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0.
불멍
입동이 지났다. 일교차가 크다. 최저기온은 10℃ 내외이고 최고는 20℃ 전후를 유지하고 있다. 구례의 하루는 짙은 안개로 시작하지만, 맑은 날씨로 늦가을을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지리산은 어마어마하게 큰 산이기에 가을 단풍 정도는 어느 계곡이라도 후회하지는 않는다. 예전보다는 못하지만 노랗고 붉은 단풍이 피아골을 중심으로 봐줄 만하다.
날씨가 쌀쌀해지니 새로운 재미가 생겼다. 처음은 아니다. 10월 중순 비 오는 그날, 교육생 중에서 뜻을 같이하는 일부가 지리산 호수공원 오토캠핑장에 텐트 한 동을 설치했다. 늦은 밤까지 고기를 굽고 술을 나누어 마셨다. 연이틀 참나무를 태우며 보낸 즐거움은 젊은 시절 한때로 돌아간 듯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장작을 태우는 일은 굉장히 재미있다. 넋 놓고 불구경하는 것을 ‘불멍’이라고 한다. 불멍하는 동안 무념무상(無念無想)에 빠져든다. 기온은 차고 장작불의 열기는 화끈거린다. 얼굴로 전해오는 온기에 빨려들 것만 같다. 시월의 마지막 밤을 아쉬워하며 미송을 태웠다. 참나무와 다르게 미송은 불꽃이 튄다. 탁탁 소리를 내며 튀는 숯덩어리는 옷을 태우기도 하고 야영용 의자에 작은 구멍을 내기도 한다.
장작이 남았으니 또 불을 피웠다. 알루미늄 포일로 고구마와 감자를 감싸서 구웠다. 군고구마가 되고 군감자가 되어 호호 불어가며 먹는 재미 또한 대단하다. 늦은 밤이지만 어묵 한 꼬치를 집어 들었다. 푹 익은 어묵은 먹어 보면 알겠지만, 엄청 환상적이다. 늦게 배운 짓이 무섭다더니만 장작을 태우고 불멍에 빠지는 일은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좋다. 11월 8일은 남은 미송을 모두 태웠다. 장작이 없어져 아쉽다. 가슴이 구멍이 뻥 뚫린 듯하다.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을까. 이틀 만에 또 굴참나무를 태우고 있다. 식자재마트에서 두 자루를 12,000원으로 구매했다는 우리의 리더는 “날마다 축제처럼 보내자. 우리는 소풍처럼 살아야 해.”라며 삶의 등댓불을 밝힌다. 그 등대를 보고 방향을 정해야 하니 망설여진다.
지금은 불멍 중이다. 아무런 생각이 없다. 그냥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불꽃이 잦아들면 나무껍질이 두꺼운 굴참나무 장작 하나를 더 올린다. 또 잦아들면 그러기를 반복한다. 활활 타올랐던 장작은 붉은 열기를 가득 품고서 무너지고 쓰러져 숯이 된다. 흔적도 없는 재가 되기 위해 마지막 열기까지 모두 발산하며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간다. 그렇게 굴참나무 장작을 모두 태웠다.
마음은 평안해지고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눈은 더 밝아지고 무릎 연골은 비대하게 살이 찌는 듯한 기분이다. 이 기분의 실체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