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18 조선일보
위암 名醫, 후두암 투병… 1년간 환자로 느낀 절절함
- 연세의료원 암병원 노성훈 원장 "암 걸려보니 환자 맘 알아"
암(癌) 수술 전문의가 암 환자가 됐다. 국내 최고 암 치료 기관 중 하나로 꼽히는 연세의료원 암병원 노성훈(62) 원장이다. 후두암 2기다. 노 원장은 지금까지 위암 환자 1만명을 수술하는 등 국제무대에서도 '위암 명의(名醫)'로 통한다. 세계위암학회장을 역임했고, 국내 암 전문의 최대 단체인 대한암학회 이사장을 지낸 그가 암에 걸려 암 치료를 받은 것이다.
암 치료받은 지 1년이 지난 시점에 그는 어렵사리 인터뷰에 응했다. 노 원장은 "이제는 누구도 암을 피해가기 어려운 '암 동행 시대'"라며 "중요한 것은 전략적으로 암 치료법을 짜고, 그걸 믿고 따르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이겨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암이 발견된 것은 2014년 12월. 목소리가 쉬어 후두 내시경 검사를 받아 보니 성대에 암처럼 보이는 뭔가가 보였다. 아차 싶었다. 그동안 성대 세포 변성으로 목소리가 자주 쉬어 6개월마다 후두 내시경을 받아왔는데 공교롭게도 그해 문을 연 암병원장을 맡느라 그 검사를 1년 쉬었다.
마취깨고 조직검사 기다리는
30분, 그렇게 길 줄은…
암확진이란 말에 삶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왜 나야?
노 원장은 "전신 마취로 조직 검사를 받고 나서 마취에서 깨어나 30분 정도 결과를 기다리는데, 그 시간이 그렇게 긴 줄 몰랐다"고 했다. 암세포는 성대 밑으로 조금 더 퍼진 상태였다. 그는 "암이 확진됐다는 말에 지나온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고, '왜 나지?' 하는 생각과 우울감이 밀려왔다"고 말했다. 암 환자들이 겪는 심리 과정을 노 원장도 똑같이 겪으면서 "암 환자의 심정을 절절히 알게 됐다"고 했다.
원장이 암에 걸렸으니 연세 암병원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여러 분야 의사가 참여하는 다학제 진료 회의가 열렸다. 후두암 수술 이비인후과 교수, 방사선 종양학과 교수, 항암제 종양내과 교수 등이 모였고 거기서 '방사선 치료 우선 방침'이 결정됐다. 노 원장은 "내가 병원장이어서 특별한 치료를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학제 진료 등 여타 암 환자들이 받는 치료대로 했다"며 "내가 수술하는 의사지만 방사선 치료 결정을 따랐고, 내가 그들의 방침을 신뢰하지 않으면 어떻게 암 환자들에게 우리 병원 암 치료를 권하겠느냐"고 말했다.
방사선 치료는 7주간 이어졌다. 노 원장은 이를 위해 매일 자신의 직장인 암병원으로 출근했다. 예전과 다른 점은 아침마다 방사선 치료대에 누워야 한다는 점이다. 그는 다른 암 환자에게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이른 아침 별도의 일정으로 제일 먼저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암 부위만 정조준해서 쏘는 이른바 토모테라피가 쓰였다. 암병원에서 흔히 사용되는 장비다.
노 원장은 암 치료를 받으면서 병원장 업무는 물론 위암 수술도 일주일에 15건 정도 평소대로 했다. 말 그대로 암 환자가 암을 수술한 것이다. 그는 "시골에서 내 얼굴 보고 올라오는 위암 환자들을 마다할 수 없었다"며 "방사선 치료받는 동안 목소리를 가능한 한 쓰지 말라고 들었는데, 수술실에 있으면 말이 필요 없어 되레 편했다(웃음)"고 했다.
암 환자들에게는 자신의 암 치료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환자들이 불안해할까 봐서다. 외래에서 암 치료 결과에 대해 너무 불안해하는 환자들이 있으면 "이 양반아, 나도 암 환자야. 너무 걱정하지 마시게"라는 말이 목에 걸린 적이 많았다고 했다.
방사선 치료후 암 사라져…
재발 불안하지만 긍정 생각
방사선 치료로 암세포는 사라졌다. 노 원장은 "암세포가 사라진 지 아직 1년 정도밖에 안 돼 만에 하나 재발할까 봐 아직은 불안한 상태지만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고 말했다.
"많은 의사가 생존율을 말할 때 몇 퍼센트(%)식으로 얘기하지만 암 환자들은 그런 수학적 설명에 절망합니다. '생존율이 10%라도 10%에 들면 나을 수 있다. 그러면 생존율이 100% 아니냐. 희망을 갖고 치료에 임해보자'고 해줘야 암 환자들은 기운을 차리고, 몸 상태도 좋아지고, 결과도 좋게 나옵니다."
노 원장은 또 "암 환자들은 의사의 따뜻한 말 한마디 들으려고 새벽에 일어나 목욕까지 하고 병원에 오는데, 의사들이 컴퓨터 모니터만 보고 3분 진료를 하면 되겠느냐"며 "앞으로 진료 환경을 인간적으로 바꿔 나가고 진료 제도도 개선되도록 목소리를 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연세의료원 암병원은 암 치료 과정과 결과를 내부 전문가들이 서로 평가하는 '동료 평가제'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이제껏 토요일, 일요일도 빠지지 않고 병원에 출근해 환자를 봤어요. 아이들 소풍 한 번 따라가지 못했죠. 우리 세대는 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잖아요. 그러나 암에 걸려 암 치료받으니 가족의 소중함이 가슴에 사무치더라고요. 평소에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지내길 바라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