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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다의 서원
사사기 11장 28-40절 / 28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의 보내어 말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29이에 여호와의 신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서 길르앗 미스베에 이르고 길르앗 미스베에서부터 암몬 자손들에게로 나아갈 때에 30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가로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 31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32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 손에 붙이시매 33아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이십 성읍을 치고 또 아벨 그라밈까지 크게 도륙하니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 34입다가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35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니 36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의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하니라 37또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일만 내게 허락하사 나를 두 달만 버려 두소서 내가 내 여자 친구들과 산에 가서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하니 38그가 이르되 가라 하고 두 달을 기한하고 그를 보내니 그가 그 여자 친구들과 가서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고 39두 달 만에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아온지라 그는 자기가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였더라 이것이 이스라엘에 관습이 되어 40이스라엘의 딸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더라.
사사 시대에 입다가 사사로 세움을 받고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입니다. 입다는 길르앗이 기생의 몸에서 난 아들이었습니다. 길르앗에게는 여러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들이 장성한 후 어느 날 입다가 첩의 아들이라고 괄시하며 내쫓았습니다. 집에서 쫓겨난 입다는 형제들을 피하여 돔 땅으로 가 살았습니다. 그런 그에게 주위에 있던 잡류, 곧 건달패들이 모여들어 함께 생활하였습니다.
그러한 때에 암몬 사람들이 이스라엘 땅을 침범하므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암몬은 가나안 땅에서 위쪽 지방에 있는 갈릴리 호수와 아래쪽 지방에 있는 사해를 이어 흐르는 강으로 요단강이 있는데, 사해 맨 위쪽에서 요단강 동쪽 지역, 얍복강 상류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암몬은 도성이 랍바(오늘날의 암만, Amman)입니다. 암몬의 조상은 롯의 아들 벤암미입니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때 두 딸에게서 각각 아들을 낳았으며, 큰 딸이 낳은 아들을 모압이라 이름 불렀고, 작은 딸이 낳은 아들은 벤암미라고 이름 불렀는데, 이 벤암미가 암몬이 유래된 조상입니다.
암몬 사람들이 쳐들어오자 길르앗 장로들은 돔 땅으로 내려와 입다를 찾았습니다. 그들은 입다에게 암몬 사람들의 침략을 전하며 전쟁에 임하는 자신들의 머리와 장관, 곧 자신들을 다스리는 수령<통치자>요 지도자<지휘관>가 되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입다는 그러한 그들에게 자신을 미워하여 내쫓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는 무슨 염치로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느냐며 꾸짖었습니다. 그러자 길르앗 장로들은 입다를 설득하며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경우 그를 길르앗의 수령으로 삼아 길르앗을 다스리게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입다는 하나님께서 이 전쟁을 자신에게 붙여 승리로 이끌어 주실 경우 과연 자신에게 한 약속을 지킬 것인지를 확인하고서는 그들을 따라가 그들의 장관이 되어 암몬과의 전쟁에 임하여 암몬이 이스라엘을 침략한 것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이 전쟁을 하나님께서 지켜보신다며 암몬과 담판을 벌여 이스라엘 땅에서 물러가도록 하였습니다(삿 11:1-27).
그러나 암몬왕 시혼은 입다의 담판을 거절하고 싸움을 계속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신이 입다에게 임하였으며, 입다는 하나님의 신을 입어 길르앗 지파와 므낫세 지파의 땅을 지나서 다시 길르앗 지파 지역에 있는 미스베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암몬의 군사가 주둔하고 있는 진영을 공격해 들어갔습니다. 그때 입다는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서원하였습니다.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가로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30-31절).
입다가 한 이 서원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견이 있습니다. 그것은 입다의 서원은 인신제사를 말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입다가 암몬과의 전쟁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신의 손에 붙여 승리함으로써 평안히 길르앗 땅으로 돌아올 경우 누구든지 자신의 집 문에서 나와서 자신을 영접하는 그를 하나님께 바쳐 번제물로 드리겠다고 한 것은‘인신제사’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1) 그렇다는 견해와 (2) 그렇지 않다는 견해로 나누어집니다.
먼저, 입다가 인신제사를 드렸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는 입다가 서원한 대로 자신을 영접하러 나온 첫 번째 사람인 자기 딸을 번제물로 드렸다고 보는 것입니다. 우리 한글성경 중에서도 현대어성경은“그 딸은 두 달 동안 친구들과 함께 이산 저산을 돌아다니며 처녀의 몸으로 세상을 하직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억울하여 실컷 울었다.”,“두 달 만에 그 딸이 아버지 입다에게 되돌아오자 입다는 하나님께 서원한 대로 그 딸을 번제물로 바쳤다. 곧 그 딸은 남정네를 알지도 못한 채 죽었던 것이다.”라고 하여서 입다가 자기 딸을 희생제사인 번제물로 드린 것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역성과 개역개정은“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고”,“그 아비가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고 죽으니라”라고 번역되어 입다의 딸이 자신이 처녀로 죽게 된 것을 서러워하고 울었다는 것인지, 입다가 서원한 대로 행하므로 그의 딸이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로 죽었다는 것인지 모호한 까닭에 이것을 입다가 딸을 서원한 대로 하나님께 바쳐 번제물로 드린 것으로 보는 사람은 당연히 입다가 자기 딸을 하나님께 바친 것을 희생제사로 드려지는 번제물로 희생된 것으로 이해를 가져갑니다. 그리고 이렇게 보는 자들은 입다는 이렇게 자기에게서 가장 사랑하고 소중한 딸일지라도 하나님께 서원한 맹세는 반드시 지켰다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 서원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다음으로, 입다는 인신제사를 드리지 않았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사실 한글 여러 번역 성경을 대조하여 볼 경우는 이 견해를 지지합니다. 왜냐하면 개역 또는 개역개정성경에서“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에서‘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는,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먼저 나를 맞으러 나오는 그 사람은 주의 것이 될 것입니다. 내가 번제물로 그를 드리겠습니다.”(표준새번역)
“내 집 문에서 나오는 자는 누구든지 여호와의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바치겠습니다.”(우리말성경)
“제 집 문에서 나와 저를 영접하는 자가 여호와의 것이 될 것이니, 제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습니다.”(바른성경)
“나를 맞이하러 내 집 문에서 나오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주의 것이 되리니 내가 그것을 번제로 바치리이다.”(한글킹제임스)
“내 집 문에서 나와 나를 맞이하는 것은 확실히 주의 것이 되리니 내가 그것을 번제 헌물로 드리겠나이다.”(킹제임스 흠정역 개정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먼저 나를 맞으러 나오는 그 사람은 주님의 것이 될 것입니다. 내가 번제물로 그를 드리겠습니다.”(새번역)
라고 각각 번역하고 있어서 입다가 서원한 것에서 그가 하나님께 맹세한 것은 자기를 마중하러 나온 첫 번째 사람을 하나님의 것(사람)으로 삼겠다고 하는 것이며, 그러한 것에서 번제물로 그를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하고 있는 것임을 의도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침내 입다가 자기의 딸을 서원한 대로 이행한 것이 개역성경에서는“그는 자기가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고 죽었더라.”라고 번역했었으나, 그 개정판인 개역개정성경은“그는 자기가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였더라.”라고 번역하고 있어서 입다가 자신의 딸을 번제물로 태워 죽여 하나님께 바쳤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입다가 자신이 서원하여 하나님께 맹세/약속한 것을 지켜 이행하여 자신의 딸을 하나님께 바쳐 하나님의 사람으로 삼음으로써 입다의 딸은 일생을 남자를 알지 못한 처녀로 있었다는 것임을 알게 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다른 한글성경 번역에서도 확인되는 것입니다.
“입다는 자기가 맹세한 것을 이행하였으며 그 딸은 영영 처녀 신세가 되고 말았다.”(현대인의 성경)
“입다가 자기가 서원한 대로 그에게 하였는데, 그는 남자를 알지 못하였다.”(바른성경)
“그녀의 아버지가 자기가 서원한 대로 그녀에게 행하니 그녀가 남자를 알지 아니하니라.”(킹제임스 흠정역 개정판)
“그가 서원한 그의 서원대로 그녀에게 행했으니 그녀는 남자를 알지 못하였더라.”(한글킹제임스)
“아버지는 딸을 서원한 대로 하였다. 그 딸은 남자를 안 일이 없었다.”(공동번역)
“입다는 자기가 맹세한 대로 딸을 번제물로 바쳤습니다. 그녀는 남자를 알지 못했습니다.”(우리말성경)
한글 개역성경과 표준새번역성경은“아비가 그 서원 한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고 죽으니라.”,“아버지는 주께 서원한 것을 지켰고, 그 딸은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의 몸으로 죽었다.”는 것도 입다가 주께 서원한 것을 지킴으로써“그 딸은 번제물이 되어 남자를 알지 못하고(처녀의 몸으로) 죽었다.”는 것이 번제물로 태워져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 아니라,“하나님께 바쳐져 하나님의 사람이 된 그 딸은 (일생동안)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로 있으면서 죽었다.”는 것을 의도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말입니다. 인신제사는 이방 종교에서나 있는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행위를 허용하지 않으며, 그럼에도 이러한 행위에 있는 자들을 미워하십니다.
레위기 20장 /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또 이르라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이스라엘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면 반드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 3나도 그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는 그가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서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성호를 욕되게 하였음이라 4그가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는 것을 그 지방 사람이 못 본 체하고 그를 죽이지 아니하면 5내가 그 사람과 그의 권속에게 진노하여 그와 그를 본받아 몰렉을 음란하게 섬기는 모든 사람을 그들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라.
여기서‘몰렉’은 암몬 족속이 주요 신(神)으로 섬기는 우상입니다. 암몬 족속은 몰렉을 숭배하였는데, 자기 자식을 희생제물로 바치는 인신제사의 악행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크게 진노하셨으며,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의 악한 종교관습을 좇아 함께 악행에 참여할 경우에는 그를 돌로 쳐 죽일 것을 말하며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제거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한 악행을 저지르는 것은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히는 것이며,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이것에 있는 자를 저주하여 그들을 그대로 두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말입니다. 그러한 인신제사를 입다가 하겠다고 서원하고, 또한 하나님은 그 인신제사가 드려지는 것을 허락하여 받으셨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입다의 서원과 그 이행을 가지고 인신제사를 드렸다는 견해에 있는 것은 참으로 옳지 않습니다. 입다의 서원과 그 이행을 입다가 인신제사를 드렸다는 견해에 있는 것과 입다가 인신제사를 드린 것이 아니라는 견해의 양자 중에서 후자의 견해가 옳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참으로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입다의 서원과 그 이행을 가지고 입다가 자신의 딸을 서원을 지키는 것에서 번제물로 바치는 희생을 하였다는 것으로 설명해 나가는지요. 그러면서 하나님께 한번 서원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며, 그러한 자를 하나님께서는 축복하실 것이라는 것으로 말해 나갈 수 있는지요.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지키지 않으면 서원하지 않은 것만 못한 것이기 때문에 지키지 못할 서원을 할 바에는 차라리 서원하지 말 것이며, 서원하였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할 것이라는 것으로 말해 나가며, 성도들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가 있는지요.
이는 말입니다. 참으로 옳지 않습니다. 입다의 서원을 대하면서 이것이 입다가 인신제사를 드리겠다는 것이냐, 또는 그런 것이 아니냐 하는 것으로 고민하고, 논쟁하는 것은 참으로 무익합니다. 어느 쪽의 견해를 수용하며 따를 것이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레위기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에서 입다의 서원이 암몬 족속이나 행하는 자기 자식을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것에서 하나님께 한 서원이 아닌 것은 자명합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우리는 입다의 서원을 대하면서 이것이 어떤 것에서 있는 것이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이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성경 본문의 올바른 해석 속에서 가져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입다의 서원과 그 이행을 말씀해 주는 성경본문은 과연 입다가 자기 딸을 번제물로 드린 것인지, 그렇지 않은 다른 의미에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인지를 보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입다가 한 서원과 그 서원을 하고 난 후에 있은 일의 내용이 지니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보도록 합니다.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가로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30-31절)
입다는 암몬과의 전쟁에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승리를 안겨줄 경우 자기를 영접하기 위하여 집 문에서 나오는 첫 번째 사람을 하나님께 바칠 것이며, 이를 위해 그를 번제로 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여호와께 돌릴 것이니”는 여호와이신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라고 한 것은 입다가 자신을 맞이하는 첫 번째 사람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것, 곧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다는 것을 사람을 번제로 드리는 희생제사의 제물이라고 보면 그야말로 인신제사가 되고 맙니다. 입다의 의도는 그런 것에서 서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입다는 자신을 맞이하러 나오는 첫 번째 사람을 하나님을 위하여 바치겠다고 하였는데 이는 그를 하나님의 것으로 삼게 하겠다는 것에서입니다. 이것은 한나의 기도에서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한나는 하나님께 아들을 구하는 기도에 있었으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고 그의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음으로써 일생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도록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나는 서원한 대로 사무엘이 서너 살이 되었을 때 그를 데리고 실로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이때 한나는 사무엘을 데리고 가는 것과 함께 3년 된 황소 한 마리와 밀가루 한 부대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제물로 가져가 황소를 희생제물로 바치는 것을 통해서 사무엘을 하나님께 약속한대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그 아들이 성전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살게 했습니다(삼상 1장). 그와 같이 입다는 자신을 맞이하러 나온 첫 번째 사람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으로 번제를 드리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의 번제는 입다의 딸이 직접 번제로 드려지는 희생제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입다와 함께 번제로 드려지는 희생제물이 있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입다의 딸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희생에 있어 일생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이때 입다가 자기 딸을 번제로 드리겠다고 하고 또한 번제로 드렸다는 것에서의‘번제’는‘(연기로) 올라가는’,‘위로 올라가는’을 뜻하기도 합니다. 즉, 입다가 딸을 하나님께 바침으로써 그 딸은 하나님께로 올려져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입다가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오는데 딸이 아버지가 오는 것을 보고는 기뻐서 집 문 밖에 나오면서 소고를 치고 춤추며 맞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입다는 자신이 하나님께 한 서원을 떠올리며 옷을 찢으며 크게 슬퍼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집에서 자신과 함께 하고 있는 남자 중의 한 사람이 아닌 다름 아닌 입다에게는 무남독녀인 딸이었기 때문입니다. 입다가 옷을 찢으며 크게 슬퍼한 것은 자신이 한 서원을 괜히 했다 싶어 크게 후회하는 것에서가 아닙니다. 입다의 딸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처녀였습니다. 그러니 처녀로서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때 입다가 옷을 찢으며 크게 슬퍼한 것은 그렇게 처녀인 자기 딸을,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아 남자를 알지 못하는 자기 딸을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 것인가로 정신이 아득하고 막막한 것에서 갖는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바쳐져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것은 여자가 아닌 남자입니다. 그런데 입다가 서원한대로 그대로 따라야 할 사람은 남자가 아닌 여자인 자신의 딸이 된 것입니다. 입다는 자신이 서원하여 말한 것은 그대로 따르고 지켜야 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그는 자신이 서원하여 한 말을 되돌리거나 바꿀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말한 그대로 책임을 져야 하며, 따라서 그대로 이행하여야 합니다. 그러한 입다는 자신이 입 밖으로 쏟아낸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이기에 자신을 마중하러 나오는 사람이 남자일지 또는 자기 딸인 여자일 수도 있을 것인지에 대하여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경솔한 것에 크게 슬퍼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한 말대로 이행하여 딸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치고자 합니다. 입다의 이러한 사정을 잘 이해하는 딸은 아버지에게 부탁하였습니다. 아버지께서 하나님께 서원한 것은 그대로 행하시는데, 다만 자기에게 두 달의 말미를 주면 그동안에 동무들과 원껏 산을 타며 지내면서 자신이 처녀로 하나님을 위하여 살 게 되는 마음을 풀며 그 준비에 있겠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마음과 신변을 정리하여 하나님을 위해서 살 준비에 있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입다도 그리고 그의 딸도 입다가 한 서원을 따르고자 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입니다. 입다와 약속한 대로 두 달 만에 딸이 집으로 돌아오자 입다는 하나님께 서원한 대로 그 딸을 하나님께 바쳐 하나님의 소유로 삼았습니다. 그에 따라서“두 달 만에 그 아비에게로 돌아온지라 아비가 그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고 죽으니라”는 두 달 동안의 산 속 생활을 마치고 아버지에게로 돌아온 딸을 서원한 대로 행하여 번제물로 바치므로 그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고 처녀로 죽었다는 것을 의도하는 것이 아니라, 입다의 딸이 희생제사를 드리는 번제를 통하여 하나님께 바쳐짐으로써 하나님의 소유된 자로 일생동안 남자를 알지 못한 채 처녀로 하나님을 섬기며 살다가 죽었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음과 같은 기념비적인 말씀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이로부터 이스라엘 가운데 규례가 되어 이스라엘 여자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더라.”만일에 말입니다. 입다의 딸이 번제물이 되어서 희생된 것이라면, 이스라엘 여자들이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이나 애도하는 기간을 갖는 것은 아버지의 생각 없이 한 서원 때문에 희생된 억울한 입다의 딸을 애곡하는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그러한 것에서가 아닙니다. 입다의 딸이 하나님께 바쳐져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된 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한 전통이 되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해마다 이스라엘 여자들이 이를 기념하며 입다와 그 딸이 행한 일을 높이 기리는 기간을 나흘을 가져갔습니다.“이스라엘 여자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더라.”에서 나흘씩 애곡하였다는 것에 사용된 애곡이라는 단어는‘애곡’이라는 뜻도 있습니다만, 이는 38절에서 말씀하시고 있는“그가 동무들과 함께 가서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고”에서 사용된‘애곡’과는 다른 뜻인 ‘경축하다’,‘축하하다’,‘존귀를 돌리다’,‘찬양하다’는 뜻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입다의 딸이 처녀인 채 죽음을 애곡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게 되는‘애곡’으로 번역된 것은 번역상 오해를 가질 수 있는 것으로 그 이해에 신중을 필요로 합니다. 입다의 딸이 처녀로 일생을 하나님께 바쳐 산 것은 슬픔을 토로하여 통곡하는 것에서 애곡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닌, 입다와 그의 딸이 하나님에게 한 의로운 일을 높이 사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입다의 서원을 대하면서 새삼 성경 번역이 올바르게 되어야 할 것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됩니다. 우리는 사람의 번역의 일을 하는 한에는 적지 않은 오류나 실수와 잘못이 있을 수 있는 것을 염두에 두고서, 어떤 한 단어와 그 단어가 지니고 있는 다양한 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뜻에 집착하지 말고 본문 전체의 문맥적 흐름과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고 이해를 가져나가는 것에 주의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럴 경우 입다의 서원은 입다가 인신제사로 드렸다는 잘못된 해석과 그 이해로부터 벗어나 입다에게 임하여 그를 휘몰아 감싸고 있는 하나님의 신이 입다 만이 아니라 그의 딸도 함께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해 나가시는 일을 해 나가신 것에서 당시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원수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지켜 보호해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게 하시고, 여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억이 길이 길이 그렇게 오래도록 있게 해 나가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사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계심을 나타내 가신 것인데, 그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온 세상의 하나님이 되셔서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만이 살아 계시고 참된 신이심을 힘 있게 진행해 나가시는 것에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믿음의 주로 보내셨음에 우리는 큰 기쁨을 가지고 날마다 그분을 기리며 바라봄으로 기다림에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에 우리는 다음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 두고두고 기리며 그 기억에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것과 관련하여 예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마 26:13; 막 14:9)
하나님의 복음인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과 함께 하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인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한 일이 전해집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알기에 우리가 믿음으로 행한 일을 기억하며, 우리가 믿음으로 전하고자 하였던 그 일을 두고두고 말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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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몰렉’(Molek)은 “통치하다”,“다스리다”, “왕이 되다/왕으로 삼다/왕으로 세우다”는 뜻을 지닌 ‘말라크’(Malak)에서 유래된 것으로, 그 뜻은 ‘몰렉’, 즉 ‘왕’이다. 암몬 족속은 몰렉을 주요 신으로 섬겨 숭배하였는데, 이들은 자기 자식을 몰렉에게 희생제물로 바치는 행위도 서슴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