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길목에서 8
―입원 3
나는 그 날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그냥 의무적으로 애들을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다른 날과 다른 것이 있다면 병원에 올 때 피자를 한 판 사오라는 아내의 전화가 있었기에 피자가 배달되자 바로 병원을 향해 출발하였다. 의아한 것은 피자가 아내의 입맛에 맞지 않고 잘 먹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아마 가지고 간 피자 역시 지난번에 사간 치킨이나 다른 음식처럼 아내는 입만 대고 아이들과 내 차지가 될 것이다.
아내는 피자 같은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병원에서 나오는 식사도 잘 먹지 못했다. 밥도 반찬도 모두가 백색이었다. 임신중독증에 맞춰 나오는 병원 밥은 고춧가루는 넣지도 않고 음식은 하나같이 다 싱겁게 나와서 밥이 잘 넘어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먹으면 토할 거 같다며 죽어도 못 먹겠다는 두유는 꼭 하나씩 나왔다. 두유는 소고기처럼 단백질이 많이 들어 있어서 정신 집중이 잘 안되거나 산만한 아이들한테도 좋은 식품이라고 하는데 고단백질이 필요한 임신중독증 환자에게도 두유는 꼭 필요한 식품이었다.
반찬도 하나같이 단백질이 풍부한 콩 종류와 소고기, 버섯 등이 나오고 두유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아내는 입에 대지를 못했다. 두유뿐 아니라 밥도 국도 반찬도 어느 거 한 가지도 다 먹지를 못했다. 그리고는 김치가 먹고 싶어 죽겠다고 했다. 옆 침대에 있는 사람들이 김치를 먹을 때면 정말 더 먹고 싶은 모양이었다.
아내는 6인실의 병실에 입원해 있었는데 한 달이 넘도록 입원해 있는 동안 병실 안의 사람들은 계속 바뀌었다. 자연분만을 하면 3일이면 퇴원하고 제왕절개를 해도 일주일이면 다 퇴원한다. 그러니 사람들이 계속 바뀔 수밖에. 그리고 아내 말고 다른 산모들은 특별히 음식을 가리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김치든 뭐든 다 먹을 수가 있었다. 어떤 때는 옆에 사람이 먹는 김치를 조금 얻어서, 아주 조금 찢어서 물에 헹군 다음 입에 넣었다가 그것도 삼키지 못하고 뱉었다고 말하면서 아내가 씁쓸히 웃음 지었다. 정말 생각 같아서는 김치찌개라도 끓여서 갖다주고 싶은데 임신중독증 환자에게는 맵고 짠 음식은 절대 금식이었다.
그리고 병실에 들어갈 때마다 눈에 거슬리는 물건이 하나 있었다. 병실 안의 여섯 개의 침대 중에 유일하게 아내 침대에만 쇠로 된 녹색 산소통이 세워져 있었다. 실제로 혈압이 급상승하면 환자가 위급지면 그때를 대비하여 가까이 둔 것이라지만 금속성이 주는 차가운 이미지 때문에 왠지 거부감이 들곤 했다.
애들은 엄마를 본다는 생각에 곧장 3층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로 달려가는데 내 눈에는 병원 입구에서부터 서성이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밤에도 생명의 호흡이 빨라지는 곳. 종합병원의 응급실은 한밤에도 잠들지 않고 있었다. 앰블란스에 실려 오는 환자가 있는가 하면 응급실을 왔다가 되돌아가는 환자도 있다. 바로 되돌아가는 환자는 아마도 가망이 없거나 더 큰 병원으로 가는 환자인 것 같은데 그런 장면과 마주치면은 마치 내일인 양 생각되어 가슴이 잘 진정이 되지 않았다. 아마 사랑하는 사람, 가까운 피붙이를 한 번이라도 보낸 본 사람이라면 나의 이 마음을 알고 있으리라.
병원 후문으로 통하는 응급실 입구에는 서너 명의 사람들이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를 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아마도 급한 환자 때문에 따라온 사람들인 것 같았다. 응급실 입구를 들어서면 바로 접수실 있고 3층으로 오르는 복도 바로 옆에는 응급실 문이 있는데 열려 있는 문 안쪽에서는 자지러드는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 오고 있었다. 아기는 고열이 있는지 간호사가 아기의 옷을 벗기고 있었고 보호자는 애처로움과 안타까움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우리도 애들 키우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은 한밤에 갑자기 애들이 고열에 시달렸을 때였다. 애들은 이상하게 낮에는 잘 놀다가도 한밤중에 왜 갑자기 고열이 올라 엄마 아빠 가슴을 놀라게 하는지. 그래서 항상 상비약으로 관장약과 해열제 등을 구비 해놓고 있었지만 아기의 몸이 불덩이 같을 때는 얼른 옷을 다 벗기고 뜨거운 물도, 찬물도 아닌 미지근한 물로 수건을 적셔서 온몸을 닦아주곤 하였다. 이것도 애들을 키우면서 얻은 경험이었다.
한밤의 응급실 풍경은 보는 이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든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생명이기에 이다지도 마음을 아프게 하는지. 아내가 입원한 병실로 가는 길목에 잠깐 마주한 장면이지만 마음은 내내 무겁기만 하다. 밤이 깊어가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이 시간에 면회올 사람이 없어서인지 병원 복도는 오가는 사람도 없이 조용하기만 하다. 병원에 들어설 때마다 살갗에 달라붙는 소독 냄새는 이제 익숙해질 때가 된 것도 같은데, 그래도 갈 때마다 그 냄새는 낯설기만 하다. 병원 특유의 소독 냄새가 코끝에서 말초신경을 건드리면 여기가 병원임을 느끼게 하는데 애들은 어떤 냄새보다 엄마가 냄새가 그리운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누가 보든지 말든지 엄마가 입원해 있는 병실을 향해서 냅다 달린다.
그날도 아내는 병실에 있기가 답답한지 아니면 애들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입원실 앞에 있는 복도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아내가 누워있기가 지겨워 복도를 좀 걸어 다니다가 간호사와 마주치면은 그때마다 간호사는 아내를 중환자 취급하는지 안정을 취해야 한다며 침대에 누워있을 것을 강요한다고 한다. 무리하면 혈압이 올라가고 태아가 크지를 않는다고. 그렇게 말하는 간호사도 어떤 때 우리가 좀 늦게 병원에 가면 “오늘은 아직 애들이 안 왔나 봐요” 하면서 물어본다고 하였다.
애들과 엄마와의 바디인사(포옹)가 오간 후 복도의자에 앉아 가지고 간 피자를 풀어 놓는다. 밤이 늦어서 병실 안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다 자고 있었다. 그날도 아내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음식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나중에 느낀 일이지만 먹지도 않으면서 그런 음식들을 시킨 것은 집에서 먹는 음식이 부실하지 않을까 아내가 일부러 시킨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평상시에도 아내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이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이 것저것 시키는 것을 보면 아마 자기가 먹는 것 보다 애들 먹는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도 가지고 간 피자는 애들 차지였었고 나도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애들이 피자를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가 문득 무슨 생각이 났는지 화장실로 들어가면서 가만히 손짓한다. 나보고 따라 들어오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