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위반
- 은유시인 -
나는 오는 10월13일 오전10시 부산지방법원 제301호 형사법정에 피고의 신분으로 출두해서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위반’ 혐의로 추상같은 법의 심판을 받아야한다.
이미 1998년 6.4 지방선거 때에도 ‘주간 사하신문’에 당시 지방선거에 출마하였던 부산시장 및 사하구청장, 시의원, 구의원 입후보자들을 인터뷰하여 신문에 게재하였다는 이유로 당시 구청장 후보로써 인터뷰를 거절했던 김 모씨에 의해 사하구 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해 고발당했으며, 사하경찰서에서 조서까지 받았다. 이후 검찰에서 ‘무혐의’처분 받았던 경험을 갖고 있으니, 선거법 위반혐의로 고소되기를 이번으로 두 번째인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4.15 총선 때 사하구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하기로 했던 후보자 스무 명 가운데 인터뷰에 응한 사람만 ‘주간 한국인’이란 잡지에 게재함으로써 인터뷰를 거절한 후보 진영에서 사하선관위에 고발한 데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 때문에 사하선관위에서 조사를 받고, 또 사하경찰서에서 두 차례에 걸쳐 조서를 꾸미고, 부산지방검찰청 담당 검사한테 불려가 다시 조서를 꾸며야했다. 그 결과 10월13일 부산지방법원 형사법정에서 첫 재판이 열리게 된 것이다.
죽을 각오를 하고 감히 말하건대 대한민국의 법이란 ‘이현령비현령’이다. 즉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면 코걸이란 말인데, 그만큼 우리나라 법이 보통사람들 수준으로는 도저히 제대로 된 해석을 내릴 수 없을 뿐더러, 그렇다고 법을 전공한 사람들이라 하여 명쾌한 해석을 내릴 수 있도록 제대로 된 법이 아닌 엉터리라는 것이다.
심한 경우 재판장의 판결 당시 기분에 따라 형량이 좌지우지한다하니 얼마나 모순덩어리요, 엉터리인가.
‘1988년10월경, 무장탈옥수 지강헌이 인질극을 벌이면서 외쳤던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란 말이 법원 주변에서 괜히 떠도는 소리가 아니란 것이다. 재판을 여러 번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내 주장에 십분 공감할 것이다.
난, 지난 4.15 총선을 맞아 사하지역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하겠노라는 사람들에게 그들 선거사무실로 일일이 전화를 걸고 또 인터뷰 질문내용을 팩스로 보냈다. 원래 국회의원에 출마하고자하는 사람들은 가급적 사람들을 많이 만나려하고 또 언론에도 얼굴을 자주 비추려하는 것이 당연하다. 따라서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무슨 까닭인지 출마하겠다고 입장을 밝힌 스무 명의 인사 가운데 일곱 명만 인터뷰에 응했고 나머지 인사들은 갖은 구실로 인터뷰를 거절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한땐 내 밑에서 근무했던 자가 역시 동일제호인 ‘사하신문’으로 등록해놓곤 인터뷰선수를 치고 그들 후보 사무실을 떠돌면서 내 인터뷰에 응하지 말란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리고 다녔다는 것인데,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인터뷰를 거절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처구니없게 여겨졌다. 그 소문의 진상은 이렇다.
“그 사람 인터뷰를 빌미로 선거인쇄물을 따내려는 수작이다. 인터뷰해봐야 돈 없어 책을 발간할 수 없는 사람이니, 인터뷰 구실로 접근하려는데 속지 말라.”
그리고 그들 인터뷰 기사가 실린 ‘주간 위대한 한국인’창간호가 4.15 지방선거 보름전인 3월29일에 발행되었다. 이 주간잡지는 2004년3월19일 문화관광부에 일반시사주간지로 등록(문화 다-06621)되었으며 특수지가 아닌 일반시사지인 까닭에 ‘주간 조선’이나 ‘주간 한겨레’등 중앙의 시사 잡지처럼 선거철에 관계없이 정치기사를 게재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출마자들 가운데 선택적으로 몇몇만 인터뷰를 하여 게재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문제는 막상 잡지가 발행되고 사하지역에 집중 배부가 되자 인터뷰에 응하지 않은 대부분의 출마자들이 무슨 억하심정이 발동했는지 연대하여 고발하기에 이르렀으며, 그로 인해 선거법시비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참 딱한 것이 소위 국회의원이란 거룩한 자리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양식이 시중의 호로배들보다 나은 게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할 뿐만 아니라, 그런 허접한 인간들 가운데 당선된 국회의원들의 자질이 과연 제대로 될 리 있겠느냐 라는 생각에 고소를 금치 못할 지경인 것이다. 하긴 국회의원으로 대별되는 정치인들이 ‘가장 썩고 무능한 집단’이란 소리가 괜히 떠도는 것은 아니리라.
1955년경, 박인수라는 잘 생긴 사기꾼이 법의 올가미에 걸려들었다. 그는 당시 해군대위를 사칭하고 인기 댄스홀을 휩쓸고 다니며 1년 동안 무려 70여명의 여성들을 농락하고 금품을 뜯어냈다.
그가 만난 여성들은 대부분이 여대생들이었으나 고관· 국회의원 등 상류층 가정주부도 많았다. 박인수는 선고공판에서 자신의 행적을 정당화하며 상대한 여성들을 형편없이 매도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당시 판사는 ‘법은 순결한 정조만을 보호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서는 무죄선고를 내렸다.
왜 이런 예를 드는고 하면, 스무 명되는 입후보자들 가운데 정작 인터뷰에 응한 일곱 명은 자신의 알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충분히 이용했다고 볼 수 있지만, 인터뷰를 거부한 나머지 후보들은 스스로 정조를 갖다 바친 여자들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듯이 공짜로 자신을 지역주민들에게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스스로 저버린 것이기에 항의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선관위에서나 경찰서에서나 검찰에서나 한결같이 선거법에 저촉되는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았음으로 그 같은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며 강하게 버티었다. 그런데 담당검사는 괴상한 논리로 나를 옭아매려 작정한 듯싶었다.
검사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1. 스무 명이나 되는 후보들 가운데 일곱 명만 선별 인터뷰하여 그 기사를 게재했더라도 그것은 언론사의 재량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고, 선거에 출마하는 정치인을 인터뷰하여 게재한 시점이 선거를 앞둔 시점이라 해도 일반시사지인 점으로 비추어 선거법을 위반했다고 할 수는 없다.
2. 유가지(有價誌)로 등록하고 무료로 배부한 행위도 범법행위로 볼 수는 없다.
그렇게 1번 항이나 2번 항을 선거법 위반혐의가 없다고 단정해 놓고서는 1번 항과 2번 항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졌을 땐, 선거철인 만큼 입후보자들의 표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통상방법 외의 방법으로 배부한 것으로 보고 선거법 위반행위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통상방법에 의한 배부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유가지는 돈 받고 팔아야지 무료로 나눠주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바로 이 점이 ‘이현령비현령’식 법 해석이요, 법 적용이라는 것이다.
비록 내가 피고의 신분이라지만 향후 재판이 어떻게 진행될지 나로서도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결과는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당연히 ‘무혐의 처리’될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규모가 작은 언론일지라도 ‘유죄판결’이 내려진다면 전국 언론계에 미칠 파장은 엄청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전국 언론 중에서 유일하게 내 잡지 창간호에 이어 제2호에도 ‘낙선대상자명단’이 10여 면에 걸쳐 그 죄질까지 상세히 수록되어 있고,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부당함을 신랄하게 지적하였기에 한나라당 텃밭인 부산지역에서 발행된 잡지에 그런 기사가 실렸다며 그런 난리가 아니었다.
낙선대상자 대부분이 한나라당 현역의원들이었고, 노 대통령 탄핵 또한 한나라당에 의해 소추되었기 때문이다.
- 끝 -
(200자 원고지 20매 분량)
2004/10/11/1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