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27일, 인천 중앙 길병원(원장 이길여)노동자들이 10년만에 만든 네번째 노조(위원장 오명심) 설립신고서가 되돌아 왔다. 지난 10년동안 1천7백여명의 직원 거의가 모르는 노조가 회사쪽의 비호 속에 존재했다는 것이다.
길병원노동자들 사이에는 '89년에 불과 한달 사이 세번씩이나 노조를 만들었는데 병원쪽은 노조간부를 지하 영안실에 가두고, 오지에 발령내고, 이를 거부하자 모두 해고시켜 민주노조의 싹을 잘라 버렸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져 왔다. 그러기에 언젠가는 반드시 민주노조의 뿌리를 확실히 내려 보겠다는 열망 또한 간절했다.
그 사이 병원은 전국적으로 사세를 넓히며 성장을 거듭해 가천의과대학을 비롯한 재단을 설립했고, 최근에는 깅인일보까지 인수하여 IMF를 무색케 했다. 이렇게 길병원이 손꼽히는 대병원으로 기세를 떨칠수록 임금 삭감, 학자금 지급 중단 등 노동조건은 날로 악화돼 중소병원 수준에도 못미치게 됐다. 게다가 사세확장과 함께 일방적인 구조조정이 이어져 절반이상이 비정규직으로 바뀌는 등 심각한 고용불안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처럼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상황에서 8월23일 길병원에 민주노조가 탄생한 것이다. 노조가 만들어 지자 병원 노동자들 사이에는 환희와 감동의 박수가 터져 나왔고 사흘만에 3백20명이 가입, 비정규직은 물론 의사들까지 노조가입을 문의했고, 후원금이 줄을 이어 1주일만에 6백만원이 넘었다.
그러나 병원쪽의 악명높은 노무관리는 여전했다. 새로 노조를 만들자 10년간 유령노조로 있던 기존노조에 사무실을 내주고, 상근을 인정하며 구색맞춰 주기에 급급했다, 반면 새로운 노조에 대해서는 탈퇴 협박과 간부 납치기도 등 온갖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
이에 오명심 위원장을 비롯한 조합원들은 27일 시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길병원에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을 힘차게 뿌리 내리고 투명한 경영, 의료서비스 강화로 시민의 병원으로 거듭나는데 앞장설것'을 밝히고 기존노조에 집단가입해 노조민주화 투쟁에 나설 것을 선언했다.
그러나 기존노조에 가입하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새로운 노조가 만들어지던 날 '노조가 언제 만들어 졌고, 위원장은 언제 됐으며. 현재 조합원은 몇 명인가?"등을 물어 보는 기자들의 질문에 단 한마디도 답하지 못한 유령노조 두나연 위원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잠적해 버려 노조 가입원서를 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결국 오명심 위원장등 조합원은 내용증명으로 가입원서를 내고 험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민주노조의 꿈을 불 태우고 있다.