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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목적지를 정하기까지
"휴가"라는 것은 일상에서 벗어나서 생활의 활력을 충전하기 위해 색다른 경험을
해 볼 수 있도록 주어진 시간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제 불혹의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고,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번엔 좀 색다른 경험을 해 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선우가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여 연년생인 두 아이들에게 항상 자연의 세계들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고민을 했다.
"어디를 가야할까, 어디를......"
지도를 펴자마자 눈길은 서해안쪽으로 향했다.
"서해안갯벌, 그래 이곳이야!" 아래위로 지도를 살펴보았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인터넷으로 "개펄체험"을 뒤적였다.
안면도가 눈에 들어왔다.
영국 이와 윤호 에게 연락을 했지만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들이다.
멀기도 하고 경비도 많이 들고 그래서 그런 것 같다.
나 또한 힘든 여정이 될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나의 고집을 살려
추진하기로 했다.
출발예정 사흘 전,
갑자기 잇몸이 부어 취소할까 도 생각했지만 내가 가자고 한 약속인데 포기 할
수가 없었다. 가능한 한 신용을 지키며 살아가자고 생각하는 나 아닌가......
2. 출발 하루 전
오늘부터 휴가에 들어갔다.
여든 둘에 가출하여 고뇌의 생을 객사로 마감한 톨스토이의 마지막 시편이
사뭇 눈앞을 헤집고 사라진다.
하지만, 알을 깨고 나오는 새처럼 또 다른 공간을 찾아가는 마음은 분명
희망이고, 벅찬 감동임을 주체할 수 없다.
동해, 이곳 평해로 온 지도 5개월이 지났다.
부산에 비해 생활이 불편한 경우도 많지만, 40년간의 도시생활의 해묵은 때를
벗기에는 아직까지 충분히 감동적이다.
포항까지 가서 텐트를 새로 구입하고, 몇 가지 가져가야 할 준비물을 챙겼다.
소풍가는 아이처럼 들떠서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3. 첫 날, 안면도 가는 길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짐을 챙기고 아이들을 깨웠다.
벌써 동녘 하늘은 뿌연 연기를 모락모락 피우며,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평해 읍을 멀리 하고 어제 밤에 정해둔 길로 불영산 계곡을 타며 산을 넘어갔다.
아름드리 수목 옆으로 흐르는 냇물은 가슴을 타고 시원스레 발끝까지 적시며
강산도 나도 한 몸이 되어 있었고, 자연인으로 그렇게 산등성이를 굽이굽이
헤치고 꾸물거리며 기어오르는 사이 아이들은 또 산 속에 잠이 들어 있었다.
듬성듬성 군락을 이룬 텐트촌이 숲의 향기에 취하고, 물소리에 젖어 잠에 겨워
있는 모습이 스쳐 지나는 가운데 꼬부라진 산자락은 벌써부터 가쁜 숨을 몰아쉬게
하고, 어느 덧 아침이슬을 가르며 솟아난 태양은 뜨겁게 여름을 달구며 햇빛을
쏟아 붓고 있었다.
풍기 I. C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단양휴게소에서 아침을 먹었다.
영국에게 전화를 하니 이제 출발한다고 한다.
하긴, 창원에서는 세시간 정도 차이가 있으니 거의 비슷하게 도착하리라 예상된다.
단양팔경이 눈 아래 있었는데 못내 섭섭한 마음을 접고 다시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차 막힘이 없어 기분 좋게 달리다 만종 I. C로 내려와 영동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경상북도에서 출발하여 충청북도, 강원도를 지나 동, 서를 가르며 여주, 이천,
경기도를 벗어나 충청남도가 있는 서해안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차들이 갑자기 많아져서 정체현상을 빗고 있었다.
삼, 사십 여분쯤 밀리고 난 후 다시 제 속도로 가는 중에 서해대교가 눈앞에 펼쳐
졌다.
웅대하게 바다에 다리를 적시고 있는 대교는 우리를 그냥 가게 놓아두지 않았다.
대교를 막 지나자 휴게소가 있어 차를 세우고 기념사진을 찍고는 다시 길을 재촉했다.
안면도로 가는 고속도로의 끝 홍성 I. C를 타고 내려와 톨게이트에서 요금을 지불하려는 순간 뒤차에서 빵빵거리며 경적을 울리기에 돌아보니 영국이 차에서 손을 흔들
고 있었다.
아니!!
이렇게 만날 수가 있다니!
약속도 하지 않은 길가에서 정확하게 앞, 뒤차에서 만났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오후 두 시쯤 그렇게 우리는 영국이 가족과 만나서 함께 안면도로 향했다.
잠시 휴게소에 들러 점심식사를 하고 사십 여분쯤 가니 안면도로 들어가는 다리 옆으로 바다와 갯벌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 왔다. 조막만 한 돌이 촘촘히 박혀있고,
백사장항 포구가 그림처럼 펼쳐진 다리 위에서의 풍경을 눈에 담고 서서히 항구로
빨려 들어갔다.
안면도 현장에서 이년간 있었다는 김 모 씨의 조언을 들은 터라 조개를 사서 갈려고
포구로 들어가니 온통 먹거리가 널려 있어 보기만 해도 좋았다.
이 만원에 각종 조개가 한 바구니 가득, 푸하하핫!!!......
어둠이 낱낱이 바다를 적시는 가운데 갯내음의 향기를 마시며 모닥불에 불타는
조개구이와 한잔 소주에 사랑하는 가족과 벗과 함께 하는 것을 상상하니 이곳이
무릉도원이라!
백사장 포구에서 나와 안면 해수욕장을 지나, 밧개 해수욕장을 지나 그리고
꽂지 해수욕장을 지나 최종 목적지인 샛별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오후 세시쯤 되었나 보다......
4. 여기가 안면도, 샛별 해수욕장!!!
미리 예약해 둔 민박집은 디귿(ㄷ)자 형식으로 전용 민박집이었다.
우리 방은 그 중에 주인집 거실인 듯 싱크대와 냉장고가 있었고 화장실도 안에
있어서 여느 집 보다 는 크고 좋아 보였다.
짐을 풀고 바다를 둘러보러 나갔다.
바다 가 코앞에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이게 뭔 일인가?
이 먼 곳까지 갯벌 체험하러 왔는데 갯벌은 온데 간데 없고 자갈밭 폭만 십 미터
남짓한 곳에 흐릿한 바닷물과 수영하는 객들만 자리하고 있으니
실망!!, 실망!! 또 실망!!......
해안선에서 멀리 수백 미터까지 나가도 물이 허리까지 차지 않는다더니......
한동안 멍하니 있는데 애들은 그저 수영을 즐기러 간다고 난리였다.
길게 뻗어진 해안선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고, 영국 이와 나는 내일
텐트 치고 놀 혹시나 괜찮은 갯벌이 있는 곳이 있을까하여 다른 해수욕장을 물색해
보기로 하였다.
차량으로 이십 여분쯤의 거리에 있는 꽂지 해수욕장을 둘러보니 이름이 나 있는
곳이라 사람들로 온통 북적거려 부산에 있는 해운대 같았다.
다시 김 모씨의 조언을 기억하며 맛 조개를 잡을 수 있다는 몽산포 해수욕장으로
갔다.
위락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고 넓은 주차장 공간과 야영장이 무척 맘에 들어
둘러보며 해수욕장을 보니 제법 길고 넓은데 바닷물 색깔이 흙탕 빛이었다.
마지막으로 백사장 해수욕장을 구경했다.
돌밭처럼 드러난 곳에서 조개를 잡을 수 있겠다는 희망이 비로소 피어 오른
곳으로 일말의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윤호 에게 연락 해보니 대구에서 오후 네 시 삼십 분에 출발하여 가고 있는 중
이라 한다.
내일은 이곳에서 야영하기로 결정하고 다시 샛별로 돌아가니 어느 덧 저녁
일곱 시가 되었다.
5. 첫날 밤 그 감동의 시작......
그런데 이게 또 뭔 조화인가?
바다는 우릴 그냥 있게 두지 않았다.
어둠이 짙어 가면서 허연 속살을 드러내어 마침내 감동의 시작을 예고하고 있었다.
한 편의 감동적인 영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웃음과 눈물을 만들어 내고,
한 편의 아름다운 시는 메마른 이성을 녹여 뜨거운 가슴으로 서로를 보듬게 하지만
이곳 바닷물은 한 걸음 한 걸음 물러서서 모래톱을 토해 내어
무지한 나를 일깨우며 벅찬 감동의 물결을 일렁인다.
" 이제껏 배워 왔어도 아직 너를 몰랐다니......"
어둠이 짙어가며 해변에는 폭죽소리가 밤하늘을 진동하고, 빠져나가는 바다 물길을
따라 사람들은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자갈밭 위에 그늘 막과 돗자리를 깔고 숯불을 피워 철망을 올려놓고 불이 익어
갈 때 조개구이를 하며 우리는 한잔 술에 점차 밤을 달구고 있었다.
바다와 어둠이 하나 되어 검게 그을려 있었고, 그 속에서 저만큼(3, 4백 미터쯤
떨어진) 떨어져 물가에 서성이며 오, 가는 전등 불빛은 또 하나의 볼거리였다.
도심에서 조개구이 전문점에서 먹어 보았지만 이 곳에서 구워먹는 조개는 참
맛이 있었다.
분위기도 함께 일조를 하였겠지만 별로 라고 생각했던 조개구이가 이렇게 맛이
있을 줄이야 정말로 새삼 놀라웠다.
호미를 몇 개 샀다. 그리고, 영국 이와 나는 갯벌로 뛰어 들어갔다.
잔잔한 달빛에 어우러진 파도소리에 귀를 세우며 이곳 저곳을 헤집어 다닌 중에
윤호가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곧이어 다시 자갈밭으로 올라와 친구와의 재회를 함께 기뻐했고 아직 수북히
담겨진 조개들을 구워내며 우리는 세 가족의 만남을 반기며 축하의 잔을
머리까지 들어올려 건배의 사랑을 보냈고 그 동안 지냈던 일들을 안부하며
밤이 깊도록 술잔을 돌렸다.
조개도 타고 밤이 익어 가는 이 여름은 친구와의 추억을 우정의 잔 속에 고이
담아 타들어 가는 목 줄기로 부어 넣어 심장의 뼈 속에 녹여 두리라......
아이들을 방으로 보내고 친구 셋은 어느덧 술에 젖어 있었다.
새벽 한 시 그러나, 그냥 잘 수는 없었다.
호미를 들고, 삽을 들고 다시 우리는 갯가로 갔다
바다 물은 조금씩 밀려들고 있었는데......
빨대처럼 생긴 촉수가 촘촘히 쏟아난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사이로
"이게 뭐야!"
조개 혓바닥이 들어오는 바다 물을 감지하듯 손가락 크기만큼 뻗어 나와 누워
있는 게 아닌가!
성급히 작은 부삽으로 한 삽을 뜨고 손을 넣으니 커다란 떡조개(그곳 사람은 "백합"
이라 했다.)가 손안에 잡혔다. 감탄!, 감탄! 또 감탄!!!
모두들 소리를 질렀다.
술에 잔뜩 절어있는 영국 이는 "이게, 조개다 말야"를 연신 내 뱉고, 윤호는
"히히, 우째 이런 것이" 하며 우리는 서로의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갯벌체험을 시켜주려 한 게 아니었다 어른들인 우리가 이 생생한
체험을 하고 있었다.
아니, 차라리 우린 아이였었다 세상의 아픔과 고뇌를 모르고 가슴과 몸이 하나되어
움직이는 마냥 순진한 개구쟁이 상락이, 원락이, 예주, 희주, 호승이, 정은이와
선우처럼 그런 아이였었다.
열 개 정도의 떡조개를 봉지에 담고 들어와 내일을 기대하며 잠으로 빠져 들어갔다.
6. 백사장 해수욕장에 텐트 야영을!
열 시간의 운전으로 피곤한데다 술 마시고 새벽녘까지 조개 잡다 잠이 들었으니
얼마나 피곤한지 다들 세상모르게 잤을 것 같다.
영국 이가 라면과 반찬거리를 준비해와서 대충 식사를 하고 나니 아홉 시가 넘었다.
바닷가에서 두어 시간 시간을 보내고 짐을 챙겨 백사장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길가에는 차량들이 붐벼 정체현상을 빗고 있어 느리게 움직였다.
바닷가에는 물가가 보통 서너 배 이상이어서 너무나 비싸 안면 읍에 있는 슈퍼에 들러 반찬거리 몇 가지와 잡화 등을 구입하여 갔다.
백사장 해수욕장에 도착하여 소나무 숲 사이로 각자 텐트를 쳤다.
좀은 흥분된 마음으로 새로 산 텐트를 치니 아이들이 먼저 뛰어 들었다.
흐뭇했다.
이제껏 빌려서만 다니고 했는데 생전 처음 사 가지고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폼 나게 서있는 텐트를 보니 작은 감동마저 일었다.
아이들은 라면과 밥을 간단히 먹고는 또 바다로 수영 간다.
이젠 지켜봐 주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갔다 왔다 하는 것을 보니 늘 옆에 서서
불안한 마음으로 보던 일이 주마등같이 스쳐 지나간다.
아이들은 그렇게 소리 없이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훌쩍 커버린 느낌을 주면서
자라는가 보다.
작은 냄비 만한 구덩이를 파고 숯불에다 어제 밤에 잡았던 떡조개와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서 점심으로 대신하고 아이들이 놀던 데로 어른들도 모두 수영하러
갔다.
바다 물이 너무 짰다.
남해나 동해의 바다 물보다는 훨씬 염분이 더 했고, 뻘 물이라서 그런지 좀
탁하기도 했지만 아이들과 어우러져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샤워 비는 애나 어른이나 이천 원이라고 한다.
선우를 데리고 사천 원을 준비했는데 입구에서 바로 앞에 한 남자가 아이를
데리고 막 들어가려고 하며, 아이는 왜 이 천 원을 받느냐고 따지면서 달랑
이천 원을 내고 들어가 버린다.
"이런 날 강도들"
나도 이때다 싶어 이천 원을 주니 두말 않는다.
인생은 줄을 잘 서야 한다더니......
화장실은 겉은 그런 데로 괜찮았는데 구덩이가 깊어 어떤 아이들은 울며 소리
지르고 대부분은 안 들어가고 나왔다.
텐트 치는 자리 값을 세 개 삼만 원을 치르고 저녁은 또 꽁치 통조림으로
대충 때우고 시간을 보내다 제법 바다 물이 멀리 나가 있어서 우린 다시 호미와
삽을 챙겨 나갔다.
밤이 어둑어둑 해저 있었고 백사장에는 아무 것도 나와 있지 않았다.
"지금쯤은 빨대 같은 공기구멍들이 나와 있어야 하는데......"
할 수 없이 바람만 쐬다 나중에 다시 나오기로 하고 들어갔다.
밤 열 시가 좀 넘었을까?
바다 물이 거의 다 빠진 것 같았고 무릎까지 차는 곳에는 후라쉬 불빛이 이리저리들
굴러다니고 있었다.
우리도 셋이 함께 그 곳을 돌아다녔다.
아이들은 수영하느라 피곤한지 벌써부터 잠을 자는 게 못내 아쉬웠다.
짜식들! 수영은 어느 곳에라도 하지만 이곳에서 조개 잡는 재미를 같이 좀 해야
할텐데 저리 엉뚱하게들 놀고 있으니......
큰 게도 보였고 고기들도 제법 보였다.
행여 무엇이라도 잡을까봐 한참을 헤매고 있는 중에 갑자기 소낙비가 내렸다.
부랴부랴 걸어 나오는데 해변가는 까마득하게 멀리 있고 이런 것도 있구나 싶어
차라리 뛰지 않고 빠르게 걸어 나왔다.
제법 빗방울이 굵기에 서둘러 텐트 주변을 삽으로 파고 했으나 주변에 몇몇 사람만
그러고 있고 다들 그냥 태평스레 있으니 나도 모르겠다며 텐트 속으로 들어갔다.
밤 열 한 시가 채 되지 않았지만 그냥 잘 수밖에......
7. 바지락, 떡조개, 동죽 그리고 맛조개!
아이들의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잠이 깨어 꾸물대며 누워 있는 체로 눈을 떠 밖을
보니 날씨는 조금 흐려 있었지만 차라리 상쾌함이 머리칼을 헤집고 고개를 들게
하고, 눈부신 파도소리에 맑은 마음이 몸을 일으켜 세운다.
이렇듯 생활이 불편한 곳에서 쓰러진 영혼이 일어나 기지개를 켤 수 있다니!
어젯밤 내리던 비를 안고 잠든 내 친구도 지치고 힘든 나날들이 샅샅이 씻어지길,
서서히 가리웠던 구름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햇빛은 대지로 물밀 듯이 밀리어 온다.
여름 볕이 강렬하지만 우린 더 돈독한 가족의 사랑을 잔뜩 캐어 가지고 가자.
텁텁한 속으로 아침식사는 그럭저럭 때웠다.
집안 일로 늘 고생스러운 사모님 들 에게 밖에 나와서는 남자들이 해 주어야
하는 게 이치인데, 놀이에 재미 붙여 바다로 가기 바쁘니 참 죄송스럽다
쩝쩝쩝......!!!
접어두고,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다시 수영하겠다며 나갔고,
바다 물이 빠질 때까지 다시 모여 남은 삼겹살이랑 술잔을 기울였다
시간이 빨리도 흐른다.
울긋불긋한 백사장이 저만치 흘러내릴라 하면 호미랑 삽이랑 챙겨 들고
비닐 봉지에 행복을 가득 담아 물길을 따라 간다.
영국 이가 유달리 좋아하는 것 같고, 윤호도 그에 못지 않고 나 또한 질 수
없이 따라 나선다. 여자들은 왜 나서지 않을까?
정말, 정말, 정말로 재미있는 데......
첨으로 맛 조개 잡는 것을 보았다. 신비 그 자체였다.
흥분된 마음으로 구멍을 찾아 모래를 팠다. 그 곳에 소금을 뿌리자 불쑥 튀어
나 온 것이 이것이 무엇이냐? 어디 참에 있다가 소금을 주니 더 줄라고 나왔니?
짠 놈이 누군가 싶어 고개 들어 확인해 보려고 나왔니?
얼마나 세게 잡았는지 부러지고 만 맛 조개를 들고 영국 이는 하염없이 웃었다.
"이런, 이런......" 연신 윤호의 혀 차는 소리를 맛 조개는 들었는지.....
각자 흩어져서 하늘 땅, 별 땅, 이 땅, 저 땅 구멍난 구멍은 쑤시고 다녔다.
난 나대로 구멍만 찾아 다녔는데 영 그 눔의 조개를 찾을 수가 없으니
한 시간 여를 헤매다 친구들은 어쩌는지 돌아와 보니 이 눔 들은 도사가 다 되어
있었다.
가만히 하는 걸 보니 삽으로 약간만 파서 조금 커진 구멍을 확인하고는 그리고
그 속에다 소금을 넣고 곧 바로 튀어나온 이 눔의 맛 조개를 낼름하는게 아닌가!
봉지 속을 들여다보니 맛조개와 함깨 동죽조개도 제법 많이 잡았다.
"아~하, 그렇구나!"
맛조개 구멍을 찾다가 동죽조개가 불쑥불쑥 올라오니 도랑 치고 가재잡고......
아이들을 찾으러 갔다.
정은이의 핑크 빛 수영모를 찾았다 그러나, 백사장 끝까지 가도 뵈지 않는다.
한 바퀴를 돌아 나왔는데도 어디에도 없다. 텐트 쪽으로 들어간 듯 싶다.
맛 조개 잡는 이 재미있는 놀이를 보여주어야 하는데......
파도가 들락거리는 곳에는 뭇 사람들이 이곳저곳에서 동죽조개를 잡고 있었다
모두들 망태에 가득히 담았다.
호미를 들고 팔 여유도 없이 아이들을 찾으러 텐트로 가니 그 곳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급하게 재촉하여 우루루 갯가로 데리고 나갔다.
그 동안 어느새 바람처럼 다가서고 있는 바다는 사람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빨리 잡아보라고 다급하게 영국 이와 윤호를 재촉했으나 바다는 감춰진 모습을
쉽게 아이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아쉬움을 한쪽에 맛 조개와 동죽조개를 또 다른 한쪽에 담고 쫓기는 듯이 빠져
나왔다.
화장실에 다녀오는 사이 모여 앉아 잡아 온 조개들을 굽고 있었다.
"기가 막힌 맛이다!"
소주를 한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안면도 에서 이박삼일의 휴가는 꿈같이 달콤하게 지나갔다.
다들 그러했겠지!
사모님들 워땠어요? ¢¢¢¥¥¥ㅋㅋㅋ......
8. 귀 향..
오후 여섯 시쯤 텐트를 걷고 짐을 챙겼다.
덜 깬 머리를 흔들어 술 찌꺼기를 뿌리고는 자리를 떴다.
여길 오는데 열 시간, 가는데도 그 만큼이니 걱정이 앞선다.
가는 길은 올 때처럼 그리 많이 막히지 않았다.
잠시 달려 휴게소에서 다시 모여 각자 가는 길을 잡았다.
모두들 대전까지는 같은 길이었고, 그 후 영국 이는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타고
창원까지, 윤호는 대구까지 직통이었고, 나는 대구를 거쳐 영주를 통해 포항을
지나 평해로 가는 길을 택했다.
불을 밝혀 밤을 뚫고 고속도로를 거침없이 내달렸다.
대구쯤 지나니 어느새 자정을 넘어서고 있었다.
졸음이 쏟아졌다.
섬뜩거리는 도로 위를 간간이 버텨가며 지나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잠시 잠을 청했다.
다시 새벽길을 열어 젖히며 동해로 들어오니 먼 바닷가에는 꾸물꾸물 해가
세상의 어둠을 담아 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어둠과 잠에 씨름하며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안식처에 안기니
시간은 새벽 네 시 십분.
길고 긴 여정을 마무리하고 맛 조개를 가슴에 안고 깊은 잠에 들어갔다.
9. 에필로그
재밌기도 했고 힘들기도 했던 안면도 이박삼일의 휴가를 다들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혼자 고집을 피워 굳이 먼길을 선택했던 나를 한편으로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고, 여하튼 고생했다.
내 나름대로 나에게는 정말 멋진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정은이와 선우 에게 조개 잡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못내 아쉬움이 남지만
앞으로 기회는 많이 있으니 지들도 언젠가는 가보겠지?
필요한 건 현지에서 사서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 완전히 착오였다.
물가가 서 너 배가 비쌌으니 쓸데없는 비용이 많이 들었다.
다행히 영국 이가 준비를 많이 해와서 고마웠다.
이제 다시 일에 몰두해야겠지?
세 가족이 석 달에 한번 만나는 계모임을 시작한지 팔 년쯤 되었나보다
창원, 대구 그리고 평해에서 흩어져 있으면서도 꼬박꼬박 모임을 갖을 수
있도록 뒤에서 도와준 예주 엄마, 상락이 엄마 그리고 정은이 엄마에게 이 글을
빌어 감사함을 전합니다.
다음에 만날 때까지 모두 안녕!
2003/08/11
첫댓글 오늘 3명의 회원이 추가가입했는데... 혹시 같이 가신분들이 아닌가 싶네요... 아디가 유머스럽던데^^ ㅋㅋㅋ 환영합니다. 여러분
나도 모르오 내가 묻고 잡았는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