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달산에서 보는 목포시가와 <목포의 눈물> 기념비
점심 때가 훨씬 지나 목포에 도착했습니다.
소쇄원에서 다시 담양 쪽으로 나와 광주 쪽으로 가야 했는데, 네비를 잘못 읽어 계속 동쪽으로 가다가 되돌아 나왔기 때문입니다.
북항에 도착하여 횟집에서 산낙지 송송 썰고, 세발낙지 나무젓가락에 돌돌 감아 기름장에 찍어 입맛 돋운 다음,
점심 먹을 집을 찾아 나섰습니다.
언젠가 TV에서 본 "싸고 맛 있는 식당"을 물어물어 찾아갔지만, 앞서 정탐을 하러 그 식당에 들어갔다 나온 아내의 표정은
'몹씨 흐림" 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동부시장 옆 보리밥집에 들어가 6,000원짜리 밥을 시켰습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아내는 순 목포식 반찬과 잡곡밥에 칭찬을 거듭해 가며 한 그릇 맛 나게 먹었고, 나는 밥값이 싸서 좋았습니다.^^^
연근조림에 들어간 정성을 알아채고 , 갓김치 같은데 용케 다른 이름을 찾아내는 아내, 목포에서 태어난 덕이라고 보았습니다.
사공의 뱃 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아씨 아롱 젖은 옷 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음 <목포의 눈물> - 노래 이난영
'삼학도'는 매립 중이라서 땅 위에서는 '세 마리 학처럼 생긴 섬"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높이 228m 유달산에 세워진 <목포의 눈물 > 기념비는 빛을 잃었습니다.
밥을 든든히 먹고 올라서인지 정상에서 바라다보이는 목포시가와 멀리 다도해가 저녁 햇빛을 받아 아름답게 빛났습니다.
바다와 섬과 배들이 어울려 한 폭의 수채화가 눈 아래 펼쳐졌습니다.
* 비치스파랜드 * 갓바위공원 앞에서,
잠은 북항 옆 <비치스파랜드>, 찜질방에서 잤습니다. 2인 15,000원. 담양보다 3,000원 비쌉니다.^^^
찜질방은 종류가 다양하고 헬스장까지 있는데 역시 사람은 스무 명이 넘을까, 덕분에 운동장 같은 방에서 잘 잤습니다.
* 진도대교 전망대에서, * 첨찰산 밑 쌍계사에서,
9월 11일 금요일 아침 7시,
목포역 옆에 있는 어판장에 가서 목포칼치를 사려고 했으나 현금이 모자라 포기, '눈물을 머금고' 진도로 향했습니다.
진도는 시 쓰는 내 친구 김상렬이의 고향이라 친근감이 몇 배 더 드는 고장입니다.
영산강 하구언둑을 지나 진도대교를 건너자 전망대부터 올라갔습니다. 저 아래 최초의 사장교 484m의 진도대교와, 물살 거센 울돌목,
다도해의 섬들이 낮게 앉아 나에게 상견례를 올립니다. ^^^ 충무공 동상도 옆 모습을 보이며 서 있습니다.
라면과 커피 한 잔 끓여 먹고 운림산방을 향해 갑니다.
이곳 저곳 공사가 한창이고, 새로 깐 아스팔트길이 잇달아 나타나 진도의 전성시대가 곧 다가온다는 인상을 강하게 줍니다.
* 운림산방의 전시실과 연못과 집 앞에서,
쌍계사부터 들러 부처님께 문안을 올리고 곧 운림산방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소치(小痴) - 미산(米山) - 남농(南農) - 임전(林田) 등 4대에 걸쳐 전통 남화를 이어준 한국 남화(南畵)의 본거지.
스승 추사가 세상을 뜨자 허소치는 쌍계사 남쪽에 '구름이 숲을 이룬다."는 뜻의 운림산방을 짓고 서화를 그렸습니다.
지금도 남화의 맥을 잇는 화가들의 그림이 상설 전시되고,
소치가 심었다는 목백일홍의 꽃도 붉고, 소치가 가까이 한 연못의 흰 수련도 너무 고와 사진 한 장 그림 그리듯 찍었습니다.
* 대흥사 법당 앞의 기도소리와 반야심경 법어가 절 안에 간절하고 엄숙하게 울렸습니다.
해남 대흥사 법당 앞에 섰을 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때마침 기도 드리러 온 신자들로 법당 안팎은 물론 양 옆 절집 처마 밑에도 꽉 메웠습니다.
바야흐로 수능시험이 코 앞에 닥치고, 합격을 비는 수험생 부모 신자들이 많으리라 짐작이 갑니다.
신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반야심경에는 소원의 간절함이 배어 있어 내리는 빗 속에서 장엄하게 울려 퍼집니다.
카메라 앞에 선 아내도 합장을 올리는 모습을 취합니다.
선운사에서 아내가 간절하게 말했습니다. " 내가 죽어 다시 태어난다면 스님이 될 꺼야."
여러 번 들었던 말입니다. 아마 나는 내세(來世)에 비구니한테 장가 갈 것 같습니다. ^^^
* 가고 싶어도 더 이상 갈수 없는 한반도의 남쪽 끝에 서 있기에 사람들의 마음 속에 감동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해남 땅끝마을에 서면 이 땅에 사는 사람으로서 남쪽 끝에 온 것 같아, 조금 과장하면 '가슴이 벅찹니다.'^^^
가고 싶어도 더 이상 갈수 없는 끝.. 굳이 "땅끝마을'이란 글자가 증언하는 바위 앞에 서서 사진을 찍는 이유가 성립합니다.
해발 122m 사자봉에 서 있는 땅끝전망대 앞에서, 태평양까지 이어진 남해바다와 그 위에 한가로이 떠있는 작은 섬들을 봅니다.
왼쪽으로 보이는 해안이 아프리카의 희망봉과 너무 비슷해 한참 동안 바라보았습니다.
전망대 9층에 올라갔지만, 유리를 통해 보는 바다와 섬들은 숨이 막혀 답답해서 얼른 다시 전망대를 내려왔습니다.
해남 출신 김봉호가 시를 썼습니다.
태초에 땅이 생성되었고 인류가 발생하였으며 한겨례를 이루어 국토를 그은 다음 국가를 세웠으니,
맨위가 백두이며 맨 아래가 이 사자봉이다.
우리 조상들이 이름하여 땅끝 또는 토말이라 하였고 북위 34도 17분 38초이며 대한민국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갈두리이다.
동포여, 여기서서 저 넓은 대자연을 굽어보며 조국의 무궁을 노래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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