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부,
실옹가 버럭 성을 내며 호령하되,
"네가 나의 형세 유족함을 듣고 재물을 탈취코자 집안으로 당돌히 들었으니 내 어찌 그저 두랴! 깡쇠야, 이 놈을 잡아내라."
노복들이 얼이 빠져 이도 보고 저도 보고, 이리 보고 저리 보나 이옹 저옹이 같은지라, 두 옹이 아옹다옹 맞다투니 그 옹이 그 옹이요, 백운심처 깊은 곳에 처사 찾기는 쉬울망정, 백주당상 이 방 안에 우리 댁 좌수님 찾을 가망 전혀 없어, 입 다물고 말 없더니, 안채로 들어가서 마님께 아뢰기를,
"일이 났소, 일이 났소! 아씨님 일이 났소! 우리 댁 좌수님이 둘이 되었으니 보던 중 처음입니다. 집안에 이런 변이 세상에 또 있겠습니까?"
마님이 이 말 듣고 대경실색하는 말이,
"애고 애고, 이게 웬말이냐? 좌수님이 중만 보면 당장에 묶어 놓고 악한 형벌 마구 하여 불도를 업신여기며, 팔십당년 늙은 모친 박대한 죄 어찌 없을까보냐? 땅 신령이 발동하고 부처님이 도술부려 하늘이 내리신 죄, 인력으로 어찌하리?"
마나님은 춘단 어미를 불러들여 분부하되,
"바삐 나가 네가 진위를 가려 보라."
춘단 어미가 사랑채로 바삐 나가, 문 틈을 열고 기웃기웃 엿보는데, '네가 옹가냐? 내가 옹가다!' 하고 서로 고집하여 호령 호령하니 말투와 몸놀림이 똑같은데, 이목구비도 두 좌수가 흡사하니, 춘단 어미 기가 막혀 하는 말이,
"'뉘라서 까마귀 암수를 알아보리요?' 하더니, 뉘라서 어찌 두 좌수의 진위를 가리리요?"
춘단 어미 허겁지겁 안으로 들어서며,
"마님 마님! 두 좌수님 모두가 흡사하와, 소비는 전혀 알아볼 수 없사옵니다."
마나님이 생각난 듯 하는 말이,
"우리집 좌수님은 새로이 좌수 되어 도포를 성급히 다루다가 불똥이 떨어져서 안자락이 탔으므로, 구멍이 나 있으니, 그것을 찾아보면 진위를 가릴지라, 다시 나가 알아오라."
춘단 어미 다시 나와 사랑문을 열어젖히면서,
"알아볼 일 있사오니 도포를 보사이다. 안자락에 불똥 구멍 있나이다."
실옹가가 나앉으며 도포 자락 펼쳐 뵈니, 구멍이 또렷하니 우리댁 좌수님이 분명하것다. 허옹가도 뒤따라 나 앉으며,
"예라 이 년! 요망하다, 가소롭다! 남산 위에 봉화 들 때 종각 인경 뗑뗑 치고, 사대문을 활짝 열 때 순라군이 제격이라, 그만 표는 나도 있다."
허옹가가 앞자락을 펼쳐 뵈니 그도 또한 뚜렷하것다. 알 길이 전혀 없는지라, 답답한 춘단 어미 안으로 들어서며 마님 불어 아뢰기를,
"애고 이게 웬 변일꼬? 불구멍이 두 좌수께 다 있으니 소비는 전혀 알 수 없소이다. 마님께서 몸소 나가 보옵소서."
마나님 이 말 듣고 낯빛이 흐려지며 탄식하되,
"우리 둘이 만났을 제 '여필종부 본을 받아 서사에 지는 해를 긴 노를 잡아매고 길이 영화 누리면서 살아서 이별 말고 죽어도 한날 죽자.' 이렇듯이 천지에 맹세하고 일월도 보았거늘, 뜻밖에 변이 나니 꿈인가 생시인가? 이 일이 웬일일꼬? 도덕 높은 공부자도 *양호의 화액을 입었다가 도로 놓여 성인 되셨으매, 자고로 성인들도 한때 곤액 있거니와, 이런 괴변 또 있을꼬? 내 행실 가지기를 송백같이 굳었거늘, 두 낭군을 어찌 새삼 섬기리요?"
이렇듯 탄식할 제 며늘아기 여쭈기를,
"집안에 변을 보매 체모가 아니 서니 이 몸이 밝히오리다."
사랑방문 퍼뜩 열고 들어가니, 허옹가 나앉으며 이르기를,
"아가 아가, 게 앉아 자세히 들어 보라. 창원 땅 마산포서 너의 신행하여 올 제, 십여 필마 바리로 온갖 기물 실어 두고 내가 후행으로 따라올 제. 상사마 한 놈이 암말 보고 날뛰다가 뒤뚱거려 실은 것을 파삭파삭 결딴내어, 놋동이는 한복판이 뚫어져서 못 쓰게 되었기로 벽장에 넣었거늘, 이도 또한 헛말이냐? 너의 시아비는 바로 내로다!"
기가 막힌 실옹가도 앞으로 나앉더니,
"애고 저놈 보게. 내가 할말 제가 하니, 애고 애고 이 일을 어찌하리? 새아기야, 내 얼굴을 자세히 보라! 네 시아비는 내 아니냐?"
며느리가 공손히 여쭈기를,
"우리 아버님은 머리 위로 금이 있고, 금 가운데 흰머리가 있사오니 이 표를 보사이다."
실옹가가 얼른 나앉으며 머리 풀고 표를 뵈니, 골통이 차돌 같아 송곳으로 찔러 본들 물 한점 피 한방울 아니나겠더라. 허옹가도 나앉으며 요술부려 그 흰털 뽑아 내어 제 머리에 붙인지라, 실옹가의 표적은 없어지고 허옹가의 표적이 분명하것다.
"며느리야! 내 머리를 자세히 보라." 하니, 며늘아기 살펴보고,
"틀림없는 우리 시아버님이오."
실옹가는 복통할 노릇이라, 주먹으로 가슴치고 머리를 지끈지끈 두드리며,
"애고 애고, 허옹가는 아비삼고 실옹가를 구박하니, 기막혀 나 죽겠네! 내 마음에 맺힌 설움 누구보고 하소연하랴?"
종놈들 거동 보니, 남문 밖 사정으로 걸음을 재촉하여 서방님을 찾아간다.
"가사이다, 가사이다. 서방님 어서 바삐 가사이다! 일이 났소, 변이 났소. 우리 댁 좌수님이 두 분이 되어 있소."
서방님이 이 말 듣고, 화살전통 걸어멘 채 천방지축 집에 와서 사랑으로 들어가니, 허옹가가 태연자약 나앉으며 탄식하되,
"애고 애고, 저 놈 보게, 내가 할 말 제가 하네."
아들놈의 거동 보니, 맥맥상간 살펴보나 이도 같고 저도 같아알 길이 전혀 없어 어리둥절 서 있것다. 허옹가가 나앉으며 실옹가의 아들 불러 재촉하여 이르기를,
"너의 모께 알아보게 좀 나오라 하여다고! 이렇듯이 가변 중에 내외할 것 전혀 없다!"
하니, 실옹가 아들놈이 안으로 들어가서,
"어머님 어머님, 사랑방에 괴변 나서 아버님이 둘이오니, 어서 나가 자세히 살펴보소서."
내외도 불구하고 마나님이 사랑에 썩 나서니, 허옹가가 실옹가의 아내보고 앞질러 하는 말이,
"여보 임자! 내 말을 자세히 들어 봐요. 우리 둘이 첫날밤 신방으로 들었을 때, 내가 먼저 옹품하자 하였더니 언짢은 기색으로 임자가 돌아앉기로, 내 다시 타이르며 좋은 말로 임자를 호릴 적에 '이같이 좋은 밤은 백년에 한번 있을 뿐인지라 어찌 서로 허송하랴?'하지 그제서야 임자가 순응하여 서로 동품하였으니, 그런 일을 더듬어서 진위를 분별하소."
실옹가의 아내가 굽이굽이 생각하니, 과연 그 말이 맞은지라, 허옹가를 지아비라 일컬으니, 실옹가는 복장을 쾅쾅 치나 눈에서 불이 날 뿐 어찌할 수 없으렷다.
실옹가 아내 측은하여 하는 말이,
"두 분이 똑같으니, 소첩인들 어이 아오? 애통하오, 애통하오!"
안으로 들어가도 마음이 아니 놓여 팔자 한탄 소란하다.
"애고 애고 내 팔자야! 여필종부 옛말대로 한 낭군 모셨거늘, 이제 와 이도 같고 저도 같은 두 낭군이 웬 변인고? 전생에 무슨 득죄하였기로 이년의 드센 팔자 이렇듯 애통할꼬? 애고 애고 내 팔자야!"
이럴 즈음 구불촌 김별감이 문 밖에 찾아와서,
"옹좌수 게 있는가?"
하니, 허옹가가 썩 나서며,
"그게 뉘신가? 허허 이거 김별감 아닌가. 달포를 못 보았는데, 그 새 댁내 무고한가? 나는 요새 집안에 변괴 있어 편치도 못하다네. 어디서 온 누구인지 말투와 몸놀림에 형용도 흡사하여, 나와 같은 자 들어와서 옹좌수라 일컬으며, 나의 재물 빼앗고자 몹쓸 비계 부리면서 낸 체하고 가산을 분별하니 이런 변이 어디 또 있을는고? '그의 아내는 알지 못하되 그의벗은 알지로다'하였으니, 자네 나를 모를까보냐? 나와 자네는 지기상통하는 터수, 우리 뜻을 명명백백 분별하여 저 놈을 쫓아 주게."
실옹가는 이 말 듣고 가슴을 꽝꽝 치며 호령하기를,
"애고 애고 저놈 보게! 제가 낸 체 천연히 들어 앉아 좋은 말로 저렇듯 늘어놓네! 이 놈 죽일 놈아, 네가 옹가냐 내가 옹가제!"
이렇듯이 두 옹가 아옹다옹 다툴 적에, 김별감은 이리 보고 저리 보고 어이없어 하는 말이,
"양옹이 옹옹하니 이옹이 저옹 같고 저옹이 이옹 같아 양오이 흡사하니 분별치 못하겠네! 사실이 이럴진대 관가에 바삐 가서 송사나 하여 보게."
양옹이 이 말을 옳게 여겨, 서로 잡고 관정에 달려가서 송사를 아뢰었다. 사또가 나앉으며 양옹을 살피건대, 얼굴도 흡사하고 의복도 같은 고로 형방에게 분부하되,
"저 두 놈 옷을 벗겨 가려 보라."
하니, 형방이 썩 나서며 양옹을 발가벗기었다.
차돌 같은 대갈통이 같거니와, 가슴, 팔뚝, 다리, 발이 모두 같고 불알마저 흡사하니, 그 진위를 뉘라서 가리리요.
실옹가가 먼저 아뢰기를,
자유인산악회/한문희총대장
흥미진진 제3부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