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강 건너 숲속에 보이는 취묵당
백곡 김득신(柏谷 金得臣)과 취묵당(醉墨堂)
임진왜란 때 진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주인공인 충무공 김시민 장군의 사당인 충북 괴산군 충민사를 찾아가는 길이다. 충민사가 보이기 전에 괴강 건너편 숲속에 그림같은 정자가 하나 보여 무슨 건물인지 궁금하게 생각 되었다. 충민사에 도착하여 문화해설사한테 물어 보니 그곳은 김시민 장군의 손자 백곡 김득신 선생과 관계가 깊은 취묵당(醉默堂)이라고 하며 그에 얽힌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 주었다.
김득신 (조선 시인) [金得臣]
1604(선조 37)~1684(숙종 10).
조선시대의 시인.
영감과 직관을 통해 자연의 생명을 조화롭게 읊은 시가 으뜸이라고 했다. 본관은 안동. 자는 자공(子公), 호는 백곡(栢谷)·구석산인(龜石山人). 진주목사 시민(時敏)의 손자이며 부제학 치(緻/밸치)의 아들이다. 1662년(현종 3)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가선대부에 올랐으며 안풍군에 봉해졌다. 정두경·임유후·홍석기·홍만종 등과 친하게 지내면서 시와 술로 풍류를 즐겼다. 예로부터 학문을 많이 쌓은 사람은 책읽기를 많이 하여 그러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고 책읽기에 힘썼는데, 특히〈백이전.伯夷傳〉을 가장 좋아하여 1억 1만 3천 번이나 읽어 자신의 서재를 '억만재'라 이름짓기도 했다. 또한 시를 짓는 어려움보다 시를 제대로 평가해내는 어려움이 더 크다고 하고, 당시 사람들이 과거에만 열중하다 보니 시의 개성이나 예술성을 무시한 채 시가 오직 입신양명의 수단으로 쓰이고 있음을 비판했다. 특히 5언·7언 절구를 잘 지었으며 시어와 시구를 다듬는 것을 중요시했다. 문집인 〈백곡집〉에 시 416수가 전하며, 홍만종의 〈시화총림〉에 실려 있는 그의 시화집인 〈종남총지〉는 비교적 내용이 전문적이고 주관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어 시학연구의 좋은 자료가 된다. -출처: Daum 백과사전-
가깝게 크로즈업해서 잡은 취묵당
취묵당(醉墨堂)은 백곡(柏谷) 김득신(金得臣)선생이 1662(현종3, 59세)에 괴산군 능촌리 충민사 옆 괴강(槐江)가에 건축하고 독서당으로 이용하던 곳이다.
괴강의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멋들어진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 건물은 정면 2칸, 측면 1칸 반, 팔작지붕 목조 기와로 내면은 통칸마루, 사방 난간으로 되어 있으며,여러 번의 중수를 거쳐 1979년 완전 해체 중수 복원 하였다.
뒤에서 바라본 취묵당
취묵당은 그동안 충민사(충북 기념물 제12호)의 일부 건물로서 관리되어 오다가 지난 2007년 9월 7일 충북지방 문화재 자료 제61호로 지정되었다. 건물 안에는 중건기, 각종 시문 등 13개의 현액이 있으며 전면 기둥에는 공(公)의 시 용호(龍湖)를 양각한 주련이 걸려 있다.
취묵당(醉默堂)에서 바라본 괴강
취묵당 앞쪽 기둥에는 효종이 보고 감탄했다는 백곡(柏谷) 김득신(金得臣)선생의 시 '용호(龍湖)'가 걸려 있다.
▣ 용 호 ( 龍 湖 ) ▣
고목한운리(古木寒雲裏) / 고목은 찬 구름 속에 잠기고 추산백우변(秋山白雨邊) / 가을 산엔 소낙비 들이치네. 모강풍랑기(暮江風浪起) / 날 저문 강에 풍랑이 일자 어자급회선(漁子急回船) / 어부는 급히 뱃머리를 돌리네.
김시민장군선양회 (31)
087JX
백곡 김득신(柏谷 金得臣)과 취묵당(醉墨堂)
B0401
,,,,,,,,,,,,,,,,,,,,,,,,,,,,,,,,,,,,,,,,,,,,,,,,,,,,,,,,,,,,,,,,,,,,,,,,,,,,,,,,,,,,,,,,,,,,
金得臣 김득신 1604 ~1684 1604(선조 37)~1684(숙종 10).
조선시대의 시인.
영감과 직관을 통해 자연의 생명을 조화롭게 읊은 시가 으뜸이라고 했다.
본관은 안동. 자는 자공(子公), 호는 백곡(栢谷)·구석산인(龜石山人). 진주목사 시민(時敏)의 손자이며 부제학 치(緻)의 아들이다.
1662년(현종 3)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가선대부에 올랐으며 안풍군에 봉해졌다. 정두경·임유후·홍석기·홍만종 등과 친하게 지내면서 시와 술로 풍류를 즐겼다.
예로부터 학문을 많이 쌓은 사람은 책읽기를 많이 하여 그러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고 책읽기에 힘썼는데,
특히 〈백이전〉을 가장 좋아하여 1억 1만 3,000번이나 읽어 자신의 서재를 '억만재'라 이름짓기도 했다. 또한 시를 짓는 어려움보다 시를 제대로 평가해내는 어려움이 더 크다고 하고, 당시 사람들이 과거에만 열중하다보니 시의 개성이나 예술성을 무시한 채 시가 오직 입신양명의 수단으로 쓰이고 있음을 비판했다. 특히 5언·7언 절구를 잘 지었으며 시어와 시구를 다듬는 것을 중요시했다. 문집인 〈백곡집〉에 시 416수가 전하며, 홍만종의 〈시화총림〉에 실려 있는 그의 시화집인 〈종남총지〉는 비교적 내용이 전문적이고 주관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어 시학연구의 좋은 자료가 된다.
絶 句 夕照轉江沙 석조전강사 저녘노을 곱게 강 모래위에 비추고
爲人性癖每耽詩 위인성벽매탐시 사람의 성벽이 늘상 시에 빠져서
頭陀山 두타산 行行路不盡 행행로부진 가도가도 길은 끝이 없고
운담님의 김득신선생시 - 전한체
용호(龍湖) 용호에서
춘수(春睡) 봄잠 김득신(金得臣) 驢背春睡足 려배춘수족 귀 등에서 봄잠이 곤하여 靑山夢裏行 청산몽리행 꿈속에서 푸른 산을 지나간다. 覺來知雨過 각래지우과 깨고서야 비가 온 줄 알았으니 溪水有新聲 계수유신성 개울물에 새로운 소리가 들린다 야음(夜吟) 밤에 읊다 김득신(金得臣) 露滴寒空月正西 로적한공월정서 찬 하늘 이슬 지고, 달은 서편 이윽 한데 欲成佳句意都迷 욕성가구의도미 좋은 시구를 지으려도, 마음은 온통 어지럽다 秋宵難作還家夢 추소난작환가몽 가을 밤 고향집으로 가는 꿈도 꾸기 어려운데 窓外鵂鶹樹樹啼 창외휴류수수제 창밖에선 올빼미가 나무마다 울고 있 구나 여관야음(旅館夜吟) 여관의 밤 김득신(金得臣) 永夜坐不寐 영야좌불매 긴 밤 잠이 오지 않아 앉았노라니 霜威透褐衣 상위투갈의 차가운 서릿기운 베옷을 파고든다 呼僮催鞴馬 호동최비마 하인 불러서 말 안장 재촉하니 月落衆星微 월락중성미 달은 지고 뭇 별빛 흐려지는구나 龜亭(구정) 구정에서 김득신(金得臣) 落日下平沙 낙일하평사 저무는 해 모랫벌에 지는데 宿禽投遠樹 숙금투원수 새들은 잠자리 찾아 먼 나무로 날아 든다 歸人欲騎驢 귀인욕기려 돌아가는 사람 당나귀 타려는데 更怯前山雨 갱겁전산우 눈앞의 산에 비 내릴까 다시 두려워진다 題畵(제화) 그림에 부쳐 金得臣(김득신) 古木寒煙裏 고목한연이 찬 안개 속에 고목 서있고 秋山白雲邊 추산백운변 흰 구름 떠있는 곳에 가을 산이 있다 暮江風浪起 모강풍랑기 저무는 강에 풍랑이 일고 漁子急回航 어자급회항 어부는 급히 고깃배를 돌린다.
湖行絶句(호행절구)호서지방 여행 金得臣(김득신) 湖西踏盡向秦關 호서답진향진관 충청도 다 돌아보고 경기로 향하네 長路行行不暫閑 장로행행불잠한 긴 길을 가고 또 가고 잠시도 쉬지 않았네 驢背睡餘開眼見 려배수여개안견 나귀 등에 졸다가 문득 눈 떠보니 暮雲殘雪是何山 모운잔설시하산 저문 구름, 남은 눈, 도대체 어느 산 인가
출처 :산의품 보금자리 원문보기▶ 글쓴이 : 산의품 |
출처: 굴어당의 한시.당시.송시 원문보기 글쓴이: 굴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