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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노래자랑 _ _ 유승엽
1989년 캐나다로 식구들을 데리고 이민을 가기위해 캐나다 대사관에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젊은 영사 와 통역관 그리고 제가 그 앞에서 인터뷰를 시작했는데. 그때 영사관이 저에 이력서를 보고 제가 낸 음반과 연극관련 서류를 본 다음에 질문을 했습니다. 한국에서 TV를 보니 전국노래자랑 이란 프로가 재미가 있더라 혹시 캐나다 에 가면 교포들을 위한 노래자랑 같은 공연을 할 의향이 있는냐...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캐나다를 가기위해서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바로 내가 그런 것을 하려고 이민을 가려고 한다. 그 결과 나는 높은 점수로 이민을 가게 되였습니다. 물론 캐나다에 간 다음에 그 약속은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여건도 되지 않았고 그럴만한 여력이 없었으니까요. 세월이 흘러 지금은 다시 국내로 들어와서 오카리나 만들고 강습을 하고 있습니다. 불후의 명곡 팀에서 전설작곡가로 출연 섭외를 받고 출연을 하게 된 것을 계기로 노래자랑 팀 에서 심사위원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옛날 같으면 나의 음악세계와 틀리다는 이유로 거절했겠지만 지금은 나이도 들고 또 호기심이 발동하여 출연제의를 승낙 하고 지금 몇 번째 심사위원으로 참여 하고 있습니다.
송해 선생님이 독보적인 존재로 활약하는 이 프로는 대한민국 대표 오락 프로입니다. 송해 선생님에게 인사를 드리니 무척 반가워하십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이 프로에 동참하는 의미를 가져야겠다고 생각이 듭니다. 약간 특이한 출연자들도 있지만 그래도 이 모든 것을 수용하는 이 프로는 마치 큰 가요의 용광로 같습니다. 가요의 모든 것을 가득 담고 펄펄 끓여서 다시 새로운 쇠 덩어리를 만들어내는 그런 용광로 말입니다.
이번 주에는 금천구에 있는 문일 고등학교에서 했는데 1980년 초에 처음 아파트를 장만하여 살던 곳이기에 반가웠습니다. 럭키 아파트라고 조그마한 아파트인데 지금도 있었습니다. 많은 출연자들 중에 연세가 지극하신분이 올라오셨는데 노래 솜씨가 예사롭지가 않았습니다. 통상적으로 연세가 드신 분이 노래를 잘하면 인기상이나 우수상 정도 예의로 드리는 게 이 프로의 관례인 모양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관례를 깨뜨리기로 하였습니다. 출연자가 첫 곡 을 "안동역" 을 부르고 두 번째 곡을 "창밖의 여자" 를 불렀는데 아주 특별한 가창력으로 노래를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프로에서는 별로본적이 없는 심사위원 기립 박수를 유도했습니다. 아마도 제작진이 놀랬을 겁니다. 그래서 결국 우승자로 이분을 선택 했습니다. 노래라는 것은 그야 말로 남녀노소, 즉 연령과 성별을 넘어서 모두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노래 "내 나이가 어때서" 처럼 말입니다.
74살 이라고 우승 못하라는 법이 없고 또한 더 나아가서 가수로 데뷰 를 못하라는 법이 없습니다. 프로가 끝나고 뒤편에 있는 데 이분이 인사를 오셨습니다. 따님하고 같이.. 이 근처에서 식당을 하신다고 하십니다. 언제 한번 가볼 작정입니다. 가능하면 이 프로에 가끔 참석하여 저 나름대로 분위기를 바꿔 보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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