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희방사 / 호랑이의 불심
경북 영주 희방사 전경
호랑이의 불심
두운 스님이 수행하는 동굴로 겨울밤에 호랑이가 찾아 들어
앞발을 들고 고개를 저으며 무엇인가를 호소하였다.
살펴보니 목에 여인의 비녀가 꽂혀 있었으므로 뽑아주었다.
그 뒤의 어느 날 소리가 나서 문을 열어보니
어여쁜 처녀가 호랑이 옆에 정신을 잃고 있었다.
처녀를 정성껏 간호하고 원기를 회복시킨 다음 사연을 물으니,
그녀는 계림(鷄林)의 호장(戶長) 유석(留石)의 무남독녀로서,
그날 혼인을 치르고 신방에 들려고 하는데 별안간 불이 번쩍 하더니
몸이 공중에 떴고, 그 뒤 정신을 잃었다고 하였다.
두운은 굴속에 싸리나무 울타리를 만들어 따로 거처하며
겨울을 넘긴 뒤 처녀를 집으로 데리고 갔다.
뭐, 뭐 뭐라고….
유호장과 유호장 부인은 버선발로 뛰어나오며 딸을 반긴다.
어느 날 밤, 소리 없이 증발한 딸이 스님과 함께 남장을 하고
무사히 돌아왔으니 의아하면서도
마치 죽은 자식이 다시 살아 돌아온 듯 기쁘기 짝이 없었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자.』
유호장 부인은
스님은 안중에도 없는 듯 딸을 앞세워 안으로 들어갔다.
딸로부터 자초지종 사연을 들은 유호장 내외는
그제 서야 스님께 합장하고 큰절로 예를 올려 감사했다.
『스님! 스님의 크신 은혜 평생 동안 갚은들 어찌 다할 수 있겠습니까.
말로 헤아릴 수 없는 스님의 은혜에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코자
소인 가진 것은 많지 않으나 스님 토굴 옆에 공부하시는데
불편이 없도록 암자를 하나 창건토록 하겠습니다.』
『불도를 닦는 소승 그런 과한 인사받기 몹시 송구합니다.
이 모든 것이 부처님의 가피일 뿐입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두운 스님은 그저 할일을 했을 뿐이라는 듯
눈을 지그시 내려 감고 굵은 염주를 굴릴 뿐
어디 하나 기쁜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
유호장은 그날 저녁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온 마을 사람들과 딸의 귀가를 축하하며 기쁨을 나눴다.
그 후 유호장은 사재를 들여 멀리 소백산 중턱에 암자를 세웠다.
정상의 3분의 2 지점이나 되는 높은 곳에서
어려운 대작 불사가 완성되자 유호장 내외는 딸과 함께
새로 건립된 절을 찾아 두운 스님을 뵈었다.
『스님, 이곳은 저의 가문에 기쁜 소식을 전해 준 방위이므로
절 이름을 「희방사」라 하면 어떠하올는지요?』
『그거 좋은 생각이군요. 그렇게 합시다.』
두운 스님은 절 이름을 희방사라 명했으니 때는 선덕여왕 12년(643)이었다.
그 후 처녀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던
폭포 이름도 희방 폭포라 불리우게 됐다.
길이 28m로서 물줄기가 두어 번 중간에서 물보라를 일으키며 떨어져
장엄을 이루는 이 폭포는 내륙지방에선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더욱 유명하다.
소백산 최고봉인 연화봉(1439m)가는 길목 해발 830m 지점에 있다.
[출처] (부처님 찾아 떠나는 여행) | 작성자 아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