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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산꾼 강바람.. 섬진강 걷기(광양시) : 섬진진에서 광덕포까지..
언제 : 임인년(22년) 하늘연달 10월 하루(금요무박) 흙날
누구랑 : 다음수도권 산악회 호남정맥 산우님들..
아딜 : 섬진진 ~ 하동 송림공원 ~ 하모니철교 ~ 돈탁숲 ~ 선소지 ~ 광덕포 ~ 광덕산
희망의 시작은 언제나 끝에서 다시 시작됨을.. 호남정맥을 마치면서..
흐르는 것은 강물만이 아니라 산줄기도 함께 흘러왔음을 우리는 호남정맥이란 큰 산줄기를 걸으면서 알았다.
거의 모든 구간을 고개에서 시작하여 다시 산 고개에서 끝나다 보니 섬진강은커녕 물 구경도 하기 힘들었던 현실..
이렇게 먼발치에서나마 종착점에 다가선 앞선 구간에서야 강줄기를 만나면서 함께 흘러 왔음을 느끼게 되고..
이 섬진강 550리 길을 긴 시간 밤낮을 잊고 이어오며 걷다 보니 아무리 자연을 벗 삼아 걷는다 해도
사람 일이라 분명 산줄기에 남겨진 때론 묻고 푼 차마 입을 열 수 없었을 서운함도 있었을 것이고
코로나라는 희대의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의 안부를 걱정했던 기억들로 오랜 세월 만나지 못했던 사연들..
이런 어려움이 있었기에 기쁨은 배가 되었고 오랫동안 서로 잊지 못할 기억 속에 남겨질 일만 남았다는 생각..
이젠 호남정맥길에 남겨진 모든 희노애락을 섬진강물에 묻고 흘러보내
모든 것을 받아주어 바다가 됐다는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섬진강을 마지막으로 받아준 광양만 앞바다에 넘기려 합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7차에 걸쳐 달려와 이제 종착역이란 이름으로 잠시 가는 길은 멈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와 함께 달려온 섬진강물을 받아준 광양만 앞바다가 새로운 시작을 알렸기에
마지막 순간이 끝남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첫걸음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바다는 강물의 끝이 있어야 시작됩니다.
희망의 시작은 언제나 끝에서 다시 시작됨을 얘기하려는 듯..
수월정 ~ 섬진교 다음지도, 아래 지도는 국제신문 제공..
모래가 많아 다사강으로 불리던 강이름이 고려말 섬진강으로 바뀐 유래와 섬진진터가 있었다는 수월정을 출발하여
화개장터 못지 않은 동.서 화합의 장이 되고 있는 섬진교를 건너 잠시 하동8경 중의 하나인 '하동포구 백사청송'의 하동 송림공원을 지나
경전선이 복선화 되면서 단선이던 철로가 출렁다리로 다시 태어난 '알프스 하모니 철교'를 건너 계속 광양시 한강을 걷다
모든 물류를 강에 기댔던 시절 배를 만들었던 곳으로 이용했던 선소리에 남겨진 선소지와 윤동주의 흔적들을 답사하고
윤동주의 유고 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가 새상에 빛울 보개해 준 국가등록문화재인 정병옥 가옥이 있는 망덕포에 마치게 된다.
03:55분 호남정맥팀과 토끼재에서 이별하고 차량으로 섬진진이 있었다는 수월정으로 간다..
04:26분 차량으로 수월정에 도착.. 두꺼비와 처녀의 전설이 전하는 조형물과 뒤로 수월정이 보이고..
가운데 수월정과 좌 수월정 유허비와 그리고 우측으로 석비좌대와 섬진강 유래비가 자리하고 있다..
수월정水月亭과 수월정유허비(水月亭遺墟碑)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 135
다압면 섬진마을 섬진강변에 있는 수월정(水月亭)은 광양출신으로 조선 선조 때 나주목사를 지냈던 정설(鄭渫)이 만년을 보냈던 곳으로 송강(松江) 정철(鄭澈)은 수월정기(水月亭記)를 써 이 곳의 멋진 풍경과 아름다움을 노래헀다. 수월정 유허비는 정설이 부친인 정옥천의 유업을 추모하기 위해 송강 정철에게 수월정유허비(水月亭遺墟碑)란 비명을 받아 비를 세웠는데 정옥천유허비라고도 한다.
자료 : 광양시청 여행정보 > 광양 명품 > 수월정, 수월정유허비 (gwangyang.go.kr)
섬진진터에 자리하고 있는 광양다압섬진진터석비좌대 (光陽 多鴨 蟾津鎭址 石碑座臺)
광양다압섬진진터석비좌대 (光陽 多鴨 蟾津鎭址 石碑座臺)
다압이 강 건너 하동으로 연결되는 군사요충지였음을 고려하면 좌대에 세워진 석비는 수군 별장(別將)들의 공적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예전에는 17기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4기만 남아 있다. 돌로 된 두꺼비 모양 좌대는 길이 125~148cm, 높이 51~58cm이고, 등에는 비신을 올려놓을 수 있다록 홈이 파여 있다.
좌대를 두꺼비 모양으로 만든 배경은 고려 우왕 때 섬진강 하구로 왜구들이 침입해오자 두꺼비 수십만 마리가 나타나 떼로 울부짖어 달아나게 했다는 이야기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두꺼비 나루'를 뜻하는 '섬진'이라는 이름도 그때 생겼다고 한다.
자료 : 광양시청 관광명소 > 문화유산 > 도지정 문화재 (gwangyang.go.kr)
바로 옆에 섬진강 유래비..
섬진강 유래비 1999년 조성
“고려 말에 왜구들의 노략질이 극심하였는데 한 번은 왜구들이 강 하구로 부터 침입해 오자 진상면 섬거에 살던 두꺼비 수 십만 마리가 섬진나루터로 몰려와 울부짖자 왜구들이 놀라 물러갔다. 또 한 번은 강 동편에서 왜구들에 쫒기운 우리 병사들이 섬진나루 건너편에서 꼼짝없이 붙들리게 되었는데 두꺼비 떼들이 강물 위로 떠올라 다리를 놓아 우리 병사들을 건네주었다. 뒤쫒아 온 왜구들도 두꺼비 등을 타고 강을 건너던 중 강 한 가운데에 이르러 두꺼비들이 그대로 강물 속으로 들어가 버려 왜구들이 모두 빠져죽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부터 다사강, 모래내, 두치강 등으로 불리우던 이 강을 두꺼비 ‘섬(蟾)’자를 써서 섬진강이라 부르게 되었다.
출처 : 남도일보(http://www.namdonews.com)
섬진마을 표지석에서.. 지도상 섬진강 나루터는 섬진마을 윗쪽에 자리하고 있었다고 기록만 전하는 듯..
섬진나루는 현 하동읍 화심리에 있었던 나루터라고 옛날 지도에 표시되어 있으나, 지금은 찾을 길이 없다. 다만 지도상으로 섬진나루 건너편에 있는 마을이 섬진마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도 하동 건너편 광양 쪽에 섬진마을이 있다. 아마 남명이 다다란 곳이 현 섬진마을 건너편에 있었던 섬진나루가 아닌가 추측을 해볼 뿐이다. {{ 섬진나루터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 1455 }}
[네이버 지식백과] 섬진나루 (문화원형백과 전통시대 수상교통/뱃길(수상로),ㅌ 2006.,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더 많은 수월정 사진 답사기는
https://cafe.daum.net/salpemountain/F2fP/93 초보산꾼
04:52분 토끼재에 전하는 느랭이골 이정표를 시작으로 수월정 답사를 마치고 광양포구까지 섬진강을 걷는다..
느랭이골은 진상면 내압마을에서 비평 죽천 마을로 넘어가는 느릿하고 기다란 골짜기를 이 고장 사람들이 부르는 지명이다.
05:09분 도사리와 헤어지고 신원리로 들어가지만.. 아직은 어둠이 있어 강가 대신에 도로를 따라간다..
섬진교와 뒤로 하모니 철교가 아름다운 자태로 반기지만 사진 초보의 한계를 절감하며..
05:27분 다압면 안내판이 있는 신원리 교차로로 올라서서 섬진교를 건넌다..
다압면 안내판을 보니 방금 답사한 것과 많이 다르죠? 아니한만 못한 .. 호남정맥팀과 함께 걸었던 쫓비산과 불암산도 보이고..
영·호남을 잇는 다리인 섬진교를 건너고..
섬진교에서 본 오늘 답사에서 제외된 섬호정蟾湖亭이란 아름다운 정자가 있다는 좌측 하동공원..
하동공원 하동읍 광평리
하동읍 읍내리 하동향교가 위치한 길마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으며 하동군민의 문화체육공간이다. 일출보다는 일몰의 광경이 아름답게 보이고 섬진강의 물결은 너무 잔잔하니 호수 같이 보이는 곳이다. 일명 시인의 언덕이라 부르고 있으며 이 고장 출신으로 시문학에 활동하는 명사의 시비 30여개를 다양한 조형물이 있다.
출처 : 광양뉴스(http://www.gynet.co.kr
우측 하동 송림공원으로 내려가 앞에 보이는 하모니 철교를 건너 다시 광양땅으로.. 가운데 하동 금오산의 불빛도 보이고..
섬진강을 따라가다 보면 섬진강 철교 아래에 검푸른 손을 흔들며 오랜 세월을 위엄있게 섬진강과 함께해 온 송림이 있다. 이 송림은 조선 영조 21년(1745)에 당시 도호부사였던 전천상이 섬진강의 강바람과 모래바람의 피해를 막기 위해 소나무 숲을 조성하였던 것이 오늘날 국내 제일가는 노송숲이 되었다 한다.
자료 : 하동송림> 여행지 | '열린 관광' 모두의 여행:대한민국 구석구석 (visitkorea.or.kr)
하동 송림 교차로에서 좌측으로 해서 내려간다.. 옛 다리인 듯 아직 구조물이 조금 남아 있고..
내려와서 되돌아 본.. 양쪽으로 내려와 하나가 되는 화합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동도호부사 전천상 기적비속에 하동섬진강 백사청송白沙靑松 안내문
백사청송白沙靑松은거센 모래바람에도 굴하지 않는 소나무의 기상과 백성을 위하는 목민관의 정신을 의미한다고..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재첩 조형물 뒤로 어둠속에 넘어왔던 신원 회전 교차로 방향.. 좌측 원동 마을이 서어나무 보호수가 있는 호남정맥 불암산 등산로 입구이다..
송림 향기와 섬진강 그리고 어둠을 걷어내고 찾아온 손님 아침 새벽공기의 만남.. 두 분 호남정맥 축하사절로 방문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 옛 궁도장으로 송림속에서 활시위를 당겼을 모습이 눈에 선한데.. 하상정河上亭..
그런데 어디에도 안내문이 없어 조금 아쉽고.. https://www.iheadlin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2424 참조..
흰모래와 어울림으로 얻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백사청송이 펼치는 모습에서 왜 하동8경에 하나였는지 알 수 있고..
철이 지나버려 늦었지만 꽃무릇도 아침을 함께하고.. 몇 남지 않은 꽃잎이 긴 기다림의 마지막 힘을 내고 있어 더욱 가슴시린..
한국 남부에 주로 분포하며 전남 영광 불갑사가 최대의 군락지로 알려져 있는 상사화
잎이 지고 나서 꽃이 개화하므로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꽃과 잎
잎이 있을 때는 꽃이 없고 꽃이 있을 때는 잎이 없고
그래서 사람을 사모하다 죽으면 상사화 꽃이 된다고 했는가?
죽어서라도 꼭 만나야만 하기에 그래서 꽃말도 이룰 수 없는 사랑이다
잎은 꽃을 그리워하고 꽃은 잎을 그리워하고...
그런데 아시나요? 겨울에도 잎은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다가 잎이 사라지고 난 뒤 9월경에 꽃이 피어난다는 사실
‘기다림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를 기다려 보지 못한 이들은 잘 모른다’고 표현했던
누가 알까 남몰래 간직하고 있던 꽃이 다시 태어났기에 이해인의 시 상사화가 더욱 가슴을 치는 것이리라
더 많은 하동 송림 사진 답사기는
https://cafe.daum.net/salpemountain/F2fP/94 초보산꾼
06:35분 하동 송림공원 끝 부분에서 하모니 철교로.. 뒤에 보이는 다리가 복선화된 경전선 철교..
'알프스 하모니 철교' (섬진철교)
1968년 경전선 개통과 함께 섬진강을 가로질러 영남과 호남을 연결하여 상호 교류와 균형적인 지역 발전에 일조하고자 건립되었다. 『경향신문』 1968년 2월 7일자 기사를 보면 경전선은 "영남과 호남을 대전을 거치지않고 남해안을 따라 철도로 직결한다는 점에서 일제시대부터 꾸어온 꿈이 이제야 실현된 것"이며, 산업선으로서의 효과가 커 이 찻길을 통해 ‘진해비료공장의 비료를 호남의 곡창으로 보내고, 반대로 호남의 양곡이 영남으로 실려나갈’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2016년 7월에 폐선되어 지금은 알프스 하모니 철교로 개명되어 사람이 건너갈 수 있는 다리로 활용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알프스 하모니 철교 [-鐵橋]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06:41분 금오산 좌측 산등선 위로 일출을 감상하고..
마침 동.서 화합의 꿈을 향해 복선화로 더욱 활기찬 모습으로 경전선 열차도 지나면서 축하해 주고..
하모니 철교 가운데 쯤에 하동땅과 광양땅의 도경계 표시를 지나고..
자료 : 하동공식블로거 https://blog.naver.com/hadongblog/222180458262
하모니 철교를 내려오며.. 중간중간에 유리판으로 아래 철교 구조물을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하모니 철교 넘어로 하동읍..
다시 섬진강물따라 여행은 시작되고..
더 많은 하모니 철교 사진 답사기는
https://cafe.daum.net/salpemountain/F2fP/95 초보산꾼 답사기..
06:57분 팽나무 보호수가 있는 대나무 쉼터로 내려서고..
07:03분 섬진강 사계절 꽃길이 시작되고.. 조금 더 가면 이제 다압면과 이별하고 진월면(월길리)이 시작된다..
07:26분 배알도가 15km 남았다는 거리표시를 지나면서 섬진강은 서진을 하고..
섬진강 넘어 하동읍과 하동공원
07:31분 중도마을 대리석 쉼터를 지나 좌측 섬진강변으로 진행하라고 하지만 길이 좀 관리가 안돼 계속 도로로..
우측으로 월길리 중도마을.. 광양 지명에 나오는 원래 섬이였다가 육기가 돼서 그런지 전체가 하우스 단지로 되어 있다..
08:34분 송금리가 시작되는 월길리 수로에 있는 중도 배수펌프장과 2번 국도인 섬진강 대교가 보이고..
호남정맥 국사봉을 품은 깃대봉 아래 송금리 송현마을에는 광양의 숨은 위인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오늘 답사 예정이였지만 패스하고..
광양 김대례 공신각[ 光陽金大禮功臣閣 ] 진월면 송금리 송현마을 광양 송금리 산65-4 윗마을
임진왜란시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크게 무공을 세운 김대례(金大禮)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이 비는 1856년 통훈대부 사헌부 감찰 순흥 안낙진이 찬(撰)하고 그의 10세손 학조(學照)가 세웠으며, 이곳에 1862년에 쓴 공신각과 충효문 현판이 있다. 솔고개는 송현마을에서 대리마을로 가는 길목의 산허리였는데 이곳에서 큰 인물이 나서 일제가 해를 입을 것이라 하여 왜정시대에 일본인들에 의하여 이곳에 인물이 나는 것을 막으려고 산허리를 잘라내어 평평한 길로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출처 : 광양만신문(http://www.gymnews.net)
** 선무원종 공신 노위 훈련원 김해 공지비(宣武原從 功臣 虜尉 訓練院 金海公之碑)라는 비(碑)가 있는데
임진왜란시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크게 무공을 세운 김대례(金大禮)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출처 : 광양만신문(http://www.gymnews.net)
임태일 생가 광양시 진월면 송현1길 13 아랫마을
이 고장 출신 인물로는 항일독립투사 임태일이 있다. 현재 송현마을회관에서 송금방천으로 가는 아랫마을 길가에는 임태일 생가가 있으며, 이곳에는 그의 비석과 함께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출처 : 광양만신문(http://www.gymnews.net)
자료 : 송금리 송현마을 충신 김대례와 독립투사 임태일이 혼이 살아 있는 마을 송금리
광양에 숨은 역사속 위인을 찾아보자. #송현마..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08:44분 섬진강 대교를 지나고..
08:56분 금동 배수 펌프장을 지나고..
반대편으로는 하동포구와 공원이 보인다.. 하동포구 공원과 방금 지나온 섬진강 대교
하동포구 공원과 가운데 하동 황천강 황천교가 보이고 그리고 우측 하동 섬진강 습지공원..
09:10분 자연산 벚굴 양식장 출입금지판을 지나면서 돈탁마을 거북등 터널이 다가온다..
09:17분 거북등 터널을 지나면서 돈탁마을 답사가 시작되고.. 거북등에 대한 유래를 알아보고..
마을이름은 신석기시대 사람이 살았던 거북등에서 유래한다. 이곳은 둔덕을 이루고 있어 볼록하고 밋밋한 원형을 이루고 있는데 ‘볼록한 모양’인 ‘돔’ 또는 ‘거북이 등’을 연상하여 처음에는 ‘돔테기’ 또는 볼록하게 ‘돋아났다’하여 ‘돕테기’라 한데서 마을이름이 연유됐다.
출처 : 광양만신문(http://www.gymnews.net)
돈탁마을 입구.. 유턴표시는 자전거길을 따라가면 구인정에서 유턴하여 시작하라는 뜻이다.. 나는 바로 우측 소나무 숲으로..
돈탁마을 표지석과 구인정.. 150년된 참나무와 역시 150년된 갈참나무 보호수도 함께 있다..
구인정龜仁亭
마을 앞 입구에는 1999년에 설치된 마을 정자인 구인정(龜仁亭)이 있는데, 이 구인정이라는 이름도 이 마을이 거북이가 목을 쭉 빼고 섬진강 물을 마시는 형국이란데서 이름했다고 전하고 있다
출처 : 광양만신문(http://www.gymnews.net)
구인청 우측에 비보숲이 시작되는 장승 입구와 뒤로 돈탁마을..
돈탁마을 비보숲 광양 진월면 오사리 1213-12
돈탁마을명은 밋밋한 원형과 둔덕형태의 「돕테기모양」으로 돋아 났다는데서 연유되었고 독탁마을 앞 섬진강 제방변에 위치한 소나무 숲으로 홍수와 바람 등 재해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하여 조성된 마을 숲이며 소나무 숲은 250년 수령의 소나무 100여 그루가 아름다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자료 : 광양 돈탁마을 숲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더 많은돈탁 비보숲 사진 자료는
https://cafe.daum.net/salpemountain/F2fP/96 초보산꾼
09:32분 돈탁마을 답사를 마치고 바로 시작되는 자전거 체험장도 지나고..
09:37분 오사리 사계절 꽃 길로 가도 되지만 역시 태풍피해를 입은 듯 꽃길을 갈아없어 계속 자전거 길을 따라간다..
주로 남부지방에 심는다는 홍가시나무가 함께 해 그나마 걷는데 더위 속 한줄기 시원한 청량제 역할을 하고 있고..
09:48분 지금은 화장실도 개성시대를 얘기 하려는 듯.. 빨간 우체통 화장실.. 사평1길 49-15
10:25분 갈대숲 지대인 오사리 배수장을 지나면서 앞에 보이는 신아리 보루가 있는 곳에서 섬진강은 서쪽으로 방향을 튼다..
10:29분 오사 배수장..
오사리에서 신아리로 넘어서며 되돌아 본 오사 배수장이 있는 끝들마을과 갈대숲..
하동 금오산도 바로 앞에 와 있고..
멀리 금오산 아래로 남해 고속도로가 광양에서 하동으로 넘어가는 지점에 주교천교가 보이고..
신아리 보루 아래 대나무 숲이 도로를 걸으며 힘들었던 열기를 잠시 식혀 주는데..
11:00분 남해고속도로 교각 아래를 지나고..
11:08분 남해고속도로 섬진강 휴게소가 시작되고.. 우측으로 잠시 들어가면 아동마을 입구이다..
아동마을 입구 우측에 신아리 보루가 있다고.. 원래 이 도로로 내려와야 하는데 자전거길을 따라오는 바람에 답사 포기..
광양진월신아리보루(光陽 津月 新鵝里 堡壘) 백제의 보루 진월면 신아리 산 4
백제시대 후기에 축성된 신아리 보루는 사방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해발 170m 산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섬진강과 하동군 금성면 일대가 서쪽으로는 진월면 일대가 내려다 보여 적의 동태를 살피기에 적합한 장소로 지형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새임을 알 수 있다. 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석축한 전남에서 희귀한 유적이다.
자료 : 광양시 관광명소 > 문화유산 > 도지정 문화재 > 광양 진월 신아리 보루 (gwangyang.go.kr)
11:17분 휴식 후 섬진강 휴게소 앞을 지나는데 우측으로 망덕산이 보이기 시작하고.. 가운데는 태인동 삼봉산
되돌아 본 영,호남의 또 다른 소통의 방법인 남해 고속도로..
더욱 가까워지는 망덕산과 가운데 섬진강과 수어천이 만나는 합수지점에 있는 삼봉산..
11:31분 선소 마을에 들어서고..
선소지의 답사기 자료는
https://blog.naver.com/gwangyangsi/222113750268 광양 공식 블로거를 참조 했습니다..
윤동주시 정원이 있는 섬진강옆 진월교에 있는 시설물.. 사진상 우측에 황병학 의병 전투지 안내문이 있다..
황병학 의병 전투지 안내문..
진월교 우측으로 윤동주 시 정원
윤동주 시 공원 우측으로 광양 선소터와 어영담 추모비가 있다..
어영담 추모비
어영담은 함양이 본관이며 여러 가지 자료와‘난중일기’에 의하면 1591.3~1593.10월까지 광양현감을 지냈으며 연임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이순신이 선조임금에게 올린 장계,“어영담은 해변에서 생장하여 선박에 익숙하고 경상도와 전라도의 수로사정과 도서의 형세를 모두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왜적을 치는 일에 있어서도 전심전력을 다하여 임진년 해전에서 매번 선봉에서서 누차 큰 공을 세웠습니다
출처 : 광양만신문(http://www.gymnews.net)
진월교에서 본 선소지光陽 船所里 船所址.. 바로 호수 건너 앞에 진남루가 보이고 그 옆으로 무접섬 공원이 보인다..
광양 선소리 선소지 [ 光陽 船所里 船所址 ] 진월면 선소리 선소마을에 있는 선소(船所)의 터.
배를 만들던 선소의 터로, 광양시 진월면 선소리 선소마을에 있다. 순천, 흥양, 보성, 낙안 선소와 함께 임진왜란 당시 배가 제작된 곳이다. 해안선이 내륙 쪽으로 깊숙이 만입되어 파도와 바람의 영향을 적게 받는 곳이며, 섬진강을 끼고 있어 내륙으로 연결되는 교통로와 가깝다. 또한, 주변에 산이 많아 배를 만들기 위한 목재를 구하기가 쉬워 선소로서 적합한 곳이다. 조선 후기까지 선소로서의 역할일 이어졌으며 이곳에서 배를 만들었다는 기록은 《임진장장(壬辰狀章)》에 남아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광양 선소리 선소지 [光陽 船所里 船所址]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망뎅이를 형상화 한 수군진의 쌀을 저장했던 곳이였다는 나비가 춤추는 형상의 무접섬(舞蝶島) 공원..
수군교.. 수군교를 세운 배경이 적혀있고.. 선소와 망덕을 이아주는 다리.. 좌수영 수군의 주둔지의 의미라고..
영화'한산' 우리들의 영웅 어영담은 누구인가!..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선소 삼거리에 있는 선소터가 있었다는 선소교..
진월동 동사무소 뒤로 가면..
선소창으로 사용했다는 구 진월면 사무소로 등록문화재라고 하는데 공사중이다..
구 진월면 사무소. 선소창터 선소중앙길 31 광양 구 진월면사무소 등록문화재739호
1950년대에 건립된 소규모 관공서 건물로 지붕의 목조트러스 구조(강재나 목재를 삼각형 그물 모양으로 짜서 하중을 지탱시키는 구조)가 원형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고, 주 출입구 부분을 조형적으로 처리한 독특한 입면구성을 보이는 등 지역을 대표하는 근현대건축유산으로서 보존 가치가 충분하다. 광양시 홈피에서.
선소지 더 많은 사진 답사기는
https://cafe.daum.net/salpemountain/F2fP/97 초보산꾼
12:43분 선소지 답사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광덕포구에 있는 망덕산을 오른다..
13:11분 호남정맥의 마지막 산인 망덕산 정상.. 삼각지 대장님 작품.. 마지막으로 광덕산에서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망덕산
호남정맥의 끝 망덕산 일대는 상제봉조형(上帝奉朝形: 임금 앞에 온 천하의 대신과 무리가 머리를 조아리며 예를 갖춰 배알하는 형국)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온다. 망덕산과 천왕산 일대는 국내에서 유명한 10대 혈 자리가 있다고 전해진다. 망덕산의 옛 이름은 성덕산(聖德山)이었다. 성덕산은 큰 명당을 간직한 땅임을 이름으로 암시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 해안을 통해 왜구들의 침입이 심해지면서 왜구 침입을 알리기 위하여 성덕산의 정상에서 망을 보며 지켰다 하여 망덕산이란 산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자료 : 매화마을 봄바람 만나니 섬진강 재첩·벚굴이 더 반갑다 (mdilbo.com)
이번에는 전망대로 하산하고..
전망대 우측으로 삼록암??.. 안내문이 없어 확신은 없고 혹 다음 기회에라도 축하사절로 오면 다시 찾아 봐야지..
망덕산 기슭에는 삼록암(三錄岩)이라는 큰 바위가 있는데, 중국 진시황제의 명을 받고 불로초를 구하러 온 서시가 이곳을 지나갔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으며, 실제로 바위에 ‘서시과차(徐市過此)'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 바위는 영험함이 있어 사람들이 바위 아래에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있으며 매우 신성시 여기고 있다.
자료 : http://m.g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83699
방금 축하 사절단과 함께 답사한 선소가 있었다는 선소마을(진월면읍)과 뒤로 남해 고속도로가 영.호남을 자유롭게 횡단하고 있고..
좀 더 좌측으로 가운데 억불봉이 우뚝하고..
우측으로 바로 앞에 배알도와 뒤로 섬진강이 남해에 마지막으로 합수하는 지점에 있는 섬진대교..
섬진강 긴 흐름을 위해 전라북도에서 제일 높은 땅 진안 고원에 위치한 데미샘에서 솟아 나온 물 한 방울..
비록 시작은 미미했으나 물이 흐르고 흘러 호남의 젖줄이 되며 모악의 품을 떠나 무등의 땅으로 들어오고
백두대간의 마지막 지리산 靈水를 받은 화개장터에서 경상도와 전라도가 만나 영 호남 화합의 장이 되었고
화합의 장이 열리니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 사이좋게 손잡고 장장 550리를 흘러온 섬진강물이 남해 바다와 만나 이별을 하는 곳..
당겨본 배알도..
섬진강물의 끝자락에 자리한 곳이 망덕포구이고 화합의 상징답게 우리나라 5대강 중 가장 수질이 맑은 것으로 유명하다.
처음에는 고운 모래가 많아 다사강(多沙江), 사천(沙川) 두치강(豆恥江) 등으로 불리었다는 섬진강..
배알도에 해수욕장이 있었다는 기록에 한때 복원을 생각할 만큼 얼마나 모래가 많았었는지 얘기해 주고 있지만
지금은 고려말 두꺼비의 전설에 의해 섬진강이라 부르고 있어 두꺼비 유래가 전하는 섬진진에서 출발했던 이유이다.
섬진강의 동쪽을 뜻하는 하동(河東)을 옛 문헌에 고어로 큰 강이라는 뜻의 한다사(韓多沙)로 표기했다는 기록도 보이는데
우리는 산꾼들이니 지금까지 걸었던 호남정맥과 한반도의 척추인 백두대간이 만들어낸 물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렇게 물류의 중심지 역할을 하면서 구례까지 수운이 활발하다 보니 화계장터가 생긴 지리적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임진왜란 때는 왜군의 침입 경로로 자주 이용되다 보니 호남정맥 마지막 망덕산이 왜적의 침입을 감시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망덕포구에 내려와.. 아메랑님 작품..
마지막으로 담아본 남해로 거침없이 흘러 들어가고 있는 섬진강 물길..
한 치 속도 알 수 없는 말없이 흐르고 있는 강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나를 물 속으로 마구 끌어당기는 힘을 느낄 때가 있다
멈출 수 없는 끝없는 흐름에 내가 나를 맡기며 나의 상상력을 키웠기 때문일 것이다
강물은 그렇게 흘러서 보내고 또 흘러서 보내고도 또 이렇게 계속 채워주고 있다.
흘러서 보내버리고 나면 내 손에 남는 것이 없을 것 같은 나의 어리석은 속맘까지 채워주면서...
세상 살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무조건 뛰고 또 뛰고 있는 내 맘을 비웃듯
강물은 서서히 흐르면서도 얼마든지 더 속속 까지 채울 수 있음을 얘기해 주며 느림의 미학까지 덤으로 알려주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받아주는 바다의 품속에 안기고 나니 이제야 실감한다..
우리가 정말 열심히 걸어 왔구나..
함께 걸어주신 다음 수도권 산악회 식구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새롭게 시작되는 더 크고 넓은 바다의 세상 속에 우리 희망까지 소망해 본다..
오늘 마지막을 함께 한 뒤풀이 장소..
1대간 9정맥 졸업하신 4분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삼각지 대장님과 산가연 총무님 감사합니다.. 아메랑님 작품
호남정맥 종주대 여러분 정말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낙동강과 함께 남부지방의 옥토를 가꾼 섬진강 산줄기를 마치면서..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이 동해의 척추를 이어오다 북한지역을 지나 한강의 구역으로 들어와
천의봉에서 내륙으로 들어오기 위해 서남 방향으로 방향을 틀면서 낙동정맥이 척추를 이어받고
그 벌어진 공간으로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백두대간 동쪽 남은 반쪽을 차지한 큰 강이 바로 천리물길 낙동강이고
서남진하던 백두대간이 삼수령의 대표격인 속리산에서 멈추고 남진을 시작하면서 한강과의 인연은 끝이 나지만
백두대간이 동해를 바쳐준 척추 덕분에 한강이 동. 서를 모두 품을 수 있어 남한 제일의 강이 된 지리적 배경이 되었다.
속리산에서 남진을 시작한 백두대간은 비록 호기롭게 북으로만 북으로만 향하다 속리산의 벽을 넘지 못하고 멈추어야만 했던 금강을 만들고
백두대간 상의 무명봉을 영취산으로 바뀌게 한 호남 벌의 심장을 통과하는 호남정맥을 서남으로 보내면서 만난 강이 바로 섬진강이다.
27차(금남호남정맥 포함)에 걸친 섬진강의 분수령인 호남정맥을 마치고 정리해본 한반도 척추인 백두대간이 남긴 흔적이다.
마지막으로 호남정맥을 시작하며 다짐으로 남긴 글을 큰 소리로 읽으며 얼마나 나는 실천하려 했는지 반성의 시간을 가져 본다.
우리는 호남정맥을 걸으면서 다른 정맥에서는 느낄 수 없는 세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산은 강을 품고 강은 사람을 품어 키운다는 우리 민족의 세계관에서 출발한 정맥길..
그러나 인생길이나 자연이나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는다
주어진 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경쟁은 정맥길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호남정맥 분수령인 섬진강은 물이 넘쳐나는데 정작 물이 필요한 김제.만경 평야는 항상 부족했다
지평선이 보일만큼 망망대답인 김제.만경 평야에는 강울 품을 산이 적다보니 사람을 품을 강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조물주가 한반도를 설계하면서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위에서 얘기했듯 영산기맥과 변산지맥을 만들어 금만평야와 영산강을 만들어 주고
다시 땅끝기맥을 보내 영산강에 힘을 보태고 산줄기도 남해로 흐르기 위한 수순을 밟고
이 때 옆집 섬진강의 흐름도 함께하기 위해 보성강을 보내 동향으로 바뀌게 만들고..
그렇게 흘러 광양만 망덕포구까지 이어가니 그림만 보면 조물주의 노력이 가상하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한 민초들의 삶의 얘기를 우리는 호남정맥길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섬진강 물을 사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옥정호를 만들어 금만평야에 부족한 물을 위해
산밑으로 굴을 팠지만 거기에는 일제에 의한 수탈을 위한 목적이 숨어 있었다
그리고 댐이 의해 생기면서 필연적으로 따르는 또 다른 기막힌 사연들..
4대강도 아니면서 섬진강을 제치고 영산강이 4대강 사업에 들어간 사연까지..
긴~ 산줄기만틈 남겨진 사연도 많았을 터..
호남정맥길에서 만나는 명산들만 우리는 기억하고 돌아서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위해
산행도 좋지만 잠시 가는 길을 멈추고 산줄기에 기대어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주면서 함께 공휴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는 호남정맥길이 되었으면..
20년 5월 23일 망덕산 구간에서..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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