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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104 / 금) 설교 요약 / 풍성한 삶을 누리는 비결 (엡 3:14-21)
찬송: 375장 - 영광을 받으신 만유의 주여
(14)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14-15절 : “기도의 대상과 자세” / 16-19절 : “기도의 내용” / 20-21절 : “기도의 결론”
서론 / 영국에 Julian Ellis Morris 라는 이름의 괴팍한 부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어린 시절에 미아가 되어 걸인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가 청년이 된 어느 날 그가 부자의 아들인 것으로 발견되어 아버지 부자의 거대한 부를 상속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 괴팍한 사람은 부자가 되고도 걸인의 삶을 계속합니다. 아침에 날이 밝으면 걸인의 옷 차림을 하고 역을 중심으로 한 거리에서 구걸 행각을 하고, 기분이 좋은 날이면 면도날, 비누, 샴푸를 팔러 다니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 달에 꼭 한번 근사한 옷차림을 하고, 리무진을 타고 런던 최고급 레스트랑에 가서 식사를 합니다. 그리고 일 년에 한번은 파리를 위시한 유럽의 여러 도시로 자가용 비행기를 몰고 최고급 럭슈리한 여행을 떠납니다. 그러나 여행에서 돌아온 이튿날이면 그는 다시 영락없는 거지 옷, 남루하게 헤어진 옷을 입고 초점 잃은 눈동자로 구걸 행각을 나섭니다. 참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사람이지요?
그런데 이런 모습이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왜 그러한지는 말씀을 들어보면 압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 순간 왕 중의 왕의 자녀가 된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순간만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인하고 기뻐하고 감격합니다. 또 일 년에 한두 번 특별한 집회에 참여할 때는 은혜를 받고 내가 왕의 자녀인 것을 눈물이 나도록 감격해 하고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예배가 끝나고 집회를 마치고 일상의 삶으로 돌아와서는 우리는 다시 영락없는 거지꼴을 하고 황금과 명예를 찾아 구걸 행각에 나섭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부귀영화를 구하고 명예를 구하고자 신앙도 팔아먹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찌보면 우리의 모습이 괴팍한 부자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들의 무력한 생존만 하는 하숙집과 다름없는 가정생활, 그리고 무력하기 짝이 없이 의미도 보람도 느끼지 못하는 직장 생활이 그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닌가요? 왕의 자녀들이 그렇게 살수는 없는 것이라고,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바울은 이 편지를 씁니다. 에베소서를 가득히 채우는 중요한 단어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충만’이고 또 하나는 ‘풍성’입니다. 충만하고도 풍성한 삶-그것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이어야 한다고 바울은 이 편지를 통해 가르치고자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우리가 이 충만하고도 풍성한 삶속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그 열쇠가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그래서 그 사랑의 비밀을 알고 깨우치도록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쓰고 또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만 깨우치면 그들은 충만하고도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풍성한 삶이 보장 된 줄 믿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풍성한 삶을 누리는 비결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론 / 풍성한 삶을 누리는 비결은 무엇인가?
1. 속사람이 강건하면 풍성한 삶을 살게 됩니다. (속사람이 강건)
15절과 16절을 보십시오.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풍성한 삶을 사는 비결로 “속사람이 강건한 것”을 들고 있습니다. 현대는 겉 사람! 육체를 강조하는 시대입니다. 외모를 아름답게 치장하는 여러 가지 장신구나 화장품의 종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저마다 자기 외모에 울고 웃습니다. 그러나 다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한동안 “내 이름은 김삼순입니다.”라는 드라마가 유행이었는데 인기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 드라마가 인기가 있는 이유는 얼 짱, 몸 짱은 극소수인데 대부분의 많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을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삼순이가 대변해 주기 때문에 대리 만족으로 인기가 급증하는 것 같습니다. 삼순이가 성형지상주의를 한방에 날려 보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외모에 얽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나는 나로서 특별하고 개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외모를 가꾸려고 하는 것은 죄도 아니고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건강도 중요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뭐니 뭐니 해도 속사람이 강건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그러므로 어차피 쇠하여져 가는 겉 사람! 후패해 가는 겉 사람만 위하지 말고, 속사람을 위해서 더 많은 관심을 갖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속사람이 새롭고 건강하다면! 영육이 동시에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일본에 ‘하루야마 시게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글을 쓰는 작가인데,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30년 동안 책을 쓰면서 건강의 6가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사람이 건강하려면 이 여섯 가지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첫째는 피곤하지 않게 하라! 둘째는 적절한 잠을 자라! 셋째는 식욕을 절제하라! 넷째는 화를 내지 말라! 다섯째는 두뇌를 계속적으로 사용하라! 여섯째는 적당한 운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후에 이 사람은 “뇌내혁명((腦內革命)“이라는 책을 쓰면서 정말 인간에게서 필요한 것 여섯 가지에 한 가지를 더 첨가했는데, 그것은 ‘마음의 평안’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마음의 평화가 건강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55%로 보았습니다. 다른 모든 것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화”라는 말입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사람의 겉모습 보다는 속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람의 몸은 정신에 의해 지배를 받고 정신은 영혼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이 부요하지 못하다면 풍성한 삶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을 향해서 기도하기를,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라고 기도했습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들의 영혼과 속사람이 강건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을 주장하시면 풍성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스도로 충만)
17절을 보십시오. 께 읽겠습니다.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이는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가 풍성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마음을 완전히 지배하시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내 안에 계신다는 말씀은 두 가지로 해석 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손님으로 계신다는 뜻이며, 둘째는 주인으로 계신다는 의미인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주님의 내주하심이 이 두 가지 중에 하나입니다. 어떤 분은 주님을 영접하고서도 주님을 손님처럼 대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고, 자기 뜻대로 모든 것을 주장합니다. 내가 주인이고 주님은 손님입니다. 또 어떤 이는 주님을 모시되 주인으로 모시고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님이 주인이 되어 주님의 뜻대로 결정하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느 쪽입니까?
주님은 우리 안에 오실 때 손님으로 오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분은 내 삶의 모든 영역, 내 생각의 모든 영역들을 온전히 지배하는! 그런 주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나의 삶을 누가 주장하시며, 누가 주인이신가에 따라서 삶이 달라집니다. 질이 달라집니다. 내가 주인이 되고 내가 주장할 때는 모든 것이 불안하고 불확실하고 실패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나의 주인이 되시면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심령의 손님이 아니라 주인이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이 내 마음에 주인으로 오신다면, 내가 그분을 향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주여! 뜻대로 하시옵소서.” 내가 가지고 주물렀던 모든 열쇠 꾸러미를 주님께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집 열쇠도, 우리 광 열쇠도, 나의 현재도, 나의 미래도, 나의 생명도, 나의 염려 근심도 다 주님께 맡기고, 주님께서 완전히 지배하시라고 맡기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렇게 하십니까? 풍성한 삶, 충만한 삶이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주인이 되시는 것을 말합니다. 풍성한 삶을 원하십니까? 충만한 삶을 소원하십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시도록, 주님이 나의 주인이 되시도록 맡기시고 복종하시기 바랍니다.
3. 주님을 사랑하면 풍성한 삶을 살게 됩니다. (주님을 뜨겁게 사랑)
18절과 19절을 보십시오.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미워도 예뻐 보이고, 잘 못 해도 잘하는 것만 같고, 무슨 말을 해도 사랑스럽고 예쁩니다. 게다가 함께만 할 수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과 사랑에 빠지면 황홀합니다. 부요해 집니다. 부족함이 없습니다.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주님의 놀라운 사랑을 받고 있음을 알면 풍성해 집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권하기를 “그리스도의 넘치는 사랑을 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면 마음에 풍성함이 옵니다. 평안이 옵니다. 염려 근심이 사라집니다. 달려가도 피곤치 않습니다.
사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우리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주님의 죽으심은 온 인류의 죄악을 인함이니 얼마나 넓은 사랑입니까? 요3:16절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유대인의 하나님만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니 얼마나 넓으신 사랑입니까? 모든 종족, 모든 인종과 문화와 사상을 다 뛰어 넘는 넓은 주님의 사랑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하셨으니 얼마나 주님의 사랑이 깁니까?(요13:1) 그리고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지옥형벌을 받아 마땅한데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주님께서 지옥까지 낮아지셨습니다. 아무리 흉악한 죄를 진 사람이라도 우리 주님을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습니까? 저 죄악의 깊은 심연, 지옥의 저주를 받아 마땅한 나를 위해서 음부까지 내려가셔서 나를 끌어올리신, 그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 지옥 밑바닥에서 나를 끌어올려 저 천성, 주님의 보좌에까지 나를 올려놓으신 주님의 높은 사랑을 깨달아 아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이 같은 사랑을 깨닫게 될 때에 무엇이 걱정이며, 염려이며, 불안하며 아쉬울 것이 있겠습니까? 그 사랑을 깨닫는다면 그 분에게 나의 삶을 맡겨드리고, 그 분을 나의 주인으로 섬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완전히 맡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삶이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충만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얼마나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까? 18절과 19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우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냥 충만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충만함으로 충만케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주님의 것이 다 내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 아버지는 탕자가 돌아 왔다가 잔치를 하십니다. 그러나 이런 아버지가 맏아들은 못 마땅합니다. 그래서 불평을 합니다. “지금까지 아버지를 섬겨 일하였거늘 염소 새끼 하나라도 주셨습니까?” 탕자의 아버지가 불평을 하는 그의 큰 아들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내 것이 다 네 것이 아니냐? 그러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노라”하셨습니다.(눅15:31,32)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내 부요가, 내 평안이, 내 은총이, 내 능력이, 내 사랑이 다 네 것이다!” 주님은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우리를 채우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20절과 21절을 보십시오. (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 아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넘치도록 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무쪼록 속사람이 강건하시고, 그리스도로 충만하시며,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심으로 풍성한 삶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