이 와서
우리 산행대장께 짐이 될 때도 있겠지.
앞으로 얼마동안 이 좋은 사람들과
이 좋은 만남을 유지해 갈 수 있을지 우린 그게 두렵다.
오늘은 향우회장님도 안 오시고
배추밭에 물 대는 일이 바쁜 박성수 산우회장님도
참석하지 못한 대신 금일봉을 보내셨다고
기룡이가 버스 안이 떠나가도록 큰소리로 알렸다.
김용진선배님도 안 오시고 43회 선배님들은
회갑여행을 떠나서
아무도 얼굴을 볼 수가 없다.
그나마 류기헌 전 산우회장님을 비롯한
류인섭, 박용태,강호원 선배등 네 분이 참석해준
44회가 제일 어른이시다.
잘 오던 49회 시학이 동생네 팀도 안 보이고
우리 46회도 은희와 나, 철현대장 그리고 이번에 처음으로
고향사람들 산행에 큰 설렘을 가지고 나와준 류중기 뿐이어서
버스는 허전하지만 동생들이 지역별로 따로따로 모여서 온다고 하니
모일 사람은 어떻게든 모이겠지 .
꾸물대던 하늘이 기어이 빗바울을 뿌리면서
푸름이 절정을 이룬 산과 들은 함초롬이 비에 젖는다.
거미가 정성들여 틈틈이 짜논 거미줄에 빗방울이 보석처럼 들어앉고
산은 금방 목욕하고 나온 여인처럼
잠시의 빗줄기에도 골짝마다 허연 김을 뿜어댄다.
해가 뜨고 지는 것만 보고 하루를 보내는 우리는 몰랐지만
뒤에서 가을이 슬며시 안아준 들녘은
옥수수, 수수, 깨, 사과 배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익어간다.
긴 가뭄에 오남저수지도 바닥을 보이기
일보직전이고
팔현계곡 초입도 물줄기가 힘이 없다.
한번 왔던 길은 눈에도 익숙해서
금방 우리가 예약한 옹달샘가든에 도착했다.
작년에는 물놀이 하다가 반지를 잃어버려서
가둬둔 물을 다 빼내 기어코 반지를 찾아내는 일이 있었다는데
반지 잃어버릴까봐 미리 빼서 주머니에 넣어 놓고
오늘은 어떤 친구가 먼저 물에 뛰어들까 기대가
된다.
비는 계속 부슬부슬 내리고 비 맞으면서도 산에
가자,
아니~그냥 여기서 몰놀이나 하면서 놀자로 왈가왈부하더니
일부 동생들은 남고 모두 우산을 든 채 산을 향했다.
비에 젖은 숲은 또다른 운치가 있다.
푸른 잎들이 내 뿜는 축축한 습기와
내가 내뿜는 열기가 맞부딪치며 금방 쓰고 있는 안경이
뿌얘진다.
이상하게 오늘은 숨이 안 찬다.
성큼성큼 앞장서서 발걸음도 가볍게
천마산의 가슴 속으로 들어간다.
똑똑 떨어지는 빗방울과 졸졸 흐르는 계곡물을 음악 삼아
미끄러운 바윗돌을 조심조심 더듬으며 얼마 안 가니
벌써 못 가겠다고 동생들이 발걸음을 돌린다.
철현대장이 잘 다독여서 또 길을 재촉하고
재작년 "아이고 옥희야, 그만 여기서 놀자!" 하며
용진선배가 주저앉았던 곳도 그냥 지난다.
여긴데~ 여기서 놀아야 되는데~
"어디까지 가야 돼~ 여기가 좋구만." 하면
기룡이가 계속 조금만 조금만 하면서도 계속
간다.
점점 풀리는 다리로 기를 쓰며 앞선 사람들을 따라가는데
은희가 보이지 않는다.
못 온다고 밑에서 논다고 하는 걸
철현이가 기어이 다 인솔하고 올라왔다.
배고파~ 소리가 나오기도 전에 배낭마다 먹을 게 나오는데
역시 이쁜이 명화네 팀은 먹을 것도 많고 맛있기도 하다.
으잉? 그런데 명원이가 안 올라왔네. 무슨
일이야?
난 은희, 옥희누야가 좋아~하던 수언이네 팀은
회장님 명령 한마디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지
수언이 서울회장 파워가 만만치 않다.
단합 잘되면 좋지.
어렸을 때 고향에서 코찔찔이로 함께 놀던
깨복쟁이들이 아닌가?
그 그리움을, 그 추억을 더듬으면서 돌아보면
고향친구 만큼 편하고 기대고 싶은 친구도 없는 것
같다.
빗 속에서 먹는 우리 은희의
새벽같이 땀흘려 부친 부침개 맛,
그리고 막걸리 한잔의 맛,
바람과 물을 섞어 양념한 그 맛을 어떻게 표현할까?
에이~ 어차피 물놀이 할 건데 뭐~
걸리적거리는 우산도 집어던지고
그냥 비를 맞으며 막걸리잔이 돌고 웃음꽃이
피고
나무들도 즐거운지 키득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재작년에는 너무 더워서 물속에 발을
담그고
물 싸움을 했었는데
오늘은 아무도 들어가는 사람이 없다.
철현이가 보란듯 뛰어들면 명화도 뛰어들어서
레슬링 한판 해야 되는데
비를 맞아서 더위는 고사하고 한기마저 드는 듯
명화는 수건을 두르고 있다.
나역시 물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비가 안 왔으면 어땠을까?
이 계곡이 떠나가도록 첨벙첨벙 물소리로 시끄러웠겠지.
기대하고 처음 온 동생들에게 물놀이 산행의 즐거움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게 아쉬웠다.
가방에 든 막걸리가 동이 나고 펼쳐진 전을 거두면서
정상까지 갔다올 사람들은 다시 산길을 재촉하고
우린 발을 돌려 산을 내려간다.
곳곳에 힘 없고 여린 것들의 밥인 푸른 이끼들로
여름 산은 잘나고 못난 것 없이
서로를 보듬으며 더불어 살고 있었다.
힘 없고 여린 것들의
밥
권 옥 희
산이 높아 깊어진
계곡에는
이끼들
세상이다
산이 제 몸
풀어
힘 없고 여린 것들도 밥 먹고
살라고
물바람이 날아가 닿는
곳곳마다
푸르고 푸른 물무늬를
새겼다
얻지 못해 괴로운 것들 둘둘
말아
쓰러진 고목에도
이끼는
새파랗게 묵은 신화를
쓴다
어느 조항에도 없는
의무,
힘 없고 여린 것들의 밥이 되려고
이끼는 슬픔이 터져 축축한 곳 어디든
기를 쓰고 달라붙을 수 있는 곳에
기꺼이 제 영혼을
판다
지금 여름
계곡은
푸른 영혼의
세상이다.
산은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힘들다더니
미끄러운 산길을 내려오는 일이
만만찮았다.
배낭을 맨 어깨에 통증이 오면서 다리가
미끄덩하더니
바위 뒤로 주저앉을려는 찰나
뒤따르던 은희가 내 손을 잡으면서 같이 고꾸라질 뻔 했지만
우리는 단짝 아니랄까봐 고꾸라지지도 않고 다치지도
않았다.
영화의 순간 정지 장면 같았다고나 할까?
분명히 이 산에 함께 왔다가 유명을 달리한
우리 친구 동원이가 손잡아 지켜준 것일겨~
안도의 숨을 내 쉬면서 내 마음이
그랬다.
가든에 도착하니 건너편 사람들은 물놀이 하느라 첨벙거리고
새롭게 모인 사람들 합해 60여 명.
작은 인원이 아니다.
점점 젊음으로 발전해가는 우리 산우회.
산우회가 향우회고 향우회가 산우회인 걸.
한 살이라도 더 젊은 동생들이 이끌어가는 모임은 활기 차서 좋다.
그러나 선배들이 있기에 후배가 있으니
늘 보고 인사하던 선배님들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우리 향우회, 산우회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비 오는데 완전하지 않은 걸음으로 달려와준
우리 지영이도 보이고
연진이 수남이 지연이 동생도 와 있다.
맛있는 식사자리가 펼쳐지고
한줄로 주욱 앉아 잔을 나누며 웃음꽃을 피우는 모습이 정겹다.
탕을 못 먹는 사람들은 오리 백숙으로 따로 앉아 먹는데
왕경이를 비롯해 우리 새들 동생들이 한둘이 아니다.
얼굴은 모르지만 같은 마을에 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가움이 한가득이다.
병덕이가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비는 그쳤어도 골짝은 더위를 가시게 하는 바람이
간간 훑으고 지난다.
그래서 내려다보는 물 위에는
나뭇잎들이 낙엽처럼 둥둥 떠 있다.
배부른 뒤의 포만감은 모든 걸 귀찮게 하는지
아무도 물에 들어가는 사람이 없다.
배낭 속에 여벌의 옷을 준비해 왔는데~
재작년에는 산에서 얻어마신 몇잔의 약술
때문에
물에 발 담그고 정신 차리느라 애먹었었다.
그리고 다들 물에 들어와서 놀았는데
이번엔 술도 안 마셨으니 발 담글 일도 없고
누가 먼저 들어가나 기다리다 시간이 다
가버렀다.
그래도 60여 명의 우리 고향 사람들이 함께 모여 즐긴
여름 천마산 팔현계곡 산행은 또 하나의 추억으로
마음에 깊이 남아 있을 것 같다.
특히 처음 나온 동생들은 오늘 흘린 웃음을
주우러
햇볕 쨍쨍한 내년을 또 기다려볼지도 모르겠지.
어릴 때의 동무 얼굴 본다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달리고
바로 헤어지기 싫어 머뭇머뭇대면서
하나 둘씩 차들이 빠져나갈 때쯤
또 다시 다가올 가을 예천 회룡포에서의
전국 임동인 단풍산행을 손꼽게 되겠지.
배부른 영혼으로 돌아온 천마산
팔현계곡산행.
언제나 이런 만남을 갖게되기까지
앞장서 일하는 사람의 노고를 잊지 말아야겠다.
기룡이, 은희, 철현이 수고 많았다.
시간에
쫏기고 어깨가
아푼데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산행후기를 써준
권옥희
친구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아울러
11월2일에 진행될 전국 임동
출향인들의
회룡포
만남을 기대해 봅니다.
재경,안동,포항,대구,부산등
전국 각지에
계신 향우님들 잊지말고
달력에
똥굴베이
쳐놨다가
선선하고
풍요로운
가을날에 모두모두
함께
해주셨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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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산행후기에 감사드리며, 화려하고 멋진 편집으로
후기를 돋보이게 해준 은희친구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