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2장은 '그러므로'로 시작이 됩니다.
왜냐하면 1장의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1장 1-2절은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통로에 대한 말씀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전에는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셨지만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반드시 아들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아직도 옛적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여러 가지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쫓아 갈 수밖에 있습니다.
현재 아담 안에 있는 인간들이 있고 율법을 받았으나 원가지가 잘린 상태의 유대인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후에도 그 은혜만 아는 초보가 있고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를 향해 나아가 그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아들들이 있습니다.
히1장 3절부터 13절까지는 아들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아들이
천사들보다 얼마나 우월한지에 대해 설명합니다. 아름다운 이름 곧 아들이란
이름을 받았기 때문이며, 다만 천사는 구원과 심판의 사역자로 사용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음을 받은 만물은 옷과 같이 낡아지고, 갈아입는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영영토록 자존하는 분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면 우리도 자가 발전을 하게 됩니다. 생명의 동력을 일으키는 발전기인 예수그리스도를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기능과 역할을 파악하기까지는 기도와 인내가 필요합니다.
히1장13-14절에는 천사와 그리스도의 위치를 말씀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보좌에 앉으셨지만 천사는 그 분을 찬양하고,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를
위하여 섬기는 자리임을 밝혀줍니다. 아들은 보좌 위에, 천사는 섬김의 자리에 있습니다.
그래서 아들이신 그리스도가 천사보다 존귀한 것 같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면 구원 얻을 후사요 상속받을 후사이기 때문에 천사보다 존귀합니다.
2장 1절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 우리가 어떤 반응을 할 것인가? 더욱 간절히 받아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옆으로 새어 버릴까 염려가 된다고 하십니다.
지금도 약속의 강물은 계속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나니’(계1:3)하는 지킨다는 말씀은 순종의 개념이 아니고
Keeper의 개념입니다. 그래서 ‘나의 개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 이 관점이 확실하게 되는데 까지는
새 언약으로 말미암아 옛 언약의 낡아지고 쇠하여 없어져야 합니다(히8:13)
우리가 지켜야 할 그 계명이 무엇인지 알려면 요한복음 14장16절부터
잘 읽어봐야 합니다. 주 예수께서 ‘내가 아버지께 가서 다른 보혜사를 보낼 것이다.
그 보혜사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고, 너희도 그 안에 거하게 된다.
그 날에는 내가 너희 속에 거하며, 너희와 함께 거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아니하고 다시 와서 그때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을 것을 너희가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아버지 안에서 하나가 될 것이다’하시고는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하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거기서 주의 계명이란 말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의
영으로 우리 안에 계신다는 약속입니다. 새로운 법입니다. 이걸 지키라는 겁니다.
이를 지키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임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나타나십니다.
나타나신다는 것은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 안에서 빛과 생명으로 나타내 주신다는 겁니다.
임마누엘의 주님은 언제나 우리 안에 자신을 드러내길 기뻐하십니다.
지킨다는 말을 순종이란 개념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순종이란
그 발아래서 듣는다는 의미입니다. 그 명령을 곧 약속을 가만히 들으면
성령으로 이루어 놓으신 그 역사를 따라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를 바울은 믿어 순종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롬1:5)
많은 사람들이 마5-7장을 문자 그대로 순종해 보려고 노력을 합니다.
순종할 수 없는 자신을 알지도 못하고, 순종이란 사전적인 의미만 좇아 말씀을
순종해 보려고 무척 노력을 많이 합니다. 안 되는 걸 고집스럽게 계속 시도합니다.
그러나 한 시라도 빨리 안 되는 자신을 발견하고 항복해야 합니다.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자와 같다’(마7:24)하시는데
이 말씀은 먼저 주님의 말씀을 잘 들어보란 뜻입니다. 주의 말씀을 잘 듣는 것이
반석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자가 되는 길이라는 뜻입니다. 반석위에 집을 짓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 위에 신앙의 집을 짓는 자들입니다.
주님은 ‘나는 나의 뜻을 행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는 내 스스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본 것을 말 한다’고
하시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한 번도 스스로 말씀하신 적이나 행하신 적도 없습니다.
모든 일을 안에서 역사하시는 아버지로 말미암아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잘 들으면 그와 같은 비밀의 원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듣고 행한다는 말씀이 무엇인지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겁니다. 말씀을 행하는 것은 들은 다음입니다.
로마서도 보면 1장부터 11장까지는 원리입니다. 관계입니다. 그래서 듣습니다.
12장부터는 적용이며 행함입니다. 에베소서도 1장부터는 3장까지는 관계입니다.
듣고 난 다음부터는 교훈 곧 행함입니다. 히브리서도 1장부터 10장까지는 원리와
관계입니다. 11장은 믿음이고 , 12장은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징계가 오고,
그리고 13장은 이렇게 살아라 하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에 중요한 요소는 주님과의 관계와 원리 문제부터 생각하는 일입니다.
성경 속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은 요15장입니다. 요한복음15장만큼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표현된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농부요 예수 그리스도는
포도나무입니다. 우리는 그 가지입니다. 반드시 말씀을 듣고 들어 원리가 이루어지면
나무에 붙은 가지는 열매가 저절로 맺힙니다.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쁨으로 인해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그게 바로 사랑에 연결이 되어 점점 발전되어 가는 원리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요 친구가 되면 그렇게 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친구가 되므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사이의 영적원리입니다.
이 원리를 설명하기 위하여 바로 로마서가 필요한 겁니다. 따라서 로마서적인
구원이 필수불가결인 겁니다. 로마서를 이어받아 히브리서가 하나님과 관계를 이루는
진리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신약에서 4권을 연구하면 거의 다 됩니다.
마5-7장의 ‘천국시민의 대 헌장, 천국시민의 절대윤리입니다.
그 다음엔 마태복음 22-25장입니다. 마22장은 하나님의 백성, 23장은 사탄의 자녀,
24장은 세상의 심판. 25장은 교회의 심판 그리고 요한복음, 로마서, 히브리서를
알면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와 행함의 원리를 깨닫게 됩니다.
이 원리만 파악하면 그 다음부터 말씀을 행한다는 것은 너무 쉽습니다.
왜냐하면 ‘내 안에서 역사하는 이로 말미암아 모든 일을 할 수 있기’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어떻게 드렸을까? 의문을 갖습니다.
사실 아브라함은 결코 드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삭이 누구에게로 왔습니까?
아버지께로 왔습니다. 그래서 이 이삭은 희한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실제는 아브라함의 자식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식인데 믿음으로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에 대한 믿음의 확신이 없는 그리스도인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받은 이삭에게는 항상 이런 딱지가 붙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으로서는 '내가 가지고는 있으나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하나님이 내 놓으라 하면 드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아브라함이 최초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된 겁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질이든 건강이든지, 시간이든지 하나님께
드리는 훈련이 반복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하나님이
보장하실 수 있도록 하려면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내가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것입니다.
신기한 메커니즘입니다. 그때부터 나는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산다는 고백이 나옵니다. 이삭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내어 놓으라 하시면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삭이
아브라함의 것이라면 드릴 수 없습니다. 그걸 하나님이 시험해 보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준 것을 알고 있느냐? 모르고 있느냐? 이렇게 나오시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릴 때 하나님이 ‘네가 나를 경외함을 이제 알겠노라’
(창22;12)하시고 그때부터 마음껏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지만
아브라함과 같은 신앙의 여정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믿어 복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모리아 산의 시험과 같은 믿음의 시험 앞에 언제
설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죽기 전에 꼭 한번 설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주 받은 이 땅에서 난 것은 절대로 안 받으십니다.
가인이 곡식을 하나님께 드렸지만 하나님이 가인과 그 제사를 열납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저주받은 땅에서 나는 것은 절대로 받지 않습니다.
위에서부터 온 것만 다시 받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만 다시 받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사와 찬양도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그리스도 안에서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절대로 땅에서 난 것은 받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제대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복을 받는 삶을 살려면 우리에게
있는 것을 돌보아 달라고 하나님께 이것만은 지켜주세요 애원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것을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그걸 감사와 찬양의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점차 확대되어 참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사는 자신임을
알게 될 날이 곧 오게 될 겁니다. 따라서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말씀하시는
계명이 겨자씨처럼 작게 임했지만 귀중하게 생각하고 그 계명을 간절한 마음으로
지키면 씨가 형체가 되고 형체가 영광이 되어 갑니다. 따라서 소쿠리에 물이 새듯
흘러 떠내려가도록 등한히 여기지 말고 우리는 이 계명을 굳게 붙잡아야 하는 겁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