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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고리예(Medugorje)의 성모
메주고리예는 1992년 3월2일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공화국 동쪽에 위치한
치트룩에 속한 여러 마을 중 하나이다. 본당을 구성하는
다섯 개의 마을(메주고리예, 비야코비치, 수르만치, 비오니카, 밀레띠나)중
메주고리예가 가장 큰 마을이기 때문에 본당도 이마을 이름을 딴 것이다.
메주고리예는 슬라브어에 기원을 둔 “산과 산사이의 장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이 지역은 해발 200m에 위치한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을 받는 곳으로
포도와 담배, 과일을 재배하였다.
이곳에는 약 4,000명의 크로아티아인들이 가톨릭 신앙공동체를 이루어 살고 있으며,
헤르체코비나의 프란치스코 수도회 회원들에 의하여 사목되어 지고 있다.
1981년 6월24일 성모님의 첫 발현이 있은 후 메주고리예 발현 24년동안
전 세계에서 4천만명의 순례자들과 더불어 각국의 많은 추기경과 주교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제와 수도자들이 순례를 왔었다.
그들은 메주고리예 순례를 하면서 자신들의 거룩한 성소에
희망과 믿음의 확신을 갖게 되었음을 체험을 통해 증언하고 있다.
또한 그동안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곳에서 자신들의 성소를 발견하고
기쁜 마음으로 하느님의 부르심에 사제와 수도자의 길을 가고 있다.
메주고리예는 그 곳을 다녀간 수천만명의 순례자들에게
늘 가고 싶은 믿음의 고향이 되었다.
오늘도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께서는
매일 저녁 (여름에는 6시10분, 겨울에는 5시40분) 발현하시어
“기도하여라, 너희들은 회개하고 하느님과 화해하여야 한다.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살아야 한다.”고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그리고 성모님을 찾아 먼 길을 떠나 온 자녀들에게 말씀하신다.
“나의 부름에 응답해주어 고맙다.”
지금도 메주고리예에서는
전 세계에서 오는 각국의 주교, 신부, 수도자와 수많은 순례자들이
매일 함께 저녁예절을 하며 기도하고 있다.
그것은 실로 메주고리예가 전 세계에 기도의 중심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메주고리예의 성모님 발현과 메시지
▶첫 날, 1981년 6월 24일 수요일
유고슬라비아의 중부 산악 지역에 자리한 메쥬고례는
아드리아해에서 자동차로 1시간 이상 달려야 도착하는,
크로아티아계 주민이 400여 가구 정도밖에 살지 않는 작은 마을이었다.
오후 5시경이었다. 이 마을뿐 아니라 온 세상을 놀라게 할,
더 나아가 어쩌면 인류의 운명이 달려있을지도 모를 엄청난 사건이
이 조그마한 산골 마을에서 일어났다.
마치 64년전 포르투갈의 이름없던 파티마에서 그랬던 것처럼.
16세의 Mirjana Dragicevic와 15세의 Ivanka Ivankovic는 절친한 친구 사이로
이반카의 집이 있는 Bijakovici를 나서서 포장되지 않은 길을 걷고 있었다.
이반카가 우연히 포드브르도 산의 언덕을 쳐다 보았을 때
그녀로부터 약 200미터 떨어진 곳의 땅 위에
떠있는 듯이 밝게 빛나는 형태의 여인을 보게 되었다.
"미르야나, 저기 보아! 성모님이셔!"
놀란 나머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이반카가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미르야나는 쳐다보지도 않으며 묵살하였다.
"웃기지 마. 성모님이 우리같은 사람들에게 왜 나타나시니?" 하며
집쪽으로 곧장 가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무척 흥분되었던 이반카는
분명히 자기가 무언가를 보았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13세의 Milka Palovic의 집에 다 왔을 때 밀카는 양들을 몰고 오고 있었다.
아직도 조금 전에 보았던 모습이 좀처럼 잊혀지지 않던 이반카는
두 사람에게 보았던 내용을 상기시키며
혹시 아직도 그 부인이 그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며 다시 가보자고 했다.
세 사람이 그곳에 다시 가보자
놀랍게도 앞서의 그 부인이 여전히 그곳에 서있는 것이 아닌가!
이번에는 세 사람 모두 볼 수 있었다.
또 다른 친구인 17세의 Vicka Ivankovic가 친구들을 찾으러 나서서
그녀들을 발견하곤 달려왔다.
세 사람이 비카에게 성모님을 보았다고 이야기를 하자
비카는 그녀들이 있을 법하지도 않은 일로 자기를 놀려댄다고 생각하며,
언덕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달아나 버렸다.
하지만 친구들의 이야기하는 태도가 너무 진지했으며 호기심도 발동하여
혹시나 하는 기분으로 다시 가보기로 하였다.
가는 길에 마침 길가에서 사과를 줍고 있던 16세의 Ivan Dragicevic와
20세의 Ivan Ivankovic를 만나서 이들과 같이 가게 되었다.
비카 일행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 나이 어린 이반은
언덕 위에 서있는 밝은 빛의 윤곽을 가진 여인의 놀라운 모습에 도망을 가버렸고
나이가 많은 이반은 함께 지켜 보았다.
이반은 나중에 그곳에서 뭔가 '매우 흰' 물체를 보았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비카는 다른 누구보다도 나타난 형태를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그 물체는 밝은 은빛 겉옷에 진한 밤색 머리, 하얀 얼굴을 한 여인이었다고 하였다.
동일 장소에서 같은 시각에 나타난 모습을 보고서도
뚜렷하게 볼 수 있었던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단지 흰 물체로만 인식했던 사람이 있었던 것도 첫날의 특징이었고
이는 향후 볼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구분의 시작이었다.
그 다음 날부터의 발현에선 나이가 많은 이반과 마리야의 누이인 밀카는
더 이상 발현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이번에 그들이 본 부인은 팔에 어린 아기를 안고 있었으며
그들을 향해 손짓을 하며 언덕 가까이 오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 두려워서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몇몇 어린이들은 울기 시작했으며
다른 어린이들은 기도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황혼이 질 때까지 그곳에 있었으며
이윽고 연한 안개가 깔리기 시작하였다.
집으로 돌아와서 그들이 본 사건을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하자
그들은 어른들로부터 핀잔과 꾸중만 들었으며,
부모들은 그들의 자식들이 엉뚱한 이야기로
동네 사람들로부터 놀림을 받을까 걱정이 태산이었다.
비카의 누이는 "아마 비행접시를 보았나 보지." 하며 놀려대었다.
▶2일째, 1981년 6월 25일 목요일
여느 날처럼 담배 농장에서 일을 마친 그들은
어제 발현을 목격했던 포드브르도에 가보고 싶은 느낌이 들었다.
이반카가 제안하길 일단 그곳으로 가보아서
혹시 다시 그 부인을 만나면 더없이 좋은 것이고
만약 만나지 못하면 어제 어른들로부터 야단도 맞았으니
더 이상 그런 일을 입 밖에 내지도 말자고 하였다.
모두들 그 의견에 동의하고 가보기로 하였다.
이반카, 미르야나, 비카와 이반이 포드브르도 산쪽으로 가는 길에
밀카를 데리고 가려고 밀카의 집에 갔지만
밀카는 그녀의 어머니가 더 이상 황당한 일에 밀카가 개입하는 것을 막고자
멀리 데리고 가버려서 집에 없었다.
집을 지키고 있던 마리야로부터 밀카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넷은 밀카 대신에 마리야에게 같이 가자고 종용하여
마리야가 그들과 같이 가게 되었고,
마침 집에 같이 있던 마리야의 조카 Jakov Colo도 데리고 가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앞으로 진행될 발현에 참여하게 되는
6명의 어린이들이 모두 발현 장소로 향하였다.
오후 6시경이었다.
이반카가 앞장을 섰고 미르야나와 비카가 그 뒤를 따라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갔다.
이날은 마을 사람들이 발현의 진위를 알아보고자 어린이들을 따라갔다.
이날도 발현을 처음 목격한 사람은 전날과 마찬가지로 이반카였다.
"저기 봐! 성모님이시다!" 이반카가 소리쳤다.
그들이 산 기슭의 길에서 산 쪽을 쳐다 보았을 때
발현한 물체는 어제보다 좀 더 윗쪽에 있었다.
포드브르도 산으로 가는 높은 언덕에서 발현한 물체가
그들을 향해 그쪽으로 오라며 손짓을 하였다.
그리고는 정말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날카로운 바위와 가시덤불로 뒤덮인, 언덕으로 올라가는 가파르고 험난한 길을
무서운 속도로 어린이들이 질주하며 올라갔던 것이다.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이 이들을 뒤쫓아가려고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이 순간을 비카는 다음과 같이 회상하였다.
"우리는 엄청나게 빨리 언덕으로 올라갔습니다.
땅 위를 걷는 것같지 않았습니다.
길을 내려다 보지도 않고 곧장 그분이 계신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마치 공중에서 우리를 잡아끄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불과 5분만에 올라 갔지요.
가시에 찔릴까봐 염려 했는데 나중에 살펴보니 전혀 상처가 없었더군요."
어린이들이 발현 장소에 도착하자 또 한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들은 순식간에 무릎을 꿇게 되었다.
야콥같은 경우는 내동댕이쳐지듯 가시 덤불에 무릎을 꿇게 되어,
크게 상처를 입었을까 걱정스러웠지만
나중에 보았을 때는 전혀 상처 하나 없었다.
비카등 4명은 발현을 어제 목격했었기 때문에
발현 장소에 처음 오게 된 마리야와 야콥에게 무언가가 보이는지 물어 보았다.
비카는 조금씩 또렷해지는 흰 물체를 볼 수 있다고 했으며
이윽고 다른 4명처럼 완전히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야콥도 성모님이 보인다고 소리쳤다.
6명이 목격한 발현자의 모습은 19세 정도의 젊은 여인이었으며
너무 아름다워서 지상에선 그보다도 더 아름다운 것은 없을 정도였다.
그 여인은 연한 푸른 색의 부드럽고 친절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이반카가 두달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근황이 궁금하여 여쭈어보자
성모님께선 이반카의 어머니는 천국에서 잘 지내고 있으니
더 이상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을 시켰다.
미르야나는 전날에 있었던 발현을 목격한 어린이들이
집과 마을에서 얼마나 곤란을 당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말하였다.
모두들 미친 아이 취급을 당하고 있으며
천상의 방문자께서 사람들을 확신시켜 줄
멋진 표징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하였다.
성모님께선 미소로만 답하였다.
어쨌든 어린이들은 마을 사람들을 설득할 좋은 표징은 얻은 셈이었다.
어린이들이 날카롭고 뾰족한 바위가 널려있고 가시덤불로 뒤덮인 험한 산길을,
그 길에 익숙한 어른들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무서운 속도로 달리고
바위와 덤불 위에 내팽개쳐지듯 무릎을 꿇렸어도 상처 하나 입지 않았으니
이를 본 마을 사람들에겐 충분한 표징이 되었을 것이다.
이날의 발현을 목격한 어린이들은 전날과 같이 두려워했지만
두 번째의 경험이기에 두려움은 덜했다.
우는 어린이도 있었지만 조그맣게 흐느꼈으며
기도도 조그마한 소리로 하였다.
미르야나의 할머니께선 천상의 방문자가
혹시 정말로 성모님이실지 모른다는 생각에
미르야나에게 하늘에서 온 방문자를 만나게 되면
그 앞에서 주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을 7번 하라고 신신당부하였었다.
이 기도는 성모님의 7가지의 슬픔을 표현하는 전통적인 기도였다.
어린이들이 이 기도를 바치기 시작하자
천상의 방문자는 어린이들과 같이 기도를 하였으되
성모송은 같이 하지 않고,
성모송은 천상의 방문자를 매우 기쁘게 하는 것이니
어린이들에게 계속하라고 하였다.
아마 자신에 대해 바치는 기도이기에
직접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이 되었다.
그리고 사도신경도 바치라고 하였다.
발현은 15분 가량 지속되었다.
발현이 끝날 때는 "주님의 평화안으로" 라는 인사말과 함께
공중으로 사라져버렸다.
이날의 발현 현상은 첫날과는 다른 특이한 현상을 보여주었다.
거의 대부분의 성모 발현의 역사에서 나타났던 발현 전의 밝은 섬광이
이날은 3번씩 나타났었다는 사실이다.
이 빛은 목격자들뿐만 아니라
포드브르도 산의 발현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과
우연히 그 산을 쳐다보았던 마을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또 다른 특이 현상은 둘째 날부터는 발현이
선택적인 사람들에게만 목격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일반 사람들은 물론 첫 발현을 보았던 밀카와 나이 많은 이반도
이날부터는 발현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또 전날 발현을 보았던 4명의 어린이들은 그렇지 않았지만
마리야와 야콥은 처음에는 불분명한 물체로 인식하다가
차츰 또렷하게 보였다고 하는 점이다.
발현 현상에 비상한 관심을 가졌던 어린이들과 이웃에 사는
Marinko Ivankovici는 너무 늦게 오는 바람에
산에서 내려 오는 어린이들을 맞이하는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온 이반카는 할머니를 만나자마자
울면서 돌아가신 어머니가 하늘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성모님으로부터 들었다고 전했다.
계속 흐느끼는 이반카를 달래며
마린코는 어린이들이 이야기하는 내용들로 보아
단순히 어린이들이 지어내거나 장난삼아 하는 사건이 아닌,
매우 범상하지 못한 종교적 문제라 판단하고
신부에게 알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어린이들의 보호자가 마땅히 없었기 때문에 마린코는 처음부터
이 특이한 현상에 어린이들의 보호자로서 자임하고 나섰다.
목격자들인 6명중 4명의 어린이들이
부모가 집에 없거나 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반카의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멀리 독일로 일자리를 구하러 떠나 있었다.
비카의 아버지도 마찬가지로 독일에서 일하고 있었으며
야콥의 아버지는 보스니아에서 일하고 있었기에
거의 집에 오지 않았다.
미르야나의 경우엔 방학 중에 할머니의 집에 머무르고 있었으므로
부모님은 멀리 사라예보에 있었다.
이러한 사정으로 어린이들은 마린코를 정신적 보호자로 여기며 의지했고,
마린코 역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를 꼼꼼히 기록으로 남겨 놓아
후에 발현의 신빙성을 규명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게 되었다.
이날 Jozo Zovko신부는 자그레브에 있었고
보좌 신부인 Zrinko Cuvalo신부가 교회에 있었기에
마린코는 이틀에 걸쳐 일어난,
앞으로 큰 파장을 몰고 올지도 모를 사건에 대해
즈린코 신부에게 상세히 보고하였다.
이야기를 듣고 즈린코신부는 섣부른 결론을 유보하였다.
집이나 마을에선 여전히 그들을 놀려댔지만 어제보다는 훨씬 덜하였다.
하루가 더 지나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발현 현장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어느 누구도 해낼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한 어린이들을 보고서
주민들은 이들 어린이들이
정신병자도 아니며 거짓 사실을 만들고 있지 않다는 것과
그에 따라 이해할 수 없는 신비 현상이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시작하였다.
성모님 메시지
1981년 6월 유고슬라비아(현재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의 메쥬고리예의
작은 산골 마을에서 6명의 청소년들에게 성모님께서 발현하셨다.
발현 초기 때부터 거룩한 동정 마리아께서는 이들을 통하여 발현하시어,
우리들에게 말씀하시고 계신다.
이반카 이반코비치(Ivanka Ivankovic/1966년 출생)는
열가지의 마지막 비밀을 모두 받은 1985년 5월 7일까지
매일의 발현을 목격하고 끝내면서,
그의 일생동안 매년 한 번씩 6월 25일 발현 기념일에
성모님께서 발현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마리야나 드라기체비치(Mirjana Dragicevic/1965년 출생)는
열가지의 마지막 비밀을 받은 1982년 12월 25일까지
매일의 발현이 있었으며
발현이 끝남과 동시에 성모님께서
그녀의 생일인 3월 18일에 매년 발현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1987년 8월 2일부터 매달 2일
성모님의 목소리를 듣거나 그분의 모습이 보여
그분과 함께 믿지 않는 이들을 기도하고 있다.
비치카 이반코비치 (Vicka Ivankovic/1964년 출생)는
지금도 성모님께서 매일 그녀에게 발현하시고 있다.
마리아 파블로비치(Marija Pavlovic/1965년 출생)는
매일 발현이 지속되고 있으며
매달 25일 성모님께서 전 세계의 신자와 본당의 신자들을 위한
메시지를 그녀에게 주고 계신다.
이반 드리기체비치(Ivan Dragicevic/1965년 출생)도
매일의 발현이 지속되고 있다.
아콥 촐로 (Jakov Colo/ 1971년 출생)는
1988년 9월 18일 성모님께서는
열 번째 마지막 메시지를 주시면서 매일의 발현을 끝내셨고,
그의 일생동안 매년 12월 25일 발현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1) 메주고리예 성 야고보 성당
( St.James Catholic Church)
메쥬고리예의 성 야고보 성당은 1892년 설립되어
순례자들의 주보성인이신 야고보 성인에게 봉헌되어
지금까지 본당 주보성인으로 모시고 있다.
성 야고보 성당은 5년 뒤인 1897년에 완공될 수 있었다.
이 성당은 비교적 크고 아름다운 성당이었지만 지반이 약했던 이유로
점차 내려앉기 시작했기 때문에 제2 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재 공사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이 새로운 성전은 1969년 1월 19일 봉헌되게 된다.
이 성당은 주위 신자들 사이에도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고 있다가
1981년 여름 성모님의 발현 뒤에 메쥬고리예의 성야고보 성당은
세상의 수백만 신자들이 함께 기도하는 장소가 되었다.
사람들은 개별적으로 메쥬고리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고 확신을 얻기 위해 오기 시작했으며
이곳을 방문하면서 신앙과 기도, 회개와 단식의 필요성을 말씀하시는
성모님의 메시지를 통하여 세상의 구원과 평화를 위한 시대임을 알게 되었다.
(2) 메주고리예 발현산 ( Appariton Hill)
발현산은 뽀르바르도 마을을 감싸고 있는 크리니카산 위에
성모님의 발현의 초기 장소로 여겨지는 곳이 있다.
가파른 돌길 언덕 위에 있는 성모님의 첫 번째 발현장소에 도달하면
언덕 중간쯤 예수님 없는 십자가가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1981년 발현 세 번째 날인 6월 26일 발현 장소에서 다른 발현 증인들과는 달리
먼저 언덕 아래로 내려가고 있던 발현 증인인
마리아 파블로비치에게 발현하신 장소이다.
이 장소에서 마리아는 같은 날 성모님을 다시 뵙게 되는데,
그 당시 성모님의 모습은 슬픔에 잠겨있었고
그분의 어깨 너머에는 십자가가 보여지고 있었다.
성모님께서는 손을 펼치시며 "평화, 평화, 평화, 오직 평화!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사이에 평화가 가득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장소는 오늘날 많은 순례자들이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평화를 필요로 하고 있는 인간과 오늘의 인류를 향한
메쥬고리예의 메시지를 묵상하고 기도하는 장소이다.
(3) 메주고리예 크리자밧산 (Mt.Krizevac)
메주고리예의 성 야고보 성당에서 약 1 km 정도 떨어진 곳에
크리자밧 산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산은 크리니카 산이 길게 연결되어 모퉁이를 만드는 산이다.
정상(해발 520m)에는 본당 사제와 신자들이 함께 8.25m의 시멘트 십자가를 세웠는데,
십자가에는 "우리들의 신앙과 사랑, 희망의 표시로써
예수님의 수난 기념 1900년을 기념하며
인류의 구원자이신 예수그리스도께 바침"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양 십자가 팔이 교차하는 부분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달리셨던 십자가의 조각 일부(보목)가 삽입되어 있다.
대부분의 예수님의 십자가는
로마의 "예루살렘은 성 십자가의 성당"에 보관되어 있으며
그 십자가의 일부분이 크리자밧 산의 십자가에 삽입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그 분의 수난기념 1900년을 기념하는 특별한 기회에 가능 했다.
메주고리예에 대한 교황청의 공식 입장
1) 바티칸 대변인, 요아퀸 나바로-발스 (Joaquin Navarro-Valls) 박사는
1996년 8월 21일 바티칸의 가톨릭 신문지상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여러분들은 사람들이 메주고리예에 가서는 안 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가서는 안 된다는 발표를 하지 않았으니,
원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가도 상관이 없습니다.”
이를 발표한 그날 뒤늦게 다시 바티칸 신문지는! 추가로 발표하기를:
“천주교 신자들이 어디에 갈 때에는 그들은 영적 지도와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평신도들이 마련한 메주고리예 순례단체를
사제들이 동반하는 것을 금하지 않는다.”
나바로-발스 박사는,
“그 후 메주고리예에 대한 바티칸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고 언급하였으며,
“교회나 바티칸이 메주고리예 방문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 한 적이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런 적이 없다”고 명백히 밝혔다.
(가톨릭 신문지, CNS New Release 1996/8/21 발표)
그리고 메주고리예에 관한 바티칸의 입장은 다음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나있다.
2) 1998년 1월 1일 프랑스 세인트-데니스 교구장 길버트 오브리(Gilbert Aubry) 몬시뇰이
교황청 신앙교리성 비서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Tarcisio Bertone) 대주교
(라찡거 Ratzinger 추기경 회장)에게
서신으로 메주고리예에 관한 문의사항들을 보냈는데
이에 대해 1998년 5월 26일
바티칸의 신앙교리성이 보낸 응답 전문을 아래에 소개한다.
(이 문서는 공식 계통을 통하여 프랑스의 전 주교에게 전달되었음)
이 서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모스타 주교님의 성명서는 단지 그분의 개인 의사를 반영하고 있을 뿐,
우리의 동의와 순명을 요구하는 공식적이,명확한 판단은 아니다.
(2) 자다선언문은 장래 발현에 관한 조사필요성을 남겨놓고 있으며,
그 동안 사제들이 신자들의 순례를 동반하는 것에 대해서는 허락을 한다.
(3) 사실상 그 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주교회의가
새로운 조사 위원회를 사라예보에서 구성했다.
(4) 모든 순례자들은 메주고리예로 가도 좋으며
이는 교회에 대한 완전한 순명으로 받아드려지고 있다.
Medjugorje - The Shrine of Our Lady (Bosnia and Herzegov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