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주차
구성, 쌓고 엮고 연결하자
1. 다단 구성
일단 구성은 간명한 표현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는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단 구성의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의 고전 정형시인 하이쿠입니다. 하이쿠는 5-7-5, 모두 17자를 정형으로 하고, 그 안에 제작 당시의 계절을 나타내는 단어인 계절어를 넣어야 하며, 구의 단락에 쓰는 조사나 조동사로 한 구의 완결을 짓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¹⁵⁷⁾ 대상을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표현하는 묘미가 대단합니다. 어떤 시들은 지나친 비약으로 매우 선적인 냄새를 풍기기도 합니다.
꽃잎 하나가 떨어지네. 어, 다시 올라가네. 나비였네
-모리다케
꽃잎 하나가 소똥 위에 떨어져 있다. 마치 불꽃처럼
-부손
도둑이 들창에 걸린 달을 두고 갔다
-료칸
뻐꾸기가 밖에서 부르지만 똥 누느라 나갈 수 없다
-소세키
위 시에서 모리다케와 부손의 시는 언어감각을 통해 회화적 수법을 사용하고 있고, 료칸과 소세키의 엉뚱한 발상은 다분히 선적 냄새를 풍깁니다. 일본의 이런 정형시형을 참조하여 박희진은 시를 일단 구성으로 창작하기도 했습니다.
밖은 흰 눈꽃 방안은 황장미꽃 안팎이 훈훈
-박희진, 「십칠자시초」 전문
2단 구성은 처음과 끝, 문제 제기와 해결로 구성되는 형식입니다. 자연의 낮과 밤, 음과 양, 해와 달, 사고의 옳고 그름, 사물의 크고 작음의 원리를 생각하면 쉬울 것입니다. 한시에서 외형상 대구법도 2단 구성의 원리입니다. 주제의 명료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시에서도 상황의 대비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시의 사례로 정현종의 「섬」을 들 수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정현종, 「섬」 전문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는 하나의 의미와 그 섬에 가고 싶다는 또다른 의미가 한 편의 시를 구성합니다. 섬이 갖는 의미는 다중적입니다. 섬은 어떤 상징입니다. 서로 넘지 못하는 벽일 수도 있고, 어떤 이상세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둘째 행에서 "가고 싶다”는 소망을 통해 긍정적인 장소일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합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전문
위 시는 자신을 모두 다 태우고 길거리에 버려지는 연탄의 속성을 통해 그러지 못하는 인간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연탄재를 함부로 차지 말라는 하나의 문장과 너는 무엇 무엇한 사람이었느냐는 또 하나의 문장이 한 편의 시로 구성됩니다. 자신도 다 태우지 못하는 주제에 자신을 전부 태운 연탄재를 함부로 차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연탄과 사람을 대비하고 있습니다.
또한 '너' 시점으로 시를 쓰고 있습니다. '너' 시점으로 쓰이는 이인칭 시점은 청자중심으로 말하기입니다. 너(너희), 자네, 당신, 댁, 老兄, 어른, 그대, 여러분, 貴兄, 귀하 등은 청자에 대용될 수 있는 인칭대명사입니다. '너'는 나이 젊은 사람들 사이나 또는 연장자가 나이 젊은 청자에게 말할 때 쓰이는데 청자의 수가 둘 또는 그 이상일 때는 복수형태 '너희'로 바뀝니다. 복수형태 '너희'는 앞의 '우리'와 같이 단수적인 상황에서도 쓰일 수 있습니다. '당신'은 문장에서 상대방을 높일 때 많이 쓰이고 일상 담화에서는 부부 사이에 흔히 사용됩니다.'그대'는 시 작품에서 '너'보다 좀 높인 뜻으로 쓰이며 연인들의 편지에서도 많이 나타납니다.¹⁵⁸⁾
이인칭 시점은 청자인 너를 지향하는 경우에 해당됩니다. 이를테면 명령, 권고, 요청, 갈망, 호소 등의 어조를 띱니다. 참여시나 목적시에 이러한 유형을 채용합니다.¹⁵⁹⁾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는 '너'를 시점으로 쓴 대표적인 시입니다.
이 시에서 시적 화자, 즉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직접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걸 숨어 있는 화자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청자, 즉 시인이 말하는 것을 듣는 사람은 '너'라고 뚜렷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는 청자중심으로 말하기가 되는 것입니다.
시적 화자는 시 속에서 목소리의 주인공을 말합니다. 시인이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설정한 허구적 대리인인 것입니다. '서정적 자아' '시의 화자' '시적 자아'라고도 합니다.
또 시적 대상이란 시 속의 화자가 바라보는 구체적인 사물 또는 청자, 시의 소재나 제재가 되는 관념이나 사물을 가리킵니다. 위 시에서 시적 대상은 '연탄재’입니다. 그러나 연탄재는 연탄재 자체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하찮게 생각하지만 자신의 몸을 불살라 다른 사람을 데워주는 희생적인 사랑을 대신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화자의 어조는 어떻습니까? 직설적인 명령어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청자인 '너'에게 직접 명령을 하고 있지요. 이 시를 읽는 독자들은 하찮게 생각했던 것에 대한 강한 인상과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시적 어조는 시적 화자가 시적 대상이나 독자에게 취하는 언어적 태도나 말투를 가리킵니다.
3단 구성은 처음- 중간-끝의 형식으로 구성되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생명은 탄생 - 성장 - 소멸이라는 3분의 우주적 원리를 갖습니-다. 하루도 아침 - 정오 - 저녁으로 구분하며, 동물들은 머리-몸-꼬리로 구분합니다. 시 작품도 이러한 우주적 질서를 모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통 논문 구성도 서론 본론 결론의 형식을 취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대화법과 변증법에서는 정(테제)-반(안티테제)-합(진테제)의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완결된 문학작품으로 시작-중간-결말의 분배를 역설하였습니다. 이러한 사고의 관습 때문에 창작자들 역시 3단 구성이 가장 완전한 시적 구성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 고유의 단형 정형시인 시조는 3장 6구로 이루어진 3단 구성의 대표적인 시 형식입니다. 본래 시조는 단가라고 하여 고려가요나 경기체가 등 장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형식의 노래를 의미했습니다. 조운의 시조 한 편을 보겠습니다.
사람이 몇 생(生)이나 닦아야 물이 되며 몇 겁(法)이나 전화(轉化)해야 금강에 물이 되나! 금강에 물이 되나!
샘도 강(江)도 바다도 말고 옥류(玉流) 수렴(水簾) 진주담(眞珠潭)과 만폭동(萬瀑洞) 다 고만 두고 구름 비 눈과 서리 비로봉 새벽안개 풀끝에 이슬 되어 구슬구슬 맺혔다가 연주팔담(連珠潭) 함께 흘러
구룡연(九龍淵 천척절애(千尺絶崖)에 한번 굴러 보느냐,
-조운, 「구룡폭포」 전문
당대 최고의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는 이 시조는 사설시조입니다. 반복과 열거, 점층법을 통해 율격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1장에서는 '몇 생' '몇 겁' 등 열거와 점층, 반복을 하고 있습니다. 2장에서도 이러한 수사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3장에서는 결국 높은 절벽에서 굴러보겠느냐고 하며 마무리를 합니다. 서정주의 「문둥이」(『시인부락』, 1936. 11) 역시 3단 구성을 하고 있습니다.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서정주, 「 문둥이」 전문
일찍이 동양의 작시법에서는 기, 승, 전, 결의 구성법을 규칙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4단 구성은 모든 생명체의 온전한 일생입니다. 3단 구성의 발전된 형태로 보는 4단 구성의 기(起)는 시상을 일으키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승(承)은 기를 이어받아 정황을 더 세부적인 묘사를 통해 전개시키며, 전(轉)은 지금까지 흐름의 분위기를 바꾸어 주는 역할을 합니다. 결(結)은 마무리인데 주제를 명료하게 해서 결론을 내리거나 여운을 남도록 처리합니다.
이지엽은 필자의 시 「소주병을 일으키고, 나아가고, 전환시키고, 결론을 내리는 고답적인 4단 구성의 모범 사례로 들고 있습니다. ¹⁶⁰⁾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 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 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공광규, 「소주병」 전문
이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입니다. 전은 전환을 시키되 180도 회전을 시키면서 되도록 먼 곳에서 시상을 끌어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절묘하게 나머지 연들과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독자들은 여기서 긴장을 느끼게 됩니다.
1연의 술병, 2연의 빈 병, 4연의 소주병은 유사관계로 엮어지며 시인의 의도가 점진적으로 어디를 향하는지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3연은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로 표면적으로 보자면 이것들과 관련이 없습니다. 4연을 읽어 내려갈 때야 그 소리가 빈 소주병의 소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파장은 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1연의 "속을 비워가는 것과, 2연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니는" 것이 아버지의 모습이라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시에 분명한 변화와 주제의식의 선명성, 여운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효과적인 4단 구성 장치를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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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한국문학평론가협회 편, 「문학비평용어사전 · 하」, 국학자료원, 2006, 1,106쪽 참조.
158) 남기심, 고영근, 「표준국어문법론』, 탑출판사, 1985, 77~79쪽 참조.
159) 이지엽, 378쪽 참조.
160) 이지엽, 407-409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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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광규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
2024. 11. 24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