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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스크랩 (옥천기행) 옛 풍류의 길을 찾아 떠난 정유년 첫 나들이 옥천의 청풍정
현림 추천 0 조회 181 17.02.19 09:0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옥천기행)  옛 풍류의 길을 찾아 떠난 정유년 첫 나들이 옥천의 청풍정

 

매처학자(梅妻鶴子)라.. 풍류를 즐겼던 고고(孤高)한 옛 선비들.

매화를 처로 삼고 학을 자식으로 여긴다는 의미다. 그러나 어찌 그것만이 풍류이겠는가.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며 팔도를 소요했던 옛 조선의 풍류객들은 

소리가 끊어진 곳에 풍류(風流)가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충청남도 금산으로부터 북류하는 금강(錦江)이 이원천(伊院川건진천(乾榛川보청천(報靑川)과 합류하면서

감입곡류를 이루어 곳곳에 절벽을 이루면서 아름다운 경치를 나타내고 있는 충북 옥천,

오늘은 옛로부터 선비들이 풍류를 즐겼다는 그 옥천의 청풍정(淸風亭)을 찾아가는 정유년 첫 나들이다.


 

정월의 세 번째 일요일 아침, 차안의 계기판을 보니 영하 12도다.

산행하기는 날이 너무 추울 것 같아 첫코스로 잡았던 둔주봉 산행코스를 오후로 미루고

가볍게 차로 움직일 수 있는 청풍정으로 먼저 향했다.

청풍정 호반에 이르니 겨울 하늘이 마치 가을 하늘처럼 푸르다.

유유히 흘러가는 금강의 푸른 물결 위로 쏟아지는 아침 햇살이 유리알처럼 영롱하게 빛난다.

 


옥천 군북면에 위치한 청풍정은 금강이 굽이쳐 흐르는 호반에

조선후기 참봉 김종경이란 분이 세운 정자로 산수가 좋고 바람이 맑아

고려시대 때부터 선비들이 자주 찾던 곳이라고 전해진 곳이다.

이곳은 또한 조선말기 갑신정변의 주역이었던 김옥균이 정변이 실패로 돌아가자

이곳에서 명월이와 은둔생활을 했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곳이다.

지금의 정자는 1980년 대청호건설땜 공사로 수몰되었던 것을 1993년에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1884(고종 21) 김오균, 서재필, 박영호 등이 주축으로 한 개화당(開化黨)

대원군의 섭정으로 야기된 임오군란을 청국이 무력으로 진압하고

이어서 조선에 속방화정책을 펴자 이에 저항하여 조선의 완전 자주독립과 자주 근대화를 추구하여

1884124일 우정국 개업식 연회를 기화로 일으킨 정변 소위 갑신정변(甲申政變)이라 일컫는 정변이

삼일천하로 실패하자 개화당의 주역이었던 김옥균이 명월이라는 기생과 함께 이곳에 은둔차 내려와

이곳 청풍정에서 울분을 달래며 정치적 야망을 키우며 이곳에서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김옥균과 함께 소일하고 있던 세월이 일생에 영화를 누린 것 같이 행복했지만,

자기로 말미암아 선생이 품은 큰 뜻에 누를 끼칠까봐 몹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명월이는 절벽 아래 금강에 투신했다.

김옥균이 이 사실을 알고 애끓는 마음으로 명월이의 시체를 거두어 장사를 치룬 뒤

청풍정 아래 바위 절벽에 <명월암>이라는 글자를 새겨 남겼다고 한다.

지금의 청풍정 아래 기암에 암각되어진 <명월암>이 바로 이 바위라고 한다.


@옥천의 지형은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영향으로 500m 내외의 산지로 둘러싸여

전체적으로 옥천분지를 이루며, 곳곳에 구릉성 산지가 분포한다.

동부에는 팔음산(八音山762m)·천금산(千金山465m), 서부에는 환산(環山581m)·

용봉(龍峰437m)·망덕봉(望德峰420m),

남부에는 매봉·마니산(摩尼山640m)·월이산(551m),

북부에는 거멍산(494m)·덕대산(德垈山573m)·금적산(金積山652m) 등이 솟아 있다.

이들 산지 사이의 옥천읍·동이면·청산면·이원면 일대에는 산간분지가 발달했다.



금강이 군의 중부와 북부를 곡류하는데, 특히 이 군 일대에서 하천의 구배가 매우 크다.

그밖에 건천·서화천·월외천 등이 금강으로 유입한다.

금강 연안에는 평야가 거의 발달하지 못했으며, 경지는 주로 소하천 연안과 분지 내에 분포한다.



@옥천의 역사

고려시대에는 이 지역이 옥주(沃州)로 불리게 되는데, 이 시기에는 통일신라의 작은 항아리(小壺),

 큰 항아리(長胴甕), 편병(扁甁) 등의 토기문화를 그대로 계승 발전시키면서

청자(靑瓷)라는 새로운 자기문화를 꽃피운 곳이라 전하며

용암사(龍岩寺) 삼층석탑(三層石塔)과 마애불(磨崖佛),

두암리 삼층석탑 등 옛 삼국시대의 불교문화의 흔적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옥천향교(沃川鄕校), 청산향교(靑山鄕校)와 같은 관아건물(官衙建物)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의 유허(遺墟),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 유허(遺墟)를 비롯하여

창주서원묘정비(創洲書院廟庭碑), 이지당(二止堂), 양신정(養神亭), 사마소(司馬所)등과 같은

유학 관련 건조물들이 지금도 옥천지역에 많이 남아 있다.





옥천의 청풍정은 옛선비들의 풍류처라고 한다. 풍류라는 이 말은 언제 들어도 멋진 말이다.

바람 ()’자와 물흐를 ()’자가 합쳐져서 된 풍류라는 말은 단순한 바람과 물흐름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서 파악되어야 하는 자연이기 때문에 매우 복합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이다.

그래서 풍치가 있고 멋스럽게 노는 일또는 운치가 있는 일로 풀이한 사전이 있는가 하면,

 ‘아취(雅趣아담한 정취 또는 취미)가 있는 것

또는 ()된 것을 버리고 고상한 유희를 하는 것으로 풀이한 학자도 있다.





풍류란 말의 기원을 보면 풍류라는 말은 삼국사기진흥왕조에 화랑제도의 설치에 관한 기사 가운데 나온 말로서

최치원에 따르면 이 풍류도의 내용은 유불선 3교를 포함하는데, 그 실천 과목은 도의로써 몸을 닦고,

노래와 춤으로써 서로 즐기며, 명산대천을 찾아 노니는 것 등이라고 했다.

고려시대에는 음악과 노래에서 음악만 풍류를 가리키게 되었고

조선시대에는 자연과 친화하면서 풍치 있고 우아한 태도나 생활을 풍류라고 했다.




풍류를 풍속의 흐름으로 보아 문화와 같은 뜻으로 보는 이도 있고,

 풍월(風月)과 같은 뜻으로 보아 음풍농월(吟風弄月맑은 바람과 밝은 달에 대하여 시를 짓고 즐겁게 놂)하는

 시가(詩歌)와 관련짓기도 한다.


또한 풍류를 자연과 인생과 예술이 혼연일체가 된 삼매경에 대한 미적 표현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우리의 고유사상인 부루의 한자표기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 때 부루란 불···하늘을 가리키는 말로, 광명이세(光明理世)하는 하느님 신앙에서 나온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풍류란 자연을 가까이 하는 것, 멋이 있는 것, 음악을 아는 것,

예술에 대한 조예, 여유, 자유분방함, 즐거운 것 등 많은 뜻을 내포하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푸른 강과 어우러진 산, 그리고 밝은 햇빛과 맑은 바람이 이는 이곳 청풍정은 정말 풍류를 즐길만한 곳이다









청풍정에 올라

 

소리가 끊어진 곳에 풍류가 있다고 했던가.

흐르는 물소리 맑은 바람소리

흔들리며 춤추는 겨울나무들

이름도 아름다운 금강을 따라 청풍정에 오른다.

 

얼음녹인 겨울 햇살 물위에 비추니

유리알처럼 빛나는 금강의 물결

강변의 해묵은 갈대는 무희가 되어

강바람 타고 하늘하늘 춤을 추는구나

풍류를 즐기던 옛 시인묵객들도

이 곳에 올라 호로병 궤차고

산에 취하고 강물에 취하여

덩실덩실 춤추었겠지

 

강물은 유유히 산을 돌아가고

산은 물위에 앉아 고금의 소리를 내는 곳.

하늘 빛 물빛이 한데 어우러져

천년의 향기를 품은 청풍정이라네





청풍정


일반 정자에서 쉬이 볼 수 없는 아궁이까지 설치해 놓았다.










명월암이란 글이 새겨진 바위. 옛 것이 아니고 복원할 때 다시 새겨놓은 것 같다.


명월이가  이 바위 위에 올라가 강물에 투신했다는 이 바위의 형상이 묘하다.

마치 뚜꺼비같기도 하고, 물개 같기도 하다.







청풍정 앞에는  이런 바위가 놓여있다. 바위의 색감과 석질이 색다르다.


강변의 갈대도 정자와 어울려 풍류의 운치를 더한다.



청풍정(2)

 

짧은 인생 긴 하루

삶의 길 굽이굽이 돌아

세월에 지친 몸 이끌고

답 없는 길 찾아 가는 나그네여

 

천고의 세월 한결같이

강물은 산을 돌아 감싸고

청산은 물을 품고 보담은 곳

여기 청풍정에 올라 쉬었다 가게나

 

속진(俗塵)에 얼룩진 눈

푸른 하늘빛으로 닦아내고

시비증애에 찌던 마음

흐르는 강물에 헹구어

 

청풍정에 이는

솔바람 강바람에 말렸다 가게나

오늘도 어제같이 길 없는 길 찾아

삶의 길 걸어 가야할 나그네여

















청풍정 가는 언덕길목에 세워진 석포정이다. 청풍정을 갈때 처음에는 원두막같아서 생각없이 지나쳤는데

돌아나오면서 편액을 보니 석포정이다.

석포정주변은 나무로 가려서 제대로 금강의 풍광을 즐길 수 없었다.

2층 누각이었다면 훨씬 분위기가 돋보였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옥천의 청풍정은 구비구비 감도는 금강의 물줄기를 따라

산과 어우러진 뛰어난 풍광을 지녔지만 방문객이 뜸한 것을 보아

아직은 그리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것 같다.

옥천에서도 오지(奧地)에 속하여 교통이 불편한 점도 있지만

자연과 더불어 강변을 소요하면서 풍류의 옛 멋을 느낄수 있는 더없이 좋은 곳이 아닌가 사료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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