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다메이아
리디아에서 그리스로 건너온 펠롭스는 피사의 공주 '히포다메이아'와 결혼하기 위해서 목숨을 건 오이노마오스의 '사윗감 공개경쟁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결혼하기 위해서 구혼자들이 목숨을 거는 이유는 폭력과 전쟁의 신 아레스의 아들인 피사(올림피아)의 왕 오이노마오스가 히포다메이아와 결혼하려면 자신과의 전차경기에서 이겨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내걸었는데, 여기에는 장차 딸(히포다메이아)이 결혼하면 사위에게 죽게 된다는 신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딸더러 '평생 시집가지 말고 혼자 살다 죽거라'할 수도 없고,'애야, 네가 결혼하면 사위에게 내가 죽는다'고 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죽음의 전차경기를 벌여놓고 딸의 결혼을 가능한 한 미루다가, 사윗감이 될 만한 모든 청년을 죽여버릴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그러다가 딸이 늙으면 아무도 딸을 달라고 나서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그때는 자신도 이 세상에 없으니 아무 상관없다고 말이다. 너는 명색이 공주인데 너를 데려가는 자는 늙은 나를 이길 수 있는 영웅이어야 한다고 우기면 그만이었다.
그때 포세이돈의 총애를 받고 있었던 펠롭스가 히포다메이아와 결혼하기 위해서 목숨을 담보로 하는 전차경기에 도전하게 되었는데, 소위 그리스의 전차는 「벤허」라는 영화에서 유대인 출신 로마 호민관 메살라가 타고 경기에 참가한 전차를 말한다. 바퀴 양쪽에 무엇이든지 걸려들기만 하면 싹쓸이 식으로 부셔버리는 무시무시한 톱날바퀴 말이다.
당시 오이노마오스가 내건 경기규정은 구혼자, 즉 도전자가 자기가 원하는 히포다메이아를 태우고 먼저 달리면 오이노마오스가 그 뒤를 추격하여 창으로 찔러 죽이는 방식이었는데, 도중에 죽지 않고 피사에서 코린토스까지 약 144Km를 완주하면 승리한 것으로 간주하고 딸과 결혼시키겠다고 내걸었다(그림: 히포다메이아를 전차에 태우고 경기에 임한 펠롭스).
마침 펠롭스에게는 포세이돈이 선물한 날개가 달린 말 두 마리가 있었으나 오이노마오스도 만만치 않았다. 그 역시 아버지 아레스가 준 말과 갑옷과 투구가 있었다. 그래서 도전자들을 먼저 출발시키고도 여유 있게 따라잡아 구혼자들의 등을 창으로 찔러 쓰러뜨릴 수 있었다.
그래서 펠롭스는 오이마오스의 전차를 관리하는 뮈르틸로스를 매수하였다. 펠롭스는 그에게 만약 주인 오이노마오스의 전차 몸체와 바퀴 사이의 이음새의 고정장치 빗장을 밀랍으로 된 새 것과 바꿔 끼워 놓는다면 일이 성사된 후에 히포다메이아와 하룻밤을 보내도록 해주고 왕국의 절반을 떼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쉽게 말하면 자동차 타이어의 볼트를 다 풀어놓으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일설에 따르면 펠롭스를 사랑한 히포다메이아가 스스로 뮈르틸로스에게 그런 제의를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실이 어디에 있던 결국 펠롭스의 승리로 전차경기가 끝나는데, 오이마오스가 아레스에게 제물을 바치고 있는 동안 전차에 히포다메이아를 태우고 먼저 출발하였다.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그 뒤를 오이노마오스가 추격하기 위해서 기세 등등하게 전차에 뛰어 올랐는데, 아풀싸! 전차의 바퀴가 빠지는 바람에 '쿵'하고 나가 떨어졌다.
이미 오이노마오스의 전차 관리인 뮈르틸로스를 매수했던 터라 미리 짐작하고 있었던 펠롭스가 일부러 전력질주를 하지 않고 천천히 달리고 있었는데, 오이노마오스가 땅에 나가 떨어진 것으로 보고 쏜살같이 덤벼들더니 오이노마오스의 등을 창으로 내질렀다. 죽어 가는 오이노마오스는 옆에서 자신을 비웃고 있는 시종 뮈르틸로스의 표정을 보고 그가 일부러 꾸민 계략이었음을 알고 그도 역시 펠롭스에게 죽을 것이라고 저주하였다.
히포다메이아를 얻고 피사의 왕이 된 펠롭스는 '어째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눈치하는 뮈르틸로스의 얼굴만 보면 밤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였다. 빌려줄 것이 따로 있지, 어떻게 이제 막 결혼한 새색시를 빌려준다는 말인가! 후세에 두고두고 여성단체에서 들고일어날 비난의 대상이었다.
하루는 눈치를 주는 뮈르틸로스에게 포세이돈이 자신에게 선물한 날개 달린 말들이 끄는 전차를 타고 같이 드라이브라도 하자고 제안하였다. 뮈르틸로스는 '뭔가 중대한 결심을 하고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서겠지'하면서 별 의심 없이 따라 나섰다. 펠롭스는 천마에 채찍을 가하면서 하늘을 질주하던 전차를 갑자기 급정거시키면서 전차의 난간을 꼭 붙들었다. 안전벨트도 매지 않고 옆에 타고 있었던 뮈르틸로스는 바깥으로 튕겨져 나가 새파란 바닷물 속으로 빠져 익사하였는데, 그 역시 오이노마오스와 마찬가지로 펠롭스와 그의 후손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어디 네가 잘먹고 잘사나 보자'하고 말이다(그림: 자신의 전차에 뮈르틸로스를 태운 펠롭스).
펠롭스는 뮈르틸로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서 올림피아 경기장에 뮈르틸로스를 찬양하는 기념비를 세웠다. 뮈르틸로스는 원래 헤르메스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를 진정시키지 않고서는 안되겠다는 판단을 했는지 자신의 영토 전역에 걸쳐서 대대적인 헤르메스 숭배를 장려하였다.
펠로폰네소스의 패자
피사(올림피아)의 왕 펠롭스는 강력한 통치기반으로 엘리스 전 지역과 아르카디아 지방 등과 여러 다른 지역을 자신의 영향권에 편입시켰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발칸반도에 속하는 그리스 남부 전 지역을 펠롭스의 이름을 따서 '펠로폰네소스'라고 하였는데, 펠롭스에게는 후손이 많았다. 그 가운데에는 나중에 에피다우로스·시큐온·트로이젠 등의 조상이 된 아들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가장 유명한 아들들은 아틀레우스와 튀에스테스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뮈르틸로스의 저주는 이 두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졌는데 그 사건의 전말은 대강 이렇다.
펠롭스는 본처인 히포다메이아 이외에 어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님프 사이에서 '크뤼시포스'라고 하는 아들을 얻었다. 크뤼시포스는 어렸을 때부터 아름다운 용모를 가졌으며 커감에 따라 그에 비례해서 훌륭한 미남청년으로 성장하였다. 아무래도 나이를 먹어 얻은 아들에 그 용모 또한 출중하니 그야말로 눈에 집어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귀여워했다. 그런데 이것을 곱게 바라보지 않는 시선이 있었는데, 그게 누굴까? 누군 누구야! 본처 히포다메이아와 그녀 소생의 지식들이지.....
히포다메이아와 그녀의 아들들은 크뤼시포스를 시기하고 호시탐탐 제거해버릴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마침 그때 펠롭스의 궁전에 오이디푸스의 아버지, 즉 라이오스가 몸을 의지하고 있었다. 라이오스도 역시 크리쉬포스의 용모에 반하여 은혜를 저버리고 그를 테바이로 유괴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그의 아버지 펠롭스가 결사적으로 아들을 구출하였으나 어머니의 사주를 받은 히포다메이아의 두 아들 아틀레우스와 튀에스테스에게 살해되고 말았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펠롭스가 왕위를 넘겨줄 정도로 편애했기 때문이라는데, 펠롭스는 자기가 무척이나 아꼈던 아들 크리쉬포스가 히포다메이아의 소생의 아들들에게 무참하게 살해되었다는 사실과 그 사건의 배후에는 자기 아내 히포다메이아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몹시 격노하여 피를 흘린 데에 대한 책임을 그녀에게 묻고자 하였으나, 그녀는 이미 미데아로 도주한 후였다.
펠롭스는 헤라클레스의 할아버지이다. 물론 신화에서는 제우스와 알크메네의 아들이라고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펠롭스의 죽음에 대한 기사는 존재하지 않지만 일설에 의하면 그는 자손인 헤라클레스에 의해 세워진 올림피아에 있는 어느 신전의 경내에 모셔지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참고로 많은 그리스 사람들은 펠롭스가 올림피아 경기를 창시했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신화적으로는 제우스에 의해서 시작된 것이라 전해지고 있지만 펠롭스가 그리스 전역에서 차지하고 있었던 위상을 미루어 짐작할 때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기록에 의하면 경기는 엘리스 평원인 올림피아에서 열렸으며 그리스 각지에서 많은 관람객들이 몰려들었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시칠리아로부터도 경기를 관전하러 왔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