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일요일 딸아이와 부안 격포를 다녀왔다.
20년 전 그 날도 하늘은 잔뜩 구름이 끼고 결국 비가 보슬보슬 내렸는 데
일요일에도 마치 무슨 운명처럼 아주 여린 비가 조금씩 조금씩 떨어졌다.
1982년 19세, 코 밑 솜털이 보송보송 피어오를 때
한여름 뙤약볕 아래 논에 농약을 주고 뒷밭 고추에 물을 주고
받은 용돈으로 첫 혼자만의 여행길을 떠난 곳이 격포였다.
지금처럼 직통도 아닌 부안 읍내에서 한참을 기다려 읍내버스를 타고
흙먼지 폴폴 나는 신작로와 들길, 산길을 지나 조그만 산밑에 위한
격포에 도착하였고 배고파서 그 시절 유일하게 갈 수 있었던 중국집이 기억나고
조그만 어촌, 그리고 몇 만년 동안 다져진 채석강이 기억난다.
딸아이와 전주에서 직통버스를 타고 부안 버스터미날을 거쳐
기억나지도 않는 논길 사이를 지나 서해안에 접어들었다.
비포장은 어디로 가고 산뜻한 2차선 아스팔트가 펼쳐져 있는
해안도로를 신나게 달리니 새만금 방조제 공사현장이 보인다.
끝이 보이지 않는 새만금 갯펄에는 엄청난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가득 차 있고 도로변에는 승용차들이 양쪽 길가를 메워놓고 있다.
전주를 떠난 지 약 한시간 반만에 도착한 격포는
웬 신도시 같은 수많은 건물들이 가득 들어 서 있었고
길거리에는 "핵시설 반대" 플랑카드와 팻말이 널려 있어
이들의 심각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엄청난 음식점 숲을 헤치고 바닷가에 도착하니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온다.
그 조용했던 어촌은 온데 간데 없고 커다란 방파제가 항구를 막고 있고
수많은 관광객과 차들이 항구를 쉽도 없이 들락거리고 있었다.
아이와 나는 비옷을 입고 방조제 길을 따라 채석강 쪽으로 가보니
돈을 내라는 매표소가 떡하니 버티어 있어 때아닌 돈을 내야만 했다.
돈이야 내라면 내지 그 돈 가지고 관리만 잘해준다면....
채석강 앞에 서 있으려니 자꾸만 눈믈이 나온다.
아이 눈을 피해 눈물을 훔치고 저 서해바다의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그 20년 전에 내가 현재의 내가 되려고 20년을 그렇게 살았나 하는 생각에
이유 없는 눈물이 자꾸 흐른다. 다시 20년 후에는 살아나 있을련지 모르겠다.
살아 있다면 다시 꼭 오겠다는 스스로 다짐을 하고 서둘러 항구를 떠나 전주로 왔다.
그 때는 채석강 구경을 마치고 격포에서 한참을 기다려 읍내버스를 타고
내변산에 있는 내소사 입구 마을까지 갔다가 내소사 들려 다시 마을로 나와
버스가 저녁에나 있다는 말에 막걸리 한 병으로 점심을 때우고
기나 긴 갯펄이 펼쳐져 있는 곰소항까지 걸어서 갔었는데...
호젓한 항구, 호젓한 산길, 호젓한 내소사
그러나 이제는 인파에 파 묻히고
자본주의 향락산업에 파 묻히고
나마져 돌아다니지 말아야 하는데...
첫댓글 20년전의 내 모습 & 그리고 지금의 내 모습....한번쯤 지난날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하고 뒤돌아 보게 하는 그런 시간이었네요.잠시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